1980년대에는 일본이 세계경제를 호령했다. 거품이 꺼지면서 일본이 ‘잃어버린 10년(lost decade)’에 빠지자 이번에는 미국이 세계경제를 이끌었다. 1990년대 미국의 ‘전설적인 10년(fabulous decade)’이 그것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세계경제의 주도권은 BRICs로 넘어가는 듯했다. 중국을 필두로 브라질, 러시아, 인도의 성장세가 두드러졌으며, 2007년 미국의 금융위기가 터지자 미국과 유럽은 더 이상 성장엔진이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유럽과 일본의 경우 2015년에도 높은 성장률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여러 국제기구에 따르면 간신히 0.9%의 경제성장을 달성하리라 예측한다. BRICs도 예전 같지는 않다. 중국의 경우 7.2%로 여전히 높지만 2000년대 초중반에 비하면 확실히 낮은 수치이다. 브라질의 성장률도 0.9%에 불과하리라고 예측하며, 러시아의 경우에는 0%의 성장률도 어려울지 모른다. 인도의 성장전망치가 5.9%인데 그나마 중국과 인도가 BRICs의 명맥을 잇는 듯하다.
거의 모든 나라의 성장전망이 긍정적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IMF에 따르면 2015년 세계 전체의 경제성장률은 2014년보다 약간 높아서 3.5%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미국경제의 회복세는 단연 주목받고 있다. 금융위기 발발 이후 문제아 취급을 받았던 미국경제가 부활하고 있으며, 이제 다시 세계경제의 성장엔진으로 컴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1990년대의 ‘전설적인 10년’이 재현될 수 있을까?
2015년 미국경제의 전망
2014년 2분기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4.6%나 되었다(분기 경제성장률은 보통 전년 동기 대비로 계산하므로 4.6%라는 수치는 연율에 해당한다). 3분기에도 높았으리라고 예상되었는데, 확정치가 발표되기 직전까지만 해도 전문가들의 예측치는 4.3%이었다. 하지만 확정치는 예상을 깨고 5%나 되었다. 금융위기 직전인 2006년 1분기의 4.9%를 넘어선 놀라운 성적이었다. 미국경제가 금융위기를 극복하였다는 진단이 성급하지 않다는 견해가 나올 만도 하다.
이런 추세는 2015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뱅크오브아메리카(Bank of America) 메릴린치는 미국경제가 2014년 2.3% 성장하고 2015년에는 3.3%의 강한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한다. 이보다 낮은 수치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대외경제정책연구원도 2015년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2.7%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우리나라의 성장률 전망치 3.5~3.8%와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으며, 앞서 언급한 주요국과 비교해 보면 미국의 성장률 전망치는 단연 돋보인다. 2015년은 미국경제가 독주하는 한 해가 될지도 모른다.
미국경제의 회복세는 민간소비와 투자가 주도하였다. 2014년 2분기부터 소비와 투자가 증가세로 전환하였으며 이것이 고용확대로 이어졌다. 2014년 11월 기준 미국의 실업률은 5.8%까지 낮아졌는데, 이 수치는 벤 버냉키(Ben Shalom Bernanke) 전 연준 의장이 염두에 두었던 6.5%보다 훨씬 더 낮은 것이다. 버냉키는 실업률이 6.5% 이하로 떨어질 때까지 양적 완화를 해야 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우리가 보기에 5.8%는 매우 높은 것이지만 그건 우리나라의 이야기이고, 미국의 실업률은 본래부터 높은 편이다.
2015년에도 민간소비와 투자의 증가세는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로 인해 현재에는 고용이 확대되는 단계이지만 곧바로 임금의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다. 소득의 증가는 주식가격과 주택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지고 다시 소비가 증가하는 선순환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한다. 투자도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풍부한 유동성과 저금리가 바탕이 되고 있다. 또한 셰일가스혁명으로 인해 에너지 가격이 하락하면서 수출경쟁력도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저유가시대의 재래(在來)
2015년 벽두 세계경제의 가장 큰 뉴스는 유가의 급격한 하락이다. 미국업체의 셰일가스 생산에 대응하여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레이트연합 등이 유가하락으로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벌써부터 ‘3차 오일전쟁’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매일같이 전해지는 속보를 보면 두바이유 현물가격은 배럴당 50달러 이하로 떨어지고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원유 생산원가는 배럴당 평균 10∼17달러이고 미국 셰일가스회사의 생산원가는 평균 70∼77달러라고 한다. 따라서 유가가 60달러 중반으로 떨어지면 셰일가스회사들이 가동을 중단하리라고 전망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최근 생산의 효율성이 향상되면서 미국 셰일가스회사들은 40달러선까지도 버틸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저유가는 꽤 오래 지속될 전망이다.
유가하락은 미국의 정유업계, 특히 셰일가스 생산업체에게는 심각한 타격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저유가의 혜택은 국민경제 전체에 돌아가게 될 것이다. 골드만삭스의 보고서에 따르면 750억 달러 정도의 감세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이 정도의 유가하락이라면 2015년 미국의 국내총생산은 0.4% 포인트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주목할 것은 유가하락이 누진적 감세(progressive tax cut)효과를 지닌다는 점이다. 미국의 경우 2012년 연소득 5만 달러 이하의 저소득가구는 세후소득 중 21%를 에너지에 소비하였고, 연소득 5만 달러 이상의 가구는 세후소득 중 9%를 에너지에 소비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유가하락은 저소득층에게 매우 좋은 소식이다. 또한 가구당 에너지소비가 증가하여 왔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연소득 5만 달러 이하의 저소득가구는 2001년 세후소득 중 12%를 에너지에 소비하였으나 2012년에는 21%를 에너지에 소비하였다고 한다. 또한 연소득 5만 달러 이상의 가구도 2001년 세후소득 중 5%를 에너지에 소비하였으나 2012년에는 9%를 에너지에 소비하였다고 한다. 그러므로 에너지가격 하락이 소비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는 매우 크다.
저유가로 인한 소비 증가는 기업의 투자와 고용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2014년 11월에는 22만 7,000건의 일자리가 증가하였고 12월에는 이보다 더 많은 24만 1,000건의 일자리가 늘었다고 한다. 미국의 실업률은 2014년 11월 5.8%까지 하락하였는데 2015년에는 자연실업률 수준인 5.2~5.5%까지 하락하리라는 전망치가 잇따르고 있다.
미국경제의 회복세가 완연하다는 데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셰일가스혁명과 그에 따른 유가하락을 꼽는다. 하지만 한 가지 요인만 작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유가하락의 혜택이 미국에만 돌아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경제가 회복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럽과 일본의 경제가 그렇지 못한 현상을 설명하려면 무언가 다른 요인을 찾아야 한다.
여기에는 중요한 논쟁들이 숨어있다. 거시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쟁점으로 간주되는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유효성에 대한 논쟁이다. 간단히 말해 재정정책이란 경제가 침체되었을 때 정부가 지출을 늘리는 정책이고, 통화정책이란 경제가 침체되었을 때 중앙은행이 통화량공급을 늘리거나 이자율을 낮추는 정책이다. 보수적인 견해를 가진 공화당원들은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 무력하다고 생각하지만, 진보적인 견해를 가진 민주당원들은 적절한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통해 불황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교과서에나 나오는 이야기로 치부할지 모르지만 이 두 가지는 생생하게 살아있는 논쟁이다. 최근 10여년의 경제적 상황을 요약하자면 자산가격의 과열과 폭락, 그리고 금융위기의 발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이란 국민들에게는 혹독한 시련이었겠지만 거시경제학자들에게는 더없이 놓은 탐구대상이 되었다.
재정정책을 둘러싼 논쟁
보수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미국경제를 회복시킨 원동력은 민간부문에서 나왔고 그중에서도 기업의 투자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4년의 경우 투자는 9% 가까이 증가했고, 개인소비와 수출은 각각 3.2%와 4.5% 증가하였다. 예사롭게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이 분석은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왜냐하면 미국의 경우 경제회복의 열쇠를 지닌 것은 투자라기보다는 소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2014년의 경제성장에서 투자가 가장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의외로 받아들여질 만하다.
흥미로운 것은 투자가 이렇게 많이 증가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그 이유는 정부의 지출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물론 2014년에도 정부지출은 4.4% 증가하였다. 하지만 대부분이 대외적인 군비지출 때문이었고 국내에서의 정부지출은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고 한다. 정부지출이 많지 않았으므로 이것이 민간의 투자와 소비를 촉진하였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말하자면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구축효과(crowding effect)가 없었던 것이다(구축효과란 정부지출 증가에 따라 민간의 투자와 소비가 위축되는 현상을 말한다). 따라서 이들은 지난 3년 동안 미국정부가 한 일 중 가장 잘한 것은 정부지출을 억제하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미국연방정부의 지출은 2009년에 GDP의 24.4%나 되었다. 그러다가 2010년에는 23.4%, 2014년 중반에는 21%까지 줄어들었다. 2014년 4분기 말에는 20%가 될 것으로 보이는데, 5년 동안 GDP 대비 정부지출은 4% 포인트 낮아진 셈이고 금액으로는 7,000억 달러에 이른다. 즉 정부지출을 7,000억 달러 줄였더니 민간의 투자와 소비가 그것 이상으로 증가했다는 것이다. 보수적인 경제학자가 보기에는, 정부지출의 억제가 미국경제를 살렸다는 것이다.
이들은 오바마 행정부 초기 정부지출이 무려 8,300억 달러나 증가했는데 그것의 효과가 무엇이었느냐고 비판한다. 사실 오바마 행정부 초기 미국경제의 상황은 대단히 어려웠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우파로 알려진 시카고학파(Chicago school)의 경제학자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새케인즈학파(New keynesian school) 경제학의 선두주자로 잘 알려진 존 테일러(John Taylor)도 정부지출의 승수(multiplier)는 거의 1에 가깝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정부지출의 경기부양효과가 크다면 정부지출의 승수는 1보다 커야 한다).
물론 진보적인 사람들의 견해는 다르다. 미국에서 진보적인 경제학자라면 케인즈학파에 속하는 사람들을 말하는데, 이들은 정부와 연준의 적극적인 정책이 중요했다고 말할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는 정부지출의 승수가 1.3 정도 된다고 말한다. 이 말은 정부가 지출을 1원 증가시키면 국민소득은 1.3원 증가한다는 뜻으로, 이른바 승수효과가 작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어쨌든 재정정책의 유효성에 관한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보수적인 견해가 주장하는 것은 정부지출의 적절한 관리를 통해 균형재정의 달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진보적인 견해가 주장하는 것은 경기침체의 극복을 위해 재정적자도 불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미국경제의 회복은 정부가 어떤 정책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판단하기 위한 또 하나의 중요한 사례가 될 것이다. 이 논쟁이 단순히 당파적 싸움으로만 흐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양적완화는 성공한 것인가?
미국경제의 회복에 대해 말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은 뭐니뭐니 해도 연준의 의장이었던 벤 버냉키이다. 10년 전만 해도 들어본 적이 없는 용어이지만, 이제는 익숙해진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라는 초유의 정책을 실행에 옮긴 사람이다. 만약 미국경제가 향후 몇 년간 순조롭게 회복된다면 그것이 버냉키 덕분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2006년 연준 의장에 취임한 벤 버냉키는 취임하자마자 엄청난 과제를 떠맡게 되었다. 미국의 금융위기가 터진 것이다. 하필 이럴 때 연준 의장을 맡게 되다니... 그는 불운하다고 생각했을 법도 하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연쇄적인 금리인하를 단행하여 연방기금금리를 제로와 다를 바 없는 0.0010~0.0015%까지 떨어뜨렸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라면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버냉키에게는 준비해 둔 정책이 있었다. 바로 양적 완화라는 정책이다. 버냉키는 금융위기를 위해 준비된 사람 같았다.
2009년 3월 처음으로 양적 완화를 시작하였는데, 모두 1조 4,500억 달러의 채권을 사들였다. 그래도 경제가 회복되지 않자 2010년 11월 2차 양적 완화를 시행하여 6,000억 달러의 국채를 사들였다. 3차 양적 완화는 2012년 9월부터 시작되었는데 매달 400억 달러의 MBS(모기지담보부채권)를 매입하기로 하였다. 2013년 1월부터는 매달 450억 달러의 국채를 추가 매입하기로 함에 따라 이때부터 연준은 매달 850억 달러의 채권을 매입하였다.
끝이 없을 것 같았던 양적 완화는 2013년 12월 연준이 테이퍼링에 착수함으로써 마무리 수순에 들어가게 된다(tapering은 끝이 가늘어진다는 뜻의 taper에서 나온 용어이다). 채권 매입액을 100억 달러 줄여서 750억 달러의 채권을 매입하기로 수정한 것이다. 이후 여섯 차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채권 매입액을 100억 달러씩 줄였으며 드디어 2014년 10월 양적 완화의 종료를 선언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재닛 옐렌(Janet Yellen)이 버냉키의 뒤를 이어 2014년 2월 연준의장에 취임하였다. 옐렌은 버냉키의 적극적인 지지자인데, 그녀가 연준 의장이 됨으로써 정책의 연속성이 보장된 셈이다. 양적 완화에서 시작하여 테이퍼링을 거쳐 출구전략을 집행하는데 있어 버냉키-옐렌의 프로그램은 애초의 구상대로 차질 없이 수행될 것으로 보인다.
버냉키 직전 연준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은 2008년 미국금융위기를 ‘100년에 한 번 있음직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세계경제는 1929년 대공황시절만큼이나 파국으로 치달았어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되지는 않았다. 이것이 양적 완화 덕분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최근 유럽경제와 일본경제의 상황은 결코 좋지 않다. 반면에 미국경제는 위기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 이유를 통화당국의 서로 다른 행보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미국은 단호하게 양적 완화를 추진하였다. 반면에 유로존은 회원국 간 합의에 이르지 못하며 통화정책이 표류하고 있고, 일본은 지난 10여 년간 우왕좌왕하여 왔다. 우리가 양적 완화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양적 완화에 비판적인 사람들도 많다. 대표적인 사람 중의 하나가 앞에서 언급한 바 있는 스탠포드대학의 존 테일러교수이다. 우선 그에 따르면 현재까지 양적 완화의 성과도 결코 좋지 않다. 테일러는 1980년대와 1990년대 연준의 정책을 지지하는데, 1980년대 레이건행정부 시절에는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4~5%나 되었다(심지어 분기별로는 6%를 넘을 때도 있었다). 이와 비교할 때 현재 2~3%의 경제성장률은 결코 높지 않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걱정이다. 그는 양적 완화로 인해 리스크가 커졌다고 말한다. 즉 미래 어느 시점에 어느 정도의 인플레이션이 나타날지 예측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양적 완화를 평가하기에는 아직 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출구전략과 그 이후가 더 중요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출구전략에 대비할 때
이제 남은 과제는 거의 제로수준까지 떨어진 연방기금금리를 인상하는 것이다. 버냉키는 2015년까지 제로금리를 유지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는데 그 가이드라인으로 6.5%의 실업률과 연 2%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을 제시한 바 있다. 즉 실업률이 6.5% 이하로 떨어지고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연 2%를 넘으면 양적 완화를 중단하고 금리를 인상하겠다는 것이다.
2014년 11월 미국의 실업률은 5.8%이었고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1.3%이었다. 실업률만 보면 금리를 인상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할 만하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율을 보면 아직은 시기상조일지 모른다. 사실 2014년 상반기에는 소비자물가상승률이 2%에 이르렀다. 그러던 것이 하반기에 오히려 1.3%까지 낮아졌으니 아직 디플레이션 압력을 무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연준도 금리인상시기를 두고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통화당국은 디플레이션 여부를 판단하기 위하여 소비자물가상승률만을 따지지는 않는다. 식량가격과 에너지가격이 디플레이션 여부와 관계없이 하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서부텍사스산 중질유(WTI) 가격은 2014년 초 배럴당 95.44달러에서 연말 53.27달러까지 44.2%나 폭락하였다. 따라서 소비자물가상승률이 높지 않은 이유가 디플레이션 압력 때문이 아니라 에너지가격의 하락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종종 언론에서는 소비자물가상승률만을 보도하곤 한다. 하지만 통화당국은 디플레이션 압력을 판단하기 위하여 식량가격과 에너지가격를 제외한 인플레이션율을 계산하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근원인플레이션(core inflation)이다. 2014년 11월 미국의 근원인플레이션은 1.7%였다. 이 정도라면 아직까지 디플레이션 우려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판단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연준은 금리인상의 시기를 늦추어야 할지도 모른다. 진보적인 경제학자로 알려진 프린스턴대학의 폴 크루그먼(Paul Krugman) 교수는 아직 인플레이션 압력을 찾아볼 수 없다고 말하면서 섣부른 금리인상은 돌이키기 어려운 충격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금리인상을 포함한 미국 연준의 출구전략은 세계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양적 완화로 인해 전 세계에 뿌려진 달러가 미국으로 환류할 것인데 이것이 다른 나라들에게 급격한 자본유출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4년 연준이 테이퍼링을 시행하자 인도네시아, 터키 등은 금융위기를 겪은 바 있다. 이창용 IMF 아태국장은 미국 연준이 금리를 0.25% 포인트 인상한다면 아시아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겠지만, 1% 포인트 이상 인상한다면 아시아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미국 경제전문가들은 연준이 2015년 말까지 0.5% 포인트 정도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전망한다. 조금 애매한 수준이다.
미국경제는 재도약할 것인가?
미국에서 위기론이 널리 퍼지던 1990년대 초반 미국의 GDP는 세계 GDP의 21% 정도를 차지하였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의 번영을 거치면서 2000년대 초반 미국의 GDP는 세계 GDP의 30% 정도까지 커졌다. 미국인들이 왜 그렇게 클린턴 전 대통령을 좋아하는지 알 만하다. 하지만 금융위기를 겪고 난 후 미국의 위상은 많이 떨어졌다. 물론 중국을 위시한 인도, 브라질, 러시아 등 인구가 많은 나라의 성장이 두드러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쨌든 현재 세계 GDP에서 미국의 GDP가 차지하는 비중은 22.4% 정도까지 줄어들었다.
주요국의 성장전망이 어두운 가운데 미국만이 그런대로 높은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미국 재무장관을 역임한 바 있는 탁월한 경제학자 로렌스 서머스(Lawrence Summers)가 제기한 바와 같이, 세계경제에는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의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2015년은 또 다른 형태의 위기와 이에 대한 도전의 한 해가 될 것이다. 미국은 재도약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본 기사는 월간지 <이코노미21> 1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