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 원금보장형 주식 발행 통해 장기주주 육성과 안정적 자금조달
배당성향이 높아지면 단기매매 차익을 노리는 주주보다 장기 보유 주주를 육성한다는 긍정적인 측면을 지닌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알짜배기 국내 기업들에 대한 외국인 소유 비중이 50%를 훨씬 웃도는 상황에서 배당성향만 높아질 경우 만만찮은 부작용이 따른다. 외국인 주주에 대한 배당은 민간소비 등 국내 구매력으로 이어지지 않고 고스란히 밖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2018년 배당적자 56억5천 달러로 전년보다 300% 급증
재벌닷컴이 지난 2월 추계한 바로는 지난해 삼성․현대․에스케이․엘지 등 4대 그룹의 주주 배당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51.1%가 넘었다. 전년 대비 3.7%포인트나 높아졌다. 액수로는 9조2천억원으로 2017년 6조4천억원보다 43%나 늘었다.
우리․국민․신한․하나 등 국내 4대 금융지주그룹은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배당성향을 연평균 11.2%씩 높여 왔다. 이 기간 동안 평균 배당성향은 21.9%다. 지난해 이들 그룹의 총 배당액은 2조5200억원이었고, 배당성향은 하나금융 25.5%, 케이비금융 24.8%, 신한금융 23.5%, 우리금융 21.5%였다. 66~70%인 외국인주주 비중(우리금융 27%대)을 감안하면, 외국인 배당은 1조7600억원에 이른다.
이렇게 늘어난 외국인 배당은 국제수지 본원소득수지의 배당 항목 적자의 급증으로 이어졌다. 2018년 배당소득 적자는 56억5천만 달러(약 6조2700억원)나 됐다. 2017년 18억 달러에서 무려 300% 증가한 것이다.
국내 기업의 배당성향이 여전히 해외 기업보다 낮다는 주장이 널리 퍼져 있는 상황에서 배당성향은 앞으로 점점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2017년 한국 상장사의 배당성향은 17.53%로 G20개국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미국 35.53%, 중국 31.4%, 인도네시아 41.54%, 터키 32.28% 등이다.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제기한 터무니없는 요구가 상징하듯, 배당을 늘리라는 외국인의 압력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이 펀드는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를 상대로 지난해 순이익의 3.5배가 넘는 14조1천억원의 배당을 요구하는 안건을 3월22일 열리는 주주총회에 제출해 놓은 상태다.
도요타 채권․예금 혼합한 원금보장형 ‘신형주식 AA' 발행…연구개발자금 4조7천억원 조달
될 수 있는 한 구매력을 국내에 남게 하면서 장기 보유 주주를 키우는 한편 기업은 안정적인 자금 조달을 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이를 적극 추진하는 게 필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2015년 7월 일본의 글로벌 자동차업체인 도요타가 1936년 처음 만든 승용차 모델의 이름으로 공모 발행한 원금보장형 ‘신형주식 AA모델’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그때 도요타는 총 발행주식 1억5천만주의 5% 이내에서 신형주식 AA모델 4710만주를 주당 1만598엔에 발행해 4750억엔을 조달했다. 발행매수의 5배가 넘는 구매 신청이 몰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신형주식 AA모델 발행량만큼 자사주를 시간을 두고 사들여 총 발행주식수는 그대로 유지했다.
원금보장형 주식이라니 매우 낯설다. 하지만 주주는 배당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채권자다. 도요타 신형주식 AA모델은 이 점에 착안했다. 특별한 경우를 빼곤 신형주식 AA모델을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는 매매는 5년 간 제약된다. 장기보유를 유도하기 위해서다. 보통주처럼 투표권도 있고 배당도 받는다. 주당 연간 배당률은 첫해 공모가격의 0.5%(약 53엔)이다. 1년이 지날 때마다 0.5%포인트씩 올라 5년째인 2020년 2.5%가 된다. 5년 평균 연 배당률은 1.5%이다.
5년 뒤부터는 세 가지 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하나는 애초 공모가격으로 회사에 매각하는 것이다. 주가가 공모가격보다 떨어졌을 경우 원금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다. 다른 하나 보통주로 전환해 보유하거나 시장에 매각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신형주식을 연 배당률 2.5%에 그대로 보유하는 것이다. 다만 신형주식 AA모델을 차환발행하며 유지할지에 대해 도요타 이사회가 결정할 권한이 있다.
도요타가 이 주식을 발행하게 된 배경에는 개인주주가 11%에 불과해 상장사 평균인 20%를 밑돈다는 사정이 작용했다. 이와 동시에 단기매매 차익을 얻는 개인주주가 아니라 장기 보유를 원하는 충성스러운 개인주주를 육성해 안정적인 장기자금을 조달하는 것이었다. 신형주식 AA 발행을 통해 조달한 자금 4750억엔(약 4조7천억원)의 용도는 자율주행차와 전기차 연구․개발이었다.
단기매매 차익 부추기는 자사주 매입 낭비 막고 국내 장기보유 개인주주 키워야
도요타 신형주식 AA모델이 한국 주식시장과 기업에 갖는 함의는 여러 가지다. 한국판 신형주식 AA모델 도입을 적극 검토할 필요성도 바로 여기에 있다. 무엇보다 터무니없는 배당 요구를 내세우는 외국계 헤지펀드나 사모펀드 등을 체계적으로 배제할 수 있다는 점이다. 헤지펀드 해산기간이 보통 5년 이내라는 점, 양도가 금지된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시장금리나 이보다 조금 높은 수준의 배당률을 약속하는 신형주식 AA모델은 이들에게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 실제로, 도요타 신형주식 AA모델 발행에 미국계 연기금 펀드들은 강하게 반대했다. 반면 단기매매 차익보다 장기보유에 관심을 갖는 국내 투자가들에게는 원금이 보장된다는 측면에서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다. 정기보유 개인주주의 저변을 넓히는 저축과 투자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자사주 매입이 우리나라에서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측면에서도 한국판 신형주식 AA모델은 필요성이 높다. 회삿돈을 들여 사들인 자사주는 주가 부양 차원에서 그대로 소각하는 경우가 많다. 현대자동차가 지난해 4~7월 발행 주식의 3%에 해당하는 자사주 854만주(9400여억원)를 사들여 소각한 게 대표적이다. 주주 환원이라는 명분으로 이뤄지는 이런 자사주 매입은 단기매매 차익을 노리는 ‘뜨내기’ 주주들만을 이롭게 하는 역설을 낳거나 스톡옵션 등을 통해 경영진의 배를 불리는 부작용만을 낳는다. 미국에서 자사주 매입을 통한 주가 부양에 얼마나 많은 돈이 낭비되는지를 단적으로 상징한다. 물론 자사주 매입은 회사 분할 과정에서 대주주의 지분을 늘리는 수단으로 악용하기 위해 소각하지 않고 갖고 있는 경우도 있다. 소각하는 자사주 물량의 전부 또는 일부를 한국판 신형주식 AA모델 발행과 연계한다면 장기주주(일종의 채권자)를 키우면서 안정적인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된다. 차등의결권주 발행에만 온통 관심을 쏟는 국내 재벌그룹의 창업자 일가들이 더 신경써야 할 지점이 있다면 한국판 신형주식 AA모델과 같은 게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