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용’과 ‘행위’ 없는 결과, 구조는 스스로 작동했나?
[이코노미21 조준상 선임기자] 당신은 어쩌겠는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일이 진행되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일이 벌어지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일로 비난을 받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일로 자신의 꿈과 이상에 걸림돌이 돼버린다면? 아마도 미치고 팔짝 뛸 것이다.
당신은 어쩌겠는가? 당신이 나라와 사회의 주요한 사안에 대해 잘잘못 따지고 충고하고 비판하고 훈계하는 일을 거의 업으로 삼아왔다면, 그런데 그러는 사이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꿈과 이상에 걸림돌이 돼는 일들이 벌어졌음을 나중에 알았다면?
후자의 물음에 대한 답은 쉽지 않다. ‘산다는 것이 때로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느끼고, 때로 얼마나 비루한지를 느끼는’ 시민들마다 다를 것이다. 혹자는 모든 걸 내던지고 자신의 인생을 진지하게 돌아보는 기회로 삼을 수도, 혹자는 이전에도 무수하게 벌어졌는데 하필 나한테 일어났다는 ‘운칠기삼’으로, 혹자는 뼈아픈 ‘개과천선’의 통과의례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본인은 내려놓고 싶으나, 호랑이 등에 업힌 ‘기호지세’라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할 이들도 있을지 모른다. 내 개인적인 좌우명은 ‘남을 비판하려면 스스로 그만큼 강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유와 사정과 경과가 어찌됐든 법에서 정한 인사청문회 대신에 여당의 도움을 받아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가 9월2일 국회에서 진행한 기나긴 기자회견을 보며 수많은 설왕설래가 있다. 굳이 따로 소개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그의 해명을 들으며 어떤 이는 의혹이 상당 부분 풀렸다고, 어떤 이는 매우 미흡하다, 어떤 이는 국민 우롱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기자는 다른 사람 얘기를 주로 해야 하는 업이라지만, 여기서는 나의 의견을 얘기하는 게 좋을 듯하다.
이른바 ‘조국 펀드’와 관련해 하나의 현실적 가능성은 열어둬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그의 부인도 모르게 5촌 조카가 그의 이름을 팔아 사업했을 가능성이 그것이다. 민정수석 조국이 투자한 펀드라며 은근히 때로는 노골적으로 내비치며 영업을 했을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하기야 정치인 이름을 갖다 붙여 ‘아무개 주’라는 식의 테마주가 입에 오르내리는 게 증권시장의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어떤 사업적 연결고리가 있어서가 아니라 테마주에 편입된 해당 기업의 대표나 실세 경영진이 이름을 딴 정치인과 고등학교나 대학 동창이더라는 식이 이런 ‘아무개 주’의 실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점들이 수두룩하다.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해서인지, 돈의 절대량이 많아서인지는 모르겠다. 그는 사모펀드가 ‘블라인드 펀드’인 줄 이번 사태가 터지고 나서야 알았다고 했다. 어디에 어떻게 투자했는지 이번 사태가 터지고 나서야 알았다고 했다.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하나는 해명이 됐다. 민정수석으로 있으면서 자신의 펀드가 투자한 회사들을 사전에 알지 않았느냐, 나아가 정부가 키우는 사업분야와 이 분야의 신흥기업에 관한 내부정보를 미리 흘린 것 아니냐는 언론의 의혹제기에 선을 그은 것이다.
그러나 거기서 그쳐야 했다. 그는 “모른다”는 말을 너무 많이 했다. 언론의 의혹제기에 대해 그를 지지하는 세력들은 사모펀드에 대해 뭘 모르면서 언론이 음해한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하지만 아무리 블라인드 펀드라도 어느 기업에 투자할지를 결정하지 않고 자금을 모은 뒤 투자 행위가 이뤄지고 나서 일정기간이 흐른 뒤에는 어느 기업에 투자했고 예상 수익률은 어느 정도 된다고 투자자에게 알리는 건 사모펀드업계의 ‘비즈니스 룰’이다. 무한책임사원으로 불리는 제너럴 파트너스(GP)에게 수익률을 웃돌 경우 그에 대한 보상을 얼마로 할지는 투자자와 계약사항이다. 나중에 사모펀드에 대해 공부하면서 배웠는지 그와 그의 부인은 “전문투자자가 아니다”는 말도 했다. 하지만 사후에 어디에 얼마나 투자했는지, 예상수익률은 얼마인지, GP에 대한 일종의 성과급은 어떻게 했는지에 대한 내용은 굳이 전문투자자가 아니라 펀드에 일정액을 투자하는 그와 같은 유한책임사원(LP)이라면 당연히 알아야 할 내용이다.
그의 해명이 사후에도 몰랐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럴 수도 있다. 이런 내용을 전혀 통보받지 못했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그 펀드는 정상이 아니다. 매우 심각한 불법이다. 이 가능성까지 열어두며 이 업계에 대해 좀 아는 이코노미21의 관계자는 추정하건대 “아마추어가 운영하는 펀드 같다”는 품평을 내놨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검찰 수사에서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자식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허탈해하는 듯하다. 고교서열제 아래에서 자식이 혜택을 봤음을 인정하는 후보의 말에서는 진정성이 느껴진다. 모든 잘못을 본인에게 물어달라는 말에서는 자식을 둔 부모의 심정을 헤아리게 한다. 적어도는 내게는 그렇게 다가왔다. 하지만 결국 그의 해명을 들어보자면 그와 그의 부인은 아무런 행위를 하지 않았는데도 결과는 그렇게 됐다는 것이다. 학교가 알아서 했고, 어떤 교수가 알아서 했고, 해당 고등학교의 동아리가 서울대 법대에 전화했더니 그렇게 됐다는 것이다. 이건 뭔가 스스로 작동하는 기계가 있었다는 얘기다. 어떤 구조가 스스로 작동해 그의 자식에 유리한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인위적인 개입은 없었고, 구조가 작동하며 물 흐르듯이 흘러갔다는 식이다.
구조와 행위의 연관관계를 자세히 따지자는 게 아니다. 따지자면 여기서 구조는 고등학교 위계서열구조일 것이다. 문제는 이 구조는 스스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위계서열의 최상층부에 있는 학교에서 작용(action)이 없음에도 반작용을 통해 그의 자식에 유리한 어떤 결과가 낳았다면 그 결과는 결국 ‘이심전심’의 산물이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 이해해 배려해주는 ‘침묵의 공모’가 작용한다는 의미다. 그의 부인도 전화한 적이 없다고 하니 현재로서는 이렇게 밖에는 달리 분석할 방법이 없다. 아마도 그의 답변으로 불똥은 해당 고등학교까지 튀지 않을까 싶다.
작용이 없는 결과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고 사회환원을 약속하며 그는 개혁으로 책임지고 싶다고 했다. 내게도 진정성은 다가온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다시 물어봤으면 싶다. “기회는 준비된 사람들에게만 온다”는 루이 파스퇴르의 말을 자신에게 다시 한 번 던져보라고 말이다. 그래도 가고자 한다면 인사청문회를 거치는 게 옳다. 인사청문회 며칠 늦어진다고 기자들 모아놓고 기자회견으로 갈음하려는 발상과, 며칠 늦어지더라도 인사청문회를 거치는 것 중 무엇이 더 '법치'(rule of law)에 충실한 것인지 법학자인 그가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와 여당, 그리고 청와대가 전자를 선택한다면, 아마도 대한변호사협회를 포함한 법조계도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갈 것이다.
그 과정을 거쳐 임명이 되고, 임명이 돼서 검찰의 수사를 받고, 그 결과에 따라 그는 옷을 벗을 수도 있다. 그가 추구하고자 하는 개혁에서 최선이 아닌 차선, 최악이 아닌 차악을 피하는 단계는 이미 지난 듯하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과정과 절차를 지키는 게 맞다. 그의 표현처럼 만신창이가 된 상황이지만 눈앞의 과정과 절차를 묵묵히 밟아나가라는 말이다. 헌법 개정이 여의치 않으니까 공격형 무기를 대량으로 들여와 평화헌법을 사실상 무력화시키려고 획책하는 아베 정권이 뭐라 하겠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면서. [이코노미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