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이 RP매입 하면 그만큼 은행의 지준금 늘어나
RP 통해 순수하게 공급된 유동성은 13.86조원
[이코노미21 양영빈] 한국은행은 12월 4일부터 실패한 비상계엄 조치 이후 금융시장의 불안을 막기 위해 긴급하게 비정례 RP매입(환매조건부채권매입)을 시작하기로 했다. RP매입은 한국은행이 금융기관이 보유한 증권(국채 등)을 담보로 보통 7일, 14일로 단기 자금 융통을 하는 장치다.
시중에 자금 경색이 생기면 금융기관은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자금을 융통하거나 보유한 자산을 급하게 처분해야 한다. 자금 융통이 어렵다면 보유 자산을 급하게 처분하는 과정에서 많은 손실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 결과 자금 시장의 혼란은 더욱 가중될 수 밖에 없다.
미국 연준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경우를 대비해서 RP매입 장치가 있다. 연준은 상설레포기구를 통해 비상시에 금융기관들이 보유한 증권을 급하게 처분하지 않고 연준에 담보로 맡기고 필요한 자금 대출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한은의 RP매입도 마찬가지로 일단 RP매입을 하면 그만큼 은행의 지준금이 늘어나게 된다. 지준금이 늘어나며 이것은 은행의 유동성을 높이게 된다.
한국은행의 이번 RP매입을 바라보는 시선은 주초만 하더라도 비관적이었다. RP누적 매입이 151조라는 근거 없는 낭설이 SNS를 통해 유통됐으며 이것은 한국은행이 유동성을 시중에 쏟아 붓고 있다는 비판으로 까지 확대됐다.
한국은행의 RP매입은 보통 7, 14일 만기로 진행된다. 만약 1년간 RP매입을 한 것의 누적 합을 구하면 그정도 규모는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매달 1억씩 자금을 빌리고 갚는 것을 지속적으로 1년간 했을 때 차입 누적 합은 12억이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동일하다. RP처럼 만기가 짧은 것을 볼 때 중요한 것은 누적 합이 아니라 어느 시점에서 청산되지 않은(outstanding) 차입(또는 공급) 규모다. 다음은 한국은행이 2020년부터 월말 잔고 기준의 RP 매입과 매각 결과를 보여준다.
RP매입은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장치라면 RP매각은 시중의 유동성을 흡수하는 장치다. RP매각은 연준의 역레포와 매우 유사한 제도이며 시중에 유동성이 남아도는 주체로부터 유동성을 흡수해 기준금리가 너무 낮아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한국은행의 정책도구다.
위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최근 9월까지는 RP매입 및 매각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12월 4일 이후 한국은행의 RP매입 실적은 다음과 같다.
12월 4일 이후 RP매입을 통해 시중에 공급한 유동성은 14.06조원이었고 RP매각을 통해 흡수한 유동성은 0.2조원으로 순수하게 13.86조원의 유동성이 RP를 통해 공급됐다.
이전의 RP매입 및 매각이 전부 만기가 지났다면 현재 RP를 통한 유동성 공급액은 Outstanding으로 13.86조원이라고 할 수 있다. SNS를 통해서 급격히 유포됐던 151조와는 거리가 매우 멀다. 더욱이 12월 9일부터 11일까지 RP를 통한 매입은 없었으며 이것으로부터 시중 유동성이 경색 국면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은행은 연준과 달리 시중 유동성을 조절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채권을 발행할 수 있다. 통화안정증권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은행이 통안증권을 발행하면 시중 금융기관은 통안증권을 매입하고 그만큼 지준금이 감소한다. 즉 한국은행의 통안증권 발행은 유동성 흡수 장치이다. 또한 한국은행은 통화안정계정예치금을 통해 시중의 유동성을 흡수할 수 있는 장치가 있다. 통화안정증권은 만기가 길다. 반면에 통화안정계정예치금은 만기가 매우 짧아 일시적으로 유동성이 남아도는 기관들이 사용한다. 둘 다 유동성을 흡수하는 것에는 동일하지만 만기에서 차이가 난다. 다음은 통안증권과 통안계정의 최근 9월까지의 흐름을 보여준다.
위 그림을 보면 통화안정증권은 장기적인 유동성 관리를 하고 단기적인 유동성 미세조정은 통안계정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은 12월 4일 이후 통화안정증권과 통화안정계정예치금의 실적이다.
12월 10일에는 통화안정계정예치금으로 6.8조원이 낙찰됐으며 이 금액은 12월 12일 만기가 되므로 이 때 다시 시중에 나온다. 한국은행은 12일에 특별한 통안계정 입찰 계획이 없으므로 이 금액은 시중에 그대로 남게 된다.
종합하면 12월 4일부터 한국은행은 RP를 통해 13.86조원의 유동성을 공급했고 통안증권과 통안계정을 통해 9.5조원의 유동성을 흡수했다. 순 유동성 공급은 4.36조원이다. 12월 12일이 되면 통안계정 6.8조는 만기가 돌아오므로 다시 시중에 나온다. 이것을 고려하면 12월 12일 기준으로 유동성 순공급은 11.06조원이 된다.
한국은행의 이번 비정례 RP매입을 통한 충분한 유동성 공급을 하겠다는 발표는 적어도 현재까지는 시장의 유동성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기에 충분했던 것으로 보인다. 비정례 RP매입이었지만 이것이 결코 무분별하게 시장에 유동성을 쏟아 부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코노미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