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면 창문 밖으로 맑은 하늘과 푸른 숲이 펼쳐진다.
하루 세끼 영양 가득한 식단이 양식과 한식으로 준비된다.
청소와 세탁은 일주일에 두 번 깔끔하게 이뤄진다.
생활 상담은 물론이고, 재무 관리도 서비스 받을 수 있다.
연 2회 건강 검진에 내과, 외과, 가정의학과, 재활의학과 등 클리닉을 언제라도 이용할 수 있으며,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24시간 간호사들이 대기한다.
이런 서비스는 문화와 여가 생활을 위한 기본 조건에 불과하다.
더운 여름밤 나이를 잊고 화려한 에버랜드로 야간 나들이를 즐길 수 있다.
영솔리스티 챔버 오케스트라의 음악 캠프도 좋다.
시니어 에어로빅, 소림기공 건강교실, 아쿠아로빅은 특히 여름에 추천할 만한 강좌다.
도자기 공예나 인터넷 동호회, 노래 동호회 등 취미 생활을 같이 즐기며 친분을 돈독히 하기도 한다.
이도저도 싫으면 혼자서 훌쩍 쇼핑이나 여행을 다녀올 수 있다.
모든 절차와 준비는 여행 상담사들이 알아서 해준다.
이런 서비스를 받으면서 부부가 노후를 보내려면 평균 4억원의 목돈과 매달 200여만원의 생활비를 지출해야 한다.
삼성생명이 경기도 용인시에 세운 노인복지요양시설 삼성노블카운티의 평균 입주 조건이다.
하지만 업무상 잠시 이곳을 방문한 한 노인은 호텔 같은 노블카운티를 올려다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 돈 있으면 난 여기 안 온다.
”
“4억원 목돈과 매달 200만원씨 내라”
그 노인은 “물론 사람의 성격에 따라 다르겠지”라는 단서를 달았다.
하지만 자신은 이렇게 떨어진 곳이 아닌 “도시 한가운데서 어우러져서 살고 싶다”고 한다.
전원에 파묻혀 있지만 답답하고 생동감이 없다는 게 주된 이유다.
병이 있어 누워 있지 않는 이상 자신이 활동했던 공간을 떠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노블카운티에 입주한 노인들의 경우 일정한 ‘경제적’ 조건이 따라 줘야 하는 건 확실하다.
노블카운티 운영팀 이호갑 부장은 노블카운티의 타깃층은 “현재 강남 지역에 30여평 이상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노인층”이라고 말한다.
부동산을 처분할 수 있고, 자식들에게 경제적 도움을 받지 않으면서 여유롭게 노후를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실제 노블카운티에 입주한 노인들의 경우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지위가 있는 사람들이 많다.
시인이나 화가, 의사, 교수 등 전문직에 종사했던 이들이 많다.
현재 노블카운티에서 거주하고 있는 노인은 400여명이다.
이 중 100여명은 너싱홈, 즉 중풍이나 치매 등 만성 질환을 앓고 있는 노인들을 위한 전문 요양시설에 입주해 있다.
나머지 노인들은 주거동 회원들과 커뮤니티를 만들거나, 다양하게 교류하면서 노후 생활을 즐기고 있다.
삼성생명이 노블카운티 주거동과 부대시설 등에 투자한 자금은 3천억원. 하지만 아직까지는 해마다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이호갑 부장은 “영리 목적의 사업보다는 복지 차원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며 “현재 노블카운티 두 개 동 중에 한 개 동만 운영 중인데, 적자를 면하려면 두 개 동을 모두 운영해 입주 회원이 1천여명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7월말 북유럽을 방문했던 삼성 이건희 회장은 그곳의 복지 시설에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고 한다.
특히 스웨덴에서 노후 복지 환경을 갖추고 있는 실버타운 ‘필 트라드’와 스톡홀름의 장지 시설인 ‘우디 랜드’를 주의 깊게 봤다고 한다.
현지에서 이 회장을 안내한 가이드에 따르면 “이 회장은 실버타운이 스톡홀름 시내 중심부에 있는 것에 감탄했다”는 것이다.
스웨덴이 실버타운을 도심에 둔 이유는 실버타운을 이용하는 노인들에게 소외감을 조금이라도 줄여 주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아마도 이 회장은 이 자리에서 용인시에 떨어져 있는 삼성의 노블카운티를 떠올리며 ‘아차’ 싶었을지도 모른다.
한국노인문제연구소 실버사업팀 임진 이사는 “만약 삼성의 노블카운티 같은 것이 강남 한가운데 있었다면 지금과는 달리 폭발적인 수요를 가져왔을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실버타운에 대한 수요가 없어서라기보다 노블카운티의 입지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노인 대부분 도심에 살기 원해
그는 “그동안 많은 업체들이 노인들의 거주 시설 하면 산 좋고 물 맑은 곳이라고 생각해 산골 한가운데 유치했지만, 결국 입주가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1989년 노인복지유료시설에 관한 법안이 생기면서 90년대 초반 대기업을 비롯한 많은 건설회사들이 이런 식으로 실버타운 건설에 뛰어들었지만, 대부분 실패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는 것이다.
경제력을 가진 대부분의 노인들이 여전히 도심에 근거지를 두고 있으며, 이웃과 어우러져 살기를 바라고 있다.
의료기관 경영 컨설팅 전문기관인 플러스클리닉의 탁환식 개발본부장은 “예전에는 노인 복지시설 등에 나이 든 사람들이 많이 갔는데, 최근에는 연령대도 65살이나 70살 이전으로 낮아졌고, 또 생각보다 전원지를 선호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최근의 추세는 서울이나 경기 도심 등 가까운 지역에 있으면서 가족과 왕래하고 친구도 만나면서 도시의 여러 시설을 많이 활용할 수 있는 걸 원한다는 것이다.
업체들이 이런 상황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사업자의 입장에서 볼 때 실버타운은 아직 아파트에 비해 수익성이 떨어진다.
아파트는 투자대비 수익률도 높을 뿐 아니라 수요가 꾸준하고, 자금 회전이 빠르기 때문에 굳이 아파트를 마다하고 실버타운을 짓겠다고 나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버타운이 아파트와 다른 것은 보증금 중심의 입주형이 많은 데다 입주 후 전문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아파트는 분양하면 끝이지만, 실버타운의 경우 운영 관리를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부담이 있죠.” 탁환식 본부장은 자금회수가 느리고, 지속적으로 운영비를 지출하는 것이 기업에게는 부담이라는 것이다.
또 개발 주체와 관리 주체를 잘 연계시켜서 진행해야 하는데, 현재는 전문적인 관리 업체들도 부족한 상태다.
수요도 없고, 수익성도 없는 데다 관리 업체마저 부족하니 실버타운 건설이 활성화되지 않는 건 당연하다.
탁 본부장은 특히 실버타운에 민간 기업의 참여를 늘리기 위해서는 “개발 시 각 부문별로 역할 분담을 통해 전문화해야 하고, 수요자 중심의 실버타운 개발이 이루어져야 하며, 규모의 적정화를 통한 철저한 수익성 분석이 필요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노인인구 10% 넘어서는 2010년께 ‘개화’
산업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지원책도 현재로선 거의 없는 상태다.
현재 실버타운을 개발하는 회사가 동시에 운영 주체인 경우에 한해서, 토지 부분에 대해 취득세와 등록세를 50% 감면해 주는 지원책이 있긴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현재 실버타운을 운영하는 업체들은 “그나마 노인들을 위한 사회 봉사라는 명분이 있으니 운영하는 것이지 그것마저도 아니면 할 사람이 없다”고 하소연할 정도다.
하지만 이런 상황 때문에 실버산업의 미래가 어두운 것만은 아니다.
아직은 실버산업이 활성화되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이 무르익지 않았다는 것이 전반적인 견해다.
탁 본부장은 일본의 경우 노인인구가 10%를 넘어선 85년부터 실버산업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10%대가 되는 시기는 약 2008년. 대부분의 실버산업 관계자들은 2008년에서 2010년이 되면 본격적으로 실버산업이 고개를 들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고령 인구는 꾸준히 늘고 있고, 50살 이상의 예비 고령층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 비중도 늘어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미 기획 단계에 들어가 시기를 보면서 실버산업 진출을 준비 중인 대기업들이 많을 것”이라며, 선점을 하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해 6월 발표된 삼성경제연구소의 ‘고령화사회의 도래에 따른 기회와 위협’이란 보고서에 따르면 실버산업을 대략 6개의 분야로 나누고 있다. 장기 요양 서비스, 위험 방지·안전 시설, 의료·건강, 여가·오락, 생활, 정보·학습 등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관련 사업들이 체계적으로 분화되어 있지 않다. 실버타운 외에 실버산업으로는 건강과 의료 보조기구 등의 노인 용품을 판매하는 시장이 형성되어 있긴 하지만, 대부분 노인 용품으로 특화되어 있지 않고 일반 의료 보조기구나 건강식품 등과 더불어 부분 품목으로 판매하고 있다. 현재 노인 용품 유통업체들은 수백여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대부분 중소기업이거나 영세한 기업들이다. 노인 용품을 비롯해 의료 기구를 전문적으로 유통하고 있는 실버스핸드 관계자는 “실버 용품은 IMF 이후 큰 폭은 아니지만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아직 실버 용품으로 시장이 분화되고 있지는 않다”고 지적했다. 노인 용품 중에 기저귀 등 일회용 소모품의 경우는 마진폭이 적고, 지팡이 등 장비류 쪽이 그나마 마진율이 높은 편이다. 현재 이런 상품들은 대부분 수입품에 의존하고 있다. 주로 수입해 오는 곳은 대만으로, 가격이 싸고 품질도 나쁘지 않다는 게 유통상들의 의견이다. 한편 실버산업 쪽에서 그나마 실버용 상품을 만들어 내고 있는 곳이 금융 쪽이다. 고령 인구의 증가는 여러 가지 노인성 질환의 증가를 가져왔지만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체계는 인구 고령화의 진행에 따라 의료수급 수용에 한계가 있다. 또한 현재 판매되고 있는 보험 상품들은 노인성 질환의 경우 보험급여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어, 거동 불편자의 생활 안정을 목적으로 하는 금융 상품에 대한 수요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현재 국민은행의 ‘실버론’이나 조흥은행의 ‘OK연금모기지론’처럼 노인 보유 부동산을 담보로 매달 일정 금액을 연금식으로 대출해 주는 금융 상품이 있고, 치매 등 노인성 질환을 집중적으로 보장하는 보험 상품들도 몇몇 있다. 그러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의 안정적인 생활 대비에는 미흡하다는 분석이다. 국민은행연구소 정학헌 과장은 “일본의 경우는 노인 용품 구입 자금과 관련해 무담보론을 개발하거나, 요양 중인 노인 당사자는 물론 노인을 부양하고 있는 사람도 대출 대상에 포함시켜, 대출 금리를 우대하거나 비교적 장기 무담보로 대우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상품을 개발하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수요에 맞는 다양한 상품의 개발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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