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29일, 생존의 문제를 놓고 저축은행 업계가 머리를 맞댔다.
10년 만에 처음이다.
당일 2007년 저축은행 심포지엄에 참석한 윤영로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은 “서민금융의 큰 축인 저축은행이 ‘어디로 가야 하나’ 하는 고민에 빠졌다.
은행도 대부업 쪽으로 가는 마당에 내년부터 시행되는 자본시장통합법으로 저축은행은 정체성을 놓고 심각하게 고민하는 단계에 놓여 있다”라고 진단했다.
그는 “저축은행의 자산이 2년 반 만에 2배 이상 증가한 것은 정상이 아니다.
이런 경우 반드시 문제가 발생한다.
금융 산업 전체 측면에서 보면 건전성 지표가 마련되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최근 저축은행은 총자산이 성장세에 있고 당기 순이익도 2005년부터 흑자로 전환했다.
그러나 여기까지가 한계라는 것이 저축은행업계 전체의 공감대다.
저축은행의 첫 번째 걱정은 금융업계의 양극화 현상이다.
특히 서민금융은 더욱 심각하다.
자금 유동성은 넘쳐나지만 중소기업과 서민금융은 부족함을 느낀다.
그런데도 최근 몇 년간 서울 강남권 등 부촌에 점포를 둔 저축은행은 크게 성장했다.
덕분에 저축은행 총자산은 2000년 17조원에서 2006년 말 기준 50조원으로 급증했다.
은행권에서 야심차게 내놓은 특판 예금이 연 5% 정도에 머물 때 저축은행은 평균금리를 과감하게 연 5.43%로 높여 부동자금을 끌어들였다.
저축은행이 틈새시장을 찾은 셈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계가 있다.
저축은행의 생존 문제는 결국 고객 신뢰의 문제다.
지난 25일 포항 경북저축은행이 영업정지를 당했다.
올 들어 3곳의 저축은행이 영업정지를 당했다.
높은 금리 혜택에는 위험도 따른다는 이야기다.
고객 입장에서 보면 예금자보호법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예금자보호법은 저축은행이 망하더라도 한 사람당 원리금을 합해 5천만원까지는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요지이다.
이 법의 가장 큰 수혜자가 바로 저축은행이다.
그러나 지역경제의 어려움으로 중소기업과 서민 경제가 얼어붙으면서 서민금융기관인 저축은행 본래의 비전은 다시 불투명해졌다.
여신운용 차원에서 저축은행의 빠른 성장 동력원이었던 부동산개발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도 이제는 한계 수위에 도달했다는 판단이다.
PF 대출은 지난 2년간 8조원 가까이 늘어 11조원 규모를 넘어섰다.
연체율도 10% 이상으로 높아졌다.
주택 가격이 하락해 부동산 시장이 급랭하면 더 위험해진다.
PF 대출이 제2금융권의 최대 부실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감사원도 “PF 대출 실태 조사에 나서는 한편 금융감독원 등 관리·감독기관까지 감사 에 나설 것이다”라고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저축은행의 외부 영업환경 변화뿐만 아니라 내부의 위험요소도 지적됐다.
이건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저축은행은 구조조정과 최근 경기회복에도 불구하고 주 고객층의 경제기반 약화와 취약한 리스크 관리로 인해 부실 우려 요소들이 상당수 존재한다”라고 평가했다.
그는 “경영지도 기준인 BIS(자기자본/위험가중자산×100) 지도비율 5%를 밑도는 곳이 아직도 8개 기관이나 된다.
앞으로 추가로 영업 정지되는 저축은행이 나올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저축은행 업계는 “저축은행이 지금과 같이 단순한 예금, 대출업무만 할 경우 향후 부실 위험이 커질 수 있다”라며 “규제 완화를 통해 우량 저축은행을 육성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업계가 요구하는 규제 완화 분야는 ▲자본 적정성을 충족하는 저축은행의 지점 설치 자유화 ▲수익증권, 양도성 예금증서(CD) 등 취급상품 제한 완화 ▲외국환 업무 제한 폐지 등 규제 완화와 함께 저축은행의 업무 범위를 은행 또는 종금사 수준으로 확대해 줄 것 등이다.
유석현 스카이저축은행장은 “리스크 요인이 모두 외부 환경에서 만들어진다.
행장으로서 정말로 잘하기 힘들다.
최근 저축은행들이 많이 성장해왔지만, 서민금융 역할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좀 더 현실적인 업무 영역 확대가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책·감독당국 관계자들의 입장은 단호하다.
우량 저축은행들에 대해 리스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점진적인 규제를 완화하겠다면서도 저축은행의 건전성과 경영 투명성이 선결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아직도 저축은행이 저신용계층에 대한 금융중개 기능을 충분히 담당할 여력이 없다는 진단이다.
오히려 저축은행 측의 자발적인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추가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원우종 금융감독원 비은행감독국장은 “저축은행은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하다.
감사와 준법감시인의 기능이 강화되어야 한다.
운용 리스크 차원에서 지배구조 개선이 안되면 발전 기회가 없다”라고 지적했다.
원 국장은 저축은행의 규제 완화 요구에 대해서도 “방카슈랑스나 소상공인 대출 등이 이미 저축은행에 허용돼 있으나 거의 취급하지 않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당장의 이익보다는 서민이나 중소기업을 장기 고객 확보 차원에서 접근했으면 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 저축은행 강남지점의 경우 예대율이 30%에 그치고 대부분 프로젝트 파이낸싱으로 대출이 이뤄지고 있는 점은 문제라고 덧붙였다.
이병래 금융감독위원회 비은행감독과장도 “앞으로 부실 가능성이 낮은 우량 저축은행 중심으로 규제 완화 방침을 갖고 있다.
하지만 하반기 이후 PF 대출도 우려되기 때문에 당장 획기적인 규제 완화는 어렵다.
반면 시장에서는 더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감독 당국도 고민이 많다”라고 덧붙였다.
박영춘 재정경제부 보험제도과장은 “저축은행이 보다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
최근 대부업계가 급속하게 성장했다.
대부업계보다 나은 능력을 갖춘 저축은행이 못할 이유는 없다.
저축은행은 대부업계의 성장을 보면서 자신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라고 충고했다.
정찬우 한국금융연구원 박사는 “몇몇 저축은행은 부동산 PF 등으로 1조 이상의 외형 성장을 이뤄냈다.
하지만 지금은 다운사이징도 불가피할 정도다.
저축은행이 살아남으려면 지금까지 저축은행이 하지 않은 업무를 찾아야 한다.
감독 당국이 새로운 업무 영역을 제공해주기에 앞서 저축은행의 건전성이 우선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장홍 대한저축은행장은 “감독 정책도 저축은행의 성장 유형에 따라 차등 적용해야 한다.
최근 저축은행 업계의 동질성이 약화되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향후 저축은행은 ▲서민 및 중소기업 금융 전문 저축은행 ▲중소기업 여신 위주의 지방은행형 저축은행 ▲신사업을 추진하는 종합금융사형 저축은행 등 3가지 형태로 재편될 것이라는 학계의 의견에 상당수 업계가 공감한다”라고 주장했다.
저축은행 중·장기 발전 방안에 대해 이건호 교수는 “은행 여신한계 시장을 저축은행의 틈새시장으로 활용하면 중장기적인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
외환위기 이후 은행과 보험사가 보수적으로 바뀌면서 중하위 신용도 고객군에 대한 여신시장에 공백이 발생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저축은행의 발전을 위해 업무영역·구역에 대한 규제가 지방은행 수준으로 완화되고, 자본적정성 기준을 충족하는 경우 지점 설치가 자유화되어야 한다”면서 “저축은행중앙회 역시 신용카드, 신탁 등 연계금융 회사를 설립·운영하는 사업 기능을 갖추고 업계의 싱크탱크가 되는 등 위상과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또 이 교수는 “저축은행에 대해 서민금융만 열심히 하라는 주문은 정답이 아니다.
리스크도 크고 조심스러운 일이다.
어떤 요인에 의해서 간에 리스크가 높은 상황에서 좀 더 폭넓게 맷집을 키울 수 있는 다른 활동 영역을 열어줘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류근원 객원기자 stara9@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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