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서 15년간 쌓은 경험 토대로 저서 발간… 무료 법률 서비스도
한빛은행 윤완중(48) 서울 창동북지점장은 은행권에서 ‘채권회수의 귀재’로 불린다.
그도 그럴 것이 1980년 입행한 뒤로 여신관리 부서에서 채권회수 업무만 15년이나 담당했기 때문이다.
받을 수 있는 채권도 법무사나 변호사의 실수로 회수하지 못하는 경우를 수없이 봐왔다.
은행의 여신관리 소홀로 발생하는 문제점도 있지만, 덩치 큰 거래업체에 끌려다니다가 부실이 눈덩이처럼 커지는 사태도 체험했다고 그는 말한다.
부실채권에 대한 경계심은 누구보다 강하다.
이런 경계심이 한편으로는 그가 채권회수 전문가로 성공하게 된 바탕이 됐다.
대학시절 법학을 전공한 윤 지점장은 여신관리의 경험을 쌓으면서 두가지 점에서 놀랐다고 한다.
은행에 채권관리에 대한 지침서가 없고, 업무가 관행적으로 이뤄진다는 점이었다.
이런 문제점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직접 지침을 만들었다.
그는 95년에 자그마치 800쪽 분량의 <알기쉬운 민사소송·부동산경매·기타채권관리 실무>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으로 그의 이름은 은행권뿐 아니라 각 분야의 기업과 일반인들 사이에도 알려지게 된다.
이 책은 이달 초 소액사건심판법 등 민사재판 관련 변화 등이 반영된 4판으로 새로이 단장됐다.
윤 지점장은 지난해 10월엔 채권 관련 사례들을 정리하고 대법원 판례를 추가해 <사례별 채권 관리와 회수>라는 새 저서를 내놓기도 했다.
그는 이제 실무뿐 아니라 이론까지 겸비한 채권관리 전문가다.
복잡한 채권 문제를 오랜 기간 다뤄온 그이지만, 채권관리에 대한 비법은 의외로 간단하다고 말한다.
원칙을 지킨다는 것이다.
“한달 연체된 대출과 석달 연체된 대출 가운데 어떤 게 부실위험이 크겠습니까. 부실의 징후가 있는 여신은 초기에 바로잡는 게 고객이나 은행 모두에게 유리하지요.” 하지만 현실은 그가 내세운 간단명료한 원칙과는 지나치게 어긋나 있었다.
특히 IMF 구제금융 사태 뒤로 기업 부실이 은행 부실을 키웠고, 은행은 미봉책으로 부실을 덮기에만 급급했다.
윤 지점장은 부실회사 정리에 관한 정부의 원칙없는 정책자세도 은행 부실을 키우는 데 한몫 거들었다고 말한다.
“채권은 제때 회수하지 못하면 회수시기를 놓치게 됩니다.
화의나 워크아웃으로 무작정 부실기업의 숨통을 터주기보다는 정확한 심사를 통해 회생 가능성이 없는 업체는 과감히 퇴출시켰어야 옳죠.” 채권회수를 둘러싼 애환도, 재미있는 일화도 많다.
몇년 전 은행이 부동산 근저당권자로 경매를 신청하고 변호사를 구해 재판에 나섰지만 1심과 항소심에서 잇따라 지는 바람에 생돈 6억원을 날릴 뻔한 적이 있었다.
돈도 돈이지만, 변호사조차 업무 내용을 몰라 채권회수가 안 된다면 은행의 장래를 위해 심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윤 지점장은 업무를 처음부터 모조리 재검토했고, 그런 노력으로 97년에 승소 판정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또 언젠가는 한 개인사업자가 소구기간이 지난 어음을 가지고 와서 채권을 회수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느냐고 하소연했다.
윤 지점장은 실효가 지난 이 어음과, 만기가 채 돌아오지 않은 다른 어음을 합쳐 소를 제기해 승소함으로써 유감없이 실력을 과시했다.
당시 그의 덕을 본 개인사업자는 고맙다면서 다른 은행들에 갖고 있던 예금을 모두 꺼내 윤 지점장에게 모아줬다고 한다.
법에 강한 은행원인 윤 지점장은 지난해 8월부터는 무료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금은 하루 평균 5건 이상의 문의가 들어온다고 한다.
이제 은행관련 업무뿐 아니라 아파트 주민들 사이의 분쟁이나 혼인빙자 간음죄와 같은 은행과 관련없는 일에까지 조언을 구하는 팬들이 생겼을 정도다.
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은행권의 부실채권은 수많은 은행원들을 사지로 내몰았다.
은행가엔 BIS(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 비율이 유령처럼 떠돌았고, 약삭빠른 고객들은 은행의 재무상태가 나쁘면 거래처를 옮겼다.
채권관리는 은행으로서도 사활이 걸린 문제가 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원칙을 지키려는 한우물 은행원의 조언은 새겨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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