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적 완화란 무엇인가?

금리 제로수준의 미국, 실질이자율을 마이너스化

2013-10-16     윤종인 | 본지 편집기획위원, 백석대 교수

기획연재 | 윤종인 교수의 경제학 교실

양적 완화 시리즈- 1. 양적 완화란 무엇인가?  2. 양적 완화와 출구전략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라는 용어가 언론에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데 이제는 그것이 끝날 것이라는 소식 때문에 금융시장이 술렁거리고 있다. 도대체 양적 완화란 무엇이고, 왜 등장하게 되었으며, 무엇을 목표로 하고 있는가?

연방준비제도이사회, FOMC, 연방기금금리

양적 완화에 관한 언론보도를 이해하려면 미국 중앙은행제도에 대한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미국 중앙은행제도의 핵심은 바로 그 유명한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이하 ‘연준’으로 약칭)이다. 연준은 7명의 이사로 이루어져 있으며 현재 의장은 양적 완화로 유명한 벤 버냉키(Ben Shalom Bernanke)이다. 한때 세계의 경제대통령이라 불리웠던 앨런 그린스펀은 버냉키 직전의 연준 의장이었다.

연준과 이름이 비슷하지만 엄연히 다른 기관이 연방준비은행(Federal Reserve Bank)이다. 연방준비은행은 우리나라의 한국은행에 해당하는 것으로 미국에는 무려 12개의 연방준비은행이 있다. 그 중 가장 큰 것이 뉴욕에 있는데 영화 ‘다이하드’에서 악당들이 금괴를 훔치려 했던 바로 그 은행이다. 미국의 중앙은행 제도는 연준이 12개의 연방준비은행을 이끌어 가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즉 통화정책을 총지휘하는 곳이 연준이다.

하나 더 알아둘 기관이 있다. 바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Federal Open Market Committee)이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는 모두 12명의 위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7명은 연준의 이사이며 5명은 12개 연방준비은행의 총재 중 5명이 돌아가면서 맡게 된다. 위원회의 구성비율을 보더라도 연방공개시장위원회는 연준의 정책을 따를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연준이 통화정책을 총지휘한다고 말한 바 있는데 연준의 통화정책은 주로 연방공개시장위원회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연준이 연방공개시장위원회를 통해 하는 일은 연방기금금리(federal funds rate)라는 이자율을 조절하는 것이다. 연방기금금리는 미국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가 거래할 때 이용하는 이자율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은행이 이용하는 기준금리와 비슷한 개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렇지만 미국에서도 연방기금금리는 모든 이자율의 기준이 된다. 예를 들어 회사채 수익률은 ‘연방기금금리+α’라는 식이다.

2008년 금융위기 후, 미국금리 제로수준 유지

2008년에 시작된 금융위기는 세계경제를 곤두박질 치게 만들었다.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2008년 –0.3%, 2009년 –3.1%로 급락하였고 그 여파는 전 세계로 퍼져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2008년 –1.0%, 2009년 –5.5%이었으며 유로지역의 경제성장률도 2008년 0.4%, 2009년 –4.4%이었다. 경제성장률의 하락은 곧바로 실업률의 상승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실업률은 2007년 4.6%에서 2008년 5.8%, 2010년 9.6%로 급상승했다. 다른 나라의 상황도 비슷하였다. 일본의 실업률도 2007년 3.8%에서 2009년 5.1%로 급상승했으며 유로지역의 실업률도 2007년 7.6%, 2010년 10.1%, 2012년 11.4%로 급상승했다.

이즈음 되면 각국의 중앙은행은 가만히 있을 수 없다. 그 중에서도 미국의 연준이 가장 선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미국의 연준은 파격적인 금리인하를 단행했는데 그 목표는 명확하다. 금리인하를 통해 경기를 진작하고 실업률을 낮추려 했던 것이다.

본래 미국의 연방기금금리는 2007년 9월 이전까지 5.25% 수준에서 유지됐다. 하지만 금융위기의 징후가 뚜렷해지자 연방공개시장위원회는 연방기금금리를 급격히 인하했고 2008년 4월에는 2% 수준까지 떨어졌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했을 때 아무도 금융위기를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에 2008년 12월까지 연방공개시장위원회는 연방기금금리를 거의 제로수준으로 인하했다. 그 이후 현재까지도 연방기금금리는 제로와 다를 바 없는 0.0010~0.0015%에서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금리인하로 충분하지 않은 것이 명확해졌다. 연방기금금리를 제로수준으로 낮추어도 경제가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연방기금금리를 (-)로 낮출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니 더 이상 연준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미국 연준의장인 벤 버냉키는 초유의 카드를 빼들었다. 바로 양적 완화라는 정책이었다.

회복되지 않는 미국경제, 유동성 함정

대학교의 거시경제학 수업시간에 으레 배우는 개념 중의 하나가 유동성 함정이다. 대공황 시절 케인즈가 처음 사용했던 것이지만 1998년 폴 크루그만(Paul Krugman)이 새로운 의미로 부활시켰다.

-유동성함정(liquidity trap) 경제가 불황에 빠지면 중앙은행은 통화량을 늘려 이자율을 낮추려 한다. 그래야 소비와 투자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공황 시절 케인즈는 특이한 현상을 관찰하였다. 중앙은행이 아무리 통화량을 증가시켜도 이자율이 낮아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자율이 낮아지지 않으면 경기진작효과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유동성함정이 있을 때 통화정책은 사실상 무력해진다.

크루그만의 유동성함정은 미국 연준이 직면한 어려움을 정확히 보여 준다. 이자율이란 아무리 낮추어도 제로 이하로 낮출 수 없다. 문제는 그런 상황이 실제로 나타난 것이다. 경제를 회복시키려면 이자율을 낮추어야 하는데 더 이상 낮출 수 없는 상황, 그것이 바로 크루그만이 말한 유동성함정이다.

대표적인 예는 바로 일본이다. 1990년대 초 카미카제버블이 꺼지면서 일본은 첫 번째 잃어버린 10년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2000년대에도 또 다시 잃어버린 10년을 지켜보아야 했으며, 2013년 현재에도 세 번째 잃어버린 10년이 없다고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물론 일본의 이자율은 제로수준까지 떨어진 지 오래 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경제가 회복되었던 것은 아니다. 일본 정책당국으로서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보인다.

미국에서도 유동성함정이 실제로 나타났다. 미국의 연방기금금리는 제로나 다를 바 없는 수준까지 인하됐지만 경제는 회복되지 못했으며 실업률은 여전히 높은 수준에 머물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연준이 사용할 수 있는 통상적인 통화정책이란 사실상 없다.

버냉키의 양적 완화, 증권매입해 돈을 풀자는 것

벤 버냉키는 2002년 미국 연준의 이사가 되었고 2005~2006년에는 부시행정부에서 대통령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을 역임한다. 이어서 2006년 연준의장으로 취임했지만 취임 직후부터 금융위기를 수습해야 하는 어려운 책임을 맡게 됐다.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버냉키는 즉각적인 금리인하를 단행했다. 5.25% 수준이던 연방기금금리를 불과 1년 여만에 제로수준까지 낮추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에 버냉키는 양적 완화라는 강력한 정책을 추진하기에 이른다. 연방기금금리가 제로에 가깝지만, 중단하지 않고 계속해서 증권을 매입하여 돈을 풀자는 것이다.

왜 이런 정책이 도움이 된다는 말인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명목이자율과 실질이자율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명목이자율은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이자율이다. 반면에 실질이자율은 명목이자율에서 인플레이션율을 뺀 이자율이다. 예를 들어 은행이자율이 3%라고 하자. 이건 명목이자율이다. 그런데 인플레이션율이 4%이었다고 하자. 그러면 실질이자율은 –1%이다. 이처럼 명목이자율은 제로보다 낮을 수 없지만 실질이자율은 제로보다 낮을 수 있다.

연준이 더 이상 이자율을 낮출 수 없다는 말은 명목이자율을 낮출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경제활동에서 중요한 건 명목이자율이 아니라 실질이자율이다. 실질이자율이 낮아질 때 소비와 투자가 증가하고 경제성장률이 회복되며 실업률은 낮아진다.

양적 완화의 논리는 바로 이것이다. 양적 완화를 이용하면 명목이자율을 낮출 수는 없지만 실질이자율을 낮출 수는 있다. 이를 위해 연방공개시장위원회가 계속 증권을 매입하자는 것이다. 그러면 시중에 더 많은 돈이 풀리고 이것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것이다. 그렇다면 실질이자율을 제로보다 더 낮은 수준까지 떨어뜨릴 수 있다. 그렇다면 경제는 회복될 것이다.

미국경제 회복과정? 버냉키의 도전

2006년 버냉키를 연준의장으로 지명한 사람은 공화당의 조지 부시 대통령이었다. 그래서인지 2008년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2010년이 되면 버냉키가 물러나고 로렌스 서머스(Lawrence Summers)가 연준의장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다. 당시 서머스는 백악관 국가경제회의 위원장(우리나라의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에 해당)이었다.

로렌스 서머스라는 이름이 익숙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사실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깊은 사람이다. 인연이라기보다 악연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합할지 모르는데 1997년 우리나라가 외환위기에 빠졌을 때, IMF의 정책처방을 지지했던 바로 그 사람이다. 민주당의 클린턴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역임했던 골수 민주당원으로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하자 핵심 경제 참모가 된 사람이다. 게다가 서머스는 버냉키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 하지 않은 대단한 경제학자이다. 28세에 하버드대학교에서 종신교수에 오른 신화적인 인물일 뿐만 아니라 노벨경제학상보다 받기 어렵다는 클라크메달(John Bates Clark Medal)의 수상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2010년 오바마 대통령은 버냉키를 다시 연준의장에 지명했고 민주당원 출신인 로렌스 서머스는 백악관 국가경제회의 위원장에서 물러났다.

전임 연준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은 후임 연준의장으로 도널드 콘(Donald Lewis Kohn)을 강력하게 추천했다고 한다. 콘은 그린스펀의 최측근이었던 사람으로 버냉키와는 생각이 달랐다. 하지만 부시대통령은 2006년 버냉키를 연준의장으로 지명하였고 콘은 연준의 부의장이 되었다가 2010년 연준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콘의 뒤를 이어 연준의 부의장이 된 사람은 자넷 옐렌(Janet Yellen)이다. 그녀는 버클리대학교 교수 출신으로 클린턴 행정부에서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을 맡은 바 있고 연준 부의장이 되기 직전 샌프란시스코 연방은행의 총재이기도 했다. 케인즈학파 경제학자로 알려진 옐렌은 버냉키의 적극적인 지지자이다.

바야흐로 버냉키의 독무대가 펼쳐진 셈이다. 그만큼 버냉키의 통화정책은 폭넓은 지지를 바탕으로 추진되어 왔고 세간의 평가도 그리 인색하지는 않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경제가 더 나빠질 수 있었지만, 버냉키의 정책 덕분에 더 나빠지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최근 들어 양적 완화를 끝내야 하는 시점이 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을 보면 미국경제는 서서히 회복과정에 들어선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버냉키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양적 완화라는 정책은 그것의 시행만큼이나 그것으로부터의 출구전략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출구전략에 실패한다면 양적 완화는 여전히 불완전한 실험에 불과한 것이었다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이제 남은 문제는 출구전략의 성공 여부이다. E21

 

 

본 기사는 월간지 <이코노미21> 8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