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산업혁명 시대 한러과학기술협력의 필요성

한국, 제조기술 뛰어나지만 개념설계 능력은 부족 러시아, 개념설계 능력 있지만 구체적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실행 능력 부족 한국의 실행능력과 러시아의 개념설계 능력의 결합은 좋은 전략적 협력 분야

2018-07-02     송용원 한국산업기술대학교 교수

<커버스토리2-북방경제협력-한러과학기술협력>

대한민국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나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속도로 경제 발전을 이루어 일인당 국민소득 3만 불을 앞두고 있는 기적을 이루어낸 국가이다. 대한민국이 이러한 경제적 성공신화를 만들어 낸 중요한 원인중 하나는 산업화 초기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와 같은 연구소를 만들어 해외에서 수학한 과학자들을 국내로 불러들여 기술개발 기반을 구축하였고 미국, 독일, 일본 등 외국의 산업기술을 도입해서 신속하게 제조업 중심의 산업화를 성공시켰기 때문이다. 교육열과 근면 성실한 국민성이 결합되며 70년대 1, 2차 오일 쇼크, 97년 외환위기를 슬기롭게 이겨냈고 반도체, 철강, 조선, 자동차, 화학 분야 등에서 세계적 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무역대국, 제조업 선진국이 되었다.

하지만 성장 가도를 달리던 대한민국의 경제발전 속도는 2000년대 들어서면서 눈에 띄는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해 현재는 2%대 성장을 보이며 경제 침체의 위기에 처해있다. 우리와 유사한 패턴의 산업화를 추진하는 중국, 베트남의 부상, 세계 경제 침체 등 대외적 변수의 영향뿐만 아니라 우리 산업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가 드러난 것이다. 최근 서울대 공대 교수들이 출판한 “축적의 시간”에서 위기를 맞고 있는 대한민국 산업의 본질적 문제를 “개념설계(concept design) 역량의 부족“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문제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로켓에 비유해서 1단 엔진을 분리하고 2단 엔진으로 점화하는데 실패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인공위성을 발사하려면 지표면에서 크게 작용하는 지구 중력을 이길 강력한 엔진이 필요하다. 하지만 일정 높이에 올라가면 필요한 궤도에 정확한 속도로 위성을 보내기 위해 고도의 제어력을 갖는 새로운 엔진이 필요해 통산 1단 엔진 위에 2단 엔진을 얹은 2단 로켓을 쓴다. 대한민국 산업은 해방 이후 1단 엔진 발사에 성공해 초기 산업화에 성공하고 높은 궤도로 올라갔지만 역할을 다한 1단 엔진을 분리하고 새로운 개념의 2단 로켓을 점화 시키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우리 산업은 제조업 중심으로 빠르게 발전하며 주어진 도면을 보고 만들고 실행(Implementation)할 수 있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 도면을 그릴 수 있는 능력, 즉 백지위에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개념설계(Concept Design)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창의적 개념설계 능력을 기반으로 인공지능(AI), ICT기술과 제조기술을 융합해 새로운 산업을 창출해 내야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대한민국 산업이 맞고 있는 심각한 구조적 문제를 말해주고 있다. 다행히 자금력이 풍부한 몇몇 대기업 들은 자체 연구기관을 통해 설계능력, 신제품 개발능력을 확보해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산업의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는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은 대기업 제품의 부품을 단순 제조하는 실행능력만 가지고 있다. 대기업 의존성이 매우 높고, 스스로 새로운 돈이 되는 제품을 창조할 능력이 부족하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한국산업기술대학교는 수도권에서 가장 많은 중소기업이 위치한 시화반월공단에 소재하고 있어 사장님들을 자주 만나는데, 한결같은 하소연은 뭔가 돈 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지 못해 회사가 점점 힘들어 진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제품생산에 치중하느라 개념설계 능력을 키우지 못한 대한민국 산업의 2단 로켓 엔진을 어떻게 점화시킬 것인가?

북방국가(러시아 및 구소련 국가)와 과학기술 협력을 통해 이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러시아는 1724년 러시아과학아카데미(RAS)를 설립하고 분야별, 지역별로 많은 연구기관을 만들고 지원하여 축적된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기초기술과 개념설계 능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하지만 1991년 구소련 붕괴 후 파괴된 산업 기반을 재건하지 못한 채 자원에 의존하는 경제구조가 고착화되어 ‘자원의 저주’라는 심각한 구조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 즉 개념설계(concept design) 능력은 있지만 산업 인프라를 바탕으로 구체적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실행(implementation) 능력이 부족한 것이다. 푸틴 정부는 이러한 국가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스콜코보를 포함하여 지역별 산업단지를 조성하였고 2015년 12월에 발표된 국가안보 우선순위에 과학기술 산업화를 포함시켜 자원중심의 경제구조를 산업기술을 기반으로 한 제조업 중심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서방 국가들의 경제 제재로 산업화 계획이 큰 차질을 빗고 있다. 자원 의존 경제에서 제조업 중심의 산업화를 통한 경제 부흥을 만들고자 하는 러시아의 꿈은 올해 재선된 푸틴 대통령이 해결하고 싶은 가장 핵심적인 문제 중 하나일 것이다.

대한민국에 가지고 있는 실행능력과 러시아가 가지고 있는 개념설계 능력의 결합은 두 국가가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는 좋은 전략적 협력 분야이다. 사실 한국은 1990년 9월 30일 한러(당시는 한-소련) 수교 이후 그해 12월 과학기술협력 협정을 맺고 과학기술분야에서 매우 활발한 교류를 진행해 왔다. 지면에서 자세히 밝히긴 어렵지만 국방 기술 분야에서 서방 국가에서 주지 않는 많은 군수기술을 도입하여 자주국방 산업에 활용했다. 우주항공 분야에서도 한국 최초의 우주인을 러시아를 통해 배출했고 위성 발사체를 공동으로 제작하며 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 대기업은 러시아 연구소와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다양한 기술문제를 해결하거나 신제품을 개발하여 성공한 사례가 아주 많다. 지금도 많은 기업이나 연구소들은 러시아 과학자들을 적극적으로 기술개발에 활용하고 있다. 동탄에 러시아 연구자들 자녀를 위한 러시아 학교가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은 국내 기업들이 얼마나 활발히 북방국가 연구원들을 활용하고 있는지 잘 말해 준다.

송영길

한러과학기술 분야의 전문가로서 25년이 넘는 협력 역사를 돌이켜 보면 크게 두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그 동안 성공적으로 진행된 한러과학기술협력은 자금력과 연구 인프라를 가지고 있는 연구소나 대기업 중심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과거 70년간 공산주의 정치 시스템을 가지고 서방 세계와 단절된 채 연구를 진행하여 한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에 알려진 정보가 매우 적었다. 또한 오랫동안 독자적인 연구를 진행하다보니 서방 세계와 다른 독특한 연구 결과들을 구축했고 심지어 과학자들의 공통 언어인 단위계(unit system)를 국제 규격과 다르게 사용하는 경우도 있어 협력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정보력과 경제력, 그리고 언어적 문화적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고급 연구자들이 있어야 러시아와 협력을 진행할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 연구소 중심으로 정부 프로젝트를 활용하여 우주항공, 광학, 원자력 등 일부 분야에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 냈다. 인프라와 경제력을 갖춘 대기업 또한 부족한 원천기술과 개념설계 능력 향상을 위해 러시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두 번째 특징은 과학기술협력이 한국 주도로 일방적으로 진행되어 왔다는 것이다. 1990년 수교 이후 러시아는 소련연방공화국의 붕괴로 경제적 파탄을 경험했고, 1998년에는 모라토리움을 선언하며 극심한 경제난을 겪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 러시아 정부는 과학기술분야 지원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었고 러시아 과학자들은 외국과의 협력을 통해 경제난을 극복하고자 적극적으로 해외협력을 찾아 나섰다. 오랫동안 많은 투자를 통해 만들어진 러시아 원천기술 및 지적 재산권이 한국 및 서방세계로 쉽게 유출되어 나갔다. 러시아의 특수한 상황 속에 한러과학기술협력은 한국 주도의 일방적인 형태로 진행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근 러시아는 자국의 과학기술 산업화를 국가 핵심 과제로 선정하여 다양한 국책사업을 추진하고 있고, 지적재산권 및 과학자들의 해외 유출을 차단하고 있어 상호 win-win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협력 모델이 필요한 상황이다.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위원회를 만들어 새로운 차원의 북방경제2.0 모델을 기획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러 과학기술분야 새로운 협력 모델을 다음과 같이 제안하고 싶다. 첫째, 양국의 중소기업을 육성할 수 있는 한러산업기술협력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앞에서 설명한대로 그동안의 협력은 국제협력 역량을 갖춘 대기업 및 국책 연구소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다. 이러한 기관들은 그 동안 구축한 협력 기반을 가지고 이제는 스스로 국제협력을 수행해 나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연구소의 연구 수준은 많은 분야에서 이미 러시아를 능가하고 있어 과거처럼 국제협력을 통한 기술 도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반면에 중소기업은 새로운 아이템을 개발할 개념설계 능력이 없고 자체적으로 러시아와 국제협력을 추진해 나가기도 어렵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는 러시아와 중소기업이 협력을 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국가가 나서서 구축해줄 필요가 있다. 러시아에는 연구기관이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프로토타입(prototype)까지 만들었지만 제조 인프라 부족으로 산업화를 진행시키지 못한 좋은 기술들이 많다. 이러한 기술을 발굴하고 분석해서 가능성이 있는 돈 될 만한 아이템을 찾아 우리나라 중소기업이 협력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좋은 결과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와의 협력은 중소기업을 고도화 시키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도록 도와주는 매우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한러산업기술협력 플랫폼은 한국과 러시아 양국의 이해관계를 만족시킬 수 있는 win-win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한국의 제조기술과 러시아의 개념설계 능력이 결합해서 창출된 결과가 한 국가에 일방적으로 수혜되지 않고 양 국가 모두에게 유익이 되는 모델을 찾아야 한다. 러시아는 모스크바 근교에 있는 스콜코보 산업단지를 비롯해 지역별로 많은 산업단지를 조성해서 제조업이 강한 한국 기업의 진출을 매우 원하고 있다. 한국 기업이 러시아에 제조 인프라를 구축하고 제품을 생산하여 러시아 및 구소련 국가들의 시장을 진출하는 것도 필요하다.

둘째는 러시아와 함께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스타트업(start-up) 양성 플랫폼 구축을 제안한다. 4차 산업혁명은 깊이 있는 기초학문 기반의 원천기술과 소프트웨어 능력을 필요로 한다. 무엇보다도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비 전형적인 엉뚱한 생각을 해 낼 수 있는 상상력과 창의력을 갖춘 인재, 기술과 인문학을 겸비한 융합적 인재가 필요한 분야이다. 과학뿐만 아니라 문학과 예술이 발달된 러시아는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함께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고 스타트업 기업을 만들어 세계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최고의 협력국가이다. 선진국들은 설계능력과 제조기술을 모두 갖춘 나라이다. 그런 나라들은 자체적으로 스타트업 시스템을 구축하여 4차 산업을 주도해 나가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는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를 체계적으로 산업화 시킬 수 있는 제조 및 비즈니스 인프라가 부족해 유능한 젊은이들이 해외로 나가 창업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반면 한국은 현재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좋은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만 스타트업 아이템이 될만한 뛰어난 아이디어가 부족하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상호 보완적인 구조적 문제를 가지고 있는 한국과 러시아가 전략적으로 스타트업 플랫폼을 만들어 과학자와 청년들을 지원한다면 세계가 깜짝 놀랄 스타 기업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통일한국을 대비해 극동지역에 있는 대학에 스타트업 플랫폼을 구축하여 러시아 및 남북 청년들이 함께 스타트업 기업을 만들어 가는 것도 아주 멀지 않은 미래엔 가능할 것이다.

한국과 러시아는 수교한지 28년이 흘렀지만 북핵문제를 비롯한 정치, 지정학적 문제 등으로 자원, 철도를 포함한 많은 분야에서 가능성에 비해 실질적 협력이 매우 미미한 상황이다. 사회에 영향을 끼치며 앞서서 꾸준히 이끌어갈 전문가가 부족하여 매번 정권 초기에 반짝 협력을 추진하다가 미국, 중국, 일본의 영향력에 묻혀 관심이 사라져버리기 일쑤였다. 이들 국가들과의 협력이 더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국익을 위해 러시아 협력 카드를 더 활용할 필요가 있다. 그중 과학기술분야의 협력은 정치적 문제를 떠나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실질적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좋은 분야이다. 4차 산업혁명의 파도 앞에서 한국 중소기업들이 갖고 있는 고민거리인 “뭘 해야 앞으로 먹고살 수 있나”와 러시아의 고민인 “어떻게 아이디어를 산업화시킬 수 있나”를 결합시켜 양국의 국가 경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실질적 협력 모델이 구축되길 기대해 본다.

러시아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