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에 호소하는 홍콩 시민들은 순진한 것일까?

적나라함이 빚어낼 수 있는 가능성 “당신은 미국이 그렇게 결백하다고 생각하는가?” ‘벌거숭이 임금님’ 트럼프 외교정책의 역설 새로워서가 아니라 미국이 해오던 것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을 뿐

2019-10-15     조준상 선임기자

[이코노미21 조준상 선임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년6개월을 끌어온 중국과 무역전쟁을 원칙적으로 휴전하는 “1단계 합의”를 하기 직전인 지난 10월7일 홍콩 사태에 대해 “매우 인간적인 해법을 보고 싶다. 그것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홍콩은 세계의 허브로서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시위대를 만난다면 시진핑 주석은 해결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사람”이라는 말도, “시진핑 주석은 그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시진핑에게 무역협상 중에 홍콩 사태에 대해 언급하지 않겠다고 트럼프가 약속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는 속에서 나온 발언이라 관심은 각별했다. 지난 9월8일 홍콩 주재 미국 총영사관 앞에서 “트럼프 대통령, 홍콩을 구해주세요!”라는 팻말이 등장한 이후 홍콩 시민들의 간절한 도움 호소에 대한 답변의 성격도 띠고 있었다.

트럼프, “시진핑에 홍콩 사태 언급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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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홍콩 사태에 언급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는 의혹에 대해 “나는 그러지 않았다”고 전면 부인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협상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홍콩에) 어떤 나쁜 일이 일어난다면 (무역)협상에 매우 나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정치적으로 생각한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에게, 어떤 이들에게, 그(시진핑)에게 매우 힘든 일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나흘 뒤인 10월11일 고위급 협상에서 어쨌든 미국은 중국산 제품 2500억달러어치에 대한 관세를 25%에서 30%로 높이지 않는 대신에, 중국이 미국산 농산물 400~500억달러어치를 추가 구매하는 선에서 무역전쟁에 휴전했다. “1단계 합의”로 규정한 트럼프의 바람대로 더 포괄적인 영역의 합의로 진전될지는 불확실하지만 말이다.

트럼프가 워낙 거짓말을 밥 먹듯이 일삼아 왔던 터라 그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는 모른다. 홍콩 사태에 대해 언급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는 의혹은 지난 6월 말 주요 20개국(G20) 일본 오사카 정상회의 때 불거졌다. 중단된 무역협상을 재개하는 조건으로 시진핑이 내걸었고 트럼프가 받아들였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뿐만 아니다. 홍콩 주재 총영사인 커트 통은 7월5일 퇴임하기에 앞서 2일 오후 홍콩의 아시아협회에서 고별사에서 홍콩 사태와 관련해 중국 당국을 강하게 비판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국무장관 마이크 폼페이오는 그날 아침 직접 전화를 걸어 비판 수위를 낮추라고 지시했고, 막판에는 ‘비보도’ 명령을 내렸다. 퇴임 이후 통은 7월10일 전략국제연구센터(CSIS)에서 중국과 홍콩 관계를 다루며 이 지역의 미국의 경제정책 방향에 관해 언급하는 연설을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국무부의 압력으로 연기됐다.

트럼프를 구워 삶으려면 ‘눈 앞에서 돈 다발을 흔들어라!’

취임 이후 트럼프가 보여온 외교적 행태를 봐도, 그의 말을 얼마나 믿어야 할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중국으로부터 사우디아라비라, 카타르, 나아가 최근 터키의 쿠르드족 공격에 이르기까지 트럼프는 인권 유린과 다른 나쁜 행동들에 대해 ‘돈’과 맞바꾸는 행태를 보여왔다는 비난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트럼프는 매수하기 쉽다”는 말까지 외교가에서 나올 정도다. 예를 들어, 지난해 10월 사우디아라바아의 실세인 왕자 모하메드 빈 살만이 개인적으로 지휘한 작전에서 사우디 반체제인사이자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자말 카슈크지가 터키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에서 살해당했을 때를 보자. 트럼프는 10월11일 기자회견에서 “이 일은 터키에서 일어났다. 우리가 아는 최선은 카슈크지가 미국 시민이 아니라는 것”이라며 “나는 우리나라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막대한 양의 돈이 중단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게 1100억달러어치의 무기를 판매하는 계획이 지장을 받을까봐 이 사건을 제쳐버린 것이다.

지난 7월에는 카타르와 관련해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카타르 국왕인 셰이크 타밈 빈 하마드 알타리가 백악관을 방문했을 때 트럼프는 “가장 높은 수준의 테러리즘 후원자”라고 그동안 비난하며 사우디의 외교봉쇄를 지지해온 카타르에 대한 외교적 태도를 180도 바꿨다. 7월9일 기자회견에서 트럼프는 “그들(카타르)는 우리마라에 매우 많이 투자하고 있다.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비행기를 포함해 막대한 양의 군사장비를 구입하고 있다 … 그들은 보잉으로부터 매우 많은 수의 비행기를 구입하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카타르가 미국산 무기와 항공기 등 850억달러어치를 구매하려 하기 때문에 외교노선을 확 바꿔버린 것이다.

홍콩 시민들의 트럼프에 대한 호소는 배신으로 돌아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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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트럼프에게 홍콩 시민들은 절박한 지원과 도움을 호소하고 있다. 트럼프에 흔들어댈 돈 다발도 없음에도 말이다. 굳이 따지자면 ‘중국몽’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지정학, 그 연장선에 있는 대만에 대한 지원, 홍콩달러의 가치가 미국 달러화에 고정된 환율제가 상징하는 미국의 무시할 수 없는 경제적 영향력 등이다. 여기에 더해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리더로서 미국의 외교정책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도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일부 외교정책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외교정책은 전례가 없다. 외교정책을 통해 하는 게 새로워서가 아니다. 그동안 세계에서 미국 외교정책이 해온 것을 트럼프가 공공연하게 말하곤 하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세계에서 미국이 행한 행동의 추한 진실에 대한 본능적인 표현”이라고 일갈한다. 애초부터 미국의 외교정책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은 겉치레에 불과했고, 트럼프는 단지 ‘벌거숭이 임금님’일 뿐이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홍콩시민들의 간절한 도움 호소는 결코 순진하지만은 않다. 벌거숭이 임금님으로서 트럼프가 주류 외교정책의 규범과 행동에서 분명히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펜실베이니아 대학 정치학 교수인 로버트 비탈리스는 2015년 자신의 책 ‘백인의 세계질서, 흑인의 권력정치 - 미국 국제관계의 탄생’에서(WHITE WORLD ORDER,BL BLACK POWER: THE BIRTH OF AMERICAN INTERNATIONAL RELATIONS)에서, 미국의 외교정책은 “눈치채기에 반대하는 규범(norm against notcing)”이라고 부르는 게임의 규칙에 섬세한 기반을 두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게임의 규칙 아래에서 ‘미국이 결코 제국주의국가가 아니었던 것처럼 그리고 의도적으로 인종주의적이지 않았던 것처럼’ 미국의 국제관계 전문가들이 행동한다는 것이다. 이 규범은, 미국은 필요한 세계사의 행위자라는 이상과 실제로 미국은 어떻게 행위하는지를 나타내는 현실을 구분한다.

문제는 ‘벌거숭이 임금님’ 트럼프가 이 구분을 없애고 이상을 현실에 일치시키는 “추한 진실의 본능적 표현”이라는 점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2017년 2월 폭스뉴스 진행자 빌 오라일리와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내뱉은 말이다. 푸틴이 살인자임에도 그를 지지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트럼프는 “많은 살인자들이 있었다. 당신은 우리나라가 그렇게 결백하다고 생각하는가?”(There have been a lot of killers. You think our country’s so innocent?”)라고 쏘아붙였다. ‘눈치채기에 반대하는 규범’에서 보면,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는 적나라함이다.

개인적으로 트럼프의 이런 적나라함이 홍콩 시민들에게 비빌 언덕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난 6월20일 무인정찰기(드론)이 격추된 것에 대한 보복으로 이란군의 레이더 기지와 미사일 포대 등을 공격하려던 계획을 10분 전에 철회한 결정의 깊숙한 곳에는 어쩌면 이런 적나라함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그의 명분은 ‘공격하면 150여명의 이란군이 사망한다는데 이는 무인정찰기 격추와 너무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홍콩을 향해 트럼프가 던진 행간의 조언

홍콩 사태에 대해 언급하지 않겠다고 시진핑에 약속했다는 의혹을 부인하면서 트럼프는 향후 홍콩 사태에 대해서도 나름의 의견을 내놨다. “시위를 지켜본 이후 처음으로 이제 나는 말한다. 몇 달 전 숫자로 보면 나는 200만명을 봤다. 그런 광경을 본 적이 없다. 상당한 규모다. 그렇지 않나? 그 규모는 이제 훨씬 더 작다. 아마도 이것이 뭔가를 말하고 있다. 하지만 희망하건대 시위는 원만한 어떤 것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을 담아 전망했다.

이를 두고 트럼프가 홍콩 민주화 시위가 점점 더 움츠러들 것이라고 전망했다는 식으로 비판하기는 어렵다. 중국 공안이 비밀리에 진압경찰로 둔갑해 투입됐다는 증거가 속속 드러나고 있고, 사망자․실종자가 10명에 육박하는가 하면, 시위에 참가한 여성에 성폭행을 가했다는 소식까지 들려오고 있다. 엄청난 공포와 테러가 가해지고 있는 속에서 ‘냉각효과’(chilling effect )가 없다고 하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그럼에도 홍콩 민주화 시위는 스스로 잦아들 수 있는 분기점을 이미 지났다고 보는 게 맞다. 식민지 점령군처럼 행동하는 홍콩경찰과 은폐․가장한 공안들의 무차별 테러를 경험하면서 무기력에 절망하는 이들이 늘었을지는 모르지만, 시민들 개개인의 뼛속 깊이 스며든 분노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이 시한폭탄을 해체하는 유일한 길은 트럼프 말처럼 정치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법일 수밖에 없다.

조금도 변하지 않는 시진핑과 중국공산당의 태도에 비춰볼 때, 미국의 좀 더 강력한 행동과 지원을 바라는 홍콩 시민들의 호소에 비춰볼 때, 트럼프의 희망을 담은 발언은 너무 소박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트럼프의 “인간적인 해법” 발언의 전후에는 한 가지 주요한 말이 있다. “(시위)집단의 특정한 지도자가 없다. 그것이 하나의 문제일 수 있다”는 말이 그것이다. “우리는 단지 인간적인 해법을 보고 싶을 뿐”이라는 그의 바람은 이 말 바로 뒤에 나왔다. 대화를 위해서는 일정한 지도부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따지자면 홍콩특별행정구에 있는 야당들과 기나긴 시위 과정에서 자연스레 형성된 거리의 지도부가 여기에 부합한다.

그렇게 형성되는 홍콩 민주화 시위의 지도부, 완강하게 지속되는 시위는 중국 본토 당국과 대화를 위한 필요조건을 이룬다. 트럼프의 민망할 정도의 적나라함이 이 필요조건을 강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 지난 10월7일 미국 상무부는 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소수민족 탄압과 인권유린과 관련해 자치지역 인민정부와 감시카메라 제조업체 등 총 28개 중국정부 기관과 기업을 제재 대상으로 올렸다. 이런 일이 홍콩에 대해 벌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다. 1992년 제정된 ‘미국‐홍콩 법’에 따른 행위에 들어가기 이전에 말이다. 이 법은 중국에 반환된 이후에도 중국 본토와는 별개의 실체(seperate entity)로 홍콩을 계속 대우하면서 민감한 기술에 대한 접근, 미국 달러화와 홍콩 달러화의 자유로운 교환과 같은 경제와 무역상의 특혜를 제공하는 내용이다. 다만, 홍콩의 자치(autonomy)가 취약해질 경우 홍콩에 부여한 경제와 무역상의 특권의 일부나 전부를 유예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하는 권한을 대통령에 주고 있다.

국무부의 명령으로 톤다운된 커트 통의 고별사에는 분명히 중국 본토의 중앙정부를 향하고 있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식민지 점령군과 같은 행동을 멈추고 홍콩의 계속되는 번영을 위해 자치를 보장하라는 촉구다.

“홍콩 정부와 다른 홍콩 지도자들에게, 홍콩의 이중 정체성 - 중국의 한 도시이자 나머지 중국과는 다른 장소 - 이 부담이 아니라 기회라는 생각을 좀 더 굳건히 껴안으라고 제안하고 싶다 … 홍콩의 지구력 있는 강점은 중국 남부에 있다는 단순한 그 위치가 아니라 그 국제적 특성에 주로 있다 … 외국인 투자자와 거래자가 여기에 없다면, 홍콩 돈이 여기에 재투자될 이유는 작아진다. 홍콩이 누리는 외국 돈과 외국 전문가, 해외의 접근이 없다면, 중국 본토의 돈이 여기로 올 이유 역시 작아진다 … 홍콩 문제를 감독하는 이들에게 내가 주는 권고는 ‘(개입이) 적을수록 많을 수 있다(Less could be more)’는 것이다 … 1997년 홍콩 반환은 중국에게 너무 행운이었다. 중국은 그 자체의 이미 만들어진 런던을 물려받았다. 그때 중국에는 홍콩에 상당하는 금융센터가 없었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중국 본토는 자본통제를 유지하면서 중국 금융을 국제화시키려는 딜레마에 계속 직면해 있다. 홍콩은 계속 번영하기 위해 -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 자치가 필요하다. ‘적은 게 많은 것’이라는 접근이 필요한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이코노미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