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민주화 이후’에도 여전히 민주주의를 요구하는가?
「촛불 이후, K-민주주의와 문화정치」 천정환 지음, 역사비평사 발간
[이코노미21 김창섭 본부장] 2018년 프랑스에서 타오른 노란조끼 시위에서 나타난 현상 중 하나는 프랑스의 진보운동 지도부, 르몽드를 비롯한 언론, 노조지도자 등 68세대에 대한 대중들의 비난과 조롱이었다.
이는 프랑스 진보운동의 주체에 변화가 생겼음을 의미하며 더 이상 68세대가 진보운동을 대변하지 않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오랫동안 한국에서 진보운동을 상징, 독점해 온 세력은 이른바 386세대(또는 86세대)로 불려지는 운동권이었다. 이들이 현 정권의 주요 요직을 차지하고 있음은 물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시민운동에 이르기까지 전 분야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여기에 남성, 이성애자, 소득 수준 중상층 이상이 이 사회의 주류임은 부인할 수 없다.
이런 한국사회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이 책은 ‘촛불항쟁’에서 기존과는 다르게 운동주체에 변화가 생겼음을 이야기 한다. 또한 주류에서 소외된 여성, 가난한 청년세대, 성소수자 등이 촛불을 통해 말 하고자 했던 것, 그리고 그들의 주류세계에 대한 인식이 어떤 것인지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연인원 1600만명을 돌파한 한국의 촛불은 노조, 정당, 시민단체의 참여와 독려도 있었지만 다양한 계급·세대·젠더를 초월해 심지어 개인 혹은 가족 단위의 참여도 두드러졌다. 또한 일부에서 촛불을 주도하려는 각 정당과 노조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표시하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런 촛불항쟁은 박근혜 탄핵을 성취한 후 급격히 선거 국면으로 빨려 들어가며 잠정 중지되었다. 그리고 ‘촛불혁명을 통해 탄생’한 것으로 주장하는 현 정권의 집권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혁명은 사회시스템의 근본적 변화를 의미하며 단순한 정권교체 이상의 더 높은 이상을 요구한다. 때문에 ‘촛불혁명’이란 명명은 현재의 집권세력과 그 지지자에 의해 두드러지게 사용된다. 혁명으로 규정하는 순간 그 투쟁은 완성형이 되기 때문이다.
예일대 인류학 교수인 제임스 C 스콧은, 흔히 진보운동의 조직 지도부는 급격한 변화를 요구하는 투쟁을 제도권에 대한 요구로 순치시키며, 자신들이 그 투쟁의 대변인이 되어 선거에 참여하는 것으로 대중투쟁을 종식시켜 왔다고 주장한다.
분명 촛불의 경이로운 규모와 확산 자체는 ‘혁명적인 것’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 더 많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다양한 세대, 계급, 젠더의 현 정권에 대한 비판 역시 확대되고 있다.
정권교체 이후 가장 큰 논란을 일으키며 극단적인 대립과 서로에 대한 혐오를 표출했던 사건은 이른바 ‘조국사태’와 박원순 시장의 죽음 및 오거돈, 안희정 사태를 포함한 일련의 ‘젠더이슈’일 것이다.
극단적인 대립구도로 발전했던 이 사건들은 우리 사회가 짚어 보아야 할 문제보다는 진실공방과 진영논리로 점철돼 왔다. 하지만 사실의 진위여부만이 아니라 ‘조국사태’에서 우리가 짚었어야 할 문제는 구조적으로 사다리가 치워진 가난한 청년들의 좌절문제였다는 사실을 중시해야 할 것이다
진영논리는 이런 사회의 중요한 이슈에 대해 성찰하기 보다는 혐오를 주무기로 한 ‘팬덤화-빠’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책은 ‘촛불과 그 이후’, K-방역, K-POP, K-문화, K-민주주의로 표상된 한국사회를 차분하게 짚어보며 이 사회가 고민하고 토론해야 할 문제를 정리하고자 한다. [이코노미21]
「촛불 이후, K-민주주의와 문화정치」
천정환 지음, 역사비평사 발간, 1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