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흑인 역사의 달③] 흑인 민권 운동 이야기

1955년 로자 파크스 사건을 계기로 흑인 민권 운동 시작돼 아이다 B.웰스, 첫 흑인 민권운동가이자 여성참정권운동가 2019년 시카고 시내에 흑인 여성 운동가 아이다 이름 붙인 도로 만들어져

2020-11-10     허유진 미국 통신원

미국 흑인 역사의 달기획기사는 3번에 걸쳐 연재됩니다. 미국의 아픈 역사로 새겨진 흑인 노예,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 있는 인종차별 문제의 출발점이기도 한 흑인 역사와 그들의 삶과 애환을 오늘의 시점에서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이번 글은 연재 마지막회입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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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남부의 인종 분리 정책

1865년 미국에서 노예제도가 폐지되었지만 흑인들에 대한 차별은 그 후에도 오랜 시간 함께 했다. 1876년부터 1965년까지 시행됐던 짐 크로 법(Jim Crow laws)은 미국 남부의 모든 공공기관에서 흑인과 백인을 분리시켰던 인종 분리 정책이다. 이 법에 따라 흑인이 버스에 타면 오로지 흑인 전용 좌석에만 앉아야 했고 화장실 역시 백인과 따로 사용해야 했다. 이처럼 미국 남부 사회에서는 대중교통, 학교, 식당, 식수대와 같은 모든 공공시설에서 흑인들에 대한 분리가 철저히 이루어졌다.

우리는 이러한 인종분리를 흑인 차별 역사를 그려낸 영화들을 통해서 접할 수 있다. 미국 남부 흑인 가정부들의 애환과 연대를 다룬 영화 헬프(The Help, 2011), 미국 NASA의 유인 우주 탐사 계획에서 중요한 업적을 세웠지만 조명 받지 못했던 흑인 여성과학자들이 나오는 영화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 2016)가 바로 그러하다. 공교롭게도 두 영화는 흑인 여성이 지정된 흑인 전용 화장실을 사용하면서 느껴야 했던 고충과 불합리함을 자연스럽게 담아내었다. 지금 보면 이해하기 힘든 황당한 장면이지만 그 당시 미국사회에서는 합법적 정책이라는 미명하에 숨 쉬듯 당연하게 이루어진 일상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인종분리가 주는 불합리한 차별에 맞서 미국에서는 흑인 민권 운동이 일어난다.

흑인 민권 운동(Civil Rights Movement)

흑인 민권 운동(Civil Rights Movement)이란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걸쳐 미국의 흑인들이 인권 탄압에 대항하여 벌인 진취적인 운동이다. 이는 미국 남부 앨라바마 주의 도시 몽고메리에서 한 흑인 여성이 백인에게 버스 자리 양보를 거부했던 사건을 계기로 그 불씨가 타오르게 된다.

195512월 로자 파크스(Rosa Parks)는 직장에서 일을 끝내고 버스에 앉아 집으로 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버스에 백인들이 탔는데 때마침 앉을 자리가 부족해진다. 이 때 로자 파크스는 백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할 것을 요구 받는다. 사람이 많을 경우 유색인은 백인에게 무조건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것이 그 당시의 법과 상식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유색인종이 유색인 전용 좌석에 앉아 있어도 말이다.) 이에 로자 파크스는 끝까지 양보를 거부하였고 결국 체포되어 유죄판결을 받게 된다. 그러자 이에 반발한 흑인들은 로자 파크스의 재판 날을 시작으로 버스 안타기 운동을 일으킨다.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으로 부르는 이 사건은 수많은 흑인들이 민권운동에 동참할 수 있게 만드는 부싯돌이 되었다.

로자

시카고 중심지에 흑인 여성 운동가의 이름을 딴 길이 생기다 - 아이다 B. 웰스 길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사건의 로자 파크스가 버스에서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기를 거부했던 날로부터 약 80년 전, 스물두 살의 아이다는 1884년 테네시 주 멤피스에서 흑인이 일등석티켓을 끊고 기차를 탔다는 이유로 기차에서 끌려 나가게 된다.

20192월 시카고 다운타운 주요 거리에 흑인 여성 운동가 아이다의 이름이 붙여졌다. 시카고 중심지를 동서로 관통하는 이 도로는 '아이다 B. 웰스 길' (Ida B. Wells Drive)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이는 이곳 시카고에 흑인 여성의 이름을 딴 도로가 생긴 첫 번째 사례이다.

아프리카계 흑인 아이다 B.웰스(Ida B. Wells)는 미국의 민권운동가, 교육자, 저널리스트, 여성참정권운동가이다. 1862년 미국 미시시피 주에서 노예로 태어난 그녀는 생후 6개월 후 노예제 폐지에 따라 자유인의 몸이 된다. 그러나 아이다 역시 흑인으로 살아가면서 인종적 편견과 수많은 차별에 직면해야 했다.

1884년 스물두살의 아이다는 테네시 주 멤피스에서 흑인이 일등석티켓을 끊고 기차를 탔다는 이유로 기차에서 끌려 나가게 된다. 아이다는 이 일을 소송에 걸었고 500달러의 손해 배상금을 받으며 사건은 승리로 종료되는 듯했다. 그러나 결국 테네시 대법원에서 그녀의 행동은 유죄로 판결이 뒤집어지게 된다. 이 사건으로 인해 아이다는 사법 제도에 심각한 실망을 느끼게 된다. 이후 아이다는 프리 스피치 앤드 헤드라이트(Free Speech and Headlight)라는 작은 신문사를 운영하며 기자로서 미국 남부의 인종 차별에 대한 여러 기사를 쓰기 시작한다.

아이다는 멤피스에서 공립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기도 했는데 이 때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흑인 차별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다가 해고되기도 한다. 1893년 시카고로 온 그녀는 시카고에서 최초의 흑인 신문인 시카고 컨서베이터(Chicago Conservator)를 설립하여 언론 활동의 끈을 이어 나간다.

아이다

1896년 아이다는 전미 유색 여성협회(National Association of Colour Women)를 비롯하여 여러 민권 단체를 설립하며 여성 참정권 운동에 공격적인 열정을 쏟아 붓는다. 그 당시 여성은 여전히 ​​주와 연방 차원에서 입법부에 투표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913년 그녀는 시카고에서 여성 참정권 운동의 일환으로 알파 참정권 클럽(Alpha Suffrage Club)을 설립했다. 그리고 1920년 여성의 참정권이 실현되기까지 아이다가 설립한 알파 참정권 클럽은 여성 참정권 승리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1910년 아이다는 미국 남부의 농촌에서 시카고로 온 가난한 아프리카계 이민자들을 돕기 위해 흑인 유대 연합(Negro Fellowship League)을 설립했으며 시카고에서 최초로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 보호관찰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1930년 아이다는 여든 여덟 살 때, 일리노이 주 상원 의원에 출마했으며 이는 공직에 출마한 미국 최초의 흑인 여성 중 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당선에는 실패한다.) 그리고 1931년 아이다는 일리노이 주 시카고에서 6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이처럼 아이다는 언제나 잠재적인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글과 연설을 통해 흑인 인권 문제와 여성의 정치권 제한에 항의하며 맞서 나간 흑인 여성 운동가였다. 때문에 평등한 사회를 향해 싸워나갔던 그녀의 영향력은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현재 미국 저널리즘에서 유색인들의 기회 참여를 격려하는 권위 있는 상을 아이다 웰즈 상(Ida B. Wells Award)이라 부른다. 또한 캘리포니아 주의 샌프란시스코와 뉴욕 주의 자메이카와 같은 미국의 여러 곳에서 아이다의 이름을 딴 초등학교와 고등학교가 생겨나기도 했다.

모두의 투쟁

버스에서 끝내 자리 양보를 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권리를 지키려 했던 로자 파크스, 기차에서 일등석 티켓을 끊었다는 이유로 쫓겨났지만 끝까지 굴하지 않았던 아이다. 이 둘은 모두 비합리적인 상황에서 저항했고 변화를 꿈꾸었던 흑인 여성운동가들이었다. 또한 이들을 비롯하여 흑인들의 투표권을 요구하며 비폭력 저항주의로 거리 행진을 했던 마틴 루터킹(Martin Luther King) 그리고 넓은 범위에서 활동한 급진적 흑인해방운동가 맬컴 엑스(Malcolm X)까지. 이들을 비롯한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투쟁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걸고 민권 운동을 해나갔다. 결국 수많은 이들의 민권 운동은 인종분리를 종식시키는 민권법과 투표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투표권법을 이끌어냄으로써 흑인 차별 역사의 기념비적인 변화를 만들어 내었다.

마틴

“I felt that one had better die fighting against injustice than to die like a dog or a rat in a trap.”

Ida B. Wells

덫에 걸린 개나 쥐처럼 죽는 것보다 불의와 싸우는 것이 더 낫습니다. - 아이다 B. 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