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기업 성과보상체계 교통정리
2001-10-10 문정윤/ 다산E&E 컨설턴트
“내가 당신이 키우고 있는 염소 수를 알아맞혀 보겠소. 만약 내가 정확히 맞힌다면 그 대가로 당신이 나한테 염소 한마리를 주시오.” 그러면서 그는 목초지 규모와 적정 사육량 등을 수식을 동원해 계산하고 노트북에 저장되어 있는 온갖 데이터를 이용해 한참만에 거의 정확한 수치를 맞힌다.
뿌듯해하는 신사에게 농부는 조롱하는 투로 이야기한다.
“당신은 틀림없이 컨설턴트요.” 농부는 자신의 이런 추측에 대한 근거를 다음과 같이 댄다.
첫째, 초청하지도 않았는데 찾아와서 제안을 했다는 것. 둘째, 이미 농부가 알고 있는 답을 복잡한 과정을 통해 알아냈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결정적인 것은 농장주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농부가 키우는 동물은 염소가 아니라 양이었던 것이다.
이 유머는 단순한 우스갯거리로 듣고 넘어가고 싶지만, 인사 컨설팅 종사자들에겐 썩 유쾌하지는 않은 우화임에 틀림없다.
IMF 사태로 인사 컨설팅 필요성 대두 컨설팅의 여러 분야 중에서도 인사 컨설팅(HR Consulting)은 이름 그대로 기업 안에서 사람과 관련된 모든 영역을 아우르고 있다.
경영전략과 연계되는 중·장기적 인사전략 수립에서부터 채용제도, 직무분석 및 평가, 직무구조 재설계, 평가와 보상제도, 경력개발제도, 교육훈련체계 등 인력의 관리·육성·개발에 관련된 제도를 정비하고 설계하는 것이 인사 컨설팅의 전통적인 영역이다.
최근에는 인사정보관리시스템(HRIS)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인사 컨설턴트의 개입을 요구하는 곳이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인사 컨설팅이 기업의 인사부서에 근무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아직까지 널리 알려진 직종은 아닌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인사컨설팅이 특화된 업종으로 각광받기 시작한 계기가 1990년대 후반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IMF 구제금융 자금이 들어오면서 한국 경제가 겪었던 엄청난 충격이 국가경제의 실물부문과 금융부문뿐 아니라 경제주체의 의식과 문화에까지 미쳤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기업에 한정해 보더라도, 이전까지의 연공서열과 집단주의를 강조하던 한국식 기업문화에 ‘성과와 역량 중심’이라는 서구식 기업문화가 급속히 침투·확산됐다.
평생직장의 온정이 사라지고 그 대신 생존을 위한 경쟁 회로가 재구성됐다.
경쟁에서의 우열에 따라 극단적으로는 자리보존과 퇴출이 결정되기도 하고, 평가에 따라 보상의 차별화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연봉제가 기업 보상체계의 대명사로 자리잡는 데 걸린 시간이 한국만큼 짧았던 경우는 드물 것이다.
평가 결과에 따른 차별적 보상을 인사제도로 구현하는 것은 대부분의 기업 실무부서에서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일이었다.
또한 기업 구성원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임금 문제’를 조직 내부의 이해관계자가 개입해 조정하는 것은 객관성과 구성원 수용성에서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인사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외부 컨설턴트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많은 기업에서 동시다발적인 수요가 일어나 인사 컨설팅 시장 규모가 순식간에 확대됐다.
이런 특수상황으로 인해, 현재 한국의 인사 컨설팅이 보상체계와 평가제도 설계에 집중돼 있는 게 사실이다.
연봉제로 대표되는 성과주의 보상체계의 수립이 대부분의 기업들에 가장 절박한 과제인 것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성과주의나 능력주의 보상체계가 기업 구성원들에게 가장 강력한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따라서 기업문화나 업무환경 등에 대한 면밀한 분석 없이 무턱대고 시류에 편승해 제도를 설계하는 것은 자칫 실패로 이어질 수도 있다.
A사의 경우가 성과주의 임금체계를 잘못 도입한 대표적인 사례였다.
그룹의 내수판매 회사인 A사는 99년부터 모기업의 제도를 그대로 이식해 영업실적에 따라 차등보상하는 연봉제를 실시했다.
그러나 내수시장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는 제품의 특성상 기업의 매출규모나 부서의 영업실적은 정책적으로 이미 정해져 있는 상태였다.
능력이나 노력에 따른 실적 변동이 어려운 상태에서 시행된 차등보상 제도는 직원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이직률 상승으로 이어졌고, 결국 시행 1년 만에 제도 재정비를 위한 대대적인 프로젝트에 착수할 수밖에 없었다.
인사제도에 대한 구성원의 이해관계와 요구사항들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불만이 잘못된 평가제도에 근거한 차별적 보상제도에 집중됐음이 확인됐다.
제도로서의 성과주의가 그 자체로는 효율성을 낮출 수 있다는 교훈을 남긴 셈이다.
불행하게도 한국내 적지않은 기업이 이러한 ‘슬로건 연봉제’를 시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인사 컨설팅은 일반적으로 기업 안의 직군별 대표와 인사실무 담당자, 노조대표, 그리고 컨설턴트로 구성된 태스크포스를 통해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태스크포스를 어떻게 운영하느냐가 프로젝트 성패의 관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객사 중에는 가끔 태스크포스의 주체를 컨설턴트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어 프로젝트 진행이 어려워지기도 한다.
컨설턴트는 프로젝트 과정에서 방법론과 일정을 제시하고 이해당사자들의 이견을 조율하는 태스크포스의 일개 구성원일 뿐이다.
그들은 기업내의 모든 업무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을 가진 내용 전문가가 아니다.
정보를 취합해 프로젝트의 목적에 맞춰 재구성하는 과정을 맡고 있을 뿐이다.
회사나 개인 직무에 대한 정보를 현장에 있는 사람보다 많이 알 수는 없으며, 굳이 세부사항까지 일일이 파악할 필요도 없다.
이러한 일은 직무를 대표하는 다른 구성원의 몫이다.
대그룹 계열사인 B사에 대한 컨설팅은 태스크포스 구성과 프로젝트 진행의 모범 사례라 할 수 있다.
노사간의 오랜 대립을 경험한 B사는 직군별 노조 대표와 회사측 인사실무 담당자 및 인사 컨설턴트로 구성된 태스크포스를 통해 10년이 지나도록 개선되지 않은 불합리한 임금제도를 개선하는 프로젝트를 진행시켰다.
처음에는 노사간 불신의 골이 너무 깊어 태스크포스가 제대로 작동될지 염려스러웠으나, 6개월 이상 작업을 하면서 노사 양측 모두 회사의 구성원이 만족할 수 있는 제도 수립에 대해 열정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했다.
회의 진행과 자료준비는 노사 대표가 번갈아 가면서 맡았고, 결론 또한 노사간의 합의를 통해 확정지었다.
컨설턴트가 한 일은 상충되는 의견을 조율하고 각각의 작업에 대한 진행과정과 방법론을 제시하며, 사례를 발굴하고 인사제도 개선에 따른 예측가능한 쟁점 등을 정리하는 수준이었다.
B사의 경우 앞으로의 인사제도 개선때에는 아마도 컨설팅에 의뢰하지 않고도 내부 컨설턴트를 통해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프로세스 전문가와 내용 전문가의 행복한 결합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컨설턴트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한 상황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숨어 있는 문제점을 들춰내 제기할 수 있는 역량이 있어야 한다.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취합하고 분석해 적절한 용도로 바꾸는 능력도 필요하다.
앞의 우화에서 농장 주인이 제시한 컨설턴트의 특징은 비웃음만 약간 걷어낸다면 컨설턴트의 모습과 유사할지도 모른다.
이는 인사 컨설팅에서도 예외없이 적용되는 현직 컨설턴트의 역량이자 고민거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