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영화제도 산업이다

2001-11-15     부산=이미경 기자
영화제 관련 직접 경제효과 176억원… 간접적인 부가가치는 수십배 일본 북단에 자리한 작은 마을 유바리는 매년 2월이면 지구촌 곳곳에서 날아온 영화감독과 제작자, 관객들로 북적거린다.
2만명이 채 안 되는 유바리 사람들에게 영화제는 세계적인 스타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특급 이벤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2차대전 당시 강제징용된 한국인과 중국인들이 한숨과 눈물로 파헤친 탄광들이 폐허로 남아 있는 곳. ‘국제판타스틱 어드벤처 영화제’가 없었더라면 유바리는 여전히 석탄가루 풀풀 날리는 한물 간 탄광촌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때맞춰 열리는 눈축제와 영화제의 열기는 유바리 사람들의 썰렁한 가슴은 물론 호주머니까지 따끈하게 덥혀주는 성능 좋은 난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평균관객 18만, 유동인구 100만의 경제학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칸영화제를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영화제들은 행사 자체만 놓고 보면 대부분 ‘적자’에 허덕인다.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정치적’ 판단에다 안팎의 ‘문화적’ 욕구가 만나 탄생한 행사에 ‘수익성’의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는 일이다.
영화제를 위해 책정된 예산은 인건비와 관련인사 초청비 등에 쓰기에도 늘 빠듯하기 때문이다.
출범 5년 만에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로 부상한 부산국제영화제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정부가 10억원, 부산시가 7억원, 입장료 수입이 6억원, 여기에 기업 협찬금을 더하면 총 30억원에 이르는 예산이 나온다.
하지만 국내외 초청인사만 해도 700명(2000년 기준)에 달하는 영화제 규모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상영관 관리, 통역, 전산업무 등을 도맡아 하는 400명의 자원봉사단과 영화제 준비에 필요한 컴퓨터를 무료로 대여해주는 부산은행 등 각계의 도움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죠.' 1회 때부터 조직위원회 사업팀에서 활동해온 이소영씨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부산국제영화제는 국제적인 자선이나 후원활동이란 말인가? 물론 아니다.
영화제와 관련해 ‘경제적 효과’를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은 따로 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돈’이 따르는 법이라, 영화제에 참여한 사람들이 먹고 자고 노는 데 쓰는 비용은 고스란히 부산시와 시민들의 몫으로 돌아간다.
칸 시민들은 영화제 기간에 자신들의 집을 관광객들에게 빌려주고 여름휴가를 떠난다.
몰려드는 인파 때문에 일상생활이 불가능하기도 하지만, 숙소가 부족한 터라 임대수입이 짭짤하기 때문이다.
평균 관객수 18만명, 영화제 기간에 극장 밀집지역인 남포동 PIFF 거리 유동인구가 100만명에 이른다는 부산국제영화제는 불황에 지친 부산 시민들의 시름을 얼마나 덜어줄까? '평소 8시간 정도 걸려서 버는 돈을 영화제 때는 5시간 만에 벌 수 있다 아입니꺼.' 개막을 5일 앞두고 택시기사 한영진씨는 한껏 신바람이 나 있다.
영화관 밀집지역 맞은편에 있는 자갈치 시장에서 꼼장어구이집을 운영하는 아주머니는 '영화가 끝나고 새벽에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평일에도 늦게까지 손님이 있을 것'이라며 싱글벙글이다.
예약이 일찌감치 끝난 특급호텔들은 초청 감독과 영화계 톱스타들을 맞이할 채비에 한창이고, 상영관이 몰려 있는 남포동과 대청동, 영주동 일대의 호텔과 여관에서는 빈 방을 찾기가 어려웠다.
남포동의 한 호텔에서 일하는 정인성씨는 '해변을 찾는 관광객 위주의 여름휴가 시즌보다 오히려 영화제 기간에 투숙객 수가 더 많다'고 전했다.
‘영화제 특수’는 부산 시민들에게 결코 낯설지 않은 반가움인 것이다.
부산시가 발표한 2000년 부산국제영화제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관람료와 숙박비 등을 비롯해 국내외 관객 총 18만여명이 영화제 기간 부산에서 쓰는 돈은 175억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12만7천여명은 부산 시민으로, 이들이 쓴 돈은 평균 3만원, 나머지 5만4천여명의 외지인들이 평균 2.5일을 머물며 9만5천원씩을 썼다는 계산이다.
175억원은 부산시가 영화제에 지원한 금액의 20배가 넘는 액수다.
부산시 정책개발실 우석봉 박사는 '기초자료가 부족해 비엔날레 등 부산에서 개최되는 대규모 이벤트 때 실시한 설문조사를 상당 부분 참고했다'면서 '영화제 관객들이 일반관광객들에 비해 더 오래 머물고, 더 많은 돈을 쓴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지출비용 규모는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997년 제2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경제적 효과에 대해 연구했던 정책개발실 조의수 박사는 '공간과 지역성을 기반으로 한 ‘장소 마케팅’이 가능하다는 점이 장기적으로 더 큰 수익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의 도시 부산’이라는 브랜드 이미지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면, 이를 통해 얻게 되는 유·무형의 경제효과가 더 크다는 설명이다.
조 박사는 ‘컨테이너와 화물, 그리고 신발 공장의 도시인 부산이 세계 영화계 지도에 확실한 자리를 잡았다’고 보도한 프랑스 신문 <르몽드>의 기사를 예로 들면서 '영화제를 찾는 1500여명의 국내외 기자들을 통해 전세계에 보도되는 부산시의 간접광고 효과를 광고비로 환산하면 10억원이 넘는다'고 말했다.
실제 부산국제영화제가 시작된 뒤 부산의 외국인 관광객 수는 해마다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98년 100만명, 99년 128만명, 2000년에는 154만명이 부산을 찾았고, 지난해 특급호텔 매출은 99년에 비해 30%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국제영화제의 ‘브랜드 효과’는 영화제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국제행사를 유치하는 데도 조금씩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내년에 있을 ICCA 국제 컨벤션회의를 부산에 유치하기 위해 브라질을 방문했던 부산시 관계자는 '부산에 대해 잘 모르면서도 ‘PIFF가 열리는 도시냐’고 묻는 사람을 많이 만났다'고 전한다.
그는 '영화제가 열린다고 하니까 도시가 깨끗하고 좋은 분위기일 거라는 생각들을 하는 것 같았다'면서, 뜻밖에 영화제 덕을 보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올해 영화제 기간에 함께 진행되는 제1회 국제방송영상물 견본시 역시 높아진 영화제의 위상을 실감케 한다.
세계 25개국 300여개 미디어 업체가 참여하는 이 행사는 애초 6월에 열릴 예정이었으나, 일부러 일정을 영화제 기간으로 늦춰 잡았다.
MIP TV(국제 방송물 견본시)를 비롯해 1년 내내 대규모 국제행사들이 줄을 잇는 칸의 명성과 경제적 효과가 머지 않아 ‘아시아 영화의 창’으로 불리는 부산에서도 재현될 것으로 기대된다.
인프라 구축, 영상산업의 메카로 아직은 ‘풀뿌리’ 수준이지만, 영화제의 성장과 더불어 부산에는 신종 업체들이 많이 생겼다.
신작 프로젝트와 투자자를 연결하는 PPP(Pusan Promotion Plan) 진행에 필요한 부스 제작업체부터 6층 건물 크기의 대형 스크린 시사를 위해 필요한 발전기와 크레인 전문업체까지 하나둘 부산에 터를 잡고 나섰다.
사업팀 이소영씨는 '올해 PIFF 광장에 대형 전광판을 설치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국에서 10개 업체가 부산에 진출해 사무소를 열었다'며 부산에 영화제 주변 산업들이 점차 활성화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영화제작 관련 업체들의 등장은 더욱 눈에 띈다.
영화제작사가 단 한군데도 없었던 부산에 오석근 감독의 라이트하우스를 비롯한 4개 영화사가 출범했다.
영화 보조출연자 전문 공급업체 3곳과 항공촬영 업체, 수중촬영 업체, 차량개조 전문업체도 생겼다.
부산시에 영화제작 관련업체들이 이처럼 두드러진 것은 ‘부산영상위원회’의 활동에 힘입은 것이다.
부산영상위원회는 영화제작과 촬영 유치를 위해 부산시 산하에 설립된 비영리 단체다.
지난 99년 12월에 문을 연 이래 <친구>, <리베라메> 등 국내외 영화 총 19개 작품의 부산 현지촬영을 지원했고, 현재 촬영중인 작품도 8편에 이른다.
부산에서 작품 전체를 촬영한 <친구>의 경우를 살펴보면, 영화촬영 유치를 위한 영상위의 활동이 얼마나 적극적인지 알 수 있다.
영상위는 소방관 100명과 소방차량 50대, 경찰관 60명과 경찰차량 30대를 동원하는 데 필요한 각종 인·허가 작업을 도맡았고, 영도대교와 국제호텔 앞 도로를 전면통제하는 데도 앞장섰다.
촬영이 끝난 뒤에는 촬영장의 쓰레기까지 말끔히 치웠다.
영상위 사람들은 촬영 기간 내내 3억6천만원의 예산을 들여가며 스태프들 못지않게 뛰어다녔던 것이다.
영상위 명계남 위원장은 '외국에는 영화 제작을 지원하는 ‘필름 컨벤션’이 각 도시마다 활발히 활동중'이라며 '현지에서 보조 출연자와 스태프들을 조달함으로써 발생하는 고용효과와 각종 촬영장비 업체의 수익 등을 따져보면 위원회가 지출한 예산의 약 두배 가량의 경제적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영상위가 진행중인 각종 사업들은 부산시가 국제영화제를 개최하는 ‘영화이벤트 도시’에서 ‘영화제작 지원도시’로, 궁극적으로는 ‘영상산업의 도시’로 발돋움하기 위한 지렛대 역할을 하고 있다.
오는 17일 영화제 폐막과 더불어 문을 여는 2천평 규모의 실내 스튜디오와 센텀시티에 마련되는 현상소는 '기획부터 촬영, 후반작업에 이르기까지 영화제작과 관련한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중장기 프로젝트의 시작이다.
영화제의 성공은 도시의 성격과 위상을 순식간에 바꾸어놓는다.
가난한 탄광촌이 문화의 도시로 변하고, 프랑스 해변의 작은 휴양지가 세계 영화의 메카로 군림하듯 부산은 ‘세계적인 영상산업 도시’로 가는 길을 부지런히 닦고 있다.
인터뷰 | 부산광역시 문화예술과 이종원 과장
눈에 보이지 않는 경제적 파급효과를 주목한다

부산시청에서 18년째 근무하고 있는 이종원 과장은 1년전 문화예술과장으로 발령받았을 때 덜컥 겁이 났다.
경제와 교통, 재정부문를 두루 거쳤음에도 '문화란 것이 굉장한 전문가들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결국 '문화전문가와 행정전문가들이 할 수 일이 따로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영화제 운영에 필요한 행정적 지원과 뒷바라지를 하는 지금의 역할에 만족하고 있다.
특별히 시간을 내야 볼 수 있는 각종 문화행사에 참석하는 것을 일삼아 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기쁨이다.
-국제영화제가 부산 지역경제에 미치는 효과가 어느 정도라고 보나? =지난해 영화제를 통해 얻은 직간접 효과는 39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그러나 영화제를 통해 부산을 세계에 알림으로써 얻는 이득이 더 크다.
올해는 칸과 베를린 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온다고 들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그만큼 비중이 높아졌다는 얘기 아닌가. 부산시민들이 ‘문화의 도시’ 시민으로서 자부심을 느낀다는 점도 시 차원에서 보면 무시할 수 없는 효과다.
-올해 부산시의 영화제 자금지원 규모는? =PPP 지원비 2억원을 포함해 총 9억3천만원이다.
내년에는 PPP를 제외한 영화제 본 행사에만 국비 수준(10억)으로 지원을 확대할 계획이다.
현재까지 20억원 규모로 조성된 부산영화영상기금이 목표액인 400억원 규모로 확대되면 영화제에 대한 안정적이고 효과적인 지원이 이루어질 것이라 본다.
-정부에서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해서 문제가 됐던 걸로 안다.
=다른 지역 영화제와의 형평성을 고려해 지원금을 줄인다는 방침이 내려왔다.
기획예산처에 한국 영화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달라고 요구했고, 정부가 이를 받아들였다.
내년까지는 정부 예산이 확보돼 있다.
만약 정부 지원이 줄어든다고 해도 영화제 진행에 차질이 빚어지진 않을 것이다.
-영상위원회의 활동이 실익이 없다는 얘기도 들리는데. =출범한 지 2년도 안 됐는데 90편의 촬영지원 신청이 들어왔다.
투자에 대한 직접적인 수익보다는 부차적인 경제적 파급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부산 곳곳의 풍경이 담긴 화면이 전세계인들에게 보여지는 것 아닌가. 실내촬영스튜디오와 영화제작사, 엑스트라 전문회사, 영화 특성화 고등학교 등 영상산업의 도시로 발돋움하는 데 필요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본다.
-부산시 영산산업의 비전은? =영상산업은 관광산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또 영화제 시설과 국제적 인지도를 활용하면 국제회의 유치를 하는 데도 유리하다.
부산시는 컬처 테크놀로지(CT)를 21세기 10대 전략사업의 하나로 정하고 관광과 영상, 문화를 한데 엮어 살기 좋은 도시, 삶의 질이 높은 도시를 만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