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션스 일레븐
2002-03-07 임범/ <한겨레> 문화부 기
투수가 실컷 두들겨맞고 중도에 교체되는 따위의 손상을 입기는커녕, 상대편 타자의 베이스 진출 자체를 봉쇄해버리는 완벽한 승부는 상쾌감을 선사한다.
옷에 흙 한점 안 묻히고 뻘밭을 건너온 기분이랄까. 큰 돈을 훔쳤는데 아무도 붙잡히거나 부상을 입지 않고, 심지어 누가 돈을 챙겼는지조차 모르게 하는 완벽한 범죄극도 마찬가지다.
원래 돈 주인보다 사기꾼들이 더 매력적이라면 금상첨화다.
1970년대, 두 톱스타 폴 뉴먼과 로버트 레드포드가 깨끗하게 사기에 성공하는 <스팅>이 그랬다.
<오션스 일레븐>은 완벽한 도둑질과 사기극의 상쾌한 맛을 고스란히 살린 2002년판 <스팅>인 셈이다.
조지 클루니라면 폴 뉴먼이나 로버트 레드포드와 겨뤄볼 만하다.
사물을 조금씩 흘겨보는 눈매와 각진 윤곽에 살이 적당히 붙은 얼굴이 처음에는 느끼하더니, 나이가 들수록 매력을 더해간다.
클루니는 전문 금고털이인 대니 오션 역을 맡아, 감옥에서 나온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더 큰 도둑질을 계획하고 오션 자신을 포함해 11명의 사람들(오션스 일레븐)을 끌어모은다.
대상은 라스베이거스에서 가장 큰 카지노 세곳의 돈을 모아 보관하는 금고이며, 금액은 무려 1억5천만달러이다.
돈 주인은 군소 카지노 업자의 돈을 집어삼키며 성장한 냉혹하기 그지없는 인물이다.
반면 대니 오션이 불러모은 공범들은 범죄세계 안에서도 나름대로 의리와 정의감이 있다.
소매치기, 폭약 전문가, 보안시스템 전문가 등 분야를 망라한 이들의 솜씨는 물론 일품이다.
인명을 해치지 않고, 무고한 사람의 금품을 털지 않는다는 등 이들이 정한 범행수칙도 인간적이다.
게다가 브래드 피트와 맷 데이먼이 조지 클루니의 대열에 합류했다.
극의 틀이 짜여졌고, 관객들도 어느 편에 설지 마음을 정했다.
이제 감독 스티븐 소더버그가 나서서 연출의 묘미를 살릴 차례다.
소더버그의 볼 컨트롤은 정교하면서도 신중하다.
관객과 두뇌게임을 벌여야 할 대목, 화려한 스타들이 멋을 부릴 순간, 호화스런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의 풍광을 살려내야 할 부분을 정확히 계산해 안배한다.
관객이 너무 머리 아프지 않도록 복선과 반전은 조금만 집어넣는다.
이야기도 한차례 회상 장면을 빼고 시간순으로 전개한다.
그래서 <스팅>처럼 뒤통수를 후려치는 반전은 없지만, 퍼펙트 게임의 재미를 산뜻하게 전해준 뒤 맡은 바 소임을 다했다는 듯 막을 내린다.
감독 스티븐 소더버그/ 출연 조지 클루니, 브래드 피트, 줄리아 로버츠, 맷 데이먼, 앤디 가르시아/ 제작 워너브라더스/ 상영시간 116분/ 등급 12살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