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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1-29 이코노미21
칼리 피오리나 등 HP 경영진들이 컴팩과 합병 계획을 발표했을 때 월터 휴렛 등 창업주 일가가 합병을 반대하며 팽팽하게 맞서 합병건이 표류하고 있었다.
그때 HP 지분의 30%를 가지고 있는 기관 투자가들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측됐던 ISS가 ‘합병지지’ 보고서를 발표해 대세를 바꾸었던 것. 결국 피오리나는 51.4% 대 48.6%라는 간발의 차로 합병 승인을 받아냈고, ISS는 HPQ 합병의 숨은 공로자로 지목됐다.
ISS는 이와 같이 기관 투자가들에게 주총에서 의결권을 행사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일을 대행해주는 ‘의결권 대행 서비스’(PVS·Proxy Voting Service)를 제공하고 있다.
고객의 포트폴리오에 있는 회사들이 주총을 열 때 어떤 식의 의제가 있어야 하고 실제로 있는지, 어떤 입장을 행사해야 하는지 등을 투자자에게 원스톱으로 보내준다.
포트폴리오에 많은 기업을 보유하고 있으면 그 기업들의 사안을 모두 점검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다.
현재 이런 일을 하고 있는 자문사 가운데 ISS는 규모가 가장 크고 명성도 높다.
전세계 950개 고객에게 리서치 자문과 함께 PVS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미국내 1만개, 미국외 1만개 기업에 대한 리서치 자료를 보유하고 있다.
전세계 950개 고객 확보… 연금펀드가 대다수
ISS의 서비스가 필요한 이유는 미국의 연금펀드들이 주식투자를 상당히 많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법적으로 연금펀드들이 투자를 할 때 투자자와 투자자산을 보호하기 위해 의결권을 신중히 행사하도록 규정해놓았다.
많은 연금펀드들은 이 법안에 따라 의결권에 관한 자문사를 두고 의결권을 행사한다.
따라서 ISS의 주요 고객도 주로 연금펀드들이다.
최근 투자회사에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해 노동자들의 권익을 높이겠다고 선언한 미국 최대 연기금펀드 ‘캘퍼스’(캘리포니아 공무원 퇴직연금)도 이 회사의 리서치 자료를 받고 있다.
미국 안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알려진 코네티컷주 연금펀드는 ISS에 모든 의결권을 위임했다.
HPQ 합병 때 ISS가 영향력을 발휘한 기관 투자자들 가운데에는 그런 연금펀드들이 상당수를 차지했다.
ISS가 이런 연금펀드 투자자들의 의결권을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한 근거로 삼는 것은 ‘노동총연맹산별노조(AFL-CIO) 가이드라인’이다.
AFL-CIO는 미국에서 가장 많은 노동조합을 대표하는 노조연맹체다.
연금펀드들은 대부분 노동자들과 기업이 반반씩 투자해 펀드를 조성하기 때문에, 노조가 나서서 투자자도 보호하고 자신들의 기준에 맞게 투자를 하도록 기준을 마련한 것이다.
ISS측에서 밝힌 AFL-CIO 가이드라인에는 몇가지 기본 원칙이 있다.
장기투자자의 관점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 기본으로 깔린다.
여기에 연금펀드 투자는 궁극적으로 투자한 기업이 ▲노동자의 고용보장과 임금 수준을 높이고, ▲작업장 안정성을 낮추며, ▲지역경제 안정성과 발전에 기여하고 ▲노동자와 공동체에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영향을 끼쳐야 한다는 것이다.
의결권 행사 항목과 의결 원칙에 대해서도, 이사회 구성, 최고경영자와 회장의 분리, 독립적 이사진 구성, 주식발행 요건, 인수합병 조건, 스톡옵션 계획, 인권과 노동권 보장 등 경영전반 사안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지를 꼼꼼이 정리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