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쪽박’ 국민연금, 그래도 대안은 있다
2005-12-12 이정환
“결국 더 내고 덜 받는 연금 개혁을 하지 않으면 재앙적 미래를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 가장 분명했다.
뾰족한 해법을 기대하는 분들이 많았겠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국가재정을 대거 투입하는 방법이 있지만, 결국 그만큼 국민의 세금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국민의 부담이 늘어나기는 마찬가지다.
” 김 장관은 결국 아무런 대안도 내놓지 못했다.
더 내고 덜 받는 수밖에 없다는 정부의 입장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수준에서 그쳤을 뿐이다.
지금 제도로는 2047년이면 기금이 모두 고갈된다.
정부는 5년마다 재정 재계산을 하고 그 결과에 근거해 제도를 다시 설계하는데, 그 작업을 이미 2003년에 진행했다.
정부가 내놓은 개정안의 핵심은 보험료를 9%에서 단계적으로 15.9%까지 올리고 소득대체율을 60%에서 50%로 낮추자는 것이다.
유망한 대권 주자로 손꼽혔던 김 장관은 어찌 보면 대권의 첫 번째 관문에서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린 셈이 됐다.
가뜩이나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수그러들지 않는 상황에서 보험료를 높이고 소득대체율을 낮추겠다는 정부의 대안은 국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힐 게 뻔하다.
김 장관은 “지지자들에게 실망했다는 말도 많이 들었고 심지어 정치인 김근태의 미래는 끝났다는 말까지 들었다”고 소회를 털어놓았다.
국민연금 잡으면 2007년 대선이 보인다? 국민연금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은 김 장관뿐만 아니다.
정치권은 모두 국민연금이라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국민들의 부담을 줄이는 해법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어떻게 납득 가능한 전망을 내놓고 국민들을 설득하느냐가 관건인데, 여기에서 정부와 김 장관은 일단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더 내고 덜 받자는 정부의 대안은 어딘가 손해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게다가 여전히 기금 고갈의 위험을 털어내지 못하고 있다.
결국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한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이런 여론을 의식한 듯 보험료를 더 늘릴 수는 없다고 맞서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2047년, 더 나아가 2070년을 내다볼 여유가 없는 상황이다.
당장 내년의 지방선거와 2007년의 대통령 선거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벌써부터 보험료 인상으로 여론의 반발을 자초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
열린우리당은 보험료는 그대로 두고 소득대체율만 55%, 조금 더 양보하면 50%까지 줄일 수 있다는 입장을 조심스레 내놓고 있다.
좀더 전향적인 입장을 보이는 곳은 한나라당이다.
한나라당은 국민연금을 축소하고 기초연금을 도입하자는 ‘대안’을 내놓았다.
국민연금과 별개로 65세 이상의 모든 노인들에게 평균 소득의 20%를 정부가 무상 지급한다는 게 그 내용이다.
대신 국민연금의 보험료율을 9%에서 7%로 줄이고 소득대체율도 60%에서 20%로 줄이자는 것이다.
기초연금을 바닥에 골고루 깔고 그 위에 국민연금을 깔아 2원적인 연금체계를 만들자는 게 골자다.
한나라당의 대안은 지금까지 제기된 국민연금의 구조적인 문제들을 일거에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를 주기도 한다.
한나라당은 당장 내년부터 65세 이상의 모든 노인들에게 달마다 13만5천원씩 나눠주자고 제안하고 있다.
기초연금은 단계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해 2028년이면 평균 소득의 20%인 31만원 수준까지 늘어나게 된다.
2인 가구를 기준으로 한 최저 생계비 67만원의 절반 수준인데 노인 부부의 경우 각각 기초연금을 받으면 대략 이 정도를 맞출 수 있게 된다.
기초연금은 무엇보다도 국민연금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데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국민연금관리공단에 따르면 전체 국민연금 가입자 1718만명 가운데 484만명이 소득이 파악되지 않거나 적은 탓에 보험료를 내지 않거나 내지 못하고 있다.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국민연금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노인의 비율은 88%를 넘는다.
이 비율은 2030년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54%나 된다.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이에 대해 아무런 대안도 내놓고 있다.
새로운 ‘복병’, 한나라당의 기초연금 또한 국민연금의 기금고갈 문제를 말끔히 해결해 준다는 장점도 있다.
보험료는 9%에서 7%로 조금 줄어들었을 뿐이지만 소득대체율이 60%에서 20%로 3분의 1 규모가 된다.
수입은 거의 그대로인데 지출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에 그만큼 재정이 탄탄해진다.
또한 적립금 규모가 줄어들면서 몸집도 한결 가벼워지고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줄어들게 된다.
‘연못 속의 고래’라고 불리던 국민연금기금의 과잉 적립 문제가 해결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재원. 한나라당의 전망에 따르면 기초연금을 도입할 경우 내년에 당장 9조원이 들어가는 것을 비롯해 2010년이면 17조원, 2050년이면 무려 61조원까지 그 부담이 늘어난다.
한나라당은 아직까지 재원 마련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소득세나 부가가치세를 늘리는 등의 대안을 고민하고 있는 정도다.
최근 감세 논란을 주도해 왔던 한나라당으로서는 사뭇 이례적인 행보라고 할 수 있다.
한나라당이 기초연금 도입을 들고 나오면서 논의의 핵심은 기초연금의 타당성 여부에 맞춰졌다.
열린우리당의 이석현 의원은 “모든 노인들에게 똑같은 금액을 나눠주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지적한다.
“부자 노인들에게 돈 십만원 쥐어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현행 경로연금이나 기초생활보장제도를 강화하는 걸로 충분하다.
기초연금제의 취지는 좋지만 국민연금 못지않게 재원이 많이 들어 현실성이 없다.
” 그러나 한나라당 윤건영 의원의 생각은 다르다.
내년 기준으로 기초연금의 예산은 9조원. 이 가운데 국민연금의 보험료 인하분 4조원과 기초연금의 도입으로 인해 줄어들 공적부조 예산절감 1~2조원을 감안하면 국민들이 추가로 부담할 금액은 3~4조원밖에 안 된다.
윤 의원은 “2050년이면 기초연금 예산이 61조까지 늘어나겠지만 그건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의 37%라는 걸 감안할 때 너무나도 당연한 금액”이라고 강조했다.
일부에서는 부가가치세 등의 간접세로 기초연금의 재원을 마련할 경우 저스득계층이 상대적으로 더 큰 부담을 떠안게 된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윤 의원은 이에 대해서도 “재원 조달은 역진적이지만 그 혜택이 누진적이기 때문에 누진 효과가 훨씬 크다”고 반박했다.
정부가 세금으로 모든 노인들에게 같은 금액을 나눠주는 것 자체가 굉장한 소득 재분배 효과를 갖게 된다는 것. 그래서 재원 조달 방법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한나라당의 이 같은 대안은 오히려 열린우리당안보다 더욱 '진보적'인 측면이 있다.
집권당의 한계 때문인지는 몰라도 열린우리당은 기금고갈과 재정안정 문제에만 골몰할 뿐 국민연금의 틀을 바꾸는 근본적인 대안에 대해서는 별다른 고민을 보여 주고 있지 않다.
사각지대 해소에 대한 관심도 한나라당보다 덜한 편이다.
열린우리당 이석현 의원은 한나라당의 기초연금 도입안과 관련, “당장 집에 물이 새는데 그걸 수리할 생각은 하지 않고 집을 새로 짓자고 한다”고 평가했다.
민주노동당, “보험료 20%까지 올려야” 기초연금 도입을 주장하기는 민주노동당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의 생각은 한나라당과는 조금 다르다.
먼저 국민연금의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낮추자는 한나라당과 달리, 민주노동당은 보험료율을 그대로 유지할 것을 고집한다.
보험료율을 유지하되 소득대체율을 지속 가능한 수준까지 낮추고 그 부족한 부분만큼 기초연금으로 채운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국민연금이 45%, 기초연금이 15%를 각각 보장하는 방식이다.
민주노동당은 소득대체율이 60%는 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장기적으로 보험료율을 20% 이상까지 올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소득 재분배 효과를 높이기 위해 소득 상위 30%의 경우 기초연금을 다시 환수하는 제도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65세 이상 노인에게 똑같이 기초연금을 지급하지만 부자 노인들은 나중에 이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는 뜻이다.
민주노동당 현애자 의원은 “한나라당의 국민연금은 강제 조항이 빠져 있어 가입자들의 대거 이탈을 막을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선택적 가입을 허용하면 국민연금을 비롯해 공적연금 제도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현 의원은 “기금고갈과 사각지대를 외면하고 있는 열린우리당은 물론이고 기초연금을 내세워 국민연금의 무력화를 시도하고 있는 한나라당도 몹시 걱정스럽다”고 덧붙였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모처럼 국회에서 특위까지 구성해 머리를 맞댔지만 각 당의 의견이 좁혀들 수 없다.
특위는 당초 11월29일 첫 회의에서 대국민선언문을 채택할 계획이었지만 의원들의 갈등으로 무산됐다.
이날 회의에서 한나라당 윤건영 의원은 “여당에 끌려가지 않겠다”며 선언문 채택을 거부했고, 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열린우리당 이석현 의원은 “공감하는 의원만 일어나서 선언문을 낭독하자”고 했다가 머쓱한 표정으로 다시 자리에 앉기도 했다.
뜨거운 감자, 차기 정권 손에 넘어가나 한나라당이나 민주노동당이 제안한 기초연금과 국민연금(또는 소득비례연금)의 2중 연금구조에 대해서는 대체로 우호적인 평가가 따른다.
현재로서는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대안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다만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재원 조달이 어렵다는 이유로 꺼리고 있어서 도입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용하 국민연금연구원 연구위원은 “워낙 입장 차이가 커서 정치권의 원만한 합의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개정안 도입 시기를 대선 이후인 2008년으로 미룰 계획이고 다른 야당도 급할 것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이런 분위기라면 결국 시간만 끌다가 다음 대선까지 승부가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결국 내년부터 선거 국면으로 들어가고 노무현 정부의 집권 말기 레임덕 현상이 시작되면 국민연금에 대한 개혁 논의는 다음 정부로 넘어가거나 한동안 방치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시간을 늦추면 늦출수록 다음 세대의 부담이 더 늘어나고 그만큼 개혁작업도 더 어려워진다는 데 있다.
한나라당 안명옥 의원이 작성한 유권자의 연령별 추계자료에 따르면 전체 유권자 중 50세 이상 비율은 올해 31.9%에서 2012년에는 40%를 넘어서게 된다.
대선과 총선을 줄줄이 앞둔 상황에서 유권자들의 뜻을 거스르기가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이야기다.
이 비율은 2022년이면 50%를 넘어설 전망이다.
게다가 제도 도입 20년째를 맞는 2008년에는 본격적으로 연금을 수령하는 세대가 처음으로 나타나게 된다.
열린우리당의 주장은 일단 소득대체율만 60%에서 50%로 낮춘 뒤 보험료율은 2008년 재정 재계산 결과를 보고 다시 논의하자는 것인데 이런 분위기를 감안하면 그때 가서는 지금보다 가입자(유권자)들 눈치를 더 심하게 봐야 할 공산이 크다.
열린우리당 이석현 의원은 “결과는 가봐야 안다”면서 “그때 가서 다시 이야기하자”는 정도로 마무리했다.
한편, 문형표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현재 시스템에서도 충분히 지속 가능한 모델을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놓아 주목을 끌었다.
문 연구위원은 “2010년 이후 5년마다 1.38%포인트씩 보험료를 인상할 경우 2060년이 되면 24.2% 수준에서 장기적으로 균형을 찾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균형을 찾는다는 건 기금이 고갈되지 않고 적립금 범위에서 급여를 지급하는 선순환 구조가 지속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이 경우 정부가 내놓은 15.9%보다는 높지만 2070년 이후까지 지속 가능한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정부의 대안보다 더 설득력이 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만약 5년마다 2%포인트씩 보험료를 인상하게 되면 2035년에 21% 수준에서 균형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이 경우 훨씬 더 빨리 그리고 더 낮은 보험료 수준에서 균형을 찾게 되고 그만큼 다음 세대들의 부담도 줄어들게 된다.
물론 그만큼 지금 세대들이 더 많은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는 전제가 붙는다.
그러나 이용하 국민연금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민들의 불신이 팽배해 있는 상황에서 보험료를 더 올리는 것은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지금 수준에서도 부담을 느껴서 가입을 안 하거나 소득을 줄여서 신고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 보험료가 더 올라가면 사각지대가 더 늘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연구위원은 “재정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자칫 제도 자체가 뿌리부터 뒤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위원은 “지난 20년 간 실험을 해왔지만 지금 제도는 실질적으로 작동이 안 된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방하남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역시 문 연구위원의 시나리오와 관련, “기금고갈이나 재정안정 문제만 해결하는 이른바 보수개혁으로는 본질적인 대안을 찾을 수 없다”고 지적하고 “사각지대 문제의 해결이 전제되지 않으면 국민연금의 개혁은 절름발이가 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정환 기자 cool@economy21.co.kr
지금은 9%를 내고 60%를 받고 있는데 적어도 15.9%를 내고 50%를 받는 정도로 고쳐야 겨우 유지된다. 보험료를 더 내라고 하니까 불신이 커질 수밖에 없는데 심하게 말하면 처음부터 사기를 쳐서 만든 제도였고 지켜질 수가 없는 제도다. ” 이해찬 국무총리의 국회 발언이다. 이 총리는 “올해 안에 국민연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시한폭탄이 될 수도 있다”며 “새로운 틀을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1988년 노태우 정부 시절 도입된 국민연금은 실제로 소득의 3%만 내면 70%를 주겠다고 대대적인 선전을 했다. 그렇게 잘못 설계된 엉터리 국민연금에 손을 대기까지 꼬박 10년이 걸렸다. 10년 만인 98년에도 비슷한 실수는 되풀이되었다. 당시 국민연금제도 개선기획단은 소득대체율을 70%에서 40%로 낮추고, 보험료율도 2020년까지 단계적으로 12.65%로 올리기로 했다. 그때도 이미 문제의식은 충분했다는 이야기다. 그대로만 됐다면 지금쯤 국민연금은 자리를 잡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국민들의 저항에 밀려 소득대체율을 55%로 높여 잡았다. 그나마도 이 비율은 국회에서 여야 합의 아래 60%로 올라간다. 그 미봉책의 뒷마무리를 아직까지 하고 있는 셈이다. 2003년에 재정 재계산이 이뤄지고 보험료를 9%에서 15,9%로, 소득대체율을 60%에서 50%로 낮추자는 내용의 개정안을 만들었지만, 그때부터 3년이 넘도록 개정안은 아직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상태다. 그래봐야 아직도 98년의 대안에 못 미치는 수준이고 여전히 더 강도 높은 개혁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아직도 눈치만 살피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대선 대통령 후보 시절, TV 토론에서 국민연금과 관련,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이회창 후보는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40%로 깎아야 한다고 공약했다. 이는 잘못된 것이다. 재정 안정을 맞추기 위해 연금 급여를 깎는다면 노후소득 보장이라는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연금제도가 아니라 용돈제도다. ” 이 말은 두고두고 노무현 정부를 옥죄는 말이 되었다. 폭탄 돌리기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분명한 것은 결단을 미룰수록 폭탄은 더 커지고 당연히 그 위험도 더 커진다는 것이다. 언제까지 우리 다음 세대들에게 폭탄을 떠넘길 것인가. *** 3당 3색 국민연금 해법 “국민연금은 노후보장 충분조건 아니다” 열린우리당 이석현 의원 이석현 의원은 먼저 기대 수준을 낮추라고 제안한다. 국민연금으로 완벽한 노후 보장을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기본적인 사회안전망 정도로 생각하고 퇴직연금이나 개인연금 등을 연계해 노후를 설계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국민연금 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대국민 성명까지 준비하며 의욕을 불태웠으나 야당 의원들의 반발로 무산되기도 했다. 특위의 앞길은 결코 순탄치 않아 보인다. - 열린우리당은 보험료는 올리지 말고 급여만 낮추자는 대안을 내놓았다. 기금 고갈의 우려가 끊이지 않는데 대안이 있나. 보험료를 올리는 방안은 불가능한 것인가. = 현재의 급여 수준을 유지하려면 2050년 이후에는 보험료 부담이 30%까지 올라가게 된다. 다음 세대의 부담이 너무 커진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보험료를 올리는 것도 무리다. 무엇보다도 국민들의 불신과 저항이 너무 크다. 2008년에 재정 재계산을 하면 그때 가서 보자. 인구구조나 경제성장률이나 전망이 제각각이라 그때 가 봐야 안다. - 앞으로 논의과정에서 기초연금이 최대 논란이 될 것 같다. 받아들이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될 텐데 서로 합의지점이 있나. = 기초연금 대신 지금 있는 경로연금을 확대하면 된다. 차상위 계층 지원을 확대하고 지원금을 늘리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표현과 정도만 다를 뿐이지 내용은 큰 차이가 없다고 본다. 한나라당의 기초연금은 참 좋은 제도지만 도대체 재원을 마련할 방법이 없다. 2050년이 되면 61조가 든다는데 그걸 어떻게 세금으로 마련한단 말인가. 소득세를 40% 올릴 수 있는가. 그거 쉽지 않다. 구체적인 대안은 한나라당도 없는 것 같다. - 과잉적립의 문제도 심각하다. 2036년이 되면 적립금이 1702조원을 넘어선다. 주식이든 채권이든 그 많은 적립금을 소화할 데가 없다. 과잉적립이 오히려 경제침체를 가져올 우려도 있다. =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부분이다. 1702조원을 한꺼번에 투자하는 게 아니라 단계적으로 나눠서 할 거고, 경제가 성장하고 금융자산이 커지면 그 구조 속에 빨려 들어가는 거다. 해외투자를 확대하고 주식 및 대체투자를 늘리면서 투자대상을 다변화하면 장기적으로 수익성을 갖출 수 있을 거라고 본다. “국민연금은 보수·진보 초월한 민생 문제” 한나라당 윤건영 의원 한나라당에 기초연금 도입을 처음 제안하고 당론으로 끌어낸 사람이 바로 윤건영 의원이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출신인 그는 공적보험 문제를 10년 이상 연구해 왔다고 했다. 그는 국민연금 문제는 보수나 진보의 틀을 떠난 민생의 문제라고 거듭 강조했다. 정부와 열린우리당에 대해서도 국민을 호도하고 있다며 거센 비판을 퍼부었다. 지속 가능하지 않은 제도를 붙잡고 폭탄 돌리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 기초연금의 도입에서 가장 걸리는 건 역시 재원 마련이다. 국민연금 못지않게 엄청난 재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재원 마련은 핵심이 아니다. 재원이 없어서 못하겠다는 건 사람이 죽어가는데 그걸 방치하겠다는 거다. 65세 이상인데 국민연금 혜택을 못 받는 노인이 88%나 된다. 국민연금도 못 받고 소득도 없고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도 소외된 노인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든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 아닌가. 재원이 없다면 어떻게든 만들어야 된다. 그게 정부가 할 일이다. - 기초연금의 재원은 결국 조세 형식으로 조달해야 될 텐데 부가가치세 등 간접세와 연결될 경우 자칫 소득이 역진되는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 = 65세 이상의 모든 국민들에게 동일한 급여를 나눠준다는 거다. 이 경우 세금의 역진성보다 급여의 누진성이 훨씬 강력하다. 어떻게 세금을 걷느냐에 관계없이 소득재분배 효과가 굉장히 큰 방법이다. 재원 마련을 걱정하는데 이건 거둬서 정부가 쓰는 게 아니라 바로 나눠주기 때문에 다른 세금과 다르다. 오히려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 기초연금의 취지는 좋지만 65세 이상의 모든 노인들에게 급여를 지급할 필요가 있나. 어려운 사람들에게만 주면 그만큼 재원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 그게 그렇게 간단치 않다. 정부의 빈곤 보조금이라는 게 수치심을 준다. 그래서 일부러 받지 않는 사람도 있고 평가하는 과정에서 부당하게 소외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자는 거다. 나중에 규모가 더 커지면 소득 수준에 따라 차별화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겠지만 소득의 20% 수준의 급여라면 동일하게 모두에게 지급하는 방식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 열린우리당은 경로연금이나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보완하는 걸로 기초연금을 대신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합의가 가능한 부분인가. =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가 22만명이라고 한다. 그 중에 노인이 몇 명이나 될 것 같나. 2만명도 채 안 된다. 기초생활보장제도 자체가 사각지대 투성인데 그걸 어떻게 보완한다는 이야긴가. 그냥 사각지대를 방치하겠다는 거다. 열린우리당은 의지가 없다. 망가질 게 뻔한데 국민연금만 붙잡고 국민들을 호도하고 있는 거다. - 급여 수준은 어느 정도 되는가. = 내년에 14만원에서 시작해 2028년에는 31만원 수준까지 올라간다. 이 정도면 2인 가구 최저생계비 67만원의 절반 수준이다. 노인 부부라면 얼추 최저생계비가 되는 셈이다. 여기에다 둘 중에 한 사람이라도 국민연금에 가입돼 있다면 그만큼 추가될 것이고, 최소 50% 정도 소득대체율을 만들 수 있게 된다. 기초연금의 강점은 국민연금에 가입돼 있지 않은 여성에게 동등하게 혜택이 돌아간다는 거다. “소득의 60% 보장 원칙 지켜야” 민주노동당 현애자 의원 민주노동당은 최근에서야 국민연금에 대한 대안을 마련했다. 그만큼 내부에서도 의견 조율이 쉽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현애자 의원은 민주노동당과 한나라당의 차별화에 중점을 뒀다. 똑같이 기초연금 도입을 주장하고 있지만 한나라당과는 그 출발점부터 다르다는 것이다. 현 의원은 한나라당의 기초연금이 자칫 국민연금을 무력화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 아니냐는 의혹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 공교롭게도 보수정당과 진보정당이 비슷한 정책을 내놓았다. 한나라당과 차이가 뭔가. = 한나라당은 기초연금을 도입하는 대신 국민연금을 축소하자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국민연금을 그대로 두고 그 아래 기초연금을 깔자는 것이다.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결국 한나라당 방안에 따르면 소득대체율이 현행 60%에서 40%로 크게 줄어들게 된다. 게다가 한나라당은 국민연금을 의무 가입에서 선택적 가입으로 은근슬쩍 바꿔놓았다. 의도가 수상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 국민들의 부담과 저항이 만만치 않다. 국민연금을 그대로 유지하고 거기에다 기초연금까지 추가하겠다고 하면 반발이 심하지 않을까. = 국민들이 반발하는 것은 국민연금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방안은 고민해 봐야겠지만 민주노동당은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합쳐 소득대체율이 60%가 되도록 맞출 계획이다. 그러려면 기초연금이 15%, 부부의 경우는 25% 수준으로 맞추고 나머지 35~45% 부분을 국민연금이 채우도록 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장기적으로는 국민연금의 보험료가 20% 이상으로 올라야 한다고 본다. - 국민연금을 그대로 가져간다면 과잉적립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무려 1702조원을 모두 어디에 투자한단 말인가. = 복지부문의 투자를 늘리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본다. 국민연금은 현재 금융부분에 97.9%를 올인하고 있다. 복지부문의 투자는 0.2%밖에 안 된다. 지금보다 규모가 더 커지면 금융부문의 투자를 줄이고 복지부문의 투자를 늘려나가야 한다. 일자리도 늘리고 내수도 활성화하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이정환 기자 cool@economy21.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