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삶]깨어 있는 관찰자의 눈으로‘한국 경제’ 파괴 그라마

2006-04-17     최중혁 기자
투기자본의 천국 대한민국 이정환 지음 중심 펴냄 1만2천원 대한민국을 온통 슬픔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1997년 외환위기도 내년이면 10주년을 맞는다.
하지만 외환위기가 몰고온 급격한 사회변동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공기업은 민영화되고 노동자들의 정년은 짧아졌으며 그나마 버티지도 못하고 거리로 내몰리기 일쑤다.
구조조정이라는 말이 내 몸의 일부처럼 익숙해졌고 사회는 양극화라는 이름으로 빈부격차가 더욱 심해졌다.
반면 같은 기간에 전혀 다른 경험을 한 이들도 있다.
1만원짜리 돈뭉치를 평생 세어도 못 셀 만큼의 천문학적인 이익을 거둬가는 투기성 외국자본들이 그들이다.
에서 투기자본 문제를 가장 심도 있게 다뤄온 이정환 기자가 드디어 <투기자본의 천국 대한민국>이라는 책을 엮어냈다.
‘론스타와 그 파트너들의 국부 약탈작전 전모’라는 부제에 걸맞게 책 속에는 외환은행 헐값매각의 전말은 물론이고 뉴브리지캐피탈의 제일은행 인수, 칼라일의 한미은행 인수, 오리온전기를 토막낸 매틀린패터슨, BIH의 브릿지증권 약탈 등등 지난 10년 동안 불거진 투기자본 문제 거의 모두가 총망라돼 있다.
지난 10년간 투기자본 문제 총정리 이 책에서 이정환 기자는 최근 가장 큰 이슈로 떠오른 외환은행 헐값매각 의혹을 시작으로 투기자본의 다양한 국부 약탈 사례, 투기자본과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여러 현상 분석, 그리고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 등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눠 글을 전개하고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우선 진실을 규명하려는 한 기자의 집요한 집념과 마주치게 된다.
투기자본과 경제관료, 금융계 고위인사들과 법무·회계법인이 얽히고 설켜 시중은행을 통째 매각한 뒤 그들은 퍼즐 조각들로 나뉘어 뿔뿔이 흩어진다.
저자는 기자정신을 발휘, 이 조각난 퍼즐들을 다시 이리저리 맞춰가며 진실에 한 발 한 발 다가서고 있다.
그러면서 묻는다.
“세계 어느 나라가 은행을 통째로 내다파는가, 그것도 정부가 나서서 정부 소유의 은행을 투기자본에 넘겨주는 나라가 어디 있는가, 그런데 왜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가.” 뉴브리지가 가면 칼라일이 오고 칼라일이 가면 론스타가 온다.
론스타가 가면 BIH가 오고 매틀린패터슨이 오고 칼 아이칸이 오고 소버린과 헤르메스도 온다.
그렇게 수많은 기업과 은행이 마구 팔려나간다.
그러나 누가 이들에게 팔아넘기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저자는 이를 밝혀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변한다.
그렇다고 이 책이 ‘외국 투기자본=나쁜 놈’이라는 이분법에 매몰돼 있지는 않다.
론스타 문제를 외국자본과 국내자본의 문제로 바라보는 것은 착각이라고 지적한다.
엄밀히 말하면 투기자본의 문제도 아니라는 것이다.
바로 자본의 투기적 속성이 문제라는 결론이다.
때문에 제2의 론스타 사건은 언제 어디서건 재발할 수 있으며 지금 현재도 어느 곳에서 진행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론스타로부터 세금을 받아내는 것 못지않게 지나간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저자는 또한 이에 못지 않게 외국자본에 기생하며 자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는 국내 인사들에게도 경적음을 울린다.
‘진짜 적은 우리 안에 있다’는 것. 정부 관료들과 그들의 금융권 인맥, 그리고 법무법인과 회계법인, 컨설팅회사로 가장한 로비스트들의 끈적끈적한 네트워크, 신자유주의와 투기자본에 기생해 떡고물을 챙기는 그들의 천박한 이기주의가 문제의 본질이라면 이들을 반드시 솎아낼 것을 주문하고 있다.
외환은행, LG카드, 대우건설은 물론이고 하이닉스, 우리금융지주, 대한통운, 만도, 하나로텔레콤, 대우인터내셔널, 대우일렉트로닉스, 쌍용 등 수많은 우리 기업들이 인수합병(M&A)의 매물로 나와 있는 상황에서 이제 누군가가 이 거대한 자본의 탐욕을 멈춰 세워야 한다고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어떻게 저항할까 책의 끝부분에서는 투기자본의 문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어떻게 저항할 것인지에 대한 대안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멕시코의 하벌라르 커피의 실험을 소개하기도 하고 미국의 게리 딤스키 교수가 소개한 지역재투자법도 다루고 있다.
지역공동체와의 연대를 통해 은행에 사회적 책임을 강제할 것도 주문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것을 넘어서는 대안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새로운 세계는 가능하다는 믿음 말이다.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는 추천사에서 이정환 기자에 대해 “철저한 진실을 추구하는 언론인, 날카로운 이론으로 무장한 지식인, 풍부한 대안적 상상력을 가진 사회운동가라는 일인삼역을 해가면서 우리 경제의 실상을 낱낱이 파헤치고, 그 문제점을 분석하며, 대안을 모색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경기도 의왕시의 한 야학에서 교사로 활동하고, 책 판매에 따른 수입을 투기자본감시센터에 기꺼이 쾌척할 줄 아는 저자를 잘 설명하고 있다.
아울러 장 교수는 덧붙인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굳이 더 나은 세상에 관심이 없더라도 우리나라에 들어와 활동하고 있는 외국 투기자본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최중혁 기자 tjp2010@economy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