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거대은행 탄생은 축복인가

2006-06-12     이코노미21
외환은행의 매각과 관련한 론스타와 국민은행의 계약이 가시화되면서 거대은행의 탄생에 대한 기대 또는 우려가 점증하고 있다.
아시아 선도은행의 탄생이나, 동북아 금융허브에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반면에 거대은행은 국내 금융산업의 체제적 위험을 증대시키고 은행산업에서의 경쟁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 둘 중 어느 쪽의 논리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하는가. 당연히 후자의 국내적 위험성이다.
그 이유는 국제적 위상 제고가 우리 국민들에게 가져다 줄 이득은 지극히 불확실함에 비해, 체제적 위험의 증대나 경쟁제한 효과 등은 국내 경제의 운행에 중대하고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체제적 위험의 증대 측면부터 살펴보자. 은행산업은 요구불 예금이라는 초단기 명목채무를 취급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불안정한 산업이다.
언제든지 예금자의 신뢰에 금이 가서 뱅크런이라는 유동성 위기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은행은 부채비율이 900%에 가깝기 때문에 은행의 부실화나 부도가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지대하다.
물론 현실의 제도는 이런 위험에 대해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를 가하고 있기는 하다.
유동성 위기의 개연성에 대한 대비책으로 중앙은행이 최종 대부자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고, 은행의 부실화를 방지하기 위해 엄격한 금융감독을 가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예금자를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로써 보험이론에 근거하여 예금보험기구를 두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거대 은행의 탄생은 이런 안전장치를 일거에 무력화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거대은행의 유동성 위기는 보다 신속하게 여타 은행의 유동성 위기로 전파될 가능성이 있고 이 경우 중앙은행의 최종 대부자 기능은 무력해지거나 그 효과가 현저하게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거대 은행은 ‘우리가 잘못 되면 금융시스템 전체가 마비에 빠지게 될 것’을 슬슬 내비치면서 금융감독 당국을 압박하거나 대수의 법칙에 기반한 예금보험 논리를 근본적으로 훼손할 수 있다.
물론 거대은행이 ‘대마불사’의 논리에 기대어 감독 당국과 예금보험제도를 사실상 ‘협박’하는 시나리오는 과장될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에 비해 거대은행의 두 번째 비용인 경쟁제한성에 기인한 경제적 비효율은 훨씬 현실적인 위협이다.
거대은행은 개별적으로 다른 경쟁자를 제치고 독과점적 이익을 추구할 수도 있고, 때로는 가격선도자로 행동하여 은행산업 전체의 과점적 이익을 끌어 올리는 맏형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은행의 경쟁 제한적 행위는 공정위가 전통적으로 금융부문에 대해서는 직접 규제의 칼날을 빼어 드는 것을 자제해 왔고, 이를 대신해야 할 금감위나 금감원은 이런 저런 이유로 업계와 공생관계를 유지할 가능성이 큰 우리의 현실을 고려할 때 현존하는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일 년여 정도만 지나면 외환위기가 시작된 지 꼭 10년이 된다.
지난 외환위기 과정에서 우리는 거대 권력은 반드시 부패하고, 부패한 거대 권력이 무너질 때는 주위에 엄청난 외부적 비용을 야기한다는 점을 뼈저리게 배웠다.
그런데 이제 금융감독 당국은 또 다시 절대로 망하게 할 수 없는 또 하나의 프랑켄슈타인을 만들려고 하고 있다.
도대체 그들은 역사에서 무엇을 배웠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