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게임] 재미를 원한다면 돈을 내라
2000-06-14 이원재
“첫째, 고객이 콘텐츠에만 몰입하게 하라. 둘째, 중독성을 확보해 마니아를 조직하라. 셋째, 사용료를 최종사용자가 납부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라.” 온라인게임 <리니지>의 유료화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엔씨소프트가 채용했던 가장 중요한 전략들이다.
온라인게임과 성인 전용 사이트들이 인터넷 콘텐츠 가운데 가장 앞에 서서 유료화의 길로 달려나가고 있다.
둘다 쾌락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에 호소한다는 강점을 업고 있지만, 그렇다고 유료화가 먹기 좋은 감처럼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진입장벽이 낮다 보니 수많은 기업들이 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분야에서도 유료화에 성공한 기업은 엔씨소프트와 넥슨 등 몇몇에 불과하다.
광고는 유료화의 적 온라인 그래픽 머드(MUD; Multi-User Dungeon) 게임 <리니지>를 개발·운영하는 엔씨소프트는 최근 한 직원이 내놓은 경영아이디어를 놓고 심각한 토론을 벌였다.
<리니지> 게임 중간에 광고를 유치하는 대신, 현재 개인회원에게 매달 2만9700원씩 받고 있는 게임사용료를 없애거나 대폭 낮추자는 아이디어였다.
엔씨소프트로서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동시접속 사용자가 3만5천명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광고 수주로 매출을 손쉽게 올릴 수 있는데다, 게임사용료를 부담스러워하는 개인사용자를 유치하는 데 결정적인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격론 끝에 내린 결론은 ‘NO’였다.
지금까지 끌고온 ‘NO FREE’ 정책을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의견이 더 강력했다.
다른 인터넷 기업들은 무료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은 기본이고, 경품까지 내걸고 가입자 유치에 혈안이 돼 있는데 무슨 배짱이었을까? 엔씨소프트 박승호 기획팀장은 “<리니지>를 찾는 충성도 높은 손님에게 게임 이외의 부담을 주면서 충성도를 떨어뜨릴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한다.
광고 유치는 기본적으로 ‘공짜 콘텐츠를 찾아 몰려든 손님’들의 눈길을 다른 곳으로 잡아끌어 수익을 올리겠다는 포털업체들의 전형적인 전략이라는 것이다.
이는 ‘최고의 콘텐츠를 필요한 손님에게 알맞은 값에 판다’는 이 회사의 기본방침을 정면으로 거스른다.
엔씨소프트 경영진은 ‘고객이 콘텐츠에만 몰입하게 하라’는 첫째 원칙을 철저히 지킨 것이다.
이런 원칙에 대한 믿음은 사업 초기 유료화를 성공시킨 경험에서 비롯한다.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이때 생긴 것이다.
엔씨소프트는 98년 8월 열달 동안의 <리니지> 시험판 무료 서비스를 끝내고 유료로 전환했다.
그때까지 동시접속자 수는 300명 남짓이었고, 유료전환에 따라 숫자가 대폭 줄어들 것으로 회사쪽은 예상했다.
그런데 웬걸, 동시접속자는 그해 9월 말 500여명으로 집계됐고, 그뒤 껑충껑충 늘어나기만 했다.
<리니지>는 당시까지만 해도 다른 온라인게임에서 채용하지 않았던 플레이어 킬링(PK;온라인게임 참가자들끼리 서로 싸워 죽이는 것)과 정치적인 지배구조를 포함해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게임 안에서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만나 조직을 만들어 서로를 보호하기 시작했고, 이들은 오프라인에서도 모임을 가지면서 ‘리니지 마니아 군단’이 됐다.
둘째 원칙, 경쟁력 있는 제품이 마니아들을 만들어낸 것이다.
PC방의 폭발적인 성장세를 예측해 PC방용 가격체계를 따로 정하고 여기에 마케팅을 집중한 것도 큰 도움이 됐다.
개인사용자 대신 PC방 주인들로부터 사용료를 받았다.
당시 한참 확장기에 있던 PC방 주인들은 더 많은 손님을 끌어들이기 위해 인기있는 게임을 찾고 있었다.
<리니지>는 그들의 요구를 충족시킬 만한 상품이었다.
PC방을 찾아온 게이머들이 PC방에 설치된 <리니지>를 즐기면서 마니아는 늘어만 갔다.
B2C 콘텐츠인 온라인게임을 도매상을 통해 제공하면서 B2B 콘텐츠로 만들어낸 것이다.
셋째 원칙이었다.
증권정보사이트가 배워야 할 피시방 전략 지난달 <리니지> 동시접속자 수는 3만5천명, 월 매출액은 41억원까지 늘어났다.
매출액 가운데 피시방쪽의 비율은 올해 1분기 전체매출 가운데 83%로 압도적이다.
이 사례는 증권정보 사이트에도 적용이 될 만하다.
증권정보 사이트들이 증권사나 투신사 등 기관투자가들에게 콘텐츠를 제공하고 수수료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유료화의 길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넥슨이 <퀴즈퀴즈>의 유료화를 놓고 겪은 어려움을 살펴보자. 99년 10월 무료로 첫선을 보인 <퀴즈퀴즈>는 두달 만에 동시사용자 1만명을 넘어서면서 퀴즈열풍을 몰고왔다.
올해 1월부터 개인사용자에게 1인당 한달 1만6500원을 받는 유료서비스로 전환했다.
무료회원들이 쉽게 유료회원으로 전환하면 매출이 엄청나게 늘어나리라는 기대가 컸다.
결과는 희망과는 조금 거리가 멀었다.
‘예고없이 갑작스레 유료로 전환했다’며 무료로 돌아가라는 사용자들의 항의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인터넷에는 ‘안티넥슨’ 사이트까지 등장했다.
유료회원 유치가 쉽지 않았던 것은 물론이다.
“다시 무료로 돌아가야 하나?” 회사쪽은 고민에 빠졌다.
결국 게임 도중 광고를 집어넣는 대신 그 매출액만큼 사용료를 낮췄다.
차선책을 채택한 셈이다.
그렇게 해서 정해진 가격이 개인사용자 1인당 한달 7700원이다.
넥슨쪽은 “서비스를 무료화하면 게임 자체의 개발보다는 광고영업에 더욱 치중하게 돼 궁극적으로 게임 수명을 단축시킬 우려가 있어 유료상태를 유지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가수익을 얻더라도 핵심 콘텐츠를 갈고 닦는 데에는 채찍질을 게을리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현재 <퀴즈퀴즈>의 동시사용자는 4천~5천명 수준. 무료회원의 절반 정도를 유료로 전환시킨 것이다.
국내 성인 콘텐츠들도 다양한 형태로 유료 서비스 정착에 나서고 있다.
사실상 처음으로 체계적인 성인전용 인터넷방송을 시작한 <엔터채널>은 99년 10월 문을 연 뒤 두달 만에 월 1만원의 회비를 내는 1만명의 유료회원을 확보했다.
이 수치는 지난달 2만5천명까지 늘었다.
야시시, 에로파크 등 선불제 온라인머니와 손잡고, 1편에 500~1000원씩 받고 성인영화를 상영해주는 사이트들도 성업중이다.
기술력으로 신뢰얻어야 엔씨소프트의 배짱은 온라인게임에서 그치지 않는다.
6월26일 문을 열 예정인 엔터테인먼트 포털사이트 ‘웹라이프’ 역시 유료로 운영할 계획이다.
웹라이프는 야후, 다음 등 검색과 커뮤니티 위주인 무료 포털과는 달리, 게임 등 확실하게 차별화된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제공하면서 광고수주 대신 최종소비자나 PC방으로부터 사용료를 받아 운영하겠다는 얘기다.
박승호 기획팀장은 “아이디어 하나로 공짜가입자를 늘리는 시대는 지나갔다.
기술력 있는 기업이 신뢰받는 콘텐츠를 제공하면 얼마든지 유료가입자를 유치할 수 있는 시대가 곧 온다”고 단언한다.
‘재미있고 싶으면 돈을 내라’고 나선 이들 엔터테인먼트 업체들의 움직임이 다른 분야까지도 확산될지가 관심거리다.
주요 수익원인 PC통신 기본사용료를 면제해주거나 파격적으로 깎아주는 ‘할인 경쟁’이 불붙고 있는 것이다. 포문을 연 곳은 데이콤멀티미디어인터넷의 채널아이. 이달 1일부터 채널아이는 초고속인터넷망(ADSL, 케이블 등)과 근거리통신망(LAN)을 사용해 접속하는 사용자에게는 월 1만원이던 기본사용료를 무조건 받지 않고 있다. 채널아이는 무료화 이후 하루 평균 가입자가 이전의 10배 수준인 1만명선을 유지해 업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특히 홈페이지의 페이지뷰는 6월1일 143만건에서 7일 711만건으로, 하루 100만건씩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채널아이가 난데없이 홀로 무료선언을 한 것은 아니다. 이미 나우누리는 두루넷 초고속망 가입자에게 기본료를 받지 않고 있으며, 유니텔은 1만원인 기본요금을 하나로통신 가입자에게서는 1500원, 두루넷 가입자에게서는 1000원씩 받고 있다. 모든 PC통신사들은 초고속인터넷 및 근거리통신 사용자에 대해 기본사용료의 30~50%를 깎아주고 있다. PC통신업계에서는 이런 무료화 바람을 ‘예정된 수순’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사용자들은 동호회 등 커뮤니티에 참여하거나, 인터넷 접속의 통로로 삼기 위해 PC통신에 접속했다. 그러나 최근 인터넷 포털사이트들이 활성화되면서 커뮤니티의 강점을 잠식했고, 가정용 초고속 인터넷망이 나오면서 인터넷 접속수단으로서 PC통신의 가치가 떨어졌다. 더이상 무료를 고집할 기반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PC통신의 기본사용료 무료화 바람은 다른 업체들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이들은 대신 고급 콘텐츠를 유료정보로 묶고, 광고,전자상거래,데이터센터 등의 새로운 사업영역에서 수익원 개발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하이텔 김규식 홍보팀장은 “PC통신업체들은 야후나 다음 등 포털사이트들을 경쟁자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며 “포털뿐만 아니라 PC통신업체들도 새로운 수익모델을 고민해야 할 때가 왔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