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슈퍼마켓에서 주위를 살피며 도둑질하듯 생선, 빵, 우유 등을 자신의 레인코트 속에 감춘다.
남자가 계산대를 통과해 유유히 매장을 나서려는 순간, 건장한 체구의 매니저가 다급히 불러 세운다.
잔뜩 긴장한 남자가 뒤를 돌아보자 험상궂은 얼굴의 매니저가 활짝 웃으며 뭔가를 내민다.
“손님, 영수증입니다.
"
한 신용카드 회사의 TV광고다.
남자는 왜 도둑으로 몰리지 않았을까? 남자가 계산대를 통과할 때 제품의 갯수와 가격정보가 무선으로 입력되고, 동시에 그의 신용카드로 무선결제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광고에서나 볼 수 있는 기발한 아이디어 같지만 이러한 상황은 이미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대형 매장에서 물건을 살 때 포장지에 찍혀 있는 뜻 모를 숫자와 막대모양의 바코드는 제품의 가격정보를 포함하고 있다.
물건값을 계산할 때 일일이 손으로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고 물건을 판독기(Tag-reader)에 대기만 하면 자동으로 가격이 입력된다.
바코드는 소비자들이 대형 매장에서 뿐만 아니라 회사의 재고관리나 선적·집하·배송 체계에서도 유용하게 이용된다.
그러나 이제 바코드도 구시대의 유물로 사라질지 모른다.
캐나다의 무선 기반 IT기업인 샘시스테크놀러지(SAMsys Tech)가 상품화한 주파수 인식(RFID: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 기술이 바코드를 대체할 새로운 표준으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기술 자체가 복잡하거나 구현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칩에 저장된 상품의 내용과 상태, 수량, 경과일, 목적지 등의 데이터가 지속적으로 무선 신호를 송출하고, 이를 전용 판독기가 수신해 중앙 컴퓨터에 입력하는 것일 뿐이다.
기존 바코드 판독기는 사람이 일일이 바코드에 판독기를 접촉시켜야 정보를 읽지만, RFID는 컨테이너 속에 들어 있는 수천개의 제품 정보를 한번에 파악한다.
가시거리가 확보되지 않더라도 상품이 쌓여 있는 상태에서 맨 밑에 있는 상품의 정보를 읽을 수도 있다.
RFID를 통하면 기존 물류처리 프로세스를 혁신적으로 단축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소매상, 창고업, 물류 관련 산업에서 바코드 대신 RFID 기술이 광범하게 사용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샘시스테크놀러지는 현재 뉴욕에 본거지를 둔 제지회사인 인터내셔널페이퍼(International Paper)에 상품 패키지나 컨테이너에 붙일 수 있는 칩과 이를 읽을 수 있는 판독기를 납품할 계획이다.
인터내셔널페이퍼는 완전 자동화된 상품 패키징 프로세스를 구축하기 위해 2004년까지 20억달러를 ‘스마트 패키징’으로 부르는 이번 프로젝트에 투입한다.
이 가운데 30%는 샘시스테크놀로지의 RFID 관련 제품 개발에 집중할 작정이다.
MIT 산하 자동인식센터에서 유래한 RFID 기술은 물류처리와 같은 대형 프로세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스마트 진열장(Smart Shelving)으로 부르는 제품도 조만간 개발될 예정이다.
여성들의 화장품 진열장은 미관을 위해 진열에 세심한 배려를 한다.
그러나 고객들이 물건을 고르다보면 가지런히 진열된 화장품은 이리저리 손을 타게 마련이다.
만약 제품 위치가 조금만 틀리거나 비뚤어지면 제품 각각에 붙인 RFID용 태그에서 읽힌 위치정보가 매장 컴퓨터에 올라가 바로 정리할 수 있게 된다.
일부 광신도들 사이에서 ‘악마의 표시’로 지칭되던 바코드. 인류 종말의 징표라고 불리며 왠지 불길한 느낌과 꺼림칙한 기분을 주던 바코드가 이제 새로운 무선기술로 말미암아 종말을 예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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