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11-27 16:29 (수)
[르포] 행정수도 이전 후보지를 가다
[르포] 행정수도 이전 후보지를 가다
  • 장승규 기자
  • 승인 2003.01.0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무현 후보의 대통령 당선이 확정됐다.
행정수도 이전 후보지로 거론됐던 충남 일부 지역의 부동산값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는 보도가 연일 쏟아져 나온다.
이런 식으로 부동산 투기만 부추기다 흐지부지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그렇게 되면 괜한 소문에 들떠 투기꾼에 휘둘린 순진한 지역 주민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아야 된다.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해 아직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기대와 우려, 좌절과 희망이 벌써부터 씨줄과 날줄처럼 교차돼 있다.


실제 행정수도가 충청권으로 옮겨오면 어떻게 될까. 서울과 지방 사람들의 삶이, 그리고 우리 국토의 공간적 구조가 어떻게 바뀔지 아직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앞으로 이전 추진 과정에서 겪게 될 난제들도 지금으 짐작하기 어렵다.
아무도 경험해보지 않은 낯선 실험이기 때문이다.
그 낯선 실험 앞에서 충청권은 한바탕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행정수도 이전 후보 지역 가운데 하나인 아산은 이미 경부고속철도 개통을 앞두고 홍역을 치른 탓인지 담담하다.
천안역에서 차를 타고 아산 방면으로 10분쯤 달리자 오른쪽으로 ‘아산신도시 개발예정지’라는 커다란 푯말이 눈에 들어온다.
행정수도 이전 후보지로 꼽히는 아산신도시 지역이다.
아직은 군데군데 박아놓은 말뚝만 눈에 띌 뿐 논밭이 그대로 남아 있어 여기에 신도시가 들어선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이번에는 아산과 천안 경계에 있는 경부고속철도 천안역사로 방향을 잡고 논두렁 사이 비포장 길로 들어섰다.
밤새 내린 눈이 녹아 곳곳에 물웅덩이가 패어 있다.
오가는 차도 찾아보기 어렵다.
거대한 철골 구조로 지은 천안역사는 아직은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이곳에서 어색하게 위용을 자랑하며 서 있다.
2004년 4월 경부고속철도가 완공되면 서울에서 천안역사까지는 34분 거리가 된다.
올해부터 2020년까지 역사 주변 876만평이 단계적으로 개발되면 이 일대는 몰라보게 달라질 게 분명하다.


아산지역을 수도 이전 후보지로 꼽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무엇보다 아산신도시의 가장 큰 매력은 편리한 교통이다.
이 근처에 행정수도를 만들게 되면 기존 교통 인프라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
청주국제공항도 40분 거리로 그리 멀지 않다.
오히려 아산은 수도권과 너무 가깝다는 게 가장 큰 약점이다.
자칫 수도권으로 흡수돼 분산효과가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방향을 틀어 택지 개발이 한창인 천안 불당동으로 접어들었다.
넓게는 이 지역도 아산과 바로 이웃해 있어 수도 이전 후보지역으로 꼽힌다.
확실히 이곳은 아산과 주변 풍경이 확 다르다.
삐쭉삐쭉 고개를 세운 타워 크레인이 쉴새없이 움직이고 모래를 가득 채운 덤프트럭들이 난폭하게 질주한다.


이 지역도 차분하기는 아산과 마찬가지다.
불당공인중개사사무소에서 만난 양학수(50)씨도 행정수도 이전 문제가 호재이긴 하지만 고속철도 프리미엄으로 부동산값이 이미 오를 만큼 올랐다고 말한다.
떴다방을 하면서 전국에 안 가본 곳이 없다는 양씨는 “노무현 후보 당선되고 나서 여기 찾아오는 사람들은 천안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고까지 말한다.
최소 50만명 규모로 예상하는 행정수도가 들어설 수 있는 땅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수원 단지를 모두 옮겨온다는 계획을 갖고 삼성에서 이미 확보해놓은 부동산만 해도 엄청난 규모라고 말한다.
특단의 조처가 없는 한 이곳으로 오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게다가 불당·백석지구 32평대 아파트 분양가가 이미 1억4700만원까지 올라 용인지역과 비슷한 수준이다.
여기다 분양권 프리미엄과 부대비용을 더하면 2억원을 훌쩍 넘어 투자자 입장에선 경제성이 떨어진단다.


가장 강력한 수도 이전 후보지역으로 꼽히는 충청북도 청원군 강외면은 열기가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언론에서 이래두 되는규. 근거 없는 소문만 대문짝만허게 실으문, 그 피해는 누가 봐유.” 강내에서 태어나 30년째 부동산중개소를 하고 있다는 안정국(42)씨는 대뜸 이렇게 목소리를 높인다.
예상밖의 반응이다.


그는 대통령 선거가 끝난 다음날부터 매물이 딱 끊겨 큰일이라고 말한다.
이맘때 땅을 내놓는 사람들은 대개 자녀 등록금이 됐든 빚이 됐든 당장 돈이 급한 사람들이다.
그러던 이들이 뭔가 터질 것 같다는 기대감으로 물건을 내놓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대신 무작정 빚을 끌어다 쓴다.
만약 행정수도 이전이 소문으로만 끝난다면 심리적 허탈감과 경제적 피해가 상당할 수밖에 없다.
그는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는 건 중개업자가 아니라 정부와 언론”이라고 쐐기를 박는다.


강외면이 강력한 후보지로 꼽히는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강외면은 경부선과 충북선이 교차하는 조치원 동북쪽 7km 지점에 있다.
차로 5분이 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다.
넓게 펼쳐져 있는 들판 한가운데로는 경부고속철도가 지나간다.
논란 끝에 청주를 인구 100만의 대도시로 키운다는 조건을 달고 유치한 경부고속철도 오송역은 아직 설계단계에 있다.
역 주변 140만평에는 오송생명과학단지가 조성되고 있다.


게다가 오송과 오창 산업단지 개발은 몇년째 충청북도에서 총력을 기울여 추진해온 핵심 프로젝트다.
2006년까지 식품의약품안전청, 국립보건원 등 4개 국책기관과 연구시설이 오송생명과학단지로 내려오기로 이미 약속을 받아놓았다.
강외농협에서 일하는 임아무개(34)씨는 “행정수도가 오송에 들어서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고 말한다.
그만큼 오송지역 개발에 거는 지역주민들의 기대가 남다르다고 그는 귀띔한다.
이 정도면 한편에서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것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조치원에서 대전으로 가는 1번 국도를 타고 20분쯤 가다 보면 연기군 남면 종촌리가 나온다.
여기서 공주 방향으로 길이 갈라진다.
갈라진 길과 1번 국도 사이로 펼쳐진 넓은 평지가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 임시 행정수도로 점찍고 큰 그림을 그렸다는 공주시 장기면이다.
10·26 사태로 박정희가 죽지만 않았다면 지금쯤 이곳엔 인구 50만의 초현대식 신도시가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있다는 것과 없다는 것의 간발의 차이가 문득 아득하게 느껴진다.


박정희가 만든 ‘백지계획’에는 임시행정수도 건설을 96년까지 끝내는 것으로 돼 있다.
장기면 일대는 앞쪽으로 금강이 흐르는 전형적 배산임수 지형이다.
신도시의 주산과 남산에 해당하는 봉우리의 명칭이 공교롭게도 국사봉(國師峰)과 장군봉(將軍峰)이어서 박 대통령도 과연 신이 준비해둔 명당이라며 감탄했다는 바로 그곳이다.
이쪽 사람들은 그 당시 한참 기대가 올랐다가 꺾인 상태라 이번에는 쉽게 믿지 않는 눈치다.


지금까지 교통이나 입지조건 면에서 아산신도시와 오송·오창지구, 장기지구 등이 가장 유력한 행정수도 이전 후보지로 꼽혔다.
하지만 신도시 건설이라는 전제를 버리면 이미 정부 3청사가 자리잡고 있는 ‘제2의 행정수도’ 대전이 강력한 후보로 떠오른다.
지난해 12월20일 대전시에서 행정수도 이전에 관한 연구 용역을 받아 작업하고 있는 대전발전연구원 문경원(45) 선임연구위원은 “비용면에서 기존 도시를 활용하는 게 유리하다”고 주장한다.
이미 확보해둔 공공용지에 청사를 세울 수 있고, 대전지역의 아파트 공급이 넘쳐나고 있기 때문에 주택 문제도 걱정이 없다는 것이다.
어찌됐든 문 연구위원은 내심 대전지역을 후보지로 정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전발전연구원이 자리잡고 있는 대전시청 20층에선 대전의 신도심인 둔산동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불과 10년전만 해도 논밭과 군부대가 있던 자리다.
94년 대전 엑스포 개최와 97년 정부 청사 이전을 계기로 둔산동은 ‘대전의 강남’으로 급부상했다.
충남도청과 대전역 사이에 밀집해 있던 관공서와 금융기관도 대부분 옮겨왔다.
새로 지은 고급 아파트 단지를 찾아 자연 중상류층 가구도 이주해왔다.
위압감을 느끼게 하는 20층 높이의 최첨단 인텔리전트 빌딩 4개동으로 구성된 정부대전청사를 중심으로 대전시청, 교육청, 법원, 검찰청, 세무서 등 관공서와 은행들이 촘촘히 들어서 있다.


행정수도가 새로 건설된다면 이와 비슷한 형태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스친다.
청와대와 국회, 정부를 몽땅 옮기는 것과 특허청, 관세청, 철도청 등 외청 위주로 구성된 11개 기관의 이전은 규모면에서 차원이 다른 문제인 게 분명하다.
따라서 지금 공약대로 된다면 같은 도시 안에서 개발 격차든가, 교통문제 따위는 더 커질 것이다.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대전청사에 근무하는 박아무개(33)씨도 드러내놓고 대전 이전을 주장한다.
한마디로 공무원들은 대환영이라고 한다.
“행정수도가 대전으로 오면 업무 협의나 교류에 좋은 점이 많을 겁니다.
이전처럼 대전 근무 공무원들이 소외감을 느끼는 분위기는 크게 줄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청장이 서울에 가 있으면 결제받으러 매번 서울까지 가야 합니다.
” 이곳 공무원들은 행정수도가 내려오면 교육여건도 좋아지지 않겠느냐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런 기대감 탓인지 둔산동 크로바아파트 등 주요 아파트 가격이 대통령 선거 직후 500만~1천만원이나 뛰었다.


하지만 기업들의 반응은 약간 다르다.
대한건설협회 충남도회 성일용(55) 사무처장은 행정수도 이전이 기업의 발전을 도와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97년 정부 청사가 내려올 때도 기대가 아주 컸습니다.
하지만 일용직만 조금 늘어나고 유흥업소가 많아진 것 외에는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 그는 공단이나 기업체가 내려오는 게 지역발전에는 더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그래야 일자리도 생기고 지역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많은 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