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가 곧 국력이라는 인식이 저출산 공포를 낳고 있다. 하지만 북유럽의 부국 스웨덴은 인구 9백만 명에도 불구하고 1인당 국내총생산이 3만 달러에 달한다. 문제는 인구 수가 아니라 생산성이라는 것이다. ⓒ이주노 |
인구 수가 현재 수준인 4천700만 명을 유지하려면 이 수치가 2.1명은 되어야 한다.
쉽게 말해 부부 한 쌍이 적어도 2명의 자녀를 낳아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한 자녀출산으로 그치고 있으니, 지구상에서 한국인의 수가 줄어드는 것은 불가피하다.
저출산, 인구 감소가 몰고 올 사회·경제적 파장에 대한 온갖 우려가 쏟아지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다.
정부도 ▲국·공립 보육시설 확충 ▲아동수당 도입 ▲민간보육시설 기본보조금 지원 ▲육아기 대체근로 및 근로시간 활성화 ▲남성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확대 등 가능한 모든 정책을 망라한 저출산 대책을 내놓고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과연 저출산과 인구 감소는 한국경제를 송두리째 무너트릴 ‘대재앙’이 될 수밖에 없을까? GDP 총액이냐? 1인당 GDP냐? 저출산 공포의 바탕에는 ‘인구가 곧 국력’이라는 인식이 자리해 있다.
출산율 저하는 경제를 지탱하는 16세 이상 65세 미만 생산가능 인구의 감소로 이어지고, 이는 곧 경제의 활력 저하로 나타날 것이라는 믿음이다.
일하는 사람은 줄고, 노인층이 비대해지면 경제가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하지만 ‘북유럽의 부국’ 스웨덴은 어떤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만 달러를 넘는 스웨덴의 전체 인구는 서울시 보다 적은 900만 명에 불과하다.
가난한 인구 대국 중국의 경우는 또 어떤가. 이들의 사례는 우리나라의 인구가 줄어든다고 해서 삶의 수준이 자동적으로 추락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한국경제연구원 이희수 연구위원은 “국가의 정책 목표를 GDP 총액의 증가에 맞출 것인지, 아니면 1인당 GDP의 증가에 맞출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동안 모든 경제정책의 초점은 GDP 증가율, 즉 경제성장률에 맞추어져왔다.
GDP 규모로만 보면 우리나라는 이미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다.
인구가 줄면 더 이상 이런 지위를 유지하기 어렵다.
하지만 1인당 GDP는 인구가 줄더라도 꾸준히 증가할 수 있다.
이 연구위원은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를 늘려 1인당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것이 해법”이라고 지적한다.
1인당 GDP가 증가한다면 고령인구의 증가에 따른 연금부담 문제도 상당부분 완화할 수 있다.
한발 더 나아가 인구 감소가 재앙이 아니라 ‘축복’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경제학자들도 있다.
일본의 인구문제 전문가 마쓰타니 아키히코 정책연구대학원대학 교수가 대표적인 경우다.
그는 인구 감소가 경제 패러다임을 ‘규모의 경제’에서 ‘실속의 경제’로 전환하고, ‘부자나라, 가난한 국민’이라는 모순을 해소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진단한다.
첫 출발점은 인구 감소와 경제 축소를 피할 수 없는 현실로 인정하는 것이다.
마쓰타니 교수는 출산율을 끌어올려는 정부의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출산율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장기적인 하락추세를 보여왔을 뿐만 아니라, 저출산이 급격한 인구감소의 원인도 아니다.
합계출산율이 2.1명 밑으로 떨어지면 인구가 주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건 초장기적으로 나타나는 결과일 뿐이라고 한다.
오히려 급격한 인구감소는 전후의 가파른 인구 증가와 곧이어 시작된 정부의 강력한 산하제한 정책이 낳은 결과물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연령별 인구구조에서 커다란 ‘산봉우리’들이 나타난다.
이 ‘산’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오른쪽으로 이동하면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다.
고령화로 인해 노인 인구가 많다는 것은 사망자 수 역시 그만큼 많아진다는 것을 뜻한다.
고령 인구의 비대화로 사망자가 늘어나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많은 신생아가 태어난다고 해도 전체인구는 줄어들게 된다.
때문에 출산율을 높이는 것으로는 인구 감소 추세를 되돌릴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인위적인 출산장려 정책은 의도와는 달라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현재 태어난 신생아가 성인으로 제몫을 하려면 최소 25년의 기간이 필요하다.
그 이전까지는 도리어 부양인구만 늘려놓는 효과를 가져오는 셈이다.
여성의 노동참가율을 획기적으로 높이거나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이는 방안이 인구 감소로 인한 노동력 축소의 해결책으로 제안되기도 한다.
하지만 마쓰타니 교수는 이들 역시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우선 외국인 노동자의 수용정책은 유럽의 경우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며, 무한정 유지될 수없다.
만약, 특정 시점에서 외국인 이민이 중단된다면, 그 이후 세대는 이들의 부양의무를 포함한 더 큰 짐을 짊어져야 한다.
여성이나 노인 인력의 활용도 장기적인 추세 변화의 범위를 벗어나 무리하게 추진된다면 ‘상시적인 전시동원 체제’가 되어버리고 만다.
결국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인구 감소와 경제 축소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것 밖에는 없다.
마쓰타니 교수는 “인구 감소로 발생하는 경제문제 중에 극복하지 못할 것은 하나도 없다”고 말한다.
인구 감소가 소비 위축을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도 기우에 불과하다.
인구 감소로 수요가 주는 것은 맞지만, 노동력 부족으로 공급도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이처럼 수요와 공급이 함께 줄면서 새로운 ‘축소균형’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는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에서 발생하는 불황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기업들은 오히려 남아도는 생산설비와 재고를 없앨 수 있다.
슬림화, 실속경영에 익숙해지면 수익성은 이전보다 더 나아질 수도 있다.
조영택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인구 감소가 축복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라며 “고실업 등 많은 문제들이 인구 과잉으로 생겨난 것일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조 교수는 향후 인구가 감소할 것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1인당 생산성이 과연 얼마나 증가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조 교수는 “생산성이 일정 수준 이상 높아진다면 인구 감소가 축복이 될 수 있지만, 생산성이 이를 못 따라올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고 지적한다.
고령화는 이행기의 문제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펴낸 보고서 <인구구조 고령화의 경제·사회적 파급효과와 대응과제>의 연구작업에 참여한 최경수 KDI 연구위원도 “출산율 저하나 인구 감소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은 맞다”면서도 “다만, 감소 폭이 지나치게 가파르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말한다.
급격한 고령화나 인구 감소는 이행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일 수밖에 없다.
새로운 균형점에 도달한 이후에는 설령 전체 인구가 줄거나, 경제가 축소되었다고 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최 연구위원은 “실제로 50~100년 뒤의 상황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과거 출산율 저하를 경험한 나라들이 여러 가지 문제를 겪었고, 또한 현재 우리나라 수준의 출산율을 그대로 방치한 나라는 없다”고 말했다.
장승규 기자 skjang@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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