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1-대선-2017년 대선의 진행과정과 특징>
5·9 조기대선 구도가 몇 차례 판도 변화 끝에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양강 체제로 굳어졌다. 조기대선 레이스에서 주목할 만 한 점은 문 후보의 대항마를 찾는 작업이 지속돼 왔다는 점이다. 실제로 19대 대선은 문재인 후보와 문재인이 아닌 후보의 대결이 됐다.
지난해 8월 불거진 미르·K스포츠재단 사건으로 세상에 알려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큰 사회적 파장을 불러왔다. 하루가 멀다 하고 폭로되는 박근혜 게이트 관련 언론보도에 분노한 국민들은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와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결국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박근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고, 헌법재판소는 3월 10일 박 전 대통령을 최종 파면시켰다.
박근혜 탄핵은 박 전 대통령 개인뿐 아니라 보수진영 자체의 괴멸을 불러왔다. 박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처리를 두고 대립을 거듭하던 새누리당 친박계와 비박계는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갈라섰다. 이후 박 전 대통령과 집권세력에 대한 국민의 분노는 ‘정권교체’와 ‘적폐청산’ 열망으로 승화됐다.
무너진 보수진영과 달리 진보진영은 박근혜 게이트로 인한 국면 변화 속에 반사이익을 누렸다. 가장 수혜를 입은 정치세력은 더불어민주당이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분노가 집권 가능성이 가장 높은 제1야당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는 민주당 대선후보로 거론되던 문 후보가 독보적인 대선후보로 떠오르는 계기가 됐다.
사실 문 후보는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이 아니더라도 당선 가능성이 높은 잠재적 차기 대선주자로 분류되고 있었다. 이미 문 후보는 박근혜 게이트 촉발 이전에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 선두권에서 각축을 벌이고 있었는데, 여기에 박근혜 게이트가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개헌’과 ‘반기문’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의 기존 지지층을 비롯해 문 후보를 비토하는 세력은 분명히 존재했다. ‘문재인 비토층’은 문 후보의 독주를 막기 위한 대항마를 찾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이들이 처음 주목한 인물은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이었다.
반 전 총장은 지난해 5월 제주 관훈클럽 간담회에서 대선출마에 대한 의중을 내비춘 뒤 잠재적 대선후보로 분류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UN 사무총장'이라는 타이틀은 한국 유권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것이었고, 각종 선거에서 승부를 가른 충청 지역 출신이라는 점도 반 전 총장을 빛나게 하는 요소였다. 1월 반 전 총장의 귀국에 맞춰 민주당을 제외한 정당들은 ‘반기문 모시기’ 경쟁에 나설 것이란 전망도 팽배했다.
비슷한 시기 ‘적폐청산’ 외에 정치권에 등장한 또 하나의 화두가 ‘개헌’이었다. 1987년 헌법이 개정돼 6공화국이 시작된 이후 30년이 다 되도록 진행되지 못한 개헌은 각계각층에서 필요성이 제기되는 시대적 과제였다.
친문으로 대표되는 민주당 주류를 제외한 새누리당, 국민의당, 민주당 비주류는 박근혜 게이트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현행 헌법의 ‘제왕적 대통령제’를 지목했다. 이들은 개헌을 매개로 교류하며 ‘비문연대’를 구성하기 위한 움직임을 이어갔다. 반 전 총장도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반 전 총장이 대선 핵심 공약으로 개헌을 넣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하지만 ‘꽃길’만 걸을 것 같았던 반 전 총장은 귀국과 함께 언론의 혹독한 검증에 시달렸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23만 달러의 뇌물을 수수했다는 의혹을 시작으로 사이비 종교 연루설, 가족 비리 등이 반 전 총장을 괴롭혔다. 반 전 총장이 봉사활동에서 착용했던 턱받이, 선친 묘소 방문 시 제기된 퇴주잔 논란까지 사소한 행보 하나 하나까지 언론의 검증대상이 됐다.
반 전 총장이 귀국하면 일사천리로 해결될 것 같았던 개헌을 매개로 한 비문연대 구성 역시 갈피를 잡지 못했다. 정치적 이상이 다른 정치인들의 권력 지향적 이합집산이라는 국민적 비판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당시 많은 국민이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그 시기는 차기 정부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결국 국민이 원한 시대적 과제는 기존 박근혜 세력에 대한 청산이었던 셈이다.
반 전 총장은 2월 1일 마지막 카드로 ‘개헌 협의체’ 구성을 꺼내 들었다. 반 전 총장은 “모든 정당과 정파 대표들로 개헌협의체를 구성할 것과 이 협의체를 중심으로 대선 전 개헌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이미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한 개헌을 외친 반 전 총장을 바라보는 정치권의 반응은 싸늘했다. 국민의당은 “개헌 논의는 외부 기구가 아닌 국회 내 개헌특위에서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고, 바른정당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개헌을 고리로 선거 연대를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원칙적으로도 맞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날 반 전 총장은 바른정당 정병국 전 대표, 새누리당 인명진 전 비상대책위원장을 방문했지만 더 이상 반 전 총장을 반기는 이는 없었다. 정 전 대표는 “반 전 총장의 입당 여부에 따라 경선룰이나 로드맵이 바뀌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고, 인 전 위원장은 반 전 총장과의 회동 말미에 “나이가 들면 미끄러져 낙상하면 큰일이니 집에 가만히 있는 게 좋다”고 비꼬았다. 결국 문 후보의 첫 대항마로 거론됐던 반 전 총장은 2월 2일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황교안, 박근혜 탄핵에 불출마 선언
반 전 총장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후 ‘문재인 비토층’은 새로운 대안을 찾아 흩어졌다. 이들이 선택한 대안은 바로 박근혜 정권의 국무총리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과 안희정 충남지사였다.
반 전 총장 불출마 직후 황 대행은 갈 곳 잃은 보수진영의 ‘대안’으로 떠올랐다. 황 대행은 박근혜 정권의 2인자로 당시 박근혜 탄핵 반대 세력으로부터 큰 지지를 받고 있었다. 반 전 총장 불출마 이후 2월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 2~3위를 기록하며 상승세를 구가했다.
하지만 황 대행은 지지율 상승세 속에서도 정작 대선에 출마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일단 대통령 권한대행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 황 대행이 대선에 출마하는 것 자체가 무리수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국무총리 신분인 황 대행이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공직을 내려놔야 하는데, 이 경우 대통령 직무정지로 가뜩이나 불안한 대행체제에 또 한 단계의 대행체제가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황 대행이 출마를 선언할 경우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 권한대행 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직무를 수행하게 된다. 대행의 대행이 국정운영을 하는 ‘대행 정부’를 만드는 것 자체가 황 대행의 도의적 ‘직무유기’라는 비판에 부딪힐 것이 자명했다.
박근혜 정부의 2인자로 부역자라는 비판을 받는 것도 황 대행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헌법재판소에서 진행 중인 박근혜 탄핵심판에서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이 인용될 경우 황 대행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인데다, ‘심판이 선수로 뛴다’는 지적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오히려 황 대행 입장에서는 박 전 대통령 탄핵이 인용되지 않아야 출마를 저울질 해볼 수 있었다. 처음부터 황 대행은 대선 출마 여부를 선택할 입장이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 황 대행은 3월 10일 헌재가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인용하자, 15일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선의’ 발언으로 자멸한 안희정
반 전 총장의 또 다른 대안이었던 안 지사는 스스로 무너졌다. 안 지사는 출마 선언 당시부터 이념을 뛰어 넘어 개혁에 동참하는 세력과 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이른바 ‘대연정론’이다.
안 지사의 이러한 통합행보는 정치권에 신선한 바람을 몰고 왔다. 민주당 내에서는 “적폐세력과 연정하겠다는 뜻이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지지자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안 지사의 대연정 발언은 민주당의 외연을 ‘우측’으로 확장하는 성과도 만들어냈다.
문제는 안 지사 스스로도 “후회한다”고 했던 ‘선의’ 발언이었다. 2월 19일 부산대 즉문즉답 행사에 참석한 안 지사는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4대강 사업, 미르·K스포츠재단 사건 등에 대해 “선의로 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안 지사는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해 “(박 전 대통령은)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대기업들의 많은 후원금을 받아 동계올림픽을 잘 치루고 싶어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라고 말했고, 4대강 사업에 대해서는 “(이 전 대통령은) 747 공약을 잘해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분이 동원한 방법은 현대건설 사장님답게 24조 원의 돈을 동원해 국민들이 아무리 반대해도 4대강에 확 집어넣은 것”이라고 말했다.
선의 발언 이후 한 때 20%대까지 치솟았던 안 지사의 지지율은 하락세를 타기 시작했다. 안 지사를 지지했던 기존의 야당 지지층이 등을 돌리는 결과를 초래한 것으로 풀이된다. 안 지사는 결국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문 후보의 과반을 저지하지 못하고 패배했다.
특히 안 지사는 선의 발언으로 전통적인 야당 텃밭인 호남에서 민심을 잃었다는 평가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의 첫 순회 경선지였던 호남에서의 지지율 하락은 안 지사의 경선 패배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안 지사는 민주당 순회경선 직전인 24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21~23일 3일간 전국 성인남녀 1007명을 대상으로 휴대전화 RDD 조사, 응답률 19%,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1%p)에서 17%의 지지를 얻어 2위를 기록했는데, 호남 지역에서의 지지율은 11%에 그쳤다. 당내 3위 후보였던 이재명 성남시장에게도 뒤처지는 수치였다.
안 지사는 민주당 호남경선에서 ARS 4만4026표, 호남 권역투표 2451표, 호남 대의원 현장투표 249표를 얻어 총 4만7215표로 20%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반면 문 후보는 ARS 13만3130표, 권역투표 8162표, 대의원 현장투표 1046표 등 총 14만2343표를 얻어 60.2%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당시 민주당 경선은 호남에서 문 후보의 과반 저지 여부가 승부의 키로 꼽혔는데, 안 지사의 선의 발언으로 인한 지지율 하락이 결국 문 후보의 ‘대세론’만 확인시켜준 셈이 됐다.
◆3지대 비문연대의 소멸
반 전 총장이 대선후보 불출마를 선언한 이후에도 재야와 정치세력을 넘나들며 개헌을 매개로 비문연대를 구축하려는 정치세력도 존재했다. 김종인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정운찬 전 국무총리, 국민의당 상임공동선대위원장을 맡은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들은 ‘제3지대’ 중심의 개헌을 외쳤고, 복수의 정치세력을 오가며 의견을 타진했다.
가장 눈에 띠는 활동을 보인 인물은 김 전 대표였다. 김 전 대표는 비례대표로만 5선을 지낸 원로 엘리트 정치인으로 여의도 정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당초 민주당 내에서 비문연대 구성을 타진하던 김 전 대표는 상황이 여의치 않자, 3월 8일 비례대표 의원직을 던지면서까지 탈당을 감행했다. 이후 김 전 대표의 3지대 광폭행보가 시작됐다.
3월 8일 민주당 탈당 직전 국민의당 대선 경선에 나선 손 전 대표와 조찬 회동을 가진 것을 시작으로, 3월 9일과 10일 양일에 걸쳐 바른정당 대권주자 유승민 의원과 남경필 경기지사, 국민의당 주승용 원내대표와 문병호 최고위원을 차례로 만났다. 3월 11일 한국당 인 위원장과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을 만나 3자 회동을 가졌고, 12일에는 한국당 비박계 중진 나경원 의원과 조찬을 함께 했다. 김 전 대표가 3지대 성향으로 분류되는 인물들을 대거 만나면서 “정말로 비문연대가 만들어질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도 곳곳에서 나타났다.
하지만 3월 16일 예정된 김 전 대표와 정의화 전 국회의장, 정 전 총리, 남 지사 등이 참석하는 4자 오찬회동이 불발되면서 3지대 논의는 급속히 냉각되기 시작했다. 일각에서는 3지대 관련자 모두가 ‘킹메이커’가 아닌 ‘킹’이 되려 하기 때문에 애초에 불가능한 합의였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3월 중순부터 시작된 각 정당의 대선후보 경선은 김 전 대표의 3지대 비문연대 논의를 사장시킨 결정타였다. 대선후보 경선이 시작되자 김 전 대표는 언론과 정치권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김 전 대표는 23일 정 전 총리와의 조찬회동에 앞서 “대선이 길게 남지 않았으니 4월 15일 이전에는 뭐가 되도 되지 않겠느냐”면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지만, 거기까지였다.
결국 김 전 대표는 5일 스스로 대선에 출마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자신이 선수가 돼 직접 비문연대를 만들어보겠다는 의도였다. 김 전 대표는 대선출마 선언 기자회견에서 “통합정부로 위기를 돌파하고 나라를 바로 세워야 한다”면서 “이번 대선은 힘을 합쳐보겠다는 유능과 혼자하겠다는 무능의 대결이다. 제 출마와 선거운동은 통합정부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김 전 대표에 호응하는 정치세력이 전혀 없었다. 각 당의 대선 후보가 선출된 이후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이 급상승하며 문 후보와 양강구도를 형성됐다. 이번 대선 판도에서 김 전 대표의 역할이 사라진 것이다. 결국 김 전 대표는 출마선언 일주일 만인 12일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대선국면에서 쓸쓸히 퇴장했다.
◆문재인 비토층, 돌고 돌아 안철수에게
반 전 총장의 사퇴와 황 대행의 불출마, 안 지사의 자멸, 3지대의 소멸까지, 지지할 대선후보를 잃은 문재인 비토층은 마지막으로 국민의당 안 후보를 선택했다. 이번 대선은 문재인-안철수 양강구도로 치러질 것으로 보인다. 안 후보는 “이번 대선은 결국 문재인과 안철수의 대결이 될 것”이라고 장담해왔는데 이는 현실이 됐다.
안 후보가 대북정책 부문에서 사드 배치 찬성으로 입장을 바꾼 것은 문재인 비토층이 안 후보를 선택하기 쉽게 만들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실제로 안 후보는 스스로를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라고 평가하며 갈 곳을 잃은 보수 지지층마저 흡수하고 있다. 다만 양강구도가 만들어진 이후 안 후보에 대한 후보 검증과 대선TV토론이 이어지면서 상승세가 다소 꺾였다는 점이 변수다.
안 후보의 상승세는 여론조사에도 잘 나타난다. 지난 5일 5당 대선 후보가 모두 확정된 직후 진행된 리얼미터 여론조사(전국 성인 남녀 1008명 대상으로 5일 유선10%·무선90% RDD방식으로 조사, 응답률 10.8%, 95% 신뢰수준에서 표본오차 ±3.1%p)에서 안 후보는 34.5%의 지지율로 41.3%의 문 후보를 바짝 추격했다. 홍준표 후보로의 보수 단일화를 전제로 한 3자 대결에서는 38%의 지지율로 44.2%의 문 후보를 6.2%p 차이까지 따라잡았고, 문 후보와의 양자대결에서는 42.8%로 46.3%의 문 후보와의 격차를 3.5%p까지 좁혔다.
지난 3일 발표된 디오피니언 여론조사(내일신문 의뢰로 전국 19세 이상 남녀 1000명 대상 2일 유선전화면접조사 39.7%, 모바일 활용 웹 방식 인터넷 조사 60.3%, 응답률 13.5%, 95% 신뢰수준에서 표본오차 ±3.1%p)에서는 가상 양자대결에서 안 후보가 문 후보를 앞선다는 최초의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안 후보는 43.6%의 지지를 얻어 36.4%의 문 후보를 앞섰다.
이후 발표되고 있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문 후보와 안 후보는 오차범위 내외에서 접전을 펼치고 있다. 반면 양강 후보 외에 한국당 홍 후보, 바른정당 유 후보,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지지율 정체를 극복하지 못하는 모양새다. 문재인 비토층이 안 후보로의 결집을 선택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결국 이번 대선은 ‘문재인과 문재인이 아닌 자의 대결’로 점철됐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대표는 “이번 대선은 문재인 대세론과 문재인만 아니면 상관없다는 문재인 비토론으로 치러지고 있다”면서 “반기문이 떴다가 이재명, 황교안, 안희정 등을 돌고 돌아 안철수에게로 문재인 비토층이 이동한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