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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카스트로의 작은 혁명들
쿠바, 카스트로의 작은 혁명들
  • 르노 랑베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 승인 2018.07.06 1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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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울 카스트로의 현대화 정책지지 VS 공산당 정통파 논리 대립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86)은 2018년 의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다. 차기 의장으로는 미구엘 디아즈-카넬 국가평의회 부의장이 유력하다. 쿠바 게릴라전이 일어난 1959년의 이듬해에 태어난 그에게 권력을 이양하는 것은, 라울 카스트로의 쿠바경제모델 ‘현대화’를 잇는 또 다른 작은 혁명이라는 의견도 있다.

원주민 악기 죠하프, 허물어 가는 벽, 시대에 뒤떨어진 미의식…. 많은 외부의 관찰자들은 쿠바의 일상을 진부한 정치적 수사로 묘사한다. 공산주의 국가인 쿠바는 과거에 멈춰있다. 하지만 과거의 후진성도 그러한 과거를 기념하는 날에는 잊히기 마련이다. 라울 카스트로 의장은 ‘사회주의 혁명 선언 55주년(제7차 공산당·PCC 전당대회 개회식, 2016.4.16.)’, ‘국민 영웅 호세 마르티 탄생 161주년(마리엘 항구 개항식, 2014.1.27)’, ‘혁명의 승리 55주년(제8차 국회 폐회식, 2013.12.21)’ 등 주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날에 연설을 했다.

아바나 혁명광장에서부터 시엔푸에고스 초입에 세워진 거대한 간판에까지 시에라 마에스트라(피델 카스트로, 체 게바라 등 혁명군들이 1956년 쿠바 상륙 후 혁명의 근거지로 삼은 곳-역주) 영웅들의 얼굴이 여기저기 그려져 있는 것은 이미 지나간 과거를 회상하기보다는 지금의 현실성을 더 강조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러니 쿠바는 의심할 여지없이 현재를 살아 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과거에 머무느냐 현재를 사느냐는, 혁명의 섬인 쿠바에서 여전히 논쟁거리다.

‘게릴라전 승리’ 후 60년도 더 지난 지금, 국가에 목숨 바친 ‘혁명군들’이 쿠바의 변화를 어떻게 평가할지 모를 일이다.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가 살아 돌아온다면 제2의 조국을 알아볼까? 변화만큼 계속되는 대립에 충격받지는 않을까? 글쎄, 2011년 쿠바를 여행했던 기자가 고작 6년 전의 흔적들을 찾는 데도 고생했으니 말이다.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는 혁명박물관이 있다. 대통령궁이었던 박물관 전시실에는 몬카다 병영 습격(1953.7.26.), 그란마 호 승선(1956.11.26), 피델 카스트로의 아바나 점령(1959.1.8)(1) 등 게릴라전의 활약상이 1천여 점 넘게 전시돼있다. 그중 전쟁 영웅담부터 냉전 시대의 대치까지 경제·사회 문제는 오직 전시실 한 칸에서만 다루고 있는데, 그마저도 현재 수리 중이라 관람객들이 그냥 지나치게 된다.

벽에 비스듬히 세워진 패널의 내용이 궁금해 가까이 가려 했으나, 보안선을 넘는다는 이유로 담당자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그는 무기력한 기색을 보이다가 이내 뻔뻔한 태도를 보였다. 패널에는 피델 카스트로가 “우리는 분위기를 일소하고, 모든 것을 정화하고, 진정한 노동자 국가를 만들 것”이라고 한 말을 대문자로 강조한 쿠바 공산당 기관지 <그란마(Granma)> 1968년 3월 16일 자의 ‘1면’이 전시돼 있다. 여기에는 그가 공언한 ‘혁명적 대공세’ 정책이 상세히 나와 있다. 그는 이 정책을 통해 쿠바 내 모든 민간상업을 국영화한다고 공언하고, 모든 민간주점이 국가에 귀속됐을 뿐만 아니라 국영주점을 포함한 모든 주점이 폐점됐다고 공표했다. 또한 “민중이 필요로 하는 재화를 누릴 수 있게 하고 그들을 부유하게 하는 유일한 길은 그들의 노동과 땀과 노력뿐이라는 것을 민중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박물관 뒷마당 근처에서 4월 봄볕에 지친 관광객들이 게릴라전 기념물을 둘러보는 가운데, 인근 식당 ‘차차차’의 종업원들은 마돈나의 노래에 맞춰 분주히 움직였다. “우린 물질만능주의 세상에 살고 있어, 나는 물질만능주의자야.” 1년 반쯤 전에 개점한 이 식당에서는 10여 명의 종업원들이 세라노 햄을 두른 돼지 필레미뇽(약 14유로), 마늘과 함께 구운 생선요리(약 13유로), 랍스터 철판구이(약 19유로) 등 입맛 까다로운 손님들도 만족시킬 메뉴를 제공한다. 가격은 쿠바 태환 페소(CUC)로 표기돼있다(쿠바는 구소련의 붕괴로 원조가 끊기자 1993년 미국 달러 통용을 합법화했으나 페소화의 과잉공급, 재정적자 등의 문제로 1994년 기존 페소를 달러와 바꿀 수 없는 불태환 페소/CUP로 지정하고, 별도로 태환 페소/CUC를 도입했다. 이후 2004년, 쿠바에 대한 미국의 경제제재 조치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미 달러 소유는 허용하나 통용은 금지했다. 1CUC=1.08달러의 고정 환율을 시행하고 있다-역주). CUC는 애초에 관광산업용 화폐로 사용됐으나 지금은 통용되고 있다. 쿠바에는 달러화에 고정된 CUC 외에도 또 다른 페소(CUP)가 통용되고 있는데, 그 가치는 CUC의 1/25 수준이다(1CUC = 24CUP이나, 미 달러를 CUC로 환전할 때 부과되는 10%의 환전수수료를 고려하면 1CUC = 25CUP 수준-역주). 쿠바 최저임금이 225페소(약 8유로)인데, ‘차차차’ 식당의 모히토 한 잔 가격은 5CUC(약 4.5유로)에 달한다.

쿠바에서는 민간이 운영하는 식당을 ‘팔라다르’라고 하는데, 2010년 100개 남짓했던 아바나 내 팔라다르가 지금은 2천 개가 넘는다. 한 호텔산업 전문가는 실명을 밝히지 말 것을 인터뷰의 전제조건(2)으로 달며, “팔라다르 중 10개 이상은 틀림없이 100만 달러 이상 매출을 올리고 있을 것”이라 말했다. 이런 급격한 변화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2006년 권한 대행에 오른 후 2008년 의장으로 선출된 라울 카스트로는 취임 직후 ‘쿠바 사회주의의 현대화’로 대변되는 개혁 프로세스에 착수했고, 이 프로세스는 2011년 의회승인을 받았다.(3) 라울 카스트로는 피델 카스트로를 계승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자영업자 확대를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자영업자들은 이제 5월 1일 메이데이 행진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쿠바 자영업자들은 악기 조율사나 석공, 정장대여업자, 광대, 농산물 행상인, 요식업자 등 블루칼라가 주를 이루는 201개 직종에 종사할 수 있게 허용됐다. 그런데 과연 피델 카스트로가 민간부문을 재건하고 싶어 했던가? 쿠바에서 ‘쿠엔타프로피스타’라고도 불리는 자영업자 수는 2010년 약 15만 명에서 2016년 50만 명을 넘어섰으며, 자영업자, 협동조합 등 민간부문은 현재 경제활동인구 500만 명의 30%에 이른다.

그래서인지 오늘날 쿠바 도심에는 지금까지 보기 드물었던 활력이 넘친다. 아바나에서는 적게나마 처음으로 교통체증 현상이 나타나는데, 아바나의 명소 말레콘 방파제는 특히 혼잡하다. 그뿐만 아니라,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복잡한 교통상황을 종종 볼 수 있다. 아바나 동쪽에 위치한 카르데나스의 대로는 자전거택시와 마차가 포트홀을 피해 몰려드는 바람에 북새통이다. 한편, 카리브 해안가에 위치한 트리니다드에는 식당 수가 2010년보다 9배 늘었다. 도심의 아랫동네에서는 가죽이나 나무로 만든 기념품과 값싼 장신구, 인디언 조각상, 분간하기 힘든 유사한 그림들을 판다. 그리고 체 게바라 초상이 그려진 찻잔, 캡모자, 티셔츠, 재떨이 등도 항상 빠지지 않는다.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은 모두 “혁명 50년 동안보다 라울 카스트로 취임 후 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고 말했다. ‘현대화’는 쿠엔타프로피스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아바나 중심부에는 녹음이 무성한 프라도 거리가 있는데, 가장자리를 따라 줄지어 선 나무들에 전단들이 붙어 있었다. ‘이층집 매매, 공실. 언제든 이사 가능. 2만 5천 달러’, ‘캐피털리스트 아파트 매매, 아바나 중심가, 1만 8천 달러’…. ‘캐피털리스트(Capitalist)’는 혁명 이전에 준공돼 ‘품질보증’이 가능한 집을 수식하는 말인데, 2011년부터 쿠바인들은 이 캐피털리스트 집을 포함한 모든 주택거래를 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지금에야 허용된 일들이 사실 2011년 이전에도 몰래 행해지고 있었던 것처럼 부동산 시장도 이제야 출현한 것은 아니다. 단, 부동산 거래는 이제 합법화됐고, 자국민만 부동산을 소유할 수 있다는 규정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엄격한 규제도 교묘히 피해가고 있다.

“2천 5백 달러에 쿠바 여성과 결혼 하세요”

“부동산 중개인을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따스한 봄볕 아래 나무를 에워싸고 있는 작은 무리에 다가가 물었다. “제가 중개인인데요.” 젊은 여성이 명함을 내밀며 말했다. 부동산 중개인은 최근 허용된 148개 직종에 포함된다. 그는 일요일 오후 그를 찾아온 사람들이 제안한 부동산 거래 내용을 적어둔 작은 공책을 펼쳤다. 그리고는 외국인 기자의 부동산 매입 요청에 놀라는 기색 없이, 외국인이라는 문제에 대한 완벽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쿠바 여성과 결혼하세요. 그럼 문제없어요!” 결혼비용이 얼마나 되는지 묻자, “2천 5백 달러쯤이요”이라 답했다. 쿠바에서 외국인이 부동산을 매입하기 위해서는 자국민과 결혼생활을 5년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개인은 덧붙였다. “그런데 제가 소개할 여성이 너무나 미인이라, 당신이 헤어지기 싫을 걸요.”

이 말을 전해들은 예술가 페르난도가 “2천 5백 달러? 그 사람이 당신을 가지고 놀았군요!”라며 뱃살이 출렁거릴 정도로 크게 웃고는, “대부분 사람들은 돈 내고 결혼 안 해요! 이중국적으로 돈을 얼마나 많이 벌 수 있는지 알기 때문이죠”라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2012년 10월, 쿠바 정부가 재외국민들의 여행 제한을 풀어(4) 이중국적 혜택을 누리는 쿠바인들이 비자 없이 두 국가를 오가며, 쿠바에서 매우 비싸게 되팔 물건을 캐리어 가득 싣고 올 수 있게 된 상황을 잘 설명한다. “그걸로만 먹고 사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예요. 게다가 너무 편하게 말이죠.” 그가 말했다.

라울 카스트로는 쿠바의 군인, 혁명가, 공산주의자이자 정치가이다. 국가평의회 부의장과 국방상을 역임하다가 2008년 제2대 국가평의회 의장에 선임되었다. 사진=위키백과
라울 카스트로는 쿠바의 군인, 혁명가, 공산주의자이자 정치가이다. 국가평의회 부의장과 국방상을 역임하다가 2008년 제2대 국가평의회 의장에 선임되었다. 사진=위키백과

쿠바는 2015년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외교 관계 회복 이후,(5) 롤링스톤스의 첫 공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첫 촬영(<분노의 질주 8>(Fast&Furious 8)), 5성급 호텔 첫 건설, 첫 패션쇼(샤넬, 칼 라거펠트), 지금은 항시 이용 가능해진 ‘에어비앤비’ 사이트를 통한 방 예약, 1959년 이후 미국 크루즈선 첫 입항 등 ‘역사적인 처음들’로 현기증이 날 정도다. 이후 1961년에는 피그만을 침공한 용병들을 격퇴했고, 이듬해인 2017년, <파이낸셜타임스> 별쇄 잡지 <하우투 스펜드 잇>(How to Spend It)은 2016년을 미국인 침공이 공식적으로 시작된 ‘기념비적인 해’(6)로 묘사했다.

작년에는 관광객 400만 명이 쿠바를 찾아, 의료수출이 주를 이루는 서비스 수출, 송금 서비스업의 다음으로 관광업이 외화수입원 3위에 올랐다. 관광업은 지난 20년간 외화수입원의 5~10%에 머물렀지만, 2016년에는 미국인 관광객 수가 쿠바계 32만 9천 명을 포함해 61만 5천 명으로 급증했다. 이는 2015년 대비 74% 증가한 수치다. 그러나 2017년에는 이 증가세도 주춤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의 개방정책 중 일부를 재고할 것이라 밝힌 데 이어, 9월에는 쿠바 북부 지역 인프라 일부가 허리케인 어마(Irma)로 초토화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관광객들이 쿠바의 매력에 쉽게 등 돌릴 수 있을까?

한 관광전문가는 <하우투 스펜드 잇> 기자에게 “당신이 쿠바에서 즐길 수 있는 경험의 질은 가히 최고”라고 말했다. 식견 있는 관광객들에게 파라다이스 같은 해변과 문화예술의 결합만큼 매력적인 것은 드물기 때문이다. 정부가 쿠바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황홀한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관광업에 힘쓴 것은 분명하다. 그는 이어 “만약 흑인중심주의(흑인들의 세계관은 아프리카 전통가치를 반영해야 한다는 문화·정치적 운동-역주)에 관심 있다면, 당신은 존경받는 역사가나 힙합씬에서 저명한 뮤지션, 저소득층 흑인 여권 활동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경우, 관광 전문가들은 쿠바 첫 트랜스젠더 국회의원과의 저녁 식사처럼 인텔리 LGBT(성적소수자)와 만나는 프로그램까지 구상해냈다”고 말했다. 한편, ‘온쿠바 트래블’ 여행사는 명품점, 쇼핑센터 등 아바나 내 모든 곳을 둘러보는 프리마켓 가이드 투어가 곧 개시될 것이라 알렸다.

하지만 2011년 의회 회기를 몇 개월 앞두고 호세 아젤 마이애미 대학교 연구원은 “라울 카스트로가 공언한 개혁으로는 거의 변화가 없을 것이 분명하다”(7)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물론 그의 말을 반박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학자 오마르 에베르레니 페레스 역시 “라울 카스트로는 많은 일을 했다. 하지만 2016년 3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방문 이후 플로리다 해협을 사이에 둔 양국 간 관계회복 프로세스가 동결되는 등, 국민은 그동안의 염원과 정반대인 상황을 봤다”며 회의론에 의견을 더했다. 혹자는 2011년 대통령의 신임을 받아 유명해진 페레스를 경제개방의 선구자로 묘사하지만 그로부터 5년 후인 2016년, 페레스는 너무 흔쾌히 외신기자들과 논의한다는 이유로 아바나 대학교 경제연구센터에서 제명됐다. 그의 제명은, 국가 상황이 전반적으로 악화하자 라울 카스트로의 개혁에 반대하는 국가기구 인사들이 힘을 회복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페레스는 “오바마 전 행정부가 양국관계를 더 진척시켰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철회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말을 이어갔다. 트럼프의 취임으로 양국관계의 호전을 기대할 수 없기도 하지만, 사실 쿠바는 허리케인 어마가 지나기 전 이미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특히 쿠바경제는, 소비에트 블록 붕괴로 ‘평화기의 특별한 시간’을 거치며 국내총생산(GDP)이 35% 급락했던 1991~1994년 이후 2016년 처음으로 -0.9%의 경기후퇴를 겪었다. 그는 “이와 같은 국가 상황의 악화는 예고된 것이었다. 베네수엘라에 대한 의존이 유사시 중대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의심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나흘을 일해야 모히토 한 잔을 마실 수 있어

유가 하락과 끝없는 정치위기로 2016년 베네수엘라의 부 창출은 5분의 1로 급감했고 인플레이션은 700%에 달했다. 베네수엘라는 쿠바에 매일 석유 10만 배럴을 유가보조금 가격으로 팔아왔으나 2016년에는 그 양이 40% 줄었다. 결국, 쿠바는 에너지 절감을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관청은 일찍 문을 닫고, 에어컨 대신 창을 열어 온도를 조절하고, 이미 드물게 켜오던 가로등의 점등도 줄이고 있다. 한편 2016년 7월, 라울 카스트로는 “불필요한 모든 낭비를 중단해야 한다”고 경고한 바 있다. 특히 에너지 소비량이 매우 높지만, 쿠바경제에서 유일하게 성장 중인 관광업을 지속하려면 다른 곳에서 에너지를 절약하는 것이 중요하다. 저소득층 흑인 여권 활동가와의 대화도, 선풍기와 시원한 모히토 한 잔을 곁들여야 좋은 법이니까 말이다.

더욱이 베네수엘라는 쿠바의 서비스 주 수출대상국이다. 특히 의료 수출이 주요하며, 2016년 의사 수출은 3만 명에 달한다. 2014년, 경제학자 카르멜로 메사-라고는 ‘양국 간 경제 관계의 총 가치’가 쿠바 GDP의 약 21%를 차지한다고 했으며,(8) 지금은 그 수치가 약 25%라는 추정도 있다. 그러나 브라질에 4천 명이 넘는 쿠바 의사를 수출한다 해도 ‘시장’ 다양화는 꽤 까다로운 문제다. 베네수엘라의 경우, 의료인력 수입에 반대하는 국민들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쿠바의 꼭두각시라고 규탄하며 쿠바와의 단절을 희망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페레스가 말을 이어갔다. “다 아는 사실이었다. 라울 카스트로는 에너지 절감을 위해 개혁을 추진했으나 중도에 그만뒀다. 그의 초기정책들이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또 다른 정책들이 필요했는데, 그 또한 진행속도가 더디고 물자난과 독점 현상 같은 새로운 문제들을 발생시킨 것이다.”

사실 식당 개점이나 길거리 피자 판매를 합법화하긴 했으나, 쿠바 정부는 요식업 분야의 공급 체인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민간식당들은 상점이나 시장을 이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불안한 상황이 일으키는 결과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물가상승으로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투기가 만연할 것이며, 맥주가 동이 났던 2014년 8월이나 2016년 4월처럼 물자난이 올 수도 있다. 그때, 페레스의 전화가 세 번 울렸다. 그는 통화를 짧게 끝낸 후 화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꽤 똑똑한 청년 한 명과 일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마감일을 안 지킨다는 거지요. 이 친구, 계량경제학자인데 실제로는 관광객에게 방세를 받아서 먹고 살아요. 그가 경제학에서 손 놓지 않게 애쓰고 있긴 하지만 항상 마감 때면 전화를 해서는 “죄송합니다만 마감을 좀 늦출 순 없을까요? 오늘 저녁에 미국인 커플이 와서요”라는 겁니다. 짜증나지만 웃고 넘길 수밖에요. 그런 친구가 본업을 포기하는 게 국가적으로 상당한 손실이거든요.”

이처럼 쿠바에서는 그 누구도 월급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생각을 못 할 것이다. 식당에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비싼 메뉴가 있지만, 아바나 저소득 지역에 가도 모히토 한 잔을 마시려면 최저월급의 1/8에 해당하는 1CUC를 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9)으로 돈을 벌거나 이윤을 많이 내는 일을 하면서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편, 정부가 예산의 25%를 교육에 할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업원으로 일하거나 이민을 택하는 엔지니어 수도 이제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래서 라울 카스트로는 우선 과제 중 하나로 임금 상승을 제시했다. 하지만 재화와 용역 산출량은 늘리지 않은 채 임금만 부풀린다면 인플레이션만 촉발할 뿐이다. 게다가 쿠바는 선진국 수준의 공공서비스와 개도국 수준의 생산력이 혼재된 특이한 국가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라울 카스트로는 공무원을 감원해 민간부문으로 전환해 국가생산력을 증진하고, 이를 통해 공공 서비스 수준을 유지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그러나 공산당 지도부에는 민간부문을 불구대천의 적으로 여기는 당원들도 있다.

어떻게든, 혁명을 위한 투쟁은 계속된다

페레스는 공산당의 사상적 완고함을 가장 큰 문제라 지적하며, “쿠바는 불황을 겪고 있다. 그러나 가장 큰 걱정은 불황을 통해 사람들이 자산을 증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경제학자 페드로 몬레알의 말을 인용해 “대부분의 국가가 빈곤퇴치에 힘쓰는 데 반해 쿠바는 개인의 자산증식을 막는 데 힘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2016년 의회 강령은 이전에 비해 견고해졌는데, 이 강령은 “비정부 행위의 새로운 형태들 가운데 법인 또는 자연인의 소유 집중은 허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규정하며, 이어서 ‘부의 편중’을 금한다는 내용도 더하고 있다. 2017년 6월, 해당 강령을 토론하기 위한 임시국회에서 가장 활발히 논의된 주제도 단연 부 축적의 ‘위협’이었다.

그렇지만 개인의 자산증식을 막으려는 행위가 단지 쿠바의 경직된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현재 쿠바는 생산성에 따른 임금 자율화, 쿠바계 미국인들의 국내 송금액 제한 완화 등의 정책으로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2016년 4월 14일, 라울 카스트로는 공산당 전당대회 연설에서 사회주의 고전 이론인 “능력에 따른 생산, 필요에 따른 분배”를 “능력에 따른 생산, 노동에 따른 분배”로 재구성했다. 그렇지만 쿠바에서 노동은 더 이상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는다. 자영업자의 70~80%는 마이애미에 망명한 친지로부터 송금 받아 사업을 시작했는데, 대개 가족을 잘 만난 운 좋은 경우지만 사회주의 측면에서 보면 걱정거리일 뿐이다. 신흥 영세업자는 혁명정책에 가장 적대적인 비주류에서 나오고 있는데 그중 흑인은 매우 드물다.

“1968년 3월 13일에는 중소기업가들부터 민간상업의 국영화에 반대하는 반혁명세력까지 결집했다.” 잡지 <테마스(Temas)> 편집장 라파엘 에르난데스가 말했다. 그는 <테마스> 한 호를 불평등에 할애한 바 있다. 그는 이어 “1959년 1월 1일 쿠바 혁명정부 수립 이후 그 날까지,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를 포함한 그 누구도 민간부문이 쿠바에서는 아직 생소한 ‘부르주아 계급’이라고 감히 말할 수 없었다. 2016년, 라울 카스트로는 공산당 전당대회 연설을 통해, 민간부문이 쿠바 사회에서 자본주의의 악성 세포가 아니라는 생각을 재표명했고, 이후 자영업을 합법화하는 데 힘썼다”고 말했다. 라울 카스트로는 자영업을 합법화한 후에도 자영업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노력했다.

반면, 쿠바인들은 개인의 기술적·학문적 능력을 활용하지 못한 채 시장 법칙의 쓴맛을 보고 있다. “여기 사장님 계십니까?” 트리니다드 시내 한 큰 식당에 들어서며 물었다. “당연히 안 계시죠. 쉬고 계실 거예요! 사장님은 일만 시키니 안 계시는 게 좋아요.” 종업원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러다 근무시간에 관해 묻자 말없이 눈을 치켜떴다.

“민간부문이 과연 법, 특히 노동법을 준수하면서 발전하고 있을까요?” 에르난데스는 말을 이어갔다. “그게 문제예요. 식당 종업원에게 물어보면, 사장이 8시간 초과근무를 요구하고, 동일임금 동일노동 원칙을 지키지도 않으며, 흑인채용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답할 가능성이 높아요.” 해결책은 무엇일지 묻자, 그는 “노동법을 준수하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무분별한 제재’로 민간부문을 억압하지 말아야 해요. 프랑스에서처럼 말이죠!”라고 답했다. 물론 민간부문에서도 마침내 정계에 입문할 힘을 구축할 수는 있겠지만 단, 이것도 민간부문이 커질 때 말이다. 프랑스의 경우, 정부는 노동자보다 사용자에 유리하게끔 ‘무분별한 제재’의 기준을 두고 있다. “프랑스와 쿠바가 걱정하는 바는 같지만 쿠바의 경우 상황이 매우 다르죠. 쿠바의 민간부문에서 정치 당국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아직은 한 명도 없을 거로 생각합니다. 훗날 문제가 될 수도 있어요.” 에르난데스가 말했다.

결국 오늘날 쿠바에는 두 가지 논리가 대립한다. 핵물리학자이자 택시운전사인 자비에는 “과거에는 구소련이 쿠바 사회주의 체제 재정을 지원했다면 지금은 관광객과 영세업자가 대신하는 셈이다. 그러므로 혁명 정신을 지키려면 시장을 조금 더 확대해야 한다”며 라울 카스트로의 현대화 정책을 옹호했다. 이 첫 번째 논리는 공산당 정통파 당원들과 반 카스트로주의자들을 결집하는 두 번째 논리와 상반된다. 하지만 그들이 자본주의를 맛본다면 쿠바 사회주의를 굳건히 지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마리아 콘트레라스-스위트 미 중소기업청 청장은 쿠바에 투자하기를 원하는 경영자들 앞에서 “여러분은 미국의 가치와 자본주의를 수출해야 한다”(10)며 외교적으로 논쟁이 될 수도 있는 발언을 서슴지 않기도 했다.

시에라 마에스트라 전투 영웅들이라면 정통성 유지와 개혁 중 과연 어떤 입장을 취했을까? 어쩌면 참 무용한 질문이구나 생각할지 모르겠다. “쿠바에서 소비에트 사회주의는 쿠바의 독립실현을 위한 혁명 정신을 지키려는 수단이었지, 절대 정치적인 것이 아니었다. 혁명을 위한 투쟁은 사회주의든 어떤 형태로든 계속된다.” 페르난도 라브스베르 기자의 말을 떠올려 본다.

글·르노 랑베르 Renaud Lamber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김진주 kim_jinjoo@hot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이코노미21>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과 기사제휴를 맺고 주요 글로벌 기사를 게재합니다.

(1) 전체 연표는 다음의 격월간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Manière de voir>(사유하는 방식), 제155호, ‘Cuba, ouragan sur le siècle’(쿠바, 세기의 태풍), 8,50euros, en kiosques.

(2) 이 글에서는 성을 쓰지 않기로 했다. 이름은 가명으로 대체한다.

(3) ‘Ainsi vivent les Cubains’(쿠바인들이 사는 법),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1년 4월호.

(4) 전략적 이유에서 의사를 포함한 몇몇 직종에는 제한을 뒀다.

(5) Patrick Howlett-Martin, ‘Dégel sous les tropiques entre Washington et La Havane’(해빙 분위기 감도는 워싱턴과 아바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4년 11월호.

(6) Lydia Bell, ‘Cuba’s travel revolution’, <How to Spend It?>, 런던, 2017년 1월 10일.

(7) José Azel, ‘So much for Cuban economic reform’, <The Wall Street Journal>, 뉴욕, 2011년 1월 11일.

(8) Carmelo Mesa-Lago ‘La reforma de la economía cubana: secuencia y ritmo’(쿠바의 경제개혁: 시퀀스와 리듬), <Estudios de Politica Exterior>(에스투디오스 데 폴리티카 엑스테리오르), 제161호, 마드리드, 2014년 9/10월호.

(9) ‘Ainsi vivent les Cubains’(쿠바인들이 사는 법), op. cit.

(10) Lucie Robequain, ‘Comment l’Amérique compte envahir Cuba’(미국이 어떻게 쿠바를 침공하고자 하는가), <Les Échos>(레 제코), 파리, 2015년 5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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