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역 균형발전을 더 많이 고려하도록 예비타당성조사(예타) 제도를 개편하기로 함에 따라 광역시나 비수도권 사업의 통과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현행 제도는 경제성 평가가 중심이어서 수요가 상대적으로 적은 지방 사업은 예타의 벽을 넘기가 쉽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평가 방식을 달리해 균형발전과 대규모 사업을 통한 사회적 가치 실현을 중시하겠다는 것이 정부 방침이다.
이번 예타 개편은 1999년 제도가 도입된 후 20년 만에 가장 큰 변화로 평가된다.
예타는 초기엔 경제성 분석 위주였다가 2003년 종합평가방법(AHP)을 도입하며 정책성 분석을 시작했고, 2006년에는 지역균형발전도 평가 요소로 들어갔다.
제도 도입 후 작년까지 총 849개 사업(386조3천억원 규모)을 평가해, 35.3%인 300개 사업(154조1천억원)을 걸러내며 재정 효율화에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경제성이 통과에 결정적 요소로 작용하는 점, 조사 기간이 길어진다는 점 등에 관한 지적이 나왔고 최근 경제·사회 여건 변화를 반영해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번 개편은 이를 반영한 결과다.
새로운 예타 제도가 도입되면 우선 비수도권 광역시의 거점 기능이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역낙후도 항목 감점제도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현행 예타에서는 대구·대전·부산·울산·광주 등 광역시를 중심으로 비수도권 36개 지역에는 지역균형평가의 지역낙후도 항목에서 감점을 적용한다.
수도권에 비해 비수도권 광역시는 일종의 역차별을 받은 셈으로 비수도권 광역시는 비교적 수요가 있고 정책적으로 필요한 사업을 추진하려고 해도 경제성 평가에서는 수도권에 못 미치고 지역균형평가에서는 불이익을 받았다.
앞으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평가를 분리하고 지역낙후도 감점제를 없애면 이런 이중고에서 벗어날 전망이며 낙후지역 사업이 예타를 통과할 가능성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비수도권은 득점이 어려운 경제성 평가의 비중이 작아지고 고득점이 예상되는 지역균형발전의 비중이 높아지므로 '합격' 가능성이 커지는 셈이다.
수도권은 경제성(60~70%)과 정책성(30~40%)만으로 평가하게 되며 기존보다 경제성을 더욱 엄격하게 따지게 되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예타 통과율 자체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정부는 예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내놓은 예타 개편 방안이 지역 균형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황기연 홍익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는 "그동안 경제성 중심으로 예타를 하다 보니 빈익빈 부익부가 심해지면서 수도권 비수도권의 격차는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며 이번 개편 방향을 큰 틀에서 지지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수도권 집중이 과도해지면서 비용을 유발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예타 개편이 비수도권 투자를 유인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했으며 "전국의 교통망을 균등하게 발전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통일 경제 시대가 왔을 때 다시 수도권 집중 문제가 심해질 것"이라고 제언했다.
비수도권의 경제성 평가 배점 비율을 5%포인트 낮춰 30∼45%로 설정한 것이 지나치다는 비판도 있었다.
참여연대 정책위원인 김남근 변호사는 이번 개편안이 그간의 지적을 수용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비수도권의 경제성 분석 배점 비율이 50%도 안 된다. 재정 낭비를 막기 위한 고민을 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우려했다.
그는 균형발전 등을 고려해 예타 제도를 개편하기로 한 만큼 앞으로는 예타를 면제하면 안 된다고 밝혔다.
조사기관이 경제성 분석과 종합평가를 일괄 수행하는 방식에서 경제성 분석은 조사기관이 하고 종합평가는 전문가위원회가 하기로 구분한 것이 부작용을 낳지 않도록 잘 운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김 변호사는 "경제성 분석은 참고사항이고 결론은 전문가위원회에서의 정책적 판단이 중심이 되는 방식이라면 재정을 낭비하는 무분별한 사업을 막는다는 예타의 취지가 퇴색할 수 있다"며 이 과정에서 정권의 정무적 판단이 지나치게 강조되거나 부처 이기주의가 작용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