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협상서 미국 ‘소송 철회’ 요구 받아들인 측면도 있어
WTO 가입 15년 흐른 2016년 12월 미국․EU 상대 소송
중국이 ‘시장경제’로서 인정받기 위해 미국과 유럽연합(EU)을 상대로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진행하던 소송을 중간에 중단했다.
로이터통신이 6월17일 보도한 내용을 보면, 세계무역기구 분쟁조정 패널(소위원회) 위원 3명은 중국이 ‘시장경제’를 인정받기 위한 분쟁을 중단했다고 이날 발표했다. 세계무역기구는 6월14일 중국의 중단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 이유에 대해 통신은 이번 분쟁에 정통한 무역관계자의 입을 빌려 “중국이 너무 많이 잃어서 패널이 (이 사안에 대해) 어떻게 추론했는지를 세계가 보기를 원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자신에게 불리한 패널의 보고서가 채택돼 공개되는 것을 중국이 꺼려 소송을 중도 포기하는 방식으로 이를 막았다는 것이다.
세계무역기구 분쟁해결절차는 패널 보고서 채택(1심), 한쪽 당사자가 이에 불복할 경우 상소기구 2심으로 이뤄진다. 중국의 소송 중도포기는 1심 보고서 채택 이전에 이뤄진 것이다.
중국은 세계무역기구 가입 15년이 지난 하루 뒤인 2016년 12월12일 자국산 상품에 부과하는 미국과 유럽연합의 높은 반덤핑 관세율이 부당하다며 중국을 시장경제로 인정하고 반덤핑 관세율을 낮춰야 한다는 내용의 소송을 제기했다.
중국의 소송 중도포기에 따라 미국과 유럽연합은 세계무역기구 다른 회원국의 상품에 적용하는 것보다 중국산 상품에 대해 사안별로 더 높은 반덤핑 관세를 매기는 기존 관행에 상당한 정당성을 확보하게 됐다. 2001년 12월 중국이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며 약속한 ‘가입협약’(accession protocol)에는 ‘비시장경제’(non‐market economy)에서 생산된 상품에 대한 관세를 계산할 때 해당 상품이 속하는 산업의 국내가격이나 비용이 아니라 제3자의 가격이나 비용을 이용할 수 있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소송을 제기할 때만 해도 중국은 승소를 자신했다. 가입협약에 포함된 내용에 따라 가입 15년이 지나면 중국은 자동으로 시장경제로 인정된다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2017년 이번 소송 관련 청문회에서 장샹천 세계무역기구 주재 중국대사는 “중국은 (가입협약에 담긴) 간단하고 분명한 문구를 결코 달리 읽을 수 없다고 믿는다”며 이 문구는 “크리스탈처럼 투명하다”고까지 말했다.
실제로 가입협약에 포함된 문구를 보면 중국처럼 이해할 수도 있다. “중국산 상품을 수입하는 회원국의 국내법 아래에서 중국이 시장경제(market economy)임을 확립하고, 중국의 가입일 당시 수입국의 국내법이 시장경제 기준(market economy criteria)을 담고 있다면 (제3자의 가격을 이용하도록 허용하는) 규정들은 만료된다. 어떤 경우이든(in any event) (제3자 가격 등과 같은 대리가격 이용을 이용하는) 규정들은 가입일로부터 15년 뒤 만료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시장경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가입협약은 물론 세계무역기구 협정들에도 아무런 정의가 없던 게 컸다. 실제로 세계무역기구 협정에서 ‘시장경제’라는 용어가 사용되는 사례는 보조금과상계조치(SCM)협정에서 “시장경제로의 전환(transformation into a market economy)”이라는 표현이 유일하다.
게다가 가입협약에는 반덤핑조사를 받는 상품과 유사한 상품이 생산되는 산업에서 “시장경제 조건들(market economy conditions)”이 우세하다는 것을 중국 수출업자가 입증할 경우 대리가격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문구도 포함돼 있다. ‘시장경제 조건’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가 없는 건 마찬가지인데, 문제는 특정산업에 ‘시장경제 조건’이 우세한지를 따지는 이 문구가 “중국이 시장경제임을 확립한다”는 문구와 같은 뜻이냐는 논란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특정산업에서 시장경제 조건이 우세하다고 해서 중국 전체가 시장경제는 아니지 않느냐는 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미국이나 유럽연합이 중국에서 국영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각종 산업에 주는 보조금이 많은 상황에서 중국산 상품의 가격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이 바로 이런 맥락이다.
게다가 2018년 3월 미국은 지식재산권 보호, 같은해 6월 유럽연합은 강제 기술이전을 주제로 각각 중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모두 이번 시장경제 분쟁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사안들이다. 지식재산권 보호가 미흡하고 기술이전이 계약 당사자 사이의 자발성보다 다른 요인이 작용한다면 시장경제로 보기 어렵다는 근거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합하면, 시장경제 인정을 둘러싼 분쟁에서 패널 보고서 내용이 중국에 매우 불리하게 돌아간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중국의 ‘소송 중단’은 미‐중 무역협상 타결을 위한 중국의 몸짓이라는 해석도 할 수 있다. 협상 과정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시장경제 인정 소송을 철회하라고 중국에 요구했던 터다. 겉으로 이 요구를 들어준 셈이니 트럼프에게 ‘관세 부과가 통했다. 중국이 시장경제 인정 주장을 포기했다’는 식으로 말할 수 있는 거리를 준 셈이다. 이런 측면에서 협상 타결을 통한 미‐중 무역전쟁 ‘미봉’의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고 봐야 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