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화에서 시작된 KT의 적폐
한국 통신산업를 대표하는 KT가 적폐의 온상이 된 이유와 환경에는 다양한 측면이 존재합니다. 첫째, 민영화를 꼽을 수 있습니다. 둘째, 규제산업이라는 산업적 특성입니다. 셋째, 간접고용에 기반한 하청 및 비정규노동자들에게 극심한 노동착취입니다.
민영화 후 낙하산 공화국
KT가 낙하산 천국으로 변해온 과정은 한국 통신 산업의 사유화 과정과 규제산업이라는 특성이 맞물리면서 진행되어 왔습니다. 외국인 지분 49%를 꽉 채운 상태로 ‘주주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고배당을 회사 운영의 1차 목표로 운영해 왔습니다.
규제 산업의 특성을 활용하여 정권은 낙하산을 내려 보내고, KT는 낙하산을 열심히 받아서 방패막이로 활용해 왔습니다. 명목상 사기업이기 때문에 국회와 감사원의 감시망 밖에 있는 한계를 방통위와 미래부의 규제권을 정권의 사적 이익 추구를 위해 사용해 왔던 것입니다.
규제산업의 특성을 활용하여 단 한명의 낙하산 CEO만 내려 보내면 지속적으로 기업을 통제할 수 있는 곳이 KT입니다. KT는 사외이사의 높은 비중으로 모범적 지배구조로 칭송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지난 2015년 최순실의 K스포츠와 미르재단에 후원금을 출연하는 과정에서 KT사외이사들은 아무런 역할을 못했습니다. 현 CEO의 추천으로 선임된 사외이사들에게 독립적인 경영판단을 기대하는 것은 처음부터 환상이었습니다.
KT의 CEO는 사외이사 7명과 사내이사 1명으로 구성된 CEO추천위원회를 통해 재선임 등이 결정됩니다. 황창규 회장은 자신이 선임한 이사들로부터 추천받아 지난 2017년 3월 주주총회에서 3년간 연임이 확정되었습니다. 사실상 자신의 연임을 셀프추천으로 결정한 것입니다.
KT의 이사회 구조를 변경하지 않으면,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낙하산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사회에 이해당사자들을 대표하는 이사들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서울교통공사 방식의 노동자이사와, 통신업이 모든 국민들을 소비자로 한다는 측면에서 소비자들을 대표하는 시민단체 추천 이사가 포함되어야 합니다.
제2의 최순실게이트를 예방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CEO로부터 독립적인 이사가 포함된 이사회로 지배구조를 개편해야 합니다.
경영 목표가 된 고배당과 핵심 수단인 간접고용
OECD 최고 수준의 높은 통신요금, 상장기업 최고 수준의 배당성향,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착취로 이룬 경영성과가 한국통신업을 대표하는 KT와 SK의 본 모습입니다.
상장기업 평균을 훨씬 웃도는 통신업계의 고배당 성향이 KT사유화 이후 발생한 중요한 특징중 하나입니다. 100% 내수 산업에다 49% 외국인 지분을 채운 통신업에서 수출산업을 넘어서는 배당성향은 심각한 국부유출이며, 국민경제의 건전한 성장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민영화 이후 KT의 배당추이(단위 : 억원)
년도 |
2003 |
2005 |
2008 |
2009 |
2012 |
2013 |
2014 |
2015 |
2016 |
당기순이익 |
8,301 |
9,983 |
4,498 |
5,165 |
7,193 |
-602 |
-9,661 |
6,312 |
8,093 |
배당성향 |
50.8% |
63.8% |
50.3% |
94.2% |
67.8% |
적자배당 |
무배당 |
22.1% |
24.2% |
2003년 5505명, 2009년 5992명, 2014년 8304명의 단일기업 국내 기록을 거듭 경신하는 인력퇴출이 발생한 원인도 이익을 내서 고배당을 해줘야 하는 것이 CEO들의 최우선 과제이기 때문입니다. 단기 성과를 가장 확실히 내는 방법은 인력구조조정을 통해 간접고용을 확대하는 것이라는 것이 지난 15년간 KT경영에서 이미 증명되었습니다.
민영화 과정 KT의 대규모 인력구조조정 현황(단위 : 명)
년도 |
1997 |
1998 |
1999 |
2000 |
2001 |
2003 |
2009 |
2014 |
감원 |
1,959 |
3,203 |
9,335 |
1,429 |
1,389 |
5,505 |
5,992 |
8,304 |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착취로 이루어진 통신산업 경영 성과
간접고용 확대를 통한 노동자 쥐어짜기는 통신 산업 이익창출의 핵심적인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고용 없는 성장만을 추구하는 산업은 죄악이라고도 합니다. 국내 통신 산업 중 가장 많은 직접고용을 하는 KT의 2016년 매출액 대비 인건비는 9.9%입니다. 그런데, 국내 1위 무선통신사업자인 SKT의 2016년 매출액 대비 인건비는 3.6%에 불과하며, SKT의 유선 자회사 SKB의 2016년 매출액 대비 인건비는 겨우 4.9%입니다.
프랑스 대표적인 통신사 FT(오렌지 텔레콤)의 매출액 대비 인건비는 12~18%로 평균 15%으로 추산할 수 있습니다. 국내 통신사의 1인당 매출액, 1인당 영업이익이란 이름으로 경영학과 교수와 경영 칼럼리스트들이 SKT 방식으로 인력 운용할 것을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교수와 지식인들이 고용 없는 성장이란 죄악을 확대하라고 연일 나팔을 불어대고 있는 것입니다. IMF조차 한국의 사회양극화는 장기 성장의 큰 걸림돌이라고 경고하는 상황에서 국내 지식인들의 영혼 없는 주장이 통신산업 노동 양극화를 부채질하는 형국입니다.
KT는 한 때 ‘죽음의 기업 KT’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노동통제와 직장 내 괴롭힘이 난무했습니다. 흑자 기업에서는 정리해고를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노동자들을 몰아내기 위해서 ‘경영전략’으로 다양한 직장내 괴롭힘을 시행했습니다.
‘상품판매팀’이란 퇴출조직을 운영했고, ‘CP프로그램’ 이란 강제퇴출을 위한 블랙리스트를 본사차원에서 작성하여 전사적으로 운영했습니다. 지금도 2014년 명퇴거부자들을 대상으로‘업무지원단(CFT)’이란 퇴출조직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동종업계인 SKT에서도 ‘다이렉트 세일즈 팀’이란 사실상 퇴출 조직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노동부 고용형태 공시정보 |
|||
사업체명 |
소속근로자 수(직접고용) |
소속외 근로자 수(간접고용) |
공시년도 |
KT |
32,157 |
21,359 |
2014년 |
" |
23,401 |
3,327 |
2017년 |
SKT |
4,372 |
1,277 |
2014년 |
" |
4,443 |
1,380 |
2017년 |
SKB |
1,590 |
125 |
2014년 |
" |
1,684 |
238 |
2017년 |
LGU+ |
7,169 |
818 |
2014년 |
" |
8,797 |
0 |
2017년 |
간접고용 및 비정규직 노동자의 급속한 확대가 우리 경제에 심각한 위험신호란 것은 이제 노동계 뿐 아니라, 정부와 경영계에서도 원론적으로나마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경영계에서 자발적으로 노동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2014년부터 매년 7월 1일 노동부 홈페이지에 고용형태를 공시하고 있습니다. 눈치가 빠른 분은 위 표에서 KT의 2014년 소속외 근로자 수는 자그마치 21,359명인데, LGU+의 2017년 소속외 근로자 수가 0명인 것에 놀랄 것입니다. 경영계가 제출한 자료를 아무런 검증 없이 노동부는 게시만 하는 현 고용형태 공시제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증거입니다.
그럼에도, 2014년 KT의 소속외 근로자 수는 현실의 상당 부분을 반영했다고 보이며, 이 자료가 간접고용 천국인 통신산업 노동에 실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출발점이라고 판단합니다.
통신산업은 기술발달로 장비가 인력을 급속히 대체하는 측면이 존재하지만, 서비스 산업이란 특성상 불가피하게 인력이 꼭 투입되어야 하는 다양한 영역이 있습니다. 매출액 대비 KT와 SKT/SKB의 직접고용 즉 소속근로자 수를 비교해 볼 때, SKT/SKB의 실질적인 간접고용율은 직접고용의 3~4배는 족히 뛰어 넘을 것입니다. 여기에 통신 산업에 종사하는 열악한 임금의 간접고용 노동자와 조기 퇴직 압박에 시달리는 직접고용 노동자들 모두의 비극의 씨앗이 담겨 있습니다.
새로운 공적통제만이 통신산업의 적폐 청산 가능
경쟁을 가장한 KT, SK, LG 3대 통신재벌의 과점시스템으로 인해 더 이상 ‘양질의 저렴한 통신서비스를 제공한다’는 한국통신 민영화 때 정부가 제시한 청사진은 이미 거짓으로 드러났습니다. 따라서, 통신산업에 대한 공적 통제의 확대가 시급히 요청되며, 이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인수위 역할을 했던 국정기획자문위 조차도 통신3사의 조직적 저항에 무력할 수 밖에 없었던 현실이 통신의 공적통제에 대한 필요성을 드높이고 있습니다.
단기적으로 정부에서 요금 및 노동정책에 적극 개입하여야 하며, ‘보편적 역무 손실 보전금’이란 형식으로 형해화 된 통신의 공공서비스를 확대하여 정보격차가 소득격차로 이어지는 현실을 시급히 바로 잡아야 할 것입니다.
근본적인 정책의 변화로 5G부터 설비 투자를 국가가 중심에 서서 3대 통신 재벌을 비롯한 사업자들의 지분참여를 받아서 망/설비를 관리하는 공기업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 공기업에 통신3사의 이사를 파견 받아서, 공기업 비효율성 논란을 차단할 수도 있습니다.
참여연대는 높은 통신비와 관련하여 수년째 원가공개 소송을 벌이고 있지만, 통신재벌의 비협조와 방통위의 미온적 태도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높은 통신비 논란에 대한 합리적인 출발의 시작이 정확한 원가 공개란 측면에서 5세대 통신 설비부터 다시 공적투자와 공적통제로 가져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이 통신산업의 원가를 정확히 측정할 수 있습니다. 불필요한 중복투자는 결국 국민들의 통신비 부담으로 다가오고, 사실상 과점 상태인 국내 통신 산업에 경쟁이 존재한다는 허상을 만들어주는 논리만 제공할 뿐입니다. 노원구와 같은 아파트 밀집지역 도로 바닥을 보면 KT, SK, LG, 유선방송 사업자의 통신맨홀 덮개 4개가 인접한 곳에서 동시에 발견되는 곳도 있습니다.
실행되지 못했지만, 이석채 전 KT회장이 망 관리를 공동으로 하는 SPC 특수목적법인 설립을 주장한 전례도 있습니다. 오랜 관료 생활과 사기업 CEO의 경험에서 통신산업의 특성상 망의 공적통제가 필요하다고 인정한 반증이라고 판단합니다.
하지만, 집권 민주당의 통신정책을 설계하는 변재일 의원실이 지난 9월 20일 개최한 토론회에서 안정상 민주당 수석전문위원이 주장한 ‘통신설비 공유 확대’ 강화를 위한 정부의 정책적 지원 주장은 본말이 전도된 대책입니다. 현재의 경쟁을 가장한 과점시스템을 용인하자는 것이며, 후발 재벌통신사업자에게 꼭 필요한 외과 수술식 처방을 제공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소위 돈 되는 도시지역은 SK, LG도 자가망을 열심히 깔아 왔습니다.
망산업과 관련된 보편적 공공서비스에 대한 집권 민주당의 입장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KORAIL과 SRT를 다시 통합하자는 것입니다. 2013년 ‘철도 민영화 금지’ 법안을 발의했던 변재일 의원 본인과 민주당의 공공서비스에 대한 태도와도 정반대의 논의가 통신산업에 진행되고 있음에 일면 이유도 있다고 판단합니다.
변재일 의원 본인이 한국통신 민영화 과정에 정통부 기획관리실장과, 차관을 역임했던 것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금이라도 과거의 잘못된 정책적 판단을 수정하는 것이 책임 있는 관료와 정치인의 모습이라고 판단합니다.
통신산업의 국가경쟁력이란 측면에서도 현재의 3사 과점체제를 용인하는 시스템을 혁파해야 합니다. 현재의 과점시스템하에서는 한국에서 혁신적인 IT 유니콘 기업의 출현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대규모 장기투자가 필요한 망사업과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요구되는 서비스분야는 분리해야 합니다. 공적기능이 높은 망을 소유한 통신재벌 3사가 수익성이 높은 서비스 영역까지 지배하겠다는 욕심이 한국 IT산업 발전에 족쇄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차세대 통신망부터 다시 망은 공적영역으로 되돌려야 합니다.
멀어져가는 통신공공성의 한 사례 : 보편적 역무 손실 보전금
2002년 KT민영화 당시에는 보편적 공공서비스로서의 통신에 대한 토론과 접근이 지극히 미미했습니다. 그나마 유일한 것이 ‘보편적 역무 손실 보전금’(시내전화, 공중전화, 도서통신, 선박무선은 KT를 보편적 역무 제공사업자로 지정하고, 서비스 제공과정에서 손실이 발생할 경우 그 손실의 전부 또는 일부를 매출액 300억 원 이상인 사업자가 매출액에 비례하여 분담[전기통신 사업법 제4조]하는 제도입니다.
2002년 제도가 만들어진 후 통신산업의 매출은 몇 배로 늘었지만, 보편적기금은 거의 3분의 1로 줄었습니다. 2003년 손실 보전금이 1,209억원인데, 2015년 손실보전금은 441억원이 산정되었습니다.
공공와이파이 논쟁이 무성할 정도로 무선데이터 중심으로 통신소비 트렌드가 바뀐 현재, 유선전화에 기반해서 보편적 역무의 범위를 제한하고 있는 점과, 경제 성장의 이면에 더욱 확대되는 양극화에도 불구하고, 보편적 역무 손실 보전금이 줄고 있다는 것은 사실상 통신공공성을 포기하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현재 우리 사회의 핵심 과제 중 하나는 소득격차로 인한 양극화를 극복하는 것입니다. 4차 산업혁명 논쟁이 뜨거운 지금 정보격차는 곧바로 소득격차로 이어질 것입니다. 따라서, 통신공공성을 시혜적인 측면에서 소극적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사회양극화 극복의 핵심적인 수단으로 바라보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할 때입니다.
또한, 보편적 역무 손실금 분담 사업자를 기간통신/별정통신 사업자로 제한하여, 통신망을 통하여 막대한 이익을 추구하는 네이버, 카카오와 같은 사업자들에게 사회적 책임에 대한 면죄부를 주는 것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본 글은 잡지 2017년 12월호에 게재되었던 것으로 독자들의 요청에 따라 인터넷신문에 추가로 게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