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기 위해선 부동산 보유세율 높여야
지난해 우리나라의 합계 출산율은 사상 최초로 1명도 되지 않은 0.98명을 기록했다. 통계청의 장래인구 추산에 따르면, 2015년 5101만명에서 2031년에 5296만명으로 정점을 찍은 후, 지속적으로 하강해 2065년에는 1990년대 수준인 4302만명을 기록할 것으로 분석됐다. 인구 정책의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이 추세가 더 빨라질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지난 20년 동안 OECD 국가 중 최고의 자살율과 최저의 출산율이라는 오명을 기록하고 있다. 최고의 자살률과 최저의 출산율만큼 한국 사회가 직면한 현재와 미래의 모습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은 없다. 보다 근본적인 조치가 없을 경우, 국가 소멸의 길을 갈 것이라는 우려가 점점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낮은 출산율은 주거 정책 부재의 반증이다
젊은 부부들이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다양한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지만,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는 보금자리, 즉 주거의 문제다. 안정적인 보금자리가 없는 상태에서 생명을 낳는다는 것은 삶의 위험이 너무 높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에 젊은 부부들은 책임지지 못할 일을 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올해 서울은 전국 어느 곳보다 젊은 연령층이 많이 살고 있지만, 서울의 합계출산율은 0.76명으로 전국 평균의 77%에 불과하며, 2017년의 0.84명 보다 0.6명이나 더 떨어졌다.
서울은 전국에서 울산에 이어 2번째로 높은 가계 평균소득, 전국 최고의 문화적·사회적 인프라와 각종 자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전국 평균보다 출산율이 현저하게 낮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높은 부동산 가격에 기인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서울에서 집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서울 시민이 평균소득을 한 푼도 쓰지 않고 9년을 꼬박 모아야 가능하며, 강남 3구의 주택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20년을 꼬박 모아야 가능하다는 것을 ‘가계소득 대비 주택가격(PIR) 지수’가 잘 보여주고 있다.
한국 사회는 부동산 공화국이자 아파트 공화국이다. 전강수 대구카톨릭대학교 교수가 쓴 ‘부동산 공화국 경제사’에 따르면, 한국 사회가 급성장하고 또 근래에 침체 국면에 접어든 것은 모두 부동산 문제에 기인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산업화시기에 한국 경제가 급성장을 이룬 것은 해방 후 농지개혁의 성공적인 결과이며, 오늘날 우리 경제가 심각한 불황에 접어든 것은 70년대 이후 토지 사유의 양극화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토지 제도의 혁신적 전환 없이는 한국 사회의 희망을 발견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부동산 문제 앞에는 우파도 좌파도 크게 의미가 없다. 복지 체계가 열악한 한국 현실에서 부동산은 개개인의 안정적 생존을 위한 최후의 보루에 가깝기 때문에 너나 할 것 없이 삶의 안전망 확보를 위해 부동산에 뛰어든다. 보수적인 지난 정부에서는 말할 것도 없었지만, 진보·개혁적이라는 문재인 정부에서도 이는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정부 인사에서 부동산으로 인한 파문은 바로 그 증거다.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의 청문회 낙마와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의 사퇴는 부동산 앞에서 개개인들이 얼마나 약한지, 각자도생의 논리에 빠져 있는지를 입증해주고 있다.
법적으로 보자면, 두 사람은 위법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최 후보자와 김 전 대변인은 가지고 있는 자산과 대출로 부동산에 투자를 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위법하지 않은 상황에서 주식에 투자를 하든, 부동산에 투자를 하든, 이건 개인의 자유이며 오히려 자본주의의 미덕에 가깝다. 그것을 문제로 삼는다면 오히려 반시장주의이고 반자본주의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평소 시장만능을 주장하던 보수정당과 보수언론은 그런 투자에 강력하게 문제제기를 해서 해당 후보자를 낙마시키고 대변인을 사퇴시켰다.
법률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해도, 한국 사회에서 법률 위에 있는 것이 국민정서법이다. 한국 사회에서 많은 이들이 자산 획득을 위해 부동산 투자를 하지만, 부동산으로 많은 돈을 버는 것에 대해서는 여론이 싸늘하다. 일종의 이중성이고, 내로남불이다. 니체의 용어를 빌리자면 ‘르쌍티망(rressentiment)이다. 시기와 질투, 부러움이 혼재한 복잡한 감정이 내재하고 있다. 시민들은 부동산에 대해 왜 이렇게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을까.
2016년 통계를 보면, 전국의 주택보급율은 102.6%로 통계상으론 누구나 집을 가질 수 있는 상태이며, 서울의 주택보급율도 96.3%로 거의 100%에 육박하고 있다. 하지만 주택보급율이 아니라 자가소유율을 보면, 전국은 59.9%이고 서울은 45.7%이다. 서울에서는 절반 이상이 자기 집을 가지고 있지 못한 상태인 것이다. 나머지 50%는 누군가가 두 채, 세 채, 또는 십여 채를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폐가이거나 공가라는 것이다. 누군가 부동산 투자 혹은 투기놀이를 하고 있을 때, 누군가는 아픔을 견디며 전세 혹은 월세를 전전해야 하는 현실이 부동산에 대한 시민들의 복잡한 감정을 만들었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시민들은 왜 이렇게 부동산 문제에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을까? 자신도 부동산을 통해 돈을 벌고 싶어 하지만, 타인이 부동산을 통해 돈을 버는 것을 부러워하는 만큼이나 분노하는 것은 부동산이 인간 생존의 필수적 재화이기 때문이다. 타인이 페라리나 람보르기니 같은 최고급 자동차를 가지고 있다면, 부러워하는 감정은 강하지만 분노의 감정이 부동산만큼 크게 일어나지는 않는다. 자동차는 생활에 좀 더 편리한 소비재일 뿐이며, 생활의 필수품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먹을거리, 주택, 교육과 의료와 같은 생활 필수품에 대해 투기를 한다면 사람들은 분노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왜냐하면 이는 개인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생활 필수재에 대한 공공성이 취약하기 때문에 삶이 불안하고 행복감이 매우 낮은 사회가 되어 있다. 생활 필수재를 시장에서 확보하기 위해 전력투구와 이전투구를 하며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2년 동안 공과가 있지만, 가장 취약한 부분 중의 하나가 바로 경제 문제이다. 공정경제, 혁신성장, 소득주도성장의 3박자 경제를 위해 노력한 흔적은 보이지만, 기대했던 ‘제대로 된 성과’는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좋은 취지와 좋은 방향을 가지고 있지만, 의미 있는 성과를 창출하지 못하는 것은 구조적이며 근본적인 원인 진단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든다.
지난 10년, 상위 1%는 평균 3.2채에서 6.7채로 2배 이상 늘어
전 교수에 따르면, 한국 사회는 2007~2016년 사이의 10년 동안 해마다 440~520조원의 부동산 소득이 발생하고 있으며, 이는 GDP 대비 평균 37.1%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다. 부동산 매입에 따른 이자를 뺀 부동산 불로소득은 374조6천억원으로 GDP의 22.9%에 달하는 규모다. 물론 이와 같은 부동산 소득이 전체 국민들에게 골고루 돌아간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 소유지의 65%를 상위 10%가 가지고 있으며, 법인 소유지의 75.2%를 상위 1%가 가지고 있는 현실은 불로소득이 어디로 누구에게로 흘러가는지를 잘 보여준다.
또 2007~2017년 사이의 10년 동안 다주택을 보유한 상위 1%의 주택 수가 평균 3.2채에서 6.7채로 2배 이상 증가했는데, 이명박 정부에서 1.4채가 증가하고, 박근혜 정부에서 2.1채가 증가한 결과다. 이는 지난 10년 동안 다주택자의 주택 사재기가 기승을 부렸다는 이야기이며, 성장의 결실이 소수의 부동산 특권 계층으로 흘러갔음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다.
이처럼 자산과 부동산이 양극화돼 있는 상황에서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가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은 전문가가 아니어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최저임금을 많이 올려도 실질적인 이득의 상당부분은 부동산 소유자에게 흘러갈 것이며, 결국 작은 이익을 놓고 영세 사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간의 갈등만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또 부동산 임대료가 턱없이 높고, 패자부활전이 없는 한국 사회에서 시민들의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다양한 실험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문재인 정부의 초기 16개월 동안 부동산 가격이 26%나 상승했다. 지난 ‘9.13 대책’ 이후 부동산이 진정세를 유지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상승한 가격의 하락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엘리베이터처럼 올라가지만, 내려올 때는 계단으로 내려가는 꼴이다. 26% 오르고, 1~2% 내려간 것을 두고 경제지와 일부 언론에서는 부동산 경기 침체니 경기 하락이니 하면서 위기감을 조성하고 있다. 이들 언론의 눈에는 집을 몇 채씩 가지고 투기한 사람들의 돈벌이와 세금은 걱정되지만, 집 없는 서민들의 슬픔과 근심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부동산과 주거복지 정책의 부재에 대해서는 문제인 정부도 비판을 비켜갈 순 없다. 폭등한 부동산을 그나마 잡은 것은 다행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집 없는 서민들의 슬픔과 근심을 위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물론 노무현 정부에서 추진했던 종합부동산세의 깊은 트라우마가 아직까지 문재인 정부에 남아 있을 것이라는 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종부세를 올리겠다고 하자, 보수언론에서는 융단폭격을 퍼부었고, 결국 정부는 백기를 들다시피 했었다. 문재인 정부의 지난 ‘9.13 대책’은 2016년 당시 0.16%였던 부동산 실효세율을 0.18%로 올리겠다는 일종의 ‘핀셋 증세’였다. 그런데 이는 OECD 평균 부동산 실효세율인 0.39%에 비하면 1/2 수준에 여전히 머물러 있겠다는 이야기에 다름이 아니다.
새로운 전환 위해 보유세 강화가 필요하다
이와 같이 실효적 보유세율이 낮은 상황에서는 아무리 주택 공급을 늘려도 다주택자들의 투기 대상이 될 뿐 자가소유율을 높이기는 어렵다. 지난 2013~2016년까지 4년 동안 서울에서 공급된 주택의 77.6%를 이미 집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사들였으며, 특히 2016년도에는 10채 중 9채를 유주택자들이 구입한 것으로 파악됐다(이규희 의원실, 2018.10.4). 공급이 이루어지는 대로 유주택자들의 투기 대상이 되는 현실에서 주택 공급을 아무리 늘려도 서민들의 자가소유율을 높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고, 제대로 된 주거복지 정책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부동산 실효세율을 높이는 방법 말고는 다른 뾰족한 방법이 없다. 선진국의 경우만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보유세가 턱없이 낮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호주 0.31%, 캐나다 0.87%, 일본 0.57%, 영국 0.78%, 이탈리아 0.62%, 미국 0.71% 등으로 OECD 주요국의 보유세 평균은 0.39%다. 지난 2005년 당시 0.15%에 그쳤던 보유세 실효세율을 2017년까지 1%로 올리겠다는 참여정부의 부동산 장기계획이 제대로 실현되었다면 현재의 부동산 문제는 상당부분 해결됐을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장기적인 전망과 청사진 없이 대증요법으로 일희일비하는 데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공정경제, 혁신성장, 소득주도성장이 성공하기를 진심으로 바라지만, 자산과 부동산의 양극화가 이미 심각해진 상황에서 그와 같은 해법이 과연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든다. 참여정부는 어쨌든 문제의 근본 원인을 진단하고 정면 돌파를 시도하다 좌절했다고 볼 수 있지만, 문재인 정부는 자산 불평등에 대해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설득력 있는 해답을 여전히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가 출산율 0.98라고 볼 수 있다.
지난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시민들의 지혜를 모으고, 함께 해법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지금의 정책 담당자들에게는 참여정부의 종부세 상처가 깊을 수도 있겠지만, 상처를 꺼내놓고 시민들과 함께 치료하는 사회적 과정이 필요하다. 촛불시민들이 보여주었던 것처럼, 시민들의 지혜와 지성은 어떤 엘리트들 못지않게 성숙해 있다. 시민은 참여의 주체일 뿐만 아니라 촛불정부를 ‘함께’ 만드는 정치사회적 주체라는 사실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