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후보 인사청문회 힘 대결은 여기서 출발해야
[이코노미21 조준상 선임기자] 2016년 겨울, 국정농단 사태에 항의하는 촛불시위에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진보라고 여기는 이들에 못지않게 보수라고 생각하는 국민들도 엄청나게 참여했다. 결국 그 힘이 무수한 방해를 뚫고 탄핵이 가결된 근본동력이었음을 인정하는 데 주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일부이지만 여전히 잘못을 부정하는 국민들이 있다. 이들을 대변한다고 하는 정당에 대한 지지율은 여전히 바닥권이다. 대다수 대한민국 국민들은 그때의 사건과 상황을 온전히 제대로 기억하고 있다는 애기다.
그랬던 대한민국은 다시 깊은 ‘진영 논리’의 한 복판으로 빨려들고 있다. 아니 이미 빨려들었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의 인사청문회를 둘러싸고 ‘조국’이 둘로 쪼개졌다는 건조한 현상 묘사가 들린다. 깊은 참호를 판 것도 모자라 넓은 해자를 두르는 모양새다.
후보 지지세력의 방어벽 치기도 눈물겹다. 쉽게 키워낼 수 없는 사람이라며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라거나 ‘완벽한 조국’이라는 논리까지 나오는가 하면, 언론들의 의혹제기를 싸잡아 매도하며 댓글과 검색어 공세를 펴기도 하고, 노무현재단이사장을 포함한 범여권 주요 인사들은 후보 사퇴를 요구하는 청년들의 촛불집회를 향해 자유한국당 배후조종설을 흘리거나, 후보와 가족 사이에 만리장성을 쌓고 후보 개인의 자질과 능력에서 불법이 확인된 게 어디에 있느냐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조국 후보 한 명 때문에 이 사달이 난 것은 아닐 게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얽히고설킨 인과관계와 겁이 켜켜이 쌓여 있을 것이고 실제로 그런 측면이 강하다. 그럼에도 집권 여당과 정부에 51%의 책임이 있다고 총평하는 게 정치적으로 공정할 것이다. 나라를 둘러싼 정세가 ‘구한말 90% 상황’이라는 위중한 진단을 공유하는 시민들이 많기에 더욱 그렇다. 그만큼 슬기롭게 풀어내갈 책임도 정부여당에 있음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그래서다. 경제학에서는 물론 과학 일반에서 말하는 ‘오컴의 면도날’ 명제를 이번 사태에 한 번 적용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사고 절약의 원리’라고 불리는 이 원칙은 어떤 현상을 설명할 때 필요하지 않은 가설을 과감히 잘라내자는 명제다. 쉽게 말해 설명은 간단할수록 좋다는 것이다. 14세기 영국의 철학자인 윌리엄 오브 오컴이 제안한 원리로 현대과학에서 매우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그럼 이번 사태에서 무엇을 잘라내야 할 가설로 삼아야 할까? 모두가 알고 있듯이, 청와대가 그를 민정수석에서 내려앉히고 법무부 장관 후보로 다시 낙점한 배경에는 ‘사법개혁의 적임자’라는 것이다. 최근 조국 후보 스스로도 기자회견에서 고위공직자비리(또는 범죄)수사처가 상징하는 사법개혁에 대한 자신의 구상을 밝히기도 했다. 이미 국회에서도 지난 4월 관련 법안 2건을 신속처리(패스트랙) 안건으로 올라있는 상태다.
백혜련 의원(민주당)과 권은희 의원(바른미래당)이 각각 대표발의한 이들 법안에서 수사 대상인 공직자의 범주에는 대통령, 국회의원, 헌법기관의 정무직 공무원, 광역지방자치단체장, 감사원․국정원 등 주요 권력기관의 3급 이상 공무원, 그리고 이들 고위공직자의 배우자와 직계존비속(대통령의 경우 배우자와 4촌 이내의 친척)을 포함한다. 사법개혁의 상징처럼 돼 있는 이들 법안에 고위공직자만이 아니라 그 가족까지 수사대상 범주로 포함돼 있다는 얘기다.
어쩌다 나라의 상황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됐는지를 따지자면 여당과 야당 모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인과의 고리를 들이댈 것이다. 이 고리를 다 잘라내고 국회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법안의 취지에서 출발하자는 데 합의하는 것, 그게 이번 사태에 접근하는 오컴의 면도날에 해당된다. 불행하게도, 실현 가능성은 낮다. 여당 원내대표는 9월1일 헌법까지 내세우며 가족 청문은 인권침해에 해당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유한국당은 ‘인사청문회에 가족 증인의 출석이 없다면 임명 강행의 요식행위에 들러리 서는 격’이라고 내세웠으니 찬성할 법하지만, 이들 법안을 근거로 삼지 않을 게 뻔하다. 신속처리 안건 상정에 반대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이번 사태에 적용할 수 있는 오컴의 면도날은 ‘후보를 상대로 제기되는 의혹에 연루된 가족이 증인으로 인사청문회에 출석하는 것’이다. 출석 범위에 대해서는 국회에서 합의를 통해 좁힐 수도 있을 것이다. 가족 증인 채택에 반대하며 여당이 내세우는 ‘국민청문회’ 운운은 ‘네들만의 리그’로 치르려는 거냐는 비아냥을 부를 게 뻔하다.
여론의 분포도 이런 비아냥과 친화적이다. ‘장관직 수행에 적합한가?’라는 물음에 지난 8월22~23일 KBS․한국리서치가 19살 이상 전국 남녀 1015명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서 부적합 48%, 적합 18%, 의견 유보 34%였다. 일주일 전 같은 조사에서 적합 42%가 18%로 쪼그라든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은 의견 유보 34%가 갖는 함의다. 다양한 풀이가 가능하다. ‘뭔가 문제는 있는 것 같은데 인사청문회에서 뭐라고 하는지 보자’일 수도, ‘나도 반대의견이지만 찬성하면 자유한국당이 이로운 건 싫다’는 일 수도, ‘이쪽이나 저쪽이나 정권 잡으니 똑같아서 매우 실망이다’일 수도 있다. 아마도 이 모든 것일 게다.
같은 조사는 아니지만 8월30일 한국갤럽 조사에서 적합 27%, 부적합 57%, 무응답․거절 16%로 나왔다. ‘가족 증인 채택은 인권유린’이라며 여당에서 내세우는 국민청문회의 ‘국민’은 도대체 누구냐는 반발이 나오는 건 필연적이다. 불행하게도 참호, 해자에 이어 높은 울타리와 성벽이 쳐질 듯하다. 지금은 ‘구한말 90%’라는 위기감이 높은 현실인데도 말이다. 이웃하는 일본 아베 정부의 ‘헛발질’이 그나마 다행스럽게 다가온다. [이코노미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