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 보험료 인상 동의 큰 진전
연기금은 ‘보편적 소유자’(유니버설 오너)를 지향해야
[이코노미21 조준상 선임기자] [김성주 이사장] 편집자 주 - 지난해 12월24일 정부는 국무회의에서 국민연금 개편안 4가지 방안을 심의․의결했다.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국민연금개혁과 노후소득보장 특별위원회’(연금특위)는 지난해 10월30일부터 6개월 간 관련 논의를 벌였고, 이후 활동 중단과 재개 등의 우여곡절 끝에 지난 8월 말 ‘보험료를 조금 더 내고 연금을 조금 더 받는’ 개혁안을 다수안으로 채택하고 활동을 마감했다. 구체적으로는 정부가 의결한 4가지 방안 가운데 제3안, 즉 보험료율을 2021년부터 현행 9%에서 12%로 5년마다 1%포인트씩 높이고, 소득대체율은 2021년부터 현행 40%에서 45%로 높인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국민연금 적립금 소진 시기는 현행 2057년에서 2063년으로 6년 정도 연기된다. 비록 단일안으로 확정되지 못하고 여러 한계를 안고 있기는 하지만 오랜 논의 끝에 ‘준’(quasi)합의로 도출된 연금특위 다수안을 앞으로 어떻게 적용해나갈지에 대해 지난 9월19일 전주 국민연금공단을 찾아 김성주 이사장에게 물어봤다. 김 이사장은 민주당에서 학습하는 보건복지 분야 정책통으로 통한다. 2016년 5월까지 4년 동안 제19대 국회의원으로서 내내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이었다. 국회의원 임기가 끝난 뒤에는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거쳐 2017년 11월부터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1. 김 이사장의 입에서는 많은 말들이 쏟아졌다. 하고 싶은 말은 더 많은 듯했다. 동시에 신중한 모습이 역력했다. ‘오프 더 레코드’를 심심찮게 걸었다. 이해해달라며 민감한 쟁점에 대한 자신의 솔직한 의견으로 공단 직원들이 고생한 적이 많다고 웃었다. 연금특위 다수안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더 내고 더 받자’고 해도 연금 고갈시기는 6년 늦추는 데 그치는데, 오랜 논의 끝에 나온 것 치고는 좀 빈약한 게 아니냐는 물음이었다.
노동계의 보험료 인상 동의, 상당히 큰 의미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의미가 있다고 봐요. 저부담‐고급여 체계를 적정부담‐적정급여 체계로 바꿔나가는데 복잡한 방정식을 풀어나가는 데서 똑 떨어지는 정답은 없어요. 그래서 사회적 합의와 점진적인 방식이 중요한 거죠. 혜택과 부담의 조화를 이뤄야 하는데, 일단 현재까지 나온 개편의 범위는 현행 9%인 보험료를 12~13%로 높이고 소득대체율을 생애소득의 45~50%에서 보장하자는 거죠. 이번에 다수안은 보험료를 3%포인트 높이고 소득대체율은 45%로 하자는 거예요. 가장 의미가 있는 것은 노동계가 보험료 인상에 동의했다는 겁니다. 경사노위에 참여한 한국노총은 물론 참여하지 않은 민주노총과도 협의했더니 대체로 동의한다는 쪽이었어요. 상당한 의미를 부여해도 괜찮다고 봅니다.”
2. 한국경총이 현행유지를 주장하며 다수안에 반대했는데 어떻게 풀어나갈지 생각을 들어봤다. 노사가 보험료를 절반씩 부담하기 때문에 보험료가 오르면 기업의 부담은 커진다는 점에서 경총의 반대를 이해할 수는 있다면서도 아예 대화의 문을 닫아버리는 것은 곤란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고령화 문제는 한국을 포함해 모든 나라가 겪는 문제예요. 보험료 인상은 불가피하고 낸 만큼 받아가는 구조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해요. 대화의 문을 열고 기업 부담을 줄여줄 수 있는 방안을 함께 찾아야 해요. 연금특위에서 적립되는 퇴직금의 일부를 국민연금 보험료로 돌려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온 것도 이런 맥락에서 바라봐야죠.”
경영자단체, 기업부담 완화방안 찾기 위해 대화 문 열어놔야
경총에 제안하고 노동계가 난색을 나타낸 ‘일부 퇴직금의 국민연금 전환’ 방안은 달마다 월급의 12분의 1인 8.33%를 퇴직적립금으로 기업 외부에 쌓고 있는데, 이중 3%포인트를 국민연금 보험료로 전환하자는 발상이다. 이렇게 하면 보험료율이 12%로 올라 미래세대 부담 경감과 연금재정 안정 효과를 동시에 보지만, 기업의 부담은 더 늘어나지 않고 노동자가 받는 총액(퇴직금+국민연금)은 변함이 없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미래세대의 부담을 줄이고 현세대의 부담을 늘린다는 측면에서 ‘적정부담‐적정급여’ 로드맵 작성 과정에서 다시 제기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3. 김 이사장의 답변에도 적립금 고갈시기를 6년 늦추는 것만으로는 너무 미약한 거 아니냐는 물음을 다시 했다. 좀 더 큰 그림의 답변이 돌아왔다. “우리의 목표는 공적연금만으로 최소한의 노후소득보장을 이루는 겁니다. 그러려면 소득 하위 70%를 대상으로 한 노인들을 위한 기초연금이 강화해야 하죠. 현재 25만~30만원인 기초연금을 더 올리면 노인빈곤율 축소에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무리하게 국민연금으로 사각지대 전체를 포괄하기보다는 재정을 통한 기초연금 강화로 감당할 부분은 해야 합니다.” 당연히 이를 충당하기 위해 조세부담률이 높아져야 할 것이다. 조세기반 확충을 전제로 기초연금을 강화시키고, 국민연금은 소득비례성을 강화시켜 낸 만큼 받아가는 구조로 바꿔나가는 구조개혁방안을 그리고 있는 셈이다.
조세 기반 기초연금 강화+국민연금 소득비례 강화
낸 만큼 받아가는 구조로 바꿔나가기 위해 김 이사장은 여러 가지 방안을 내놨다. 정년연장, 고령자 재취업율 제고, 현행 60살까지인 보험료 납부연령을 올리는 것이 고려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자동안정화장치(automatic stabilizer)’를 꼽았다. 스웨덴, 덴마크 등 서구 선진국에서 적용하고 있는 사례를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여, 김 이사장은 적립금 소진과 관련한 대책 없는 낙관은 안 되지만 근거 없는 비관은 더더욱 해롭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국민연금에 대한 불안감을 키워 사적연금 시장을 키우려는 시도가 있어 왔다. 이런 잘못된 시도를 바로 잡느라 국민연금 기금 운용수익률을 강조하는 역편향도 나타난다고 했다. 올해 6월 말 국민연금 적립금은 696조6천억원이고, 올해 1~6월 말까지 국민연금기금 운용수익률은 7.19%나 됐다. 운용수익금이 46조원이나 된다. 4.5%로 잡고 있는 장기 기대수익률을 한참 웃돈 것이다. 해외주식 투자 수익률이 거의 20%에 육박한 데 크게 힘입었다. 지난해 수익률 -0.92%로 5조9천억원의 손실이 났던 것과 견줘보면 엄청난 개선이다.
그러니 운용수익률을 높이면 보험료를 올리지 않아도 되는 게 아니냐는 ‘우문’이 쏟아진다고 한다. “4.5%인 장기 기대수익률을 5.5%로 1%포인트 높이려면 투자 포트폴리오를 전면 개편해야 합니다. 채권에 50%, 주식 38% 등으로 돼 있는 포트폴리오를 전면 뜯어고쳐야 해요.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자산가격의 변동성에 노출되는 위험이 커질 수밖에 없어요. 운용수익금이 높아질 수도 있지만 역으로 큰 손실을 볼 위험성도 그만큼 커진다는 얘기죠. 기금은 수익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추구해야 합니다. 기금의 장기재정산출의 근거가 되는 장기 기대수익률 4.5%는 이렇게 해서 나온 수치입니다.
고수익의 추구는 반드시 큰 손실의 리스크에 노출되어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국민연금기금은 고수익-고위험을 추구하는 헤지펀드와는 달리 자본시장 전체에 대한 일종의 ‘보편적 소유자’(유니버설 오너)를 지향해야 한다는 김 이사장의 말이다.
김 이사장은“국민연금기금 소진의 공포와 수익률 신화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들은 기금 소진의 공포에서 벗어나야 하지만, 수익률 신화는 이를 부추기는 일부 언론에 한정되지 않고 공단 내부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의 생각은 수익성과 안정성을 유지하며 ‘공공성’을 강화시켜보자는 것이다. ‘사회적 책임투자’(SRI) 펀드를 운용하고는 있지만, 해외와 견줘보면 국민연금의 수준은 이제 걸음마 단계로 보는 게 정확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환경․사회․거버넌스(ESG)를 기준으로 투자단계에서 어느 기업을 배제할 것인지, 어느 기업을 육성할 것인지, 적용대상을 주식을 벗어나 채권과 부동산으로 확대할 것인지, 나아가 국민연금의 전체 자산을 사회적 책임투자 원리에서 운용할 것인지 등 굵직하고 민감한 쟁점들이 수두룩하고 아직 정리가 돼 있지 않다고 했다. 이와 관련된 원칙들을 담은 방안을 지난 6월 기금운용위에 보고하고 9월부터 세부원칙과 방안 마련 작업에 들어가 공청회 등을 거쳐 수립하는 과정에 있다고 덧붙였다. 국민연금은 2006년 9월부터 주식위탁의 한 형태로 기업의 재무적 지표와 함께 환경․사회․거버넌스 등 기업가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비재무적 요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책임투자펀드’를 운용하고 있는데, 2018년 말 기준으로 4조6천억원 규모다. 별도 펀드가 아닌 형태로 이렇게 운용하는 책임투자 자산규모는 26조8천억원 수준이다.
김 이사장은 ‘사회적 책임투자’의 방향과 원칙, 운영방안이 제대로 수립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지난해 7월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가 먼저 도입되었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갈 수밖에요. 공단 내부의 역량, 국내 기업의 ESG 준비 정도 등 주어진 현실에 맞춰 조금씩 전진해야죠.”
4. ‘적게 내고 많이 받는’ 저부담‐고급여 체계는 국민연금보다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이 훨씬 더 심각하다. 공무원연금에 대한 정부 보전 규모는 올해 1조6천억원에서 2023년 3조3천억원으로 2배(106.3%) 이상 늘어난다. 군인연금도 1조5700억원에서 1조9100억원으로 21.6% 늘어난다. 두 직역연금 보전액을 더하면 올해 3조1700억원이 투입되고 5년 뒤 5조2100억원으로 2조원이 넘게 증가한다. 2016년 공무원연금 보험료율을 높였어도 이런 상황이다. 김 이사장은 “민감한 쟁점이네요. 오해를 피하기 위해 좀 자세히 말씀드려야 겠다(웃음)”고 말했다. 네 부분 정도로 줄여 요약한다.
공무원 노후생활 국가지원 당연, 하지만 누적적 급증 않도록 장치 마련해야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군인연금은 제도 간 차이가 크기 때문에 통합은 쉽지 않다고 봅니다. 보험료율도 9%, 18%로 다르고, 소득대체율도 40%, 61.2%로 상당한 차이가 납니다. 평균 가입기간도 16년, 27년으로 큰 차이가 나고요. 장기적 관점에서 논의할 수밖에 없어요.”
“국민연금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국가가 소규모 사업장의 저소득 근로자(사업장 가입자)의 보험료를 지원하는 두루누리 지원 사업, 농어민의 보험료 지원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2020년 예산안에 각각 9600억원, 1900억원 정도 책정돼 있어요. 그리고 출산․양육 등의 공백을 메워주는 크레딧 사업에 일부 재정을 지원합니다. 국민연금에 대한 국가의 재정투입은 이 세 가지 항목입니다.”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 급여 부족액을 충당하기 위한 정부 지원액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이건 고용주로서 국가가 공무원의 노후생활 보장을 위해 지원하고 있는 것에 해당합니다. 그러면 공무원이 아닌 일반 국민의 노후생활 보장을 위해 국가가 얼마나 지원하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국민연금에 지원하는 세 가지 항목 말고, 하위소득 70% 노인을 대상으로 하고 지급하는 기초연금이 포함됩니다. 2020년 예산안에 13조2천억원이 반영돼 있어요. 올해보다 1조7천억원 정도 늘었습니다. 국민연금 지원분 하고 더해 보면 국가가 공무원이 아닌 일반 국민의 노후생활 보장을 위해 투입하는 재원이 현재 14조4천억원 정도 됩니다. 기초연금 강화 등을 통해 앞으로 점점 더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공무원연금과 견줘 국민연금에 대한 국가의 재정투입이 적다는 비판이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독일의 사례도 듭니다. 독일에서 법정 국민연금 급여의 23%(2017년)를 재정에서 투입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건 맞습니다. 문제는 성격이 우리나라로 치면 기초연금에 해당한다는 겁니다. 독일은 우리나라의 기초연금 같은 게 없거든요. 물론, 공무원연금이나 군인연금에 대한 국가 지원이 가속적으로 늘어나는 건 바람직스럽지 않아요. 하지만 공무원이 아닌 일반국민의 노후생활 보장을 위해 국가가 재정을 투입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용주인 국가가 공무원의 노후생활을 위해 재정을 투입하는 건 불가피한 측면이 있습니다.”
5. 공무원연금에 대한 국가 지원의 가속화와 관련해 질문은 자연스레 지나친 연공주의로 기초한 호봉제를 바탕으로 한 공무원 보수체계 문제로 옮겨갔다. 공공부문에 속하는 국민연금공단도 예외는 아니어서다. 인사혁신처에서 6급 이하 공무원에 대해 호봉제를 수정해 직무급제롤 도입하는 방안을 마련한다는 소식도 들려왔지만, 내년 예산에서 공무원 보수가 현 정부 들어 최대폭으로 늘어났다.
“직무와 성과, 역량 중심의 보수체계로 개편돼야 한다는 건 당연합니다. 저희 공단도 2017년 전담 태스크포스팀을 만들어 직무중심 보수체계 개편을 위한 ‘중장기 로드맵’을 수립해 단계적으로 추진 중입니다. 간부직의 직무급 비중을 10%에서 15%로 확대했고, 정규직으로 전환된 직원에 대해서는 직무급 보수체계를 노사 합의로 도입했어요. 비간부직의 보수체계 개편을 위해 직무 조사․분석을 실시하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비간부직의 보수체계 개편은 노사합의를 통해 이뤄져야 제도 정착이 가능하기 때문에 조급하게 서두르지는 않고 있어요.” (사진=이코노미21) [이코노미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