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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대응 역행하는 유럽중앙은행의 양적완화(QE)
기후변화 대응 역행하는 유럽중앙은행의 양적완화(QE)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9.09.26 16: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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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2018 매입 기업채권의 63% 탄소집약 업종에 집중
자산불평등 심화 비판도 커져…양적완화 재개 속 우려 목소리 커져

[이코노미21 조준상 선임기자] 유럽중앙은행(ECB)이 지난해 12월 종료한 양적완화(QE)를 오는 11월부터 10개월 만에 재개하기로 결정하면서 이 결정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자산불평등을 더 심화시키는 부작용 말고도 유럽연합의 기후변화 정책과 정면으로 어긋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지난 9월12일 양적완화 재개를 결정한 유럽중앙은행 기자회견 장면, 사진: ECB
지난 9월12일 양적완화 재개를 결정한 유럽중앙은행 기자회견 장면.
사진: ECB

공정․민주․지속가능 경제를 지원하는 통화시스템을 목표로 하는 비영리 연구기관인 ‘포지티브 머니 유럽’과 ‘경제개혁을 위한 베블렌연구소’가 함께 연구해 최근 발표한 보고서 ‘유럽연합의 기후정책에 부합하는 통화정책 설정’을 보면, 2016~2018년 유럽중앙은행은 282개 기업이 발행한 1538개 자산을 사들였는데 63%가 탄소집약적인 화석연료 추출, 자동차 제조, 전력 생산과 같은 탄소집약적 업종에 집중됐다.

유럽중앙은행의 양적완화는 2015년 3월 시작돼 지난해 12월 종료됐는데, 네 가지 프로그램을 통해 2조6천억 유로(약 3414조원) 어치의 자산을 사들였다. 기업부문매입프로그램(CSPP), 공적부문매입프로그램(PSPp), 자산담보증권매입프로그램(ABSPP), 상환청구가능채권매입프로그램(CBPP)이 그것이다. 보고서가 분석한 프로그램은 2016년 6월부터 시작된 CSPP인데 기업이 발행한 회사채 등 매입 규모는 1780억 유로(약 233조73000억원)이다. CSPP는 투자등급 AAA와 BBB- 사이의 채권이었고, 금융기관 발행의 채권은 매입 대상에서 제외됐다.

보고서는 CSPP와 함께 기업 채권 시장이 활성화했지만, 탄소 배출이 적은 철도 등 궤도기반 대중교통 부문은 CSPP로부터 거의 혜택을 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CSPP는 유로존 나라들에서 지속가능한 교통에 대한 투자에서 잃어버린 기회”라는 게 보고서의 결론이다.

2025년까지 석탄화력 발전 제로화 정책에 따라
올해 폐쇄되는 영국의 피들러 페리 화력발전소.
사진: 위키피디아

보고서는 CSPP는 양적완화의 일부일 뿐이지만, 환경 관련 비정부기구, 학계, 유럽의회 의원들, 유럽중앙은행 이사회 자체 안에서 심각한 비판을 받아왔다고 지적했다. 10월 말로 임기가 끝나는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 총재는 2018년 7월9일 CSPP가 유럽연합의 기후변화 대응에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유럽의회 의원들의 비판적 물음에 대해 “내가 알기로, 우리는 양적완화의 기후변화 효과에 대한 분석을 갖고 있지 않거나, 유럽중앙은행의 프로그램에서 기후변화를 감안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나는 이것을 살펴볼 것이며 그 효과가 무엇인지 볼 것이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와 관련된 연구는 유럽중앙은행에서 나온 적이 없다고 보고서는 꼬집었다.

유럽중앙은행의 양적완화 재개 결정 이전에 나온 보고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몇 가지 제안을 하고 있다. 적어도 2020년 1월부터 CSPP에 따라 매입된 채권의 만기가 돌아올 경우 재투자(차환)하는 자격요건의 하나로 해당 채권 발행기업의 탄소발자국(carbon footprint) 공시를 의무화시키고, 탄소발자국 평가를 통합하지 않은 신용평가회사를 유럽중앙은행이 이용하지 않는 것 등이다.

유럽중앙은행의 양적완화 재개에 대해 자산 불평등 심화라는 부작용을 낳는다는 비판도 계속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영국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은 2018년 3월 발행한 보고서 ‘2008~2014년 영국에서 통화정책 완화의 분배효과’에서 영국 가구 중 하위 20%는 양적완화를 통해 이 기간 동안 3천 파운드(약 445만원)의 부가 증가한 반면, 상위 10% 가구의 부는 35만 파운드(약 5억1860만원) 급증했다고 지적했다.

마리오 드라기 총재에 이어 11월부터 유럽중앙은행을 이끌 예정인 크리스틴 라가르드 후임총재(전 국제통화기금 총재)는 드라기의 양적완화와 통화정책을 별다른 수정없이 그대로 유지하면서 지속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드라기 총재는 지난 9월12일 금리 인상 전까지 11월부터 매월 200억 유로 규모의 국채, 회사채 등의 자산을 무기한으로 사들이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계기로 유럽연합 안에서는 독일과 네덜란드 등 경상수지 흑자국의 균형예산 집착이 많은 부작용을 낳아온 양적완화를 유럽중앙은행이 재개하기로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줬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유럽연합 차원의 적극적 재정정책만이 목적은 달성하지 못한 채 부작용만을 낳고 있는 양적완화 재개 등 비통상적인 통화정책의 지속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것이다. [이코노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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