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21] [김진희] 여름을 재촉하는 단비가 내렸다. 인간의 감탄과 환호 없이도 그들만의 봄은 더 풍요로웠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상을 뒤덮은 순간에도 아랑곳없이 흐드러지게 피운 하얀 꽃들은 흩날리며 잎을 떨구었다. 2020년 봄은 프레임 속 한 폭의 그림을 감상하듯 그렇게 지나가고 있다.
세계인의 축제인 2020년 동경 올림픽도 연기됐다. 이렇게 코로나19 팬데믹은 고도의 과학기술 사회를 향하는 세계 사회의 질서를 흔들고 있다. 세계가 연일 누적 사망자 급증으로 패닉 상태에 있지만 사망자 수를 조작해서라도 올림픽을 강행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이 거대한 재앙의 실체에 여전히 눈감고 싶은 모양이다. 중국 다음의 재앙의 진앙지였던 우리나라도 한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급박했던 안개 속을 지나 겨우 한숨 돌렸다. 그러나 유럽과 미국 등 나라 밖의 심각한 사정은 우리만 홀로 자유로울 수 없는 세상임을 확인시킨다.
코로나19는 변화의 촉매, 드러난 이슈들
망각의 동물인 탓일까? 인간은 위기가 닥치면 눈앞의 문제에만 집중한다. 코로나 충격은 불과 몇 달 전의 관심사조차 까맣게 잊게 했다. 코로나 사태 이전 우리 사회를 달군 이슈들을 다시 소환해보자. 플랫폼, 디지털 혁명, 줄어드는 일자리, 노동이 필요 없어져가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어떻게 살아갈까 고민했던가? 근심어린 시선으로 미래 사회를 바라보던 우리 사회의 모습을 코로나 사태가 일순간에 덮어버렸다. 그리고 근심할 기회도 시간도 없이 그 이슈들은 어느새 현실로 고스란히 옮겨가고 있다.
전 세계 사망자가 이미 15만 명을 넘어섰다. 감염증이 극복되더라도 인류의 삶에 큰 변화가 올 것이라는 예측들이 무성하다. 인류는 코로나 전(BC: Before Corona)과 후(AC: After Corona)가 구분될 정도의 변화를 맞게 될 것이라고 한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코로나19로 세계 질서가 바뀔 것이며, 자유 질서가 가고 과거의 성곽 도시(walled city)가 다시 도래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반면 미래학자 ‘짐 데이터’ 교수는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면서 “한 가지 미래만을 계획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현명하지 못한 도박이며 어떤 미래가 펼쳐지든지 대응할 수 있는 정책을 고안해내는 것이 당신의 의무다.”라고 말했다(중앙일보, 2020.04.13). 그러면서 그는 코로나19로 바뀔 세상이 어떻게 펼쳐지더라도 한국이 해야 할 ‘3가지 도전’을 주문했다. 첫째는 이제 더 이상 선진국을 따라가지 말고 스스로 선도 국가가 될 것, 둘째는 지금껏 한국을 발전시켜온 경제와 정치 논리가 미래에 더는 통하지 않을 것이니 21세기 한국에 어울리는 새로운 길을 찾는데 앞장설 것, 셋째는 더는 기존 동맹에만 의지하지 말고 외교 관계를 다극화할 것을 주문했다.
급변하는 기술혁명 시대의 새로운 이슈들은 변화를 감당해갈 우리의 문제다.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자연스럽게 표면화되고 있는 주요 이슈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노동의 형태를 근본적으로 바꿔놓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기술혁명과 함께 광범위하게 요구되는 개인정보 이용 문제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의 복잡하고 예민한 문제가 공론의 장으로 이끌려 나왔다. 셋째, 소비 행태의 온라인 비대면화로의 급진적인 이행이 촉진되고 있다. 사실 이런 이슈들은 생산성과 효율성 중심의 자본주의 생산 방식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결국 과학기술에 종속되어 미래 사회의 조력자로 전락하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에서 나왔다. 그 예측 시나리오들이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갑자기 눈앞 현실로 순간 이동한 것이다.
노동 형태의 변화와 함께 위협받는 노동자 삶
먼저 노동의 변화부터 살펴보자. 노동은 예측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기술의 발전 방향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우려로 시작한 재택근무는 현재 실시 중이거나 실시할 계획이 있다는 기업의 비율이 40%를 넘었다(자료, 사람인). 사실 자본주의 경제는 노동자를 작업장으로 모아놓는 일부터 시작했다. 같은 장소에 모여 함께 일하는 것이 당연한 듯 보이지만 실은 효율적 작업 환경 구축의 필요에서 산업구조의 대대적 개편을 통해 이뤄낸 획기적 결과였다. 그 과정에서 농촌에서 도시로 이동해야 했던 수많은 농민들의 희생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였음을 당시의 생생한 자료들이 말해준다.
산업혁명기 전후 인클로저(enclosure) 운동과 함께 밀려난 농민들을 공장이라는 곳에 모아 일을 시키면서 시작된 전형적인 노동 통제 방식은 지금까지도 노동법상 사용종속성을 규명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이후 산업사회가 고도화되면서 고정된 시간과 고정된 장소로부터 분리된 형태로 급속히 이행되었다. 재량 근로, 선택 근로, 탄력적 근로 등 유연적 노동 형태에서부터 비용 절감 명목의 아웃소싱이 본격화되면서 도급·용역·하청 등과 같이 상당한 형태 변화를 거치게 된다. 사업장과 노동 현장을 완전히 분리한 최근의 플랫폼 노동으로까지 변화는 혁명적 수준이다.
사업주와 노동자가 직접 대면해 노동했던 전형적인 방식의 사용종속 관계에서 점차 이탈해가면서 노동자성 여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공장제 생산방식에서 채택했던 전형적인 통제방식이 느슨해지면서 사용종속 관계도 모호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보호체계가 뒷받침되지 못한 효율성 중심의 이런 형태 변화는 노동자 보호체계를 무너뜨리면서 노동소외를 가속화시키는가 하면, 양산되는 플랫폼 노동과 같은 유사노동자들에서 보듯이 노동자의 생존권까지 위협하고 있다. 이 모든 변화는 기술의 발전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개인정보의 활용, 안전인가 사생활 보호인가
기술이 인간 사회를 통제하게 될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개인정보 문제에 대한 대중들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올해 초 국회가 정보3법(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법, 신용정보법)을 통과시킬 때만 해도 개인정보의 활용에 대한 문제는 대중적 관심을 받지 못했다. 사실 이런 우려는 2019년 산업통상자원부가 유전자 검사 항목 확대와 영리 유전자 검사 연구 사업을 승인한데 이어 보건복지부가 검사 항목을 확대한 유전자 인증제 시범사업을, 그리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임상 사용 평가가 완료되지 않은 의료기기를 원격의료에 활용하는 사업을 허가한 시점으로 거슬러간다. 국민의 유전자 정보와 질병 정보가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영리 기업에 흘러들어 많은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이는 국가생명윤리위원회의 결정과 역할에도 반한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이제 우려가 급속하게 현실로 옮겨가고 있다.
코로나 감염 의심 환자들의 이동 경로를 역학 추적하는 과정에서 개인들은 사생활 정보를 제공해야 했으며, 그 개인정보 중의 일부가 일반에게 공개하게 되면서 개인정보의 노출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한 기고문에서 코로나 위기를 계기로 개인의 정보가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의 위험성을 경고했다(Financial Times, 2020.3.20).
사실 정보의 활용은 기술발전과 함께 요구되는 필연적인 것이라서 정보의 활용과 사생활 보호 중 어느 쪽을 우선시할 것인지 쉽게 결정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유발 하라리는 안전을 위해 편리함을 택할 것인가, 사생활을 택할 것인가의 기로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선택할 문제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지금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맞서기 위해 이미 여러 정부들이 새로운 감시 도구를 동원한 만큼 글로벌 연대와 시민 역량 강화로 문제를 해결해가야 한다고 말한다.
중국의 감시체계는 물론 모국인 이스라엘에서도 테러리스트를 추적하는 정보기관의 감시 기술을 감염자를 찾아내는 데 동원하려다 의회가 거부하자 네타냐후 총리가 긴급조치 명령으로 이를 무시해버린 사례를 통해 심각성을 알렸다. 게다가 한번 실행된 통제는 역사적으로 봐도 돌이키기 어려운 속성이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차원에서 정보를 투명하게 공유하는 것, 국제적 연대를 통한 시민 역량을 강화함으로써 신뢰를 구축해 공익을 실현하는 것이 위기를 극복할 유일한 길이라는 것이다.
비대면 온라인 소비행태로의 산업구조의 변화
코로나 사태는 비대면 온라인 소비행태로의 급격한 변화도 촉진하고 있다.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운동량을 획기적으로 줄이고도 교류의 양은 무한히 확장해 왔다. 가만히 집에 앉아서 지구촌 곳곳의 사람들과 교류하는가 하면, 휴대폰으로 모든 것을 예약하고 구매할 수 있으며, 서비스까지 가능해졌다. 그러나 인간은 서로 마주 대면하고 교류하며 공감하는 즐거움을 가진 존재다. 교류해야 인간의 서사가 형성되고 얘깃거리가 나오게 되며 온라인 활동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은 이런 자연스런 현상마저 앗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서로 거리를 두고 때론 피하고 외면해야 한다. 물론 전염력을 떨어뜨리기 위해 필요한 당장의 조치이지만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결국 사람들 간의 교류가 어색해지고 개인들은 각각의 케이지 안으로 숨어들어 오직 온라인으로 소통하고 사물인터넷(IoT)으로 움직이게 되는 상황까지 가능해진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게임과 영상물 업체가 상대적으로 경기가 좋았다는 사실은 점차 온라인을 통한 사업이 활성화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디지털 혁명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의미일까? 그렇지 않다. 디지털 혁명은 효율성을 기반으로 편리함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총론이다. 총론을 실현할 각론의 요인들이 있다. 바로 속도, 타협, 절충의 묘미이다.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그저 밀어붙일 일이 아니라 기존 산업 종사자들에 대한 출구 전략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즉, 속도를 다소 늦춘다거나 새로운 시대를 살아갈 산업 기반을 구축하는 일 등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많다. 여기서 속도, 타협, 절충은 총론을 이끌 중요한 각론의 요인들이다. 거대한 흐름이란 주어진 조건이 아니라 단기적 과제들의 축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는다.
급격한 변화, 무엇을 고민해야 하나
이처럼 노동의 형태 변화, 달라지는 소비패턴, 기술의 실용화·가속화에 따른 개인 정보와 사생활 정보의 관리 문제 등은 모두 기존의 패러다임을 크게 변화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변화는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교류하고 대면하는 방식에서 고립의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온라인 방식으로 연결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개인정보를 활용해야 하고, 결국 이것이 개개인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더하고 있다.
물론 이런 이슈들에 관한 논란과 논쟁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동안의 논란이 아직 현실화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진 가상의 시나리오에 가까웠다면 코로나 국면은 이를 현실의 것으로 앞당기는 계기를 만들었다. 자본주의가 됐든 4차 산업혁명이 됐든 우리의 관심사는, 그리고 우리의 걱정은 ‘우리의 삶이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라는 데 있다. 유발 하라리의 말처럼 코로나 사태는 시민권과 관련한 중요한 시험이며, 인류는 선택을 해야 하는 시점에 놓여 있다. 분열의 길을 갈 것인가 글로벌 연대의 길을 택할 것인가,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세계 사회가 떠들썩하다. 주식시장이 무너지고 채권금리가 오른다며 세계경제를 걱정한다. 그러나 이는 결과로 드러나는 일부 현상에 불과하다. 우리가 먹거리에 관심을 갖는다고 해서 먹거리만 해결하도록 놔두지 않는다는 유발 하라리의 말처럼 현재의 위기는 결과적 상황이다. 환경 문제와 불평등 구조 등 따라오는 상황들을 고려하지 않고 당장 드러난 문제에만 집중할 때, 이런 결정의 후과는 고스란히 미래의 큰 재앙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인류의 안전한 삶이다. 우리는 과연 이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지향점을 가져야 할까, 이 부분을 고민할 때다. 기술의 편리함 뒤에 따라오는 개인정보·사생활 침해라든가 전체주의적 통제사회로의 이행 가능성도 지금과 같은 위기 시에 놓치기 쉬운 문제다. 소비패턴의 편리함 뒤에 따라오는 노동시장의 개편과 경제위축 같은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당장의 소비 능력(먹고사는 문제)만 생각하면 재난이 끝남과 동시 원래대로 회귀될 것이니 재난의 해결에만 총력을 기울이면 그만이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는 기존의 사이클에서 벗어나려는 변화의 추동력을 더욱 가속화시켰다. 눈앞의 단기적 문제만 보고서는 5년 후, 아니 2년 후의 문제조차 해결할 수 없게 된다. 예를 들어 개인정보의 문제는 우리의 삶과 직접적으로 무관한 것일까? 눈앞의 생존 문제는 아니지만 장기적으로는 더욱 혹독하게 우리를 위협할 수 있는 요인들이다. 개인정보와 건강권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왜 우리는 하나만 선택해왔는가를 고민한 적이 별로 없다.
협력적 연대를 통한 경쟁 완화가 답이다!
우리는 살면서 늘 선택을 강요당한다. 하나의 가치를 선택해 집중하면 시급한 문제들을 더 빨리 해결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개발독재 시대에도 그 방법이 주효했다. 여러 문제를 고려해 병행하면 시간이 걸리고 원하는 결과가 쉬이 나오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효율적인 듯 보이는 선택과 집중 전략은 언젠가 불균형 문제를 야기하고, 뒤늦게 이를 조정해 가기 어렵게 된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는 우리의 의지에 달렸다. 물론 경쟁적인 구도에서 두 개의 가치를 병행해 실현하기는 어렵다. 유발 하라리가 국제적인 연대가 필요하다고 말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서로 연대하지 않으면 경쟁을 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류는 항상 시간에 쫓기며 살아왔다. 그러나 보니,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에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두려워한다. 변화의 속도는 남이 정해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정하면 된다. 다른 모든 문제들은 스스로 결정하려 하면서 왜 속도에 대해서는 불가항력이라고 말하는가. 속도에 대한 강박은 경쟁적 상황에서 나온다. 경쟁하지 않으면 속도에서 자유롭다. 그러려면 글로벌 연대가 답이다. 우리나라가 코로나 사태를 통제 가능할 정도로 해결하고서도 통제 불능 상태인 미국과 유럽 등의 국제 사회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이미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있지 않은가?
본 글은 복지국가소사이어티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