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2023년 이후 수입을 하지 않겠다는 것
서구 사회의 러시아 제재 별로 효과적이지 않아
원유가격이 가격상한보다 높으면 해상운송 보험 못들게
가격상한제, 정치적 선동 구호로 전락할 가능성 매우 높아
[이코노미21 양영빈] 미국 재무부 장관 옐런이 한미재무장관 회의에서 러시아 원유 가격상한제 실시에 동참할 것을 주장했다. 옐런은 이미 지난주 7월 16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G20 회의에서도 러시아 원유 가격상한제가 매우 강력한 도구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의장국 인도네시아 재무부 장관인 스리 물랴니의 핀잔만 들었다. 스리 물랴니 장관은 에너지 문제는 공급측의 문제이며 가격상한제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G20은 러시아-우크라이나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공동성명을 채택하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서구 사회는 바로 러시아산 원유 수입 금지를 발표했다. 캐나다가 먼저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안 하겠다고 천명했으며 영국이 뒤를 이었다. 문제는 이러한 발표들의 실효성에 있었다. 캐나다는 전통적으로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한 적이 없었고 영국은 2022년 말까지는 수입을 하고 그 이후 수입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 보았을 때는 강력한 제재 조치처럼 보였지만 내면의 실상을 보면 제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전쟁 이후 러시아 루블화가 브라질 레알화에 이어 달러화 대비 절상된 사실만 보더라도 서구 사회의 제재가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옐런이 주장하는 가격상한제는 러-우 전쟁 이후 서구 사회가 러시아에 대해 취했던 스위프트 제외, 러시아산 원유 금수 등의 제재조치의 효과가 생각보다 신통치 않았기 때문에 나온 새로운 제재 방식이다. 러시아산 원유가 필요한 현실을 인정하는 대신에 가격상한을 두자는 발상이다. 러시아의 원유 생산 비용은 배럴당 30~40 달러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생산비용을 조금 넘는 범위(40~60 달러 사이) 내에서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가격상한제를 실시하면 러시아는 원유 수출을 하고 서구 사회는 필요한 원유를 수입하고 동시에 러시아의 수입을 최소화할 수 있는 여러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논리이다.
가겨상한제를 보장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해상운송 보험에 대한 제한을 두자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러시아산 원유를 수출할 때 해상운송 보험을 들게 되는데 이 때 원유 가격이 가격상한보다 높으면 해상운송 보험을 들 수 없게 하자는 방법이다. 현재 전세계 해상운송 보험의 90% 이상을 런던에 소재한 국제선주상호보험조합(International Group of P&I Clubs)이 관장하고 있다. 서구 사회의 강력한 영향권 아래 있는 보험회사를 이용해 가격상한 이상의 원유에 대해서 보험을 들지 못하게 함으로써 가격상한제가 안정적으로 작동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지 못하자 옐런은 미국의 의견을 잘 따르는 G7으로 눈을 돌려 열심히 가격상한제를 설파 중이다.
가격상한제의 문제점으로 크게 네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러시아나 중국이 국가 단위의 보험사를 만들어 개입하면 효과가 크게 감소한다. 실제로 러시아, 중국은 자국의 보험사를 만들거나 키워서 이 문제에 대응하고 있다. 해상운송보험에 대한 제한이 생각보다 쉽지 않음을 의미한다. 러시아와 중국의 자체 해상운송보험까지 막으려면 세컨더리 제재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미 미국은 가격상한제를 어긴 나라에 대해 별도 제재를 부과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 해상운송보험 제재가 강력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예상할 수 있다.
둘째, 해상운송보험에 대한 제재가 완벽하게 이루어져 러시아의 원유 수출가격이 40~60 달러 선에서 형성되더라도 다양한 우회경로가 존재한다. 러시아가 인도에 가격상한 아래에서 원유 수출을 할 때 러시아의 또다른 수출품인 무기 값을 평소보다 높여서 팔 수 있는 측면 보상이 가능하다.
셋째, OPEC은 전통적으로 가격상한제를 상당히 꺼려한다. 최근 OPEC은 중동지역 산유국 이외에 러시아 등을 끌어들인 OPEC+로 한단계 업그레이드되면서 OPEC+가 원유시장 뿐만 아니라 유엔안보리에서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예멘 반군을 공격하면서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해 유엔안보리에서 사우디에 대한 제재를 검토했을 때 거부권을 행사한 나라가 러시아였다. OPEC+의 분위기나 최근 바이든 대통령과 사우디 왕세자 회담을 보면 국가 지도자간 친숙함의 정도가 매우 큰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넷째, 가격상한제의 목표는 러시아의 수입을 줄이고 세계는 원하는 원유를 확보하는 것인데 러시아가 아예 감산을 시도할 수 있다. 일종의 치킨 게임에 돌입하는 것이다. 원유/에너지 전문가인 아나스 알하지는 이러한 상황을 두 사람이 서로의 손가락을 물고 있는 것에 비유한다. 손가락 물기 게임에서는 먼저 비명을 지르는 쪽이 진다. 고통이 왔을 때 누가 더 잘 참아낼 수 있느냐에 게임의 승패가 달려 있다. 현재 분위기로는 유럽은 고통의 역치 값이 매우 낮은 것으로 보인다. EU에서 가스 소비를 15%로 줄여 독일의 가스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자는 권고를 했을 때 스페인, 그리스, 포르투갈이 바로 반발한 것을 보면 치킨게임의 승자는 러시아가 될 확률이 높다.
가격상한제는 역사적으로 성공한 사례가 거의 없는 정책이다. 또한 러시아산 원유 가격상한제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중국, 인도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지금까지의 러시아 제재 조치의 결과 인도, 중국이 할인된 러시아산 원유를 수입해서 유럽과 아시아에 되파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가격상한제라는 새로운 정책도 이전 제재와 비슷한 운명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의 수입을 줄여 전쟁 자금 충당을 줄이는 것이 목표라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수요 공급의 원칙에 기대는 수밖에 없다.
원유 가격을 낮추는 것은 수요를 줄이거나 공급을 늘려서 해결할 수 있다. 수요를 줄이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관세 부과다. 관세를 부과하면 러시아로 부가 이전됨이 없이 수요를 줄일 수 있게 된다. 공급을 늘리는 것은 생산설비 투자가 필요한데 미국이나 EU 국가들이 친환경 정책에 경도돼어 있기 때문에 증산은 좀 어려워 보인다. 가격상한제의 최대 단점은 수요를 감소시키지도 못하고 공급을 늘리지도 못한다는 점이다. 가격상한제는 실현 가능성이 매우 불투명한 실제로는 정치적 선동 구호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정책이다. [이코노미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