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 관세는 모든 수입품을 대상으로 해 효과 달라
트럼프의 보편 관세는 무역수지 개선을 기대한 정책
보편 관세, 약달러 아닌 강달러로 귀결될 가능성 높아
[이코노미21 양영빈] 트럼프 미국 대통령 후보는 여러 언론 인터뷰를 통해 그가 집권하게 되면 보편 관세를 현행 관세에서 10%를 추가로 더 올릴 것을 거듭 이야기했다. 현재 미국의 해외 수입품에 대한 평균 관세는 3.3%이므로 트럼프의 보편 관세가 실행된다면 관세는 13.3%가 될 것이다. 물론 보편 관세가 아직은 공약으로까지 나온 것은 아니지만 트럼프 후보가 여러 번 강조한 것으로 보아 그가 당선되면 보편 관세를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보편 관세는 중국 전기자동차, 태양전지 등에 100% 관세를 부과하는 것과 같은 양 국가 간의 교역 상품에 관세가 아닌 모든 국가로부터 수입되는 물품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그 효과가 많이 다르다. 보편 관세는 2차대전 직전 각국이 서로 경쟁적으로 자국 통화를 평가절하하고 무역장벽을 쌓았던 시기에 일반적인 무역정책이었다. 다음 내용은 국제무역 전문가인 Richard Baldwin 교수의 글을 많이 참조했다.
참고: https://www.linkedin.com/pulse/why-trumps-10-baseline-tariff-fail-richard-baldwin-cboae
https://www.linkedin.com/pulse/trumps-proposed-tariffs-doubling-down-failure-richard-baldwin-echne/
닉슨의 금태환 정지와 보편 관세 10% 추가
2차대전 이후 보편 관세가 사용된 적은 지극히 드물다. 1971년 8월 15일 닉슨 행정부는 달러의 금태환 정지를 선언하는데 이때 2차대전 이후 처음으로 보편 관세도 함께 등장했다. 당시 닉슨 행정부는 모든 수입품에 대해 추가로 보편 관세를 10% 올렸다.
아래 그림의 A 기간 동안 닉슨 행정부는 무역수지 적자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보편 관세 정책을 폈다. 비록 달러 금태환을 정지했지만 브레튼우즈 체제(고정환율제)로의 귀환은 여전한 바람이었다. 브레튼우즈 체제를 유지하면서 늘어나는 무역수지 적자를 해소하기 위한 무역정책으로 보편 관세를 들고 나온 것이다.
그러나 A 시기를 보면 닉슨 행정부의 정책 의도와는 달리 브레튼우즈 체제는 매우 불안했으며 시장에서는 여전히 엔화, 마르크화 환율이 달러 대비 큰 폭으로(10% 전후) 절상 중이었다. 시장의 달러화 절하 움직임이 커지자 고정환율제(브레튼우즈 체제)를 유지하면서 무역수지 적자를 해소하고자 했던 닉슨 행정부의 보편 관세는 1971년 12월 20일에 폐기됐으며 불과 4개월 동안만 유효했다.
같은 해 12월 18일 스미소니언 박물관에서 개최된 10개국 재무장간 회의에서는 종전의 금 1온스당 35달러를 38.02달러로 올리는 것을 합의한다. 그러나 이러한 합의는 매우 어정쩡한 합의였으며 1년 후 1973년 각국의 통화는 결국은 변동환율제의 길을 걷게 됐다.
1973년 직후의 엔화, 마르크화 환율의 움직임에서 볼 수 있듯이 변동환율제의 정착은 달러의 절하를 더욱 가속화 했다. 엔화, 마르크화의 절상은 곧 달러화의 절하를 의미한다.
브레튼우즈 체제하에서 금태환을 보증했던 달러는 자기 체급에 맞지 않게 상당히 고평가된 상태였다. 브레튼우즈 체제가 붕괴하고 변동환율제가 도입되면서 달러는 자기 체급에 맞는 상태를 찾아가기 시작한다. 1978년 하반기에는 1971년 기준으로 엔화, 마르크화 모두에 대해 달러는 50% 절하된다.
1971년 8월부터 12월까지 4개월간 단명했던 보편 관세 10% 추가의 목표는 브레튼우즈 체제를 유지하면서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를 개선하는 것이었다. 보편 관세 추가는 다른 모든 것이 동일하다면 미국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와 함께 새롭게 등장한 변동환율제가 미국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역할을 제대로 해줬다. 1971년 12월에 달러는 엔화, 마르크화 대비 10% 이상 절하됐으며 이것은 이미 10% 보편 관세의 폭을 넘어 선 상태였다. 닉슨 행정부로서는 보편 관세라는 거추장스런 옷이 필요 없게 된 것이다.
이 당시에 전세계 경제 체제에 가장 큰 작용을 한 경제적 동인은 브레튼우즈 체제에 의해 고평가된 달러를 정상화하려는 저변에 깔린 도도한 흐름이었다. 이 흐름은 변동환율제를 도입함으로써 브레튼우즈 체제를 붕괴시켰다.
영국 브렉시트 경험
2016년 영국의 브렉시트는 또 다른 시사점을 제공한다. 영국의 브렉시트는 2016년 6월 23일 투표로 결정됐다. 실제 유럽연합 정식 탈퇴 기한은 투표 3년 6개월 후인 2020년 1월 31일이었다. 영국의 브렉시트 이전에는 유럽연합의 회원국으로서 유럽지역 교역에서 무관세를 적용받았지만 브렉시트 이후에는 관세가 추가되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온다. 즉, 영국이 유럽연합지역으로 수출을 할 때 관세가 추가되는 것이며 이것은 영국 수출제품의 경쟁력을 저해한다.
결국 영국의 무역수지 적자는 악화되고 이것은 시장 참여자들에게 파운드화의 절하 기대를 가져오게 된다.
브렉시트 시점은 그림에서 회색 수직선이다. 실제 브렉시트가 정식으로 적용되는 시점은 3년 6개월뒤였지만 금융시장은 그 즉시 파운드화의 유로화, 달러화에 대해 10% 가량 절하로 대응했다.
1971년 금태환 정지와 함께 패키지 정책으로 등장했던 보편 관세 10% 추가와 영국의 브렉시트 경험으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은 현재의 균형 상태에서 벗어나는 무역정책을 사용하게 되면 경제의 저변에 깔려 있는 흐름이 시장에 전면적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환율이 반응한다. 1971년 금태환 정지에서는 수년간 브레튼우즈 체제로 인해 인위적으로 고평가 된 달러의 정상화 움직임이 있었고 2016년 브렉시트에서는 영국의 거시경제 흐름(무역수지 적자 예상)이 환율을 움직여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 나서게 한다.
다음은 미국 달러 인덱스의 흐름을 보여준다. 미국 달러 인덱스는 미국과 주요 교역 당사국간들의 통화 바스켓과 물가 상승을 고려한 달러 가치를 보여준다. 달러 인덱스가 상승(하락)하면 달러 가치가 절상(절하)됨을 의미한다.
변동환율제가 자리 잡은 이래 달러 인덱스의 움직임을 보면 매우 긴 주기로 등락을 반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달러 인덱스가 당시의 거시경제적 흐름에 의해 좌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경상수지, 금리, 인플레이션 등의 다양한 요인들이 환율을 정하게 된다. 정치인들의 유불리에 의해 선거 시기에 외쳐대는 각종 무역정책은 환율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오히려 그 중요도가 덜하다.
트럼프 보편 관세의 귀결
트럼프의 보편 관세는 무역수지 개선을 기대한 정책이다. 미국이 중국의 우회 수출을 차단할 수 있다면 보편 관세는 무역수지 개선에 부응할 것이다. 무역수지가 개선된다면 이것은 시장의 미국 달러의 절상 기대로 되돌아온다. 또는 해외는 자국 통화의 달러에 대한 절하로 대응할 수 있다. 트럼프의 보편 관세에 대해 다른 나라가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리차트 볼드윈은 변동환율제도 아래서는 관세 등의 새로운 무역정책이 나오면 환율이 그 제도의 효과를 상쇄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말한다.
즉 트럼프의 보편 관세는 미국 달러의 절상을 가져올 가능성이 많다. 그렇다면 이것은 트럼프 정책 패키지와 모순된다. 트럼프는 현재 공공연하게 약한 달러를 주장하기 때문이다.
보편 관세는 트럼프가 원하던 약한 달러와는 반대로 오히려 강한 달러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우리나라에게는 큰 의미를 지닌다. 다음 네 나라의 무역의존도(=(수입+수출)/GDP)를 보여준다.
우리나라는 매우 높은 무역의존도를 가지고 있다. 즉, 대외 환경의 변화에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 미국의 무역의존도는 꾸준히 증가해서 27% 정도다. 중국은 2006년 한 때 65%까지 올랐다가 현재는 거의 반으로 감소한 37% 수준이다. 중국은 이미 2000년대 후반부터 중간재 등의 분야에서 내수화에 상당한 진척을 이룩해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무역의존도 감소는 중국이 향후에 다가올 수도 있는 무역전쟁에서 취약점이 많이 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작 문제가 될 수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다. 무역의존도가 높으면 무역환경이 변했을 때 위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또 다른 기회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미국 대선에서 누가 되더라도 민주당, 공화당을 불문하고 보호무역주의의 기조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높은 무역의존도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 당국자들의 세심한 관심과 주의가 필요하다. [이코노미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