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행물을 판매(인터넷을 이용하거나 통신판매하는 경우를 포함한다)하는 자는 간행물에 표시된 정가대로 판매하여야 한다.
이 규정을 어길 경우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
지난 9월9일 문화관광부에서 입법예고한 ‘출판 및 인쇄진흥법’ 중 도서정가제와 관련된 조항이다.
이 조항에 인터넷 서점들이 단단히 화가 났다.
의혹설까지 제기하며 법안 철회를 강력히 주장하고 나섰다.
정가보다 20∼40% 할인하면서 성장해온 인터넷 서점에게는 존립기반 자체를 위협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교보문고, 종로서적 같은 대형 오프라인 서점은 내심 이 법안을 반기고 있다.
할인판매를 주무기로 하는 인터넷 서점에 빼앗겼던 시장을 만회할 계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 서점의 도서시장 점유율은 최근 폭발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지난 1월만 해도 하루 매출액이 1천만원에 불과했던 예스24 www.yes24.com는 9월1일 하루 매출액 1억원을 돌파했다.
매월 30% 이상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오고 있다.
반면 국내 최대 오프라인 서점인 교보문고는 예스24보다 2년이나 앞서 96년부터 인터넷 판매를 시작했지만 온라인 매출은 하루 5천만원에서 7천만원에 그치고 있다.
도서정가제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도서정가제는 새삼스러운 얘기는 아니다.
이번 입법예고안이 등장하기 전부터 이미 실시되고 있었다.
자유경쟁을 기본정신으로 하는 공정거래법에서도 도서는 문화상품으로 분류해 2002년까지 ‘재판매가격유지제’(도서정가제)를 인정하고 있다.
자유경쟁을 할 경우 시장성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좋은 책들이 사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벌조항이 따로 없어 이 법은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킴스클럽 같은 대형 할인매장이나 20%씩 할인판매를 하던 소규모 서점들이 처벌을 받지 않고 계속 영업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다.
2002년이 지나면 그나마 유명무실한 법조차 없어져 도서시장은 완전히 자유경쟁체제로 들어서게 된다.
갑자기 도서정가제를 들고나온 이유 예스24 이강인 대표는 “이런 상황인데 지금 와서 도서정가제를 철저히 시행하겠다는 이유를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며 “이 법으로 가장 이득을 보게 되는 곳이 어디인지를 생각해보면 알게 된다”고 의혹을 제기한다.
시장상황이 온라인 기업에 유리하게 되니 기존 대형 업체들이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문화관광부 출판신문과 최판진 서기관은 “법안에 의해 특정 업체가 이익을 본다는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며 “현행 질서에 가장 잘 맞춰서 법안을 만들었고 출판물 유통시장을 위해 꼭 필요한 정책”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 내에서도 다른 입장이 존재한다.
공정거래위원회 경쟁촉진과 배진철 서기관은 “도서정가제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모든 책에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어차피 2002년이 지나면 문화부와 협의를 해 현행 공정거래법상의 예외조항을 다시 손보기로 합의가 돼 있는 상황이었다”고 말한다.
교보문고 남성호 주임은 “문화부 안을 원칙적으로 찬성한다”면서도 “사실 이 법이 국회를 통과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도 곧 인터넷에서 할인판매를 시작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도서시장이 자유경쟁체제로 넘어갈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알라딘 김종석 팀장은 “인터넷 서점이 활성화되면서 책을 구하기 힘든 독자들이 더 쉽게 책을 구할 수 있게 됐다”며 법안이 소비자를 향해 열려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강인 대표도 “출판시장을 살려야 한다는 문화부 노력은 인정한다.
하지만 죽어가는 과거정책을 되살리기보다 시대 변화에 앞서가는 정책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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