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하나. 온도와 습도 제어장치 및 원격관리 시스템을 생산하는 A업체는 지난 3월 운전자금을 빌리기 위해 은행을 찾았다가 황당한 일을 당했다.
보증기관에서 발급받은 보증서만 가져가면 돈을 빌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보증기관이 과거처럼 대출금을 모두 보증해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보증기관에서 80%를 보증해주고 나머지는 은행에서 신용으로 빌려야 했다.
결국 이 회사는 실제 대출금액의 30%에 이르는 5천만원짜리 정기적금을 들어야 했다.
매달 150만원이 은행에 반강제적으로 묶인 셈이다.
사례 둘. 서울 용산에서 게임기와 DVD 플레이어를 생산하는 B업체는 지난해 말 보증부전환사채 10억원(보증금액 8억원)어치를 발행했다.
은행이 이 전환사채를 인수하면서 직접 책임을 져야 하는 2억원에 대해서 대표이사의 아내 명의로 적금을 강요했다.
자금난에 시달리던 이 업체는 2억원짜리 적금도 부담스러웠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사례 셋. 지방에서 전력제어장치를 생산하는 C업체는 올해 2월 1억여원에 이르는 대출을 받으면서 800만원짜리 정기예금을 강요당했다.
그러나 이 업체는 다른 곳에 비하면 양호한 대우를 받았다.
구속성 예금액이 대출금액의 10%도 안되었기 때문이다.
이 업체 관계자는 “다른 업체들이 대출금액의 15~20%를 꺾기당한 데 비하면 그래도 우리는 나은 편 아니냐”고 말했다.
위험 분담 목적에서 99년 시행 신용보증기금이나 기술신용보증기금에서 실시하는 보증제도는 담보능력이 없는 기업을 대상으로 기술력, 성장성 등을 심사해 보증서를 끊어주는 제도다.
중소·벤처 기업은 이 보증서를 가지고 은행이나 벤처캐피털 등에서 사업자금을 빌릴 수 있다.
98년까지는 은행이나 금융기관은 보증서를 믿고 대출만 해주면 그만이었다.
따로 관리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99년부터 부분보증제도가 시행되면서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보증기관이 보증서를 80%의 부분보증으로 끊어주면 대출금액이 부실화되었을 때 보증기관이 보증부대출 사고금액의 80%를 책임진다.
따라서 부실금액이 커지면 은행도 긴장할 수밖에 없다.
부분보증비율이 낮은 상태에서 보증부대출 사고가 발생할 경우 은행도 신용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그래서 은행이 신용위험에 해당하는 금액만큼 꺾기를 요구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부분보증제도는 99년 4월부터 전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확대 시행됐다.
그 전에도 신용보증기금이나 기술신용보증기금 등 보증기관에 출연한 금융기관이 일부 시행했으나 그 비율이나 금액은 무시해도 될 만큼 적었다.
그러다 99년 보증기관과 금융기관이 기업부실에 따른 신용위험을 분담하자는 의도에서 이 제도가 시행됐다.
이 제도는 IMF 구제금융 사태와 맞물려 있다.
IMF가 기업과 금융기관의 동반부실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이 제도의 시행을 요구한 것이다.
정부는 금융기관의 신용평가 기능 강화와 도덕적 해이 방지, 보증기관의 대손 최소화 등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은행이 신용대출을 늘리기보다는 구속성예금 등 비정상적 방법으로 중소·벤처 업체들의 자금난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 강남에서 한 벤처기업의 이사로 있는 김아무개씨는 지난 3월 기술신용보증기금에서 발급해 준 보증서를 가지고 은행을 찾았다.
김씨는 대출금액의 85%만 보증을 받았기 때문에 나머지 15%에 대해서는 꺾기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은행이 담보 없이 신용으로 대출을 해준다는 게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점을 인정한다”면서도 “그럼 결국 재벌 기업들이 해왔던 것처럼 부동산을 사들여 담보를 마련하란 말이냐”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 자금난에 시달리는 중소·벤처 기업들로서는 보증기관에서 보증서를 발급받는 것도 쉽지 않다.
상담에서 서류 접수, 심사, 발급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탈락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기술신용보증기금 관계자는 “서류가 접수돼야 전산에 기록되는데 실은 상담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과반수 이상”이라며 “업체가 가지고 있는 기술을 평가하는 일이 쉽지 않을 뿐더러 막무가내로 보증서 발급을 요구하는 경우는 매우 난처하다”고 고민을 털어놨다.
자체 기술평가센터를 중심으로 중소·벤처 업체들의 보증심사를 하고 있는 기술신보는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 비중이나 신기술 제품화 가능성 등을 엄밀하게 심사하고 있다.
어렵게 보증서 발급 절차를 통과한 업체들은 실제 대출과정에서 은행으로부터 또다시 시달림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은행쪽도 할 말이 많다.
은행 “대출채권 보전 위해 불가피” 은행가엔 여전히 대출채권 보전을 위해서 부동산과 같은 유형의 담보가 필수적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게다가 BIS(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에 대한 부담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위험자산에 대해서는 대손충당금을 쌓아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보증기관이 대출금 전액을 보증해주던 시절이 좋았다.
예대마진이 주 수익원인 은행으로서는 대출의 수익성 못지않게 안정성도 고려해야 한다.
은행들은 보증기관의 신용평가 능력, 중소·벤처 업체들의 불투명한 재무제표 등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최근엔 업체들이 은행간 심화된 경쟁을 악용해 은행을 속이려고 하는 행태까지 나타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은행들의 이런 절박한 현실은 과도기적 상황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신용 심사능력을 키워야 하지만 지금까지 관치금융과 담보대출에 익숙해 있던 은행이 하루 아침에 변신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부실은행과 우량은행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부실채권의 증가는 곧 은행 이미지 훼손으로 이어져 은행들의 입지를 더 좁게 한다.
일부 은행 관계자는 부분보증과 관련해 꺾기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보증기관에서 보증한 부문을 제외한 부문에 대해 이자율을 더 받는 방법과 인보증을 세우는 방법이 있는데 굳이 왜 꺾기를 하냐는 것이다.
반면 또다른 관리자들 중에 꺾기 가능성을 인정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또 제도적 보완이 이뤄진다면 대출기법이 좀더 선진화된 형태로 바뀔 수 있다고 조언하기도 한다.
조흥은행 이후구 기업고객실장은 “현재 은행장을 중심으로 신용 대출을 독려하고 있지만 영업점들이 따라오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며 “기업 재무구조 파악을 위해 은행에 공인회계사를 선임할 수 있는 권한 등을 주면 좀더 활발한 신용대출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실장은 또 “구속성 예금의 경우 대출채권 보전을 위해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면서 “기업들이 일류가 아닌데 은행 등 금융기관만 일류를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그렇지만 기술신보는 부분보증제가 나름대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기술신보는 부분보증의 효과를 보증기관의 건전성 제고, 중소기업 지원 효과 향상, 출연부담 완화 등으로 꼽는다.
또 정부가 내세웠던 도입 취지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 예방에도 기여를 했다고 자부한다.
기술신보에 따르면 부분보증제 도입으로 사고율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년 대비 0.84%포인트 줄었고 대위변제(보증기관이 기업을 대신해서 채무를 갚는 것) 금액도 952억이나 절감효과를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또 1조4천억원의 추가지원 효과도 무시할 수 없는 성과 중의 하나로 꼽힌다.
사고율은 IMF 이후의 구조조정, 부분보증 확대 등으로 99년과 지난해는 3%대로 떨어졌다.
대위변제 역시 98년 최고치를 기록했다가 하락하는 추세에 있다.
부분보증제도는 99년 4월 처음 도입된 이래 지난해 총보증금액의 73%가 이 방식으로 지원됐고, 올해는 이보다 더 늘어 3월 말 현재 약 82%에 이르고 있다.
금액으로는 10조1천억원이 넘는다.
기술신보의 지난해 말 기준 전체 보증잔액은 12조4970억원이다.
이 중에서 벤처형 기업에 대한 보증잔액은 3조9250억원으로 전체의 30%가 넘는다.
이를 감안하면 벤처형 기업에 대한 부분보증 금액은 3조2천억여원에 이를 것으로 분석된다.
기술신보는 올해 안으로 전액보증제도를 없애고 전면 부분보증제도를 실시할 예정이다.
기업 생각하는 제도로 거듭나야 부분보증제도는 보증기관과 은행 등 대출기관의 부실 위험 분담을 주 목적으로 도입됐다.
분담이 정상적으로 이뤄질 때 은행의 신용평가 기능 향상도 기대할 수 있다.
여기에다 부분보증제를 실시하면 보증기관의 조달금액이 보증지원금액보다 많기 때문에 중소업체들에 대한 지원 여력을 확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결과적으로 정부의 재정부담도 줄어든다.
하지만 보증기관과 대출 금융기관의 갈등 속에서 중소·벤처 업체들의 부담이 가중되는 것은 문제로 지적된다.
은행권은 꺾기로 위험을 회피하려 하고 보증기관은 부분보증제도가 보증기관과 은행의 건전성을 강화할 것으로 낙관만 한다.
보증기관이 내세우는 양적인 측면의 지원강화는 전체 중소·벤처 기업 측면에서는 도움이 될 지 모르나 대출을 받는 개별 업체에게는 불편을 가중시킨다.
양적인 면에서 보증여력 확보에 만족하지 말고 업체들의 실태파악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정부는 이미 부분보증제로 방향을 틀었다.
IMF와 합의한 사항이기 때문에 되돌릴 수도 없다.
보증기관과 대출 금융기관 사이에서 중소기업들만 홍역을 치른다.
지금은 과도기다.
은행의 절박함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이제 대출관행을 바꿀 시점이다.
여기에다 꺾은 금액 2억원에 대출금리차 5%를 곱한 1천만원을 더 버는 셈이다. 기업 입장에서 볼 때 실제 대출금액은 8원억인데 10억원에 대해 이자를 지불함으로써 실질 대출금리 상승효과가 발생한다. 따라서 은행으로서는 많이 꺾으면 꺾을수록 유리하다. 꺾기는 원래 관치금융의 산물이다. 정부가 대출금리를 강제로 낮춰 은행들이 이자 부족분을 만회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다. 은행원들도 쉽게 예금을 유치하기 위해 이 방법에 재미를 붙였다. 구속성예금, 보상예금이라고도 하는 꺾기는 예대마진이 축소되면 흔히 사회문제로 떠오른다. 98년 하반기나 요즘과 같이 예대마진이 축소된 시점에 기승을 부리기 쉽다. 보증기관에서 올해 부분보증제도를 전면적으로 실시하게 되면 꺾기가 더욱 성행할 우려도 있다. 흔히 꺾기를 무조건 불법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꺾기는 불법이 될 수도 합법이 될 수도 있다. 금융감독원은 99년 6월 꺾기에 대한 규정을 마련하면서 차주의 의사에 반하는 구속성예금을 금지시켰다. 돈을 빌리는 쪽이 구속성예금에 동의를 한다면 은행은 확인서를 받아야 한다. 꺾을 수 있는 금액의 비율에 대한 규정은 없다. 은행원이 강제로 구속성예금에 가입시킬 경우 견책이나 감봉 등의 징계가 뒤따를 수 있다. 하지만 꺾기는 워낙 미묘한 문제이기 때문에 표면화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감독 당국 역시 통제나 감시가 힘들다고 실토한다. 금융감독원 홍희곤 조사역은 “신용이 좋은 업체라면 은행이 굳이 구속성예금을 권할 필요가 없다”며 “꺾기가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이한 관행이라 앞으로 신용사회가 실현되면 이 문제도 사그라들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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