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바지에 반팔 티셔츠 차림으로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서, 자동차로 약 10분 거리에 있는 학교에 도착해 주차를 하고, 건물까지 걸어가며 외국인 친구들과 'What's up?'이라는 인사를 나눈다.
그리고 개인마다 배정된 사물함에서 교재를 꺼내, 자판기에서 뽑은 콜라 한모금을 마시면서 강의실로 들어서는 일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일부에 불과하다.
도서관에 앉아 두툼한 케이스를 읽으며 몇시간을 보내고, 팀룸에서 팀원과 영어로 격론을 벌이기도 하며, 때론 컴퓨터 랩실에서 파워포인트로 프리젠테이션용 영문 슬라이드를 몇십장씩 그려내는 일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처음 Pre-MBA 과정을 시작할 때와 비교해보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진 자신의 모습에 놀랄 수밖에 없다.
또 한가지 놀라운 변화는 바로 외국인 친구가 하나둘씩 생긴다는 사실. 생전 처음 만나 처음에는 어색했던 페루인, 러시아인, 독일인 친구와 함께 저녁을 먹는 일이 자연스러워지는 것이다.
특히 문화적 배경이 비슷한 일본, 태국, 대만, 중국 출신들과는 쉽게 친해졌다.
우연히 영화배우 이야기를 하다가 ‘주윤발’이라는 배우가 거론되면, 그 배우에 대해 1시간 동안 떠들 수 있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아내들끼리 친해지기 쉬운 장점도 있었다.
Pre-MBA 과정 동안 여러번 아내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이벤트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아시아계 여성들끼리 급속도로 친해지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그 결과 Pre-MBA 과정이 끝날 때 즈음엔, 아시아계 친구의 집에 초대받는 일이 자연스러웠다.
이처럼 다양한 변화를 안겨다준 Pre-MBA 과정이 끝나고 나니, 약 2주의 휴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정규 MBA 과정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되기 전까지 시간은, 한동안 고생을 한 학생들이 가족들과 모처럼 편안하게 함께 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미국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한 한국 학생들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대부분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
정규 MBA 과정이 시작되면 정신적, 시간적 여유가 없으므로, 그전에 가족과 여행을 떠나는 것이 좋다는 선배의 조언을 익히 들어왔던 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짧게는 5시간 거리인 워싱턴으로, 길게는 12시간 정도 걸리는 뉴욕으로 뿔뿔이 흩어져 며칠씩 ‘마지막 휴가’를 보내고 돌아왔다.
Pre-MBA 과정의 한 프로그램으로 워싱턴에 가봤던 경험을 살려, 나는 아내와 함께 워싱턴으로 향했다.
무엇보다 시간이 부족해 찬찬히 둘러보지 못했던 스미소니언박물관과 이런저런 명소들을 함께 구경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워싱턴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한국식 활어횟집을 찾아가, 서울에서도 구경하기 힘든 자연산 광어회 한접시를 시켜먹기도 했다.
오랜만에 먹은 광어회가 어찌나 그리 싱싱하던지…. 그러나 더램으로 돌아온 그날부터, 나는 일종의 초긴장 상태로 접어들었다.
막상 진짜 MBA 과정이 며칠 뒤면 시작이라는 생각을 하자, 편안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무엇인가를 준비해야 한다는 초조함이 엄습했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무엇하나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는 대망의 MBA 과정 첫학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것이 나 자신에게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다줄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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