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스피드011’은 SK텔레콤의 높은 품질을 가장 효과적으로 대변해주는 문구였다.
그러나 18-23세대에게 이런 카피가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물론 다른 시도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011이 있다’는 카피를 기억하는지? 이민우, 이소라, 신동엽, 조성모가 이전 CF에 엑스트라로 등장하다 다음 CF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던 CF, 편의점에 수첩을 두고 나간 이나영을 따라나간 이민우가 수첩을 가슴에 꼭 껴안으며 ‘그러나 011이 있다’를 되뇌이던 그 CF시리즈 말이다.
이 시리즈에서 SK텔레콤은 젊은층을 최초로 전면에 내걸면서 ‘문화적인 접근’을 조심스레 시도했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효과가 나기 힘들었다.
젊은층에게서는 별 변화가 없는 가운데 오히려 SK텔레콤답지 않은 CF라는 평이 나왔다.
이미지를 변신하기 위해선 뭔가 충격적이고 정신을 쏙 빼놓을 만한 게 필요했다.
그런 배경 속에서 TTL은 탄생했다.
스무살의 눈으로 스무살을 이야기하라 스무살들에게 그들만의 독자 브랜드라는 느낌을 주어야 한다는 임무를 부여받은 TTL 마케팅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것은 광고였다.
상품의 큰 변화없이 새로운 이미지를 부여해 새로운 브랜드를 만드는 일이라,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광고가 이 마케팅에서는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SK텔레콤으로부터 광고제작을 의뢰받은 화이트 커뮤니케이션은 기존 광고를 분석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했다.
“당시에 젊은층을 대상으로 한 광고들은 꽤 있었어요. 그러나 그 광고가 바로 그 사람들 입장에서 본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결론이 나더군요. 어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니어서 심리적으로 복잡한 스무살이거든요. 그들은 고정된 가치가 아니라 자기들만 해석할 수 있는 것을 좋아해요. 뻔한 걸 싫어한다는 거죠. 그들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거라면 그들의 시각에 맞춘 광고가 나와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 화이트 커뮤니케이션 최경란 대리는 TTL 광고의 성공은 정확한 타깃 분석 때문에 가능했다고 이야기한다.
보통 어느 광고를 만들 때나 타깃을 분석하기 위해 여러가지 방법을 이용한다.
그러나 서베이, 인터뷰, 설문조사 등 일반적인 방법을 쓰면 예상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대답이 주로 나오곤 했다.
화이트 커뮤니케이션에선 좀더 별다른 방법을 시도했다.
모든 제작팀원이 대학에 갓 입학한 스무살 또래의 젊은이들과 고등학교 2~3학년 학생 100여명과 만났다.
직접 10대들과 맞담배를 피우고, 술을 함께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나오는 이야기는 설문조사에서 나오던 밝고 긍정적이고 활기차기만 한 형식적인 이야기가 아니었다.
길 가다 만난 10대, 혹은 컴퓨터 채팅을 하다 만난 아이들과 만나 나눈 심도있는 대화속에서 제작팀은 몇가지 제작원칙을 만들어냈다.
첫째는 호기심을 강조하기 위해 직접적인 메시지를 던지지 말 것, 둘째는 여러 해석의 여지를 줘야 한다는 것, 그리고 셋째로 세련되고 패셔너블할 것 등이었다.
그런 바탕에서 TTL의 티저광고, 모델 신비화 전략 등이 나왔다.
약 보름간의 티저광고를 제외하곤 대개 두달에 한번꼴로 광고를 바꾸었는데, 나오는 광고마다 반응이 좋았다.
10대들부터 대략 25살 미만까지에서는 엄청난 호응이 흘러나왔다.
그 위 연령대로 올라가면 ‘도대체 이게 무슨 광고냐’라며 이해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의도한 대로였다.
만일 ‘아저씨 세대’가 그 광고의 의미를 이해했다면 이 광고 캠페인은 실패라는 것이었다.
처음 만나는 자유에서 스무살의 왕국까지 TTL 광고들은 매회 몇가지 의미 조각들을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 보이면서 브랜드 이야기에 살을 찌워갔다.
브랜드의 탄생, 성장에서부터 의미변화 등 TTL이 지향하는 바를 모두 광고 안에서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1차 물고기편의 테마는 ‘처음 만나는 자유’였다.
스무살은 세상에 호기심을 가지는 시기라는 것과 더불어 처음 만나는 이동통신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사방이 막혀 있는 방안에 차오르는 물, 깨진 어항, 박제된 물고기가 날아다니는 것 등이 모두 자유의 상징적 코드였다.
2차 오아시스편은 TTL의 할인요금, 멤버십 카드 등 상품혜택을 ‘일곱개의 특권’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이를 위해 오아시스, 나무, 열매라는 상징들이 등장했다.
사막의 오아시스, 메마른 나무에 매달린 열매 모두 특권을 암시했다.
그리고 주인공은 특권을 얻듯 사과를 따먹는다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이런 의미 코드들을 타깃층인 18-23세대들은 의도한 대로 정확히 맞히거나, 제작자들도 생각지 못했던 해석을 천연덕스럽게 내놓곤 했다고 한다.
일관된 이미지를 보이다가 조금 다른 변화를 준 것이 TTL 스쿨요금편이었다.
단 한번도 상품의 특성을 직접 말하지 않고 이미지로만 전달하다가, 상품에 대해 이야기를 한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도 ‘비가 내린다’는 비유를 썼다.
통화비가 할인된다는 것을 ‘비가 내린다’는 말을 통해 암시하고, 학교의 수업종이 울리면 ‘수업이 끝나면 할인이 시작된다’는 메시지를 남기며 끝나는 내용이었다.
역시 기존 광고들과는 달리 할인이 되면 얼마가 절약이 된다는 식의 직접적인 문구는 없었다.
세련되게 상품의 특성만 전달한 것이다.
이렇게 1차 캠페인 ‘처음 만나는 자유’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2000년부터 2차 캠페인 ‘너 행복하니?’을 띄우면서 TTL 브랜드는 좀더 타깃에게 밀착돼기 시작했다.
1차 캠페인에서는 색다르기는 하지만 주로 상품을 소개하는 것이었다면, 2차에서부터는 아예 TTL 타깃층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돌에 물을 주는 장면을 통해 이동통신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커뮤니케이션 도구라는 것을 강조하고, 자신을 닮은 토우를 발견함으로써 잊고 지내던 자기 마음속의 자아를 깨닫게 하는 등 18-23세대들이 스스로 자기 자신과 행복에 대해 질문하도록 하면서 그 세대들과의 공감대를 높여갔다.
그렇게 광고를 진행하다 올초에 들어서면서 TTL 브랜드에 대한 위기의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 식의 이야기 진행이 이젠 좀 지겹다는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경쟁사의 경쟁제품도 나오고, 브랜드를 직접 경험하면서 선호도도 조금 떨어졌고요. 이제 해석하는 게 귀찮다는 이야기도 나왔지요. 브랜드 개선작업이 필요했습니다.
” 마케팅전략본부 프로모션팀장 이시혁 부장은 올해 있었던 브랜드 개선작업 배경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브랜드 개선작업을 통해 TTL에서 스무살의 의미는 좀더 당당하고 독립적인 존재로 바뀌었다.
새로운 슬로건 ‘made in 20, TTL’도 그런 의미로 내걸었다.
TTL의 이미지가 스무살들이 직접 만드는 스무살의 왕국이란 의미로 바뀐 것이다.
이것은 이제 TTL이 하나의 이동통신 브랜드가 아니라 스무살을 대표하는 문화 브랜드로 자리잡으려 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상품에 상관없이 ‘스무살’하면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브랜드가 되겠다는 것이다.
브랜드의 성장이었다.
그러면서 가장 반응이 좋았다고 평가받는 광고 토마토편을 내놓았다.
과일도 아니고 야채도 아닌 토마토는 어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닌 스무살 세대를 닮은 것이었다.
이 토마토를 마구 던지고 맞으면서 스무살의 이미지를 밝고 친근하게 바꾸었다.
모델 임은경이 일상속의 스무살들처럼 스스로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한 반응도 좋았다.
이 광고를 통해 TTL은 브랜드 변모를 하는 데 한발짝 다가섰다.
현재 TTL은 이런 성공적인 광고 캠페인들 덕에 ‘확산된 브랜드’ 단계에 진입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보통 브랜드가 만들어지면 생성, 인지, 이미지 형성 초기, 확산된 브랜드, 확고한 브랜드라는 5단계를 밟아간다.
대부분의 브랜드들이 인지 단계에서 끝을 맺곤 하는데 올초 브랜드 개선작업을 통해 이미지 형성초기를 벗어던진 TTL은 휘하에 자(子) 브랜드들을 만들 수 있는 확산된 브랜드 단계에 들어서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확고한 브랜드 단계로 가면 박카스나 나이키, 미원 등 어떤 상품범주 안에서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상품으로 자리잡게 된다.
TTL은 지금 그 이전 단계라는 것이다.
TTL은 그 이후 약간의 고민을 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문화 브랜드 전략을 고수할지, 아니면 이제는 상품력을 강조할지, 아니면 또다른 변화를 시도해야 할지를 선택해야 하는 시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래서 토마토편 이후에는 기존 모델인 임은경이 아닌 새로운 모델을 기용하기도 했고, 상품 특성과는 아무 상관없이 단지 스무살의 특성만으로 내용을 담은 광고 개구리편, 오토바이편, 비편 등을 내놓기도 했다.
TTL은 이제 어떤 모습으로 변모할까. TTL 광고가 하나씩 나올 때마다 TTL 브랜드가 이제 어떤 방향으로 성장해가려 하는지를 점치는 것도 작은 재미가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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