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개도 개혁 통해 계층간 격차 해소… 재벌정책서도 보수당과 상반된 입장
'요즘 서구 등 각국에서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핵심 기준이 뭔지 아는가? 그것은 재정정책에 대한 입장이다.
' 재벌정책에 관해 가장 진보적이라고 평가받는 한 경제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세계적으로 재정규모를 축소하자는 논리는 보수당의 입장을, 재정을 확대하자는 주장은 진보당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것이다.
그는 대표적인 예로 영국의 총선을 들었다.
지난해 7월 영국 총선에서 국민들의 관심사는 ‘공공서비스의 질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였다.
보수당은 경제 활성화를 우선과제로 내세웠고, 이를 위해 감세를 통한 재정 축소를 주장했다.
집권당이었던 노동당은 조세문제를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민간자본을 공공서비스에 끌어들이는 전략으로, 즉 공공자본과 민간자본의 파트너십을 통해 재정부담을 최소화하면서 공공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전략을 주장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노동당보다 좌파 입장을 대변하던 자유민주당은 공공서비스를 개선하는 유일한 방법은 '세금을 걷어서 정부지출을 강화하는 것'이라며, 과감하게 재정규모를 확대할 것을 주장했다.
그 결과 민주자유당은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율을 받았다.
이런 현상은 최근 한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한나라당은 최근 기업의 법인세 폐지를 요구하며 재정축소를 주장했다.
반면 민주당은 재정규모에 대해서는 현행대로 유지하되 공기업의 민영화를 통해 재정부담을 최소화하는 방향의 정책을 제시했다.
반면 민주노동당은 재정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우리나라와 영국의 상황이 같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경제문제를 바라보는 시각과 정책대안의 방향에서 영국의 진보정당이나 한국의 진보정당이나 같은 기조 위에 서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키워드
왜 현 상황에서 재정확대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민주노동당 정책위원장인 장상환 교수는 '복지지출의 확대는 우리 사회에서 더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지난해 12월27일 번역 출간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한국경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사회는 65살 이상 노령인구가 이미 7%를 넘어서서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고, 2022년에는 이 비중이 14%를 넘는 노령사회에 접어들 전망이다.
장 교수는 '늘어나는 노령층을 위한 사회복지를 확충하지 않으면 생명보험회사들이 병원과 손잡고 실버타운을 만들어서 운영할 것이고, 매월 수백만원의 입주 생활비는 노인들이나 그 자녀들에게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낮아지는 출산율은 노령화 사회를 부추긴다.
가임여성 1인당 합계출산율은 91년 1.74명에서 지금은 1.42명으로 줄었다.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면서 육아를 지원하는 복지시설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아이 키우기는 더욱더 힘들어진다.
육아와 자녀교육을 위한 복지지출이 확충되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후세의 재생산 자체가 위협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재정규모를 늘리자는 민주노동당의 주장은 세금을 더 걷자는 말로 들려, 자칫 국민들에게 가는 부담을 늘리자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은 '조세제도를 개혁해 계층간의 격차를 줄이는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세 가운데 간접세의 비중이 높다고 하지만 국내총생산(GDP)에 대비한 간접세 비율은 10% 정도로 OECD 국가들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 민주노동당의 주장이다.
오히려 'GDP에 대비한 직접세와 사회보장 분담금의 비중이 워낙 낮아서 총조세의 비율이 너무 낮은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런 주장은 자연히 직접세의 비중을 높이고, 사회분담금을 강화하자는 주장으로 귀결된다.
직접세를 강화하자는 주장은 곧 자산소득세를 강화하자는 것이다.
그를 위한 한 방법으로 민주노동당은 ‘부유세’를 신설할 것을 주장한다.
상위 20% 부유층에 부유세를 매기자는 것이다.
또 금융소득 종합과세를 실시할 것을 주장한다.
1천만원 이상의 금융소득을 올리는 사람들의 금융자산이 400조원 이상으로 추정되는데, 이자율 5%로 계산해도 금융자산 소득은 400조원 이상에 이른다는 것이다.
부과 기준금액도 4천만원에서 2천만원 수준으로 낮추고, 주식과 채권의 양도차익도 금융소득 종합과세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부동산 소유에 대해서도 세금을 늘려야 한다고 민주노동당은 주장한다.
현재 부동산과 관련된 직접세 과세는 종합토지세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종합토지세는 현실의 땅값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과표현실화를 통해 세율을 높이고 재산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재정규모 확대론은 이 당 경제정책 노선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다.
반면 한나라당은 재정을 축소하려는 움직임을 꾸준히 보여왔다.
한나라당이 지난해 민주당과 합의해 제정한 ‘재정건전화특별법’은 민주노동당의 주장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이 법의 핵심은 ‘2003년까지 재정수지를 균형으로 맞춘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이 법 때문에 정부가 현재 돈을 쓰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서울보증보험, 서울은행 등 추가 공적자금 투입이 불가피한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는데도 정부가 공적자금 추가조성을 꺼리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법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실 정부가 지난해 8월 이후 경기위축에 대응해 제한적으로나마 재정지출 확대를 통한 경기부양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당시는 이 법이 제정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 법이 제정돼 있었다면 재정을 통한 경기부양은 더 늦어졌을 것이라고 민주노동당 관계자들은 설명한다.
장상환 교수는 '경기위축이 자동차나 전자 등의 주도로 이뤄졌다면, 현재 정부가 투입한 재정규모만으로 추락하는 경기위축을 막을 수 없었을 것'이라며 '전후방 산업연관 효과가 작은 정보기술(IT) 산업 중심의 경기위축이었기 때문에 그나마 제한적인 재정 투입으로도 효과를 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런 주장은 재정확대 정책이 단순히 복지정책의 확대뿐 아니라 경기회복을 위한 근본적인 정책이라는 민주노동당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민주노동당 기관지의 한 편집위원은 '건전재정을 확보하자는 주장의 전제에는 재정적자는 나쁜 것이고, 건전재정은 재정적자가 없는 균형재정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런 인식은 국가부채와 개인채무의 근본적인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데서 기인한다'고 반박한다.
경제 전체의 관점에서 볼 때 부채는 필수적이다.
모두가 저축만 하려 하고 아무도 빚을 쓰지 않는다면 생산에 비해 저축만큼 수요가 모자라 재고가 쌓이게 된다.
그러면 공장은 문을 닫게 되고, 결국 저축하고자 했던 만큼 생산과 소득이 감소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때 누군가 부채를 늘려 소비나 투자를 증가시켜 주면 경기회복이 가능하게 된다.
경기침체기에 정부가 적자재정을 편성하는 것은 바로 이런 재정의 역할을 살리기 위한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재정지출 확대론은 수출을 촉진함으로써 경기를 활성화하는 게 아니라, 노동자들에게 소득을 재분배해 총수요를 늘리고 노동자들의 노동의욕을 고취시키면 공장가동률이 증가하고 궁극적으로는 경제성장률도 상승한다는 논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재벌 민주적 소유구조 강조
재정정책 외에 재벌정책에도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민주노동당은 '노동자의 적극적인 참여 없이 자본주의 성장이 가능하리라고 보는가'라고 도전적으로 묻는다.
민주노동당은 최근 정부의 재벌정책은 개혁의지에서 후퇴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재벌 계열사간 상호출자 금지와 채무보조 금지는 기업 시스템을 정상화하기 위한 것이지 규제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출자총액 제한과 금융기관의 계열사 의결권 제한의 경우 규제대상 기업의 자산규모가 2조원 이상으로 정해지면서 언뜻 규제의 대상이 넓어진 것 같지만, 실은 규제내용도 바뀌어 실제적으로는 이런 규제들이 유야무야해졌다고 민주노동당은 본다.
특히 금융기관의 계열사 의결권 제한의 경우 '30대 재벌이 정해졌을 때는 무조건 금지되었지만, 2조원 이상 기업으로 되면서 그 중에도 재벌총수의 내부지분율이 30%가 되기 전까지는 규제되지 않는다는 조항이 생겨 사실상 의결권을 허용한 꼴이 되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의 경우 최대 주주가 삼성생명인데, 현재의 8%의 지분만 가지고도 단독주주로 최대의 의결권이 부활되었다는 것이다.
또 총액출자의 경우도 순자산 대비 25%를 초과하는 출자분에 대해서는 의결권을 제한한다고 했는데 '과연 제재의 실효성이 있는가에 대해 회의적'이라고 지적했다.
한 기업이 다수의 계열사에 출자하는 현실에서 개별 계열사의 주주는 어느 주식이 의결권이 제한된 것이고, 어느 주식이 의결권이 허용된 것인지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상 내용적으로 보면 예전의 30대 재벌을 지정해 규제했던 때보다 정부의 재벌정책은 크게 후퇴했다는 것이 민주노동당의 판단이다.
재벌들의 내부지분율은 2000년 43.4%에서 2001년 45%로 높아졌고, 총수지분율도 1.5%에서 3.3%로 높아졌으며, 자산대비 출자비율도 32.9%에서 35.6%로 높아졌다.
출자총액한도 초과분도 23조원에 달한다.
이런 상태에서 민주노동당은 재벌의 규제는 더욱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노동당은 재벌은 해체돼야 하며, 민주적 소유구조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민주노동당도 현 시점에서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은 것은 아니다.
단지 참여연대 등의 시민운동단체에서 진행하고 있는 소액주주 권리 찾기나, 사외이사제 도입 등 가능한 제도들을 확대해 자본의 운영에 대한 감시의 통로를 강화하고 종업원지주제 등을 확대하자는 정도다.
한성대 무역학과 김상조 교수는 '현재 접근가능한 현실적인 대안은 사회주의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현재 수준에서 가능한 것은 기업을 구성하고 있는 이해 관계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도록 하는 조처라는 것이다.
'경영의 의사결정은 소수의 경영자가 하는 것이다.
이는 사회주의에서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그 결정에 의해 이해관계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사전 점검을 할 수 있고, 사후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구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재벌총수와 그 비서실에서 경영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소액주주들은 의견을 제시할 통로조차 갖지 못했고, 이는 기본적인 주주의 권리마저 박탈당한 것이나 다름없다.
민주노동당은 이자제한법, 상가임대차보호법의 제정 등 구체적인 정책과 관련해서도 많은 진전을 보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당의 기본 이념과 정강을 현실적인 정책으로 구체화하고 세부적인 지침을 이끌어내는 정책개발 능력에서는 아직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기도 하다.
민주노동당을 포함한 진보정당들이 광범위한 지지층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정책대안 제시에 좀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지적이다.
민주노동당은 김대중 정부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한 결과 외환위기는 다소 완화됐으나 불황이 만성화하고 독점이 강화됐다고 평가한다. 또 실업이 급증하고 빈부격차가 확대됐으며 대외종속이 심화했다고 지적한다. 민주노동당은 얼마 전 각 부문별로 김대중 정부의 경제정책을 평가하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먼저 재벌개혁에 대해 보고서는 '빅딜은 실제로 부실계열사 정리에 의한 업종 단순화, 경영합리화에 불과했다'며 '빅딜의 결과 경제력 집중의 완화 효과는 거의 없었다'고 평가했다. 또 '기업경영의 불투명성을 조장하는 순환출자와 내부거래의 문제를 해소하지 못했으며, 재무구조 개선도 부채비율이 300%를 넘어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재벌구조 해소는 주주 공동의 재산을 총수의 개인재산으로 사유화하는 소유지배구조를 개혁하자는 것인데 이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또 '금융개혁의 결과 은행에 외국자본의 비율이 대폭 늘어났다'며 '이윤 논리를 철저히 따르는 외국 자본들은 은행의 본래 임무를 망각한 채 기업대출을 줄이고 소비대출을 늘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보고서는 '막대한 재정지원으로 부실채권을 정리했는데 그 과정에서 금융기관 부실의 원천인 기업주에 대해서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결과적으로 국민의 부담으로 부실 기업주와 부실 금융기관을 보상해 주는 형국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김대중 정부의 조세정책에 대해 보고서는 '조세부담률이 OECD 국가의 평균에 훨씬 못미친다'고 지적하고 '특히 직접세 부담률이 낮은 것은 문제'라고 주장했다. 조세수입이 많을수록 사회복지 지출이 늘어나므로 조세부담률과 소득재분배는 밀접한 관계를 갖기 때문이라고 설명이다. 박형영 기자 young@economy21.co.kr |
'신자유주의가 확대되고 있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노동문제는 비정규직이 남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부소장은 비정규직이 확대되면서 임금격차는 물론이고 같은 노동자간에도 소득분배의 격차가 커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노동자의 55%다. 그중 3%를 제외한 52% 정도가 임시직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유럽의 경우 임시근로 형태가 10% 안팎인 걸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구조는 상당히 왜곡돼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것이 노동자의 선호나 조건에 따른 것이라기보다 기업의 일방적인 선택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김 부소장은 현재 임시직이 50%를 넘어서는 가장 큰 이유는 입법 미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유럽의 경우 파트타임 기본협약이나 계약근로에 관한 기본협약 등이 있다. 임시근로는 특별하게 정해진 사유나 기간제한이 불가피하게 필요로 하는 경우에 한해 이루어지고, 또 그런 경우에도 일정한 절차를 따르도록 되어 있다. '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전혀 제약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임시직의 팽창과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서 입법상의 제한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이미 이에 대한 공동 입법청원을 한 상태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격차 문제도 중요한 사안이다. 경제활동인구 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재 비정규직의 임금은 정규직 임금의 절반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최저생계비를 적용해보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현재 법에 의하면 법정 최저임금 미달자가 정규직의 경우 2만명, 비정규직의 경우는 56만명이다. ' 하지만 김 부소장은 이것도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수치라고 지적한다. 유럽 기준으로 볼 때 현재 한국의 최저임금은 100여만원 수준이다. 이를 기준으로 하면 저임금 계층은 정규직의 경우 139만명, 비정규직의 경우는 550만명이라는 게 그의 계산이다. 따라서 그는 우선적으로 해결돼야 할 문제는 법적 최저임금 제도를 현실화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것이야말로 임금격차를 줄이는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한정희 기자 bambaya@economy21.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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