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는 이리저리 새나가고 주가는 발표되기도 전에 일찌감치 뛰어올랐다.
정보를 쥔 사람들은 재빨리 돈을 벌고 빠져나오고 뒤늦게 뛰어든 사람들은 헛물을 켰다.
아직도 정보의 불평등은 심각하고 주가는 너무 가볍게 움직인다.
11월7일 오후 2시쯤 일이다.
인스턴트 메신저에 “자네트시스템, 오늘 오후 5시에 해외 수출 계약 발표 예정”이라는 쪽지가 떴다.
혹시나 싶어 주가 그래프를 들여다보니 주가는 이미 오를 만큼 올라 있었다.
조용한 가운데 조금씩 거래량이 늘어나는가 싶더니 12시30분에 950원이던 주가가 1시15분에는 1040원까지 바짝 뛰어올랐다.
주가는 이날 하루 동안 9.47% 올랐다.
움직임은 이틀 전부터 시작됐다.
보통 하루 200만주를 밑돌던 거래량이 11월5일에는 800만주를 훌쩍 넘어섰다.
그렇게 올랐는데도 장 마감을 앞두고 거래량이 부쩍 늘어났다.
아무것도 모르는 보통 투자자들은 무슨 일일까 고개를 갸웃거렸을 것이다.
뭔가 심상치 않다.
공시담당자들, 모로쇠로 일관 아니나다를까 그날 오후 6시, 자네트시스템은 정말 ‘해외사업 본격 진출’이라는 제목으로 공시를 내보냈다.
모바일컴퓨터로 미국 시장을 공략할 계획을 세우고 있고 내년에 7천만달러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정도면 바닥없이 빠지고 있는 주가를 끌어올릴 만한 확실한 호재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정보가 소문이 되어 이리저리 떠돌아다녔으니 주가가 요동을 치는 건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공정공시제도는 정보가 모든 투자자들에게 똑같이 전달되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만든 제도다.
투자자들은 물론이고 애널리스트나 펀드매니저, 기자들에게도 정보를 미리 알려줄 수 없다는 이야기다.
실적은 물론이고 사업계획, 전망이나 예측까지 모두 포함된다.
누군가에게 정보를 주려면 10분 전에 공시를 내보내야 하고 실수로 정보가 새어나갔을 때도 바로 공시를 내보내야 한다.
한번 공정공시제도를 어기면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된다.
두번째는 관리종목 편입, 세번째는 퇴출이다.
자네트시스템 공시담당자는 공시하기 전에 정보가 새어나갔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성욱 홍보팀 과장은 “임원들만 아는 내용인데 어떻게 새어나갔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자네트시스템은 이날 오후에 기자간담회를 연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장은 왜 모이느냐는 기자들의 설명에 그냥 좋은 일이 있다고만 대답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억측이든 추측이든 정보가 새어나갔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결국 어디서 새어나갔든 주가 움직임으로 볼 때 미리 정보를 얻고 뛰어든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자네트시스템의 주가는 일찌감치 11월5일 800원 언저리에서 바닥을 치고 올라 8일에는 1050원까지 뛰어올랐다.
자네트시스템뿐만 아니다.
한송하이테크의 주가 움직임도 이래저래 수상쩍다.
한송하이테크는 11월8일 오후 2시쯤 신제품 개발과 수출 계획을 공시로 내보냈는데 루머는 일찌감치 아침 10시부터 나돌았다.
주가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지만 거래량은 눈에 띄게 늘어났다.
그러다가 공시 발표와 함께 주가가 잠깐 오르는가 싶더니 이내 걷잡을 수 없이 고꾸라졌다.
정대우 관리부장은 “주가가 크게 오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빠져서 굉장히 당혹스러웠다”고 말했다.
누군가가 주가가 오를 걸 내다보고 주식을 사들였다가 공시가 나오자마자 주식을 마구 내다팔았다고 볼 수 있다.
주가가 오르지 않고 빠지자 뒤늦게 종가 관리를 한 흔적도 보인다.
이날 2시49분까지 2400원이었던 주가가 10분 뒤인 3시에 2740원까지 뛰어올랐다.
결국 이날 주가는 2.6% 정도 오른 것으로 끝났다.
그러나 정 부장은 “오늘 아침에야 발표를 내보내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루머가 미리 돌았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아침부터 돌았던 루머의 출처와 정체를 정 부장은 설명하지 못했다.
아이텍스필도 어딘지 냄새가 난다.
11월4일 2시49분까지 1480원이었던 주가가 10분 뒤인 3시에 1550원까지 뛰어올랐다.
한송하이테크처럼 누군가가 종가 관리를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오후 1시, 아이텍스필은 11월 수출이 처음으로 1천만달러를 넘어섰다는 공시를 내보냈다.
역시 공시가 나가자마자 주가는 크게 뛰어올랐다가 이내 고꾸라졌다.
바이넥스도 수상하다.
바이넥스는 11월5일 암면역치료제를 만들어 전임상 실험에 들어갔다는 공시를 내보냈다.
주가 그래프를 보면 바이넥스도 누군가가 먼저 들어가 주식을 사들인 흔적이 보인다.
주가는 11월1일 3410원에서 8일에는 4700원까지 단숨에 37.8%나 뛰어올랐다.
공정공시제도가 시행돼도 루머는 얼마든지 넘쳐난다.
부흥이 200% 늘어난 실적을 발표할 거라는 둥, 고려산업개발이 지난번에 유찰된 공장매각을 이번에 성사시켰다는 둥, 해원에스티가 거래소로 옮겨갈 거라는 둥, 온갖 루머가 어지럽게 떠돌았다.
그 가운데는 정말 사실로 드러난 것도 있고 그냥 뜬소문에 그친 것도 많았다.
11월7일 오후에는 인터파크가 10월 매출이 100% 이상 매출이 늘어났다고 발표할 거라는 루머가 떠돌았다.
실제로 다음날 인터파크는 “10월 매출이 9월보다 32%, 지난해 10월보다 122% 늘어났다”는 공시를 내보냈다.
매출 누계는 1천억원을 넘어 1037억원에 이른다.
이현정 홍보팀장은 “언론에 내보낼 보도자료는 8일 아침에 공정공시를 내보낸 다음 뿌려졌다”고 말했다.
이 팀장의 설명에 따르면 인터파크는 달마다 8일에 지난달 실적을 발표한다.
굳이 공정공시를 기다리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그런 때문인지 인터파크의 주가 그래프에서는 인위적 움직임을 찾을 수 없었다.
단타 위주 투기성 매매가 최대 적 그런가 하면 영화금속은 아예 소문을 듣고 전화를 걸어온 투자자들에게 회사 관계자가 “계약은 어제 끝났고 오늘 공시를 내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영화금속은 11월5일 400만달러의 해외인수권부사채 발행계약을 맺었다.
다음날 아침부터 이런저런 소문이 나돌았고 한참 주가가 오른 다음 11시쯤 증권거래소에서 조회공시를 요구했다.
영화금속은 오후 2시에 공시를 내보냈다.
앞서 한송하이테크의 경우처럼 정작 공시가 나온 뒤에는 주가가 마구 빠졌다.
상황이 이런데도 감독당국은 아직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있다.
증권거래소 상장공시부 양경조 팀장은 “공시 정보가 미리 새어나간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한가하고 무책임한 반응을 보였다.
금융감독원 공시감독국 최규윤 팀장도 “꾸준히 살피고 있지만 불공정 거래 행위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직 처음이라 기업들이 제도의 정확한 내용을 모르고 있어 문제가 되기는 하지만 조금씩 자리를 잡아나갈 거라는 이야기다.
열사람이 한 도둑 못 막는다는 이야기처럼 아무리 틀어막아도 정보는 이리저리 새어나올 수밖에 없다.
직원들 사이에서 흘러나오기도 하고 호기심 많은 기자들이 퍼뜨리기도 한다.
공정공시제도는 결코 만능이 아니다.
루머에 사고 뉴스에 팔라지만 이제는 자칫 루머는 없고 뉴스만 넘쳐날 판이다.
그것도 모두가 알고 있는 뉴스, 나오자마자 주가가 곤두박질치는 뉴스 말이다.
공정공시제도가 넘어야 할 문턱은 아직도 높기만 하다.
가장 높은 문턱은 루머를 좇는 단기투자자들의 조급함과 무모함이다.
이틀도 못 갈 루머에 주식을 샀다 호들갑스럽게 되파는 투자문화가 판치는 이상 정보를 둘러싼 못된 장난은 쉽게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공정공시제도는 결코 만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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