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에 제출한 경영정상화 계획이 통과돼 가까스로 퇴출 위기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11·4 부실신협 일제정리’ 조처로 영업정지를 당한 지 정확하게 119일 만의 일이다.
12월에 이어진 추가 영업정지를 포함해, 지난해 정리대상으로 분류됐던 125개 부실신협 가운데 세한신협과 함께 회생 기회를 잡은 곳은 구리신협, 포항 제일신협, 광주 복개신협, 예산 신우신협, 충북 매괴신협 등 5군데에 불과하다.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이미 파산 절차를 밟고 있거나, 조만간 파산 신청을 법원에 낼 예정이다.
세한신협 우정목 이사장은 “자본금 규모에 비해 부실채권이 지나치게 많은 것이 문제였다”며 “출자금 감자와 대위변제로 40억3천만원에 달하는 손실을 모두 털어냈다”고 말한다.
세한신협은 흔히 볼 수 있는 ‘지역 신협’과는 약간 성격이 다른 ‘단체 신협’에 속한다.
버스운송사업조합이나 서울시내버스공제조합에 가입한 버스회사 법인이나 대표만 조합원 자격이 있다.
애초부터 버스회사의 운영에 필요한 긴급 자금을 그때그때 융통해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우정목 이사장은 “30여년 전 첫발을 내디딘 이후 순조롭게 운영되며 매년 흑자를 올려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 이후 눈덩이처럼 적자가 불어나기 시작했다.
살벌하게 진행된 구조조정 여파로 버스회사가 줄줄이 쓰러졌다.
89개이던 버스회사가 순식간에 58개로 줄어들었다.
아무리 담보를 잡고 보증을 세웠어도 서로 얽혀 있는 여러 회사가 동시에 쓰러지는 데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지난해 정리대상 부실신협 명단에 끼어 퇴출 위기로 내몰리게 된 것이다.
영업정지와 함께 ‘경영관리’가 실시됐다.
경영관리 대상이 되면 예금을 포함한 채무의 지급이 전면 중단되고, 임원의 직무도 정지된다.
예금보험공사에서 나온 관리인이 모든 권한을 위임받는다.
2조4천억원 공적자금 털어넣어 한바탕 호된 경험을 치른 세한신협은 출자금 감자 등 자구방안을 짜냈고, 좀더 까다로운 대출기준도 만들었다.
앞으로 버스회사가 세한신협에서 돈을 대출받으려면, 대출금을 갚지 못할 경우 모든 채권에 우선해 버스카드 대금에서 대출금을 회수할 수 있게 한다는 공증을 해줘야 한다.
버스카드 대금의 정산이 버스운송사업조합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이용해 확실한 안전장치를 만들어두겠다는 것이다.
우정목 이사장은 “조합의 존재기반은 아직도 탄탄하다”며 “부실을 모두 털어버리고 건강한 조합으로 다시 태어나는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예금보험공사에서 나온 구본혁 세한신협 관리인은 “영업재개와 함께 업무의 상당부분을 이미 이사장에게 넘겨줬다”며 “6개월간의 경영관리 기간이 끝나는 5월3일부터 이전과 같이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단위 신협에 대한 1차 관리감독권을 갖고 있는 신협중앙회에서도 감독관을 파견해 두고 있다.
세한신협에 감독관으로 파견온 신협중앙회 김봉기 과장은 “앞으로 이들 6개 신협을 ‘재무상태개선 조치대상’ 조합에 포함시켜 중앙회 차원에서 관리할 계획”이라며 “매달 경영상태를 평가받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퇴출이 결정된 부실 신협에는 공적자금이 대거 투입됐다.
예금자보호법에 따라 5천만원 이하 예금을 전액 보장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예금보험공사는 2월말 현재 103개 신협, 56만3633명의 고객에게 1조9345억원의 예금을 대신 지급했다.
현재 예금을 지급중이거나 지급 예정인 곳을 모두 포함하면 예금 대지급에 최대 2조4083억원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예금보험공사 김기돈 보험관리부장은 “애초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예금 지급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문제는 5천만원을 초과하는 고액 예금자들이다.
여기에는 미처 예금을 분산해놓지 못한 개인뿐만 아니라 각종 기금, 단체들도 상당수 들어 있다.
예금보험공사 보험관리부 배효진 관리2팀장은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관리비를 몽땅 넣어둔 경우도 있었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나타난 5천만원 초과 예금은 모두 1679명에 208억5천만원으로 집계됐다.
예금보험공사 관리인은 자산실사 과정에서 법규 위반이 발견되면 관련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는 역할도 맡는다.
예금보험공사 강형구 조사1부장은 “30여명의 인력을 현장에 추가 투입해 부실 책임이 있는지를 가리고 있다”며 “상반기 중으로 부실 책임 추궁 등 모든 작업을 마무리짓는다는 목표”라고 말한다.
현장 실사에서는 신협이 안고 있는 고질적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났다.
예금보험공사 강형구 조사1부장은 신협 종사자들의 금융 마인드 부족을 가장 먼저 지적한다.
그는 “심지어 어떤 서류를 갖춰야 채권 보존이 가능한지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다”고 말한다.
확보된 자금을 안전하게 운용해 적정한 수익을 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전문 인력을 찾아보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계속해서 예금은 들어오는데, 그 자금을 굴릴 수 있는 사람이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 보니 주식이나 채권에 편법으로 무리하게 투자했다 큰 손실을 본 신협이 하나둘이 아니다.
내부 통제 시스템이 허약하다는 것도 문제다.
구본혁 세한신협 관리인은 “적절한 견제를 위해서는 상근 임원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이제 신협도 일반 금융기관에 준하는 감독, 통제 체제를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문제는 비용이다.
신협이 워낙 영세한 규모이기 때문에 전문 금융 인력을 끌어오거나, 상근 임원을 두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직도 직원이 2~3명에 불과한 신협이 상당수다.
좁아지는 틈새시장… ‘딴짓’ 철저 감시 신협의 발전 가능성에 대한 의견도 엇갈린다.
그동안 신협이 안주해 있던 틈새시장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커지고 있다.
시중은행이 가계대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문턱을 크게 낮추었고, 저축은행, 새마을금고 등 지역밀착형 경쟁업체의 수도 만만치 않다.
금융감독원 비은행검사국 김병수 경영지도팀장은 “우리나라는 금융기관이 적어서 문제가 아니라 많아서 문제”라며 “신협도 치열한 생존경쟁에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신협의 강점인 ‘유대 의식’을 최대한 활용하는 데서 길을 찾을 수밖에 없다.
김병수 팀장은 “대출받아간 가게가 장사는 잘되는지, 무엇 때문에 돈이 필요한지, 갚을 능력이 있는지 하는 세밀한 정보에 누구보다 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부실신협이 대거 정리된 지난해 신협은 적자에서 벗어나 4년 만에 흑자를 기록했다.
영업중지중인 곳을 제외한, 전국 1101개 신협이 지난해 모두 963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취약한 부실신협이 정리되고 상대적으로 우량한 곳만 남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지만, 신협의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김병수 팀장은 “문제가 생긴 신협을 보면 편법을 동원해 ‘딴짓’을 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동일인 여신한도를 초과해 한사람에게 몇억원을 편법으로 대출해줬다가 날리면 다시는 회복이 어렵다.
애초의 취지대로 생활에 꼭 필요한 자금을 대출해주고, 충실하게 관리하면 그처럼 쉽게 망가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지난해 대규모 영업정지 이후 숨가쁘게 진행된 부실신협 처리가 이제 마무리 단계에 들어선 느낌이다.
조합원에 의한 경영감시를 한층 강화한 신용협동조합법 개정안도 지난 1월말 차관회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제2의 구조조정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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