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전과 사스의 장기화로 항공사들이 사상 유례 없는 악조건에 시달리고 있는데 공항이용료까지 올린 것은 너무하는 것 아닌가.” “항공사들도 어렵겠지만 인천공항도 심각한 경영난에 처해, 항공사들의 요구를 전부 수용하기는 곤란하다.
” 인천국제공항공사와 항공사들이 공항이용료 인상을 둘러싸고 두달 이상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양쪽의 처지를 살펴보자. 인천국제공항은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사스공포와 이라크 전쟁 여파, 경기불황 등 ‘3중고’로 개항 이후 최악의 사태를 맞고 있다.
인천공항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하루 평균 이용객은 5만8천명이었지만 사스의 장기화로 지난 5월초부터는 평소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2만8천명으로 줄었다.
첨단시설과 대규모 처리능력으로 2001년 3월 개항 이후 아시아지역 국제공항 중 2위 자리를 지켜온 인천공항이 예상치 못한 복병 때문에 적자공항으로 추락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인천공항은 최근까지 세계 일류공항으로 성장할 가능성도 내다봤다.
세계공항의 수준을 가늠하는 지표로 여겨지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의 ‘세계공항만족도 조사’에서 전세계 51개 주요 공항 가운데 당당히 4위를 차지하면서 아시아 1위라는 싱가포르 창이공항을 추월했기 때문이다.
또한 IATA의 ‘국제공항선호도 조사’에서도 70점이 넘는 만족도를 보이며 6위를 차지해 미국의 애틀랜타 공항 등 세계에서 가장 분주한 공항들을 멀찌감치 따돌렸다.
하지만 최근 인천공항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지난 5월 경영실적이 100억원 이상의 적자로 기록된 것이다.
이용객이 줄고 면세점 등의 상업시설들이 영업부진에 빠지면서 공항이용료와 비항공수익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인천공항 관계자는 “이 상태가 계속된다면 매월 300억원 이상의 적자를 피할 수 없는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게다가 인천공항은 막대한 초기비용으로 매년 2천억원의 금융이자를 내고 있어, 줄어드는 매출이 자칫 더 큰 위기로 다가올 수 있다.
항공사들과 티격태격하게 된 공항이용료 인상조치는 이러한 사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천공항 “그래도 아시아에서 싸다”
항공사들의 사정은 어떠한가. 국내 항공사들은 3년간 적자에 허덕이다 지난해 흑자로 돌아서면서 회복되는 기미를 보였다.
블룸버그통신은 “아시아내 항공화물이 매년 8.4%씩 급증할 것으로 예상돼 상당기간 흑자를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내놓았다.
하지만 사스의 후폭풍으로 경영여건이 크게 악화되면서 국내 항공업계는 올해 1분기에 250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항공사들은 절박한 심정으로 일련의 자구책을 마련했다.
운항노선을 일부 줄이고 구조조정과 자산처분, 투자축소 등을 추진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2월 기내식사업부를 매각한 데 이어 항공기 엔진도 일부 매각했다.
또 신규채용 축소 및 시기연기, 신규투자 금지, 소모성경비 집행유보 등의 자구안을 마련했다.
대한항공도 올해 초 발표했던 공격경영에서 선회해 수익성 위주의 노선조정과 인력 재배치 및 명예퇴직, 해외 영업점 인력축소, 비핵심 업무 아웃소싱 등을 골자로 하는 대책을 내놓았다.
이번 논란은 지난 4월1일 인천공항공사가 공항이용료를 인상하면서 시작됐다.
공사는 착륙료를 10%, 인상탑승수속 카운터 임대료를 25%, 라운지시설 임대료를 12~38% 인상했다.
항공사들은 즉각 인천공항공사의 인상조치에 반대하고 나섰다.
9·11 테러로 인한 경기불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사스 등 3중고가 불어닥쳤기 때문에, 이른바 ‘고통분담’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국내 및 외국항공사들의 협의체인 인천공항항공사운영위원회(AOC)는 건교부에 정부차원의 지원을 요청하는 문서를 제출했다.
AOC의 주장은 세계적인 공항들과 형평을 맞춰달라는 것이었다.
AOC에 따르면 대만의 국제공항이 국제선 착륙료를 6개월간 15% 인하한 것을 시작으로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홍콩, 인도네시아, 일본 등의 아시아권 공항이 잇따라 착륙료를 최대 50%까지 인하했다.
중국의 항공당국도 영공통과료와 착륙료를 20%나 인하하면서 항공세일즈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인천공항공사는 항공사들의 논리에는 궁색한 구석이 있다고 반박한다.
공사 관계자는 “무엇보다 인천공항 이용료는 결코 다른 아시아권 공항들에 비해 비싸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는 “아시아권에서 이용객이 가장 많다는 홍콩 첵랍콕공항과 일본 간사이공항의 착륙료는 각각 3721달러와 7780달러인데, 인천공항은 이보다 적은 2546달러의 착륙료를 받고 있다”고 반박한다.
건교부 항공정책과 관계자도 “인천공항이 동남아시아 공항들에 비해 착륙료가 훨씬 저렴하다”고 말한다.
건교부에 따르면 최근에 착륙료 인하 등의 지원정책을 발표한 국제공항은 대부분 정부정책을 집행하는 국영공항이거나 사용료를 인하할 여력이 있는 흑자공항이다.
민간공항이나 인천공항과 같은 적자공항은 사용료를 인하한 곳이 한곳도 없기 때문에 이번 조처는 적절하다는 논리다.
또한 인천공항공사가 지난 2년 동안 사용료를 한번도 올리지 않았다가 올해 처음으로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것인데다, 이미 항공사와 협의한 것이라고 건교부는 밝히고 있다.
항공사들의 반발이 거세자 5월30일 인천공항공사는 항공사들의 요구를 일부 받아들이는 조치를 취했다.
3개월치(5~7월) 착륙료를 10% 감경해주고, 납부기한도 3개월 연장했다.
아울러 복합운송주선업체의 구내영업료 부과시기도 내년 1월로 연기했다.
주한 유럽연합상공회의소(EUCCK)는 이와 관련 “한국정부와 인천공항공사가 사스와 이라크전의 영향으로 극심한 경영난에 허덕이는 항공업계에 신속히 협조했다”며 감사편지를 전하기도 했다.
건교부 역시 인천공항공사의 조치가 적절했다는 분위기다.
항공사 “고통분담 안 하나” 반발
그렇지만 외국항공사들의 불만은 아직도 거세다.
인천공항쪽이 탑승수속 카운터 사용료와 항공사 라운지 시설비를 인상한 점과 최근에 수화물처리시스템(BHS) 이용료를 1인당 160원에서 1천원으로 인상한 것은 ‘일방통행’이라고 반박한다.
허돈 AOC 위원장은 “AOC가 인천공항공사에 요구한 착륙료 10% 인하와 BHS 인상요율 적용유예, 시설사용료 동결 중 착륙료에 한해서만 임시조치를 취한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한다.
그는 특히 지난 4월부터 새로 부과하기로 한 구내영업료의 부과시기를 연기한 것도 연막작전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번 논란에서 가장 큰 문제는 건교부와 인천공항공사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는 점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들은 “건교부와 인천공항공사가 서로 자신의 업무영역이 아니라며 변명으로 일관하기 때문에 외국항공사들의 불신만 키우고 있다”고 지적한다.
재경부장관 주최 간담회에서 루프트한자 한국지사장은 “한국 정부에 다양한 정책을 요구했지만 2개월 동안 묵묵부답이었다”고 질타하기도 했다.
인천공항공사와 항공사들 모두 경영난이 심각함에는 틀림없다.
건교부 입장에서는 인천공항공사와 항공사 중 한쪽의 주장이 옳다고 편들어줄 형편도 아니다.
항공산업은 동북아 물류기지화 정책과 맞물려 있어서 미래지향적인 노선을 견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수수방관하다가 외국 항공사들로부터 외면을 받게 된다면 국가적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당사자들을 설득해내려는 적극적인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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