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아름다운가게’ 안국점을 찾았다.
서울 안국동 참여연대 옆 골목으로 들어서면 50평 남짓한 작은 건물에 ‘아름다운가게’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비가 내리는데도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손님들은 가게의 좁은 공간을 따라 부지런히 물건을 고르고 있다.
안국점 매니저 남재석씨는 “보통 하루에 400~500명이 이곳을 찾는데, 오늘은 비가 와서 손님이 없는 편”이라고 말한다.
언뜻 보기에는 일반 가게와 다르지 않지만 진열된 물건을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면 이미 누군가의 손때가 묻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아름다운가게 www.beautifulstore.org는 시민들이 쓰지 않는 물건을 기증받아 손질해서 판매하고 그 수익금은 힘든 이웃을 위해 사용하는 공익과 자선을 함께 생각해서 만든 점포이다.
지난 2002년 10월에 안국역 근처에 처음 1호점을 연 이래 올 8월에는 휘경동에 4호점을 열었다.
초기에는 참여연대의 도움을 받았지만 지금은 ‘아름다운재단’이 바통을 이어받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재사용 운동을 벌이고 있다.
아름다운가게의 시작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참여연대 앞에서 정기적으로 알뜰장터 형식을 빌어 시장을 연 것이 그 시초가 됐다.
비록 규모는 작았지만 시민들의 호응도가 높았다.
한 달에 한 번 장터를 열다가 그 횟수가 점점 늘었다.
그러다가 상설 매장을 열자는 의견이 나왔다.
이후 박성준 성공회대 교수와 손숙 전 장관이 공동 대표를 맡고 박원순 변호사가 상임이사를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아름다운가게가 문을 열게 된 것이다.
이 사업은 초기부터 시민들의 호응도가 높아 별 어려움 없이 진행됐다.
특히 점포 기증 문제가 의외로 쉽게 풀렸다.
개인과 기업이 앞다퉈 점포를 제공한 것이다.
안국점은 엄상익 변호사가, 삼선교점은 금강장학재단 홍명희 이사장이, 독립문점은 마이크로소프트가 각각 기증했다.
이렇게 점포를 기증하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점포 준비는 이미 8호점까지 끝났다.
처음 문을 연 안국점은 만물상을 연상케 한다.
의류는 기본이고 신발, 금연 보조용품, 벼루 등 다양하다.
또한 물건 값이 대부분 아이들 과장 한 봉지 값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전혀 부담이 없다.
이렇게 500원, 1천원짜리 기증받은 물건들을 팔아 3개 매장에서 하루 벌어들이는 돈이 400만원에 이른다.
기증자 점점 다양, 자원 봉사자도 넘쳐
아름다운가게는 시간이 갈수록 시민들의 호응이 대단하다.
지금까지 기증한 사람들이 7천명을 넘는다.
아름다운가게의 운영을 위해 자원 봉사 활동을 하는 사람만도 300명 이상이다.
이들은 40~50대 주부에서 교사, 회사원, 사업가까지 다양하다.
자원 봉사자들은 성별, 나이를 가리지 않고 적극적이다.
주로 판매 지원을 하거나 수거해 온 물건들을 손질하는 일을 한다.
이들 중에는 30년간 시계만을 수리해 온 소아마비 장애인도 있고 옷 수선만을 전문으로 하는 일흔이 넘은 노인도 있다.
2층 도서 음반 코너로 올라가면 아름다운가게에 대한 시민들의 호응도를 쉽게 느낄 수 있다.
음반 코너에서 1천원짜리 LP 음반을 들고 흐뭇해 있을 때 초등학생의 손을 잡고 온 학부모를 만났다.
멀리 개포동에서 왔다는 이 학부모는 “아름다운가게의 역할이 단순한 점포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어 아이들 교육에도 유익해서 딸과 함께 왔다”고 말한다.
그는 ”방학 때는 학교에서 일부러 이곳에 학생들을 보내는 숙제를 내주기도 한다”고 귀띔한다.
아름다운가게에 물품을 보내주는 기증자들도 다양하다.
송파구에서 아파트 경비일을 하고 있는 김 아무개씨는 신발 3박스를 기증했다.
경비일을 하면서 모아 둔 신발이 3박스나 된 것이다.
가수 김상희씨는 이사하면서 나온 자신의 물품을 정리해 기증했는데, 그 분량이 트럭 2대분에 이르기도 했다.
이 밖에 변우민, 김미화씨 등 연예인들이 많은 물품을 기증했다.
올해 초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사용했던 대나무 필통이 경매를 통해 100만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또한 기업이나 국가 기관에서 단체로 기증하는 경우도 있다.
아름다운가게에서는 기업체를 상대로 ‘아름다운 토요일’ 행사를 벌이고 있다.
이 행사에는 참여업체 직원들이 물건을 기증할 뿐만 아니라 일일 봉사를 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아름다운 토요일 행사에 참여한 업체는 하나은행, LG건설 등 대기업에서부터 중소기업까지 다양하다.
대검찰청 등 공무원도 참여했다.
아름다운가게 관계자는 “대검찰청이 참가한 행사에는 9천점이 넘는 품목이 기증되기도 했다”고 귀띔한다.
아름다운가게의 운영은 재활용 센터와 비슷하지만 ‘공익과 기증’이라는 의미로 더욱 주목을 받는다.
현재 각 구청에는 재활용 센터가 있다.
하지만 이 재활용 센터가 제구실을 못하기 때문에 상당수의 수거 물품들이 쓰레기 소각장으로 향한다.
아름다운가게는 비록 가구나 전자제품과 같은 대형 물품을 처리할 수는 없지만 작은 제품들은 기증자가 전화(02-3676-1004)나 인터넷으로 연락하면 수거반을 보내 물품을 수거해 온다.
수거된 물품은 안국동 본부로 모아 깨끗하게 씻는다.
이렇게 씻은 물품들은 다시 각 지점으로 보낸다.
일부는 2.5톤 트럭에 실어 각 지역을 돌면서 이동 판매를 하기도 한다.
수익금 대부분 소외된 이웃 위해 사용
아름다운가게에서는 가끔 고가의 물건도 판매한다.
사회 저명인사들이 기증한 그림이나 물품들이 그런 것들이다.
어떤 그림은 100만원이 넘기도 한다.
흔히 보기 어려운 거북 도자기 의자에는 10만원의 가격표가 붙어 있다.
뜯지 않고 기증된 99만원짜리 정수기는 39만원의 가격이 매겨져 있다.
이런 물건은 가격 때문에 고객과 점원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는 일도 있다.
“어차피 기증한 물품인데 왜 비싸게 파느냐”는 것이다.
턱없이 낮은 가격으로 그림을 사겠다고 억지를 부리는 고객도 있다.
때문에 앞으로 문을 열 서초점은 ‘경매 전문 점포’로 운영할 계획이다.
그림이나 기타 고가 물품은 모두 서초점을 보내 경매를 통해 판매하는 것이다.
이렇게 기증된 물건을 통해 얻어진 수익금은 인건비나 관리비 등을 제외하고 대부분 기초생활 보호대상자 등 소외된 이웃을 위해 쓰여진다.
이미 5500만원이 52명의 불우이웃에게 전달됐다.
앞으로 아름다운재단은 아름다운가게를 전국적으로 확대할 참이다.
현재 제 몫을 못하는 재활용 센터를 아름다운가게가 대체할 수 있다면 그 파급 효과는 의외로 클 것 같다.
미국의 굿윌, 영국의 옥스팜처럼 일반 시민들에게 헌 물건을 기증받아 판매해 그 수익으로 자선을 한다는 취지에 많은 시민들이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퇴근길 아름다운가게에 한번 들러 작은 물건을 하나 사 보는 건 어떨는지.
저작권자 © 이코노미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