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5-02-22 14:50 (토)
5. 엔터테인먼트 - 딱지, 구슬치기에서 블로그까지
5. 엔터테인먼트 - 딱지, 구슬치기에서 블로그까지
  • 한정희 기자
  • 승인 2003.09.1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놀이, 문화에서 산업으로 돈 한푼 없이 장난감 하나 없이 잘도 놀았던 때가 있었다.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아이들 놀이는 오징어달구지라든가 땅따먹기, 비석치기, 삼팔선 등과 같이 땅바닥에 그림을 그린 후 일정한 규칙만 정해서 서로 몸을 부대끼는 것이 전부였다.
도시 지역에서부터 원형딱지와 구슬, 팽이 등이 등장했다.
20원에서 50원까지 했던 원형딱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만화 주인공, 프로레슬링 선수, 원더우먼 등 다양했다.
나중에는 코미디언 이주일까지 등장했다.
이 중 자기 초상권에 대해 권리를 행사하고 있었던 사람은 이주일 한 사람뿐이었다.
이 시기 많은 사람들이 즐겨 놀았던 것 중 하나가 ‘뱀주사위놀이’다.
뱀주사위놀이는 주사위를 던져 1번에서 시작해 100번까지 먼저 가면 되는 것인데, ‘나쁜 일’을 하면 후퇴하고, ‘착한 일’을 하면 고속도로를 타고 올라간다.
당시 가장 착한 일은 간첩을 보면 신고하는 일이었는데, 이것에 걸리면 단박에 55칸이나 뛰었다.
최근 뱀주사위놀이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서울 인사동에 있는 ‘토토의 오래된 물건’에서는 뱀주사위놀이를 원형과 똑같이 복원해 판매하기도 한다.
경제 수준 따라 놀이문화도 격차 70년대 후반에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획기적인 일이 벌어진다.
바로 만화영화 <로보트태권브이>의 탄생이다.
1976년 개봉된 <로보트태권브이>는 당시 서울 관객만 18만명으로 사상 유례없는 기록이었다.
76년 1탄 이후 84년 6탄에 이르기까지 <로보트태권브이>의 신화는 이어졌다.
실제 인물의 동작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리는 ‘로토스코핑’ 기법을 사용해 태권도 동작을 재현한 화면은 현재의 어른들에게 잊지 못할 장면으로 남아 있다.
최근 영화진흥위원회는 저작자, 연출자 등과 합의해 <로보트태권브이> 1탄 복원을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80년대 놀이문화의 핵심 키워드는 ‘갤러그’로 대표되는 전자오락이다.
81년 일본의 게임개발업체인 남코에서 개발한 슈팅게임인 이 갤러그는 단순하면서도 누구나 즐길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다양한 연령층의 마니아를 확보했다.
‘뿅뿅’거리는 특이한 효과음 때문에 갤러그보다 ‘뿅뿅’이라는 별칭이 더 유명했다.
갤러그를 필두로 자이러스, 버블버블, 너구리 등의 게임이 전자오락의 붐을 이어 갔다.
70년대, 80년대를 거치면서 양적 경제성장은 빈부의 격차를 벌렸고, 놀이문화에도 경제 수준에 따라 격차가 생겼다.
서울에 사는 일정 수준 이상의 아이들에게는 부루마블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미국의 모노폴리 게임을 본떠 만든 이 게임은 굉장히 자본주의적인 게임이다.
아이들은 가짜 돈으로 투자를 하고 경영활동을 해서 돈을 벌었다.
82년 5월5일 출시된 부루마블은 씨앗사에서 만들었는데, 씨앗사의 이상배 사장은 어린이 잡지에 부루마블 광고를 게재했으며, 인기 만화를 통해 방법을 설명하는 등 장난감시장에서 최초로 마케팅 활동을 했다.
마케팅에 성공한 부루마블은 당시 수천원대의 비싼 가격에도 크리스마스 때 가장 인기있는 선물이 됐다.
이상배 사장은 “한때는 조폐공사에서 한 해에 찍어내는 돈보다 더 많은 게임 머니를 찍어냈다”고 회고했다.
현재 부루마블은 네이트의 온라인 게임으로 부활되어 여전히 그 위력을 과시하고 있으며, 상표권은 씨앗사가 보유하고 있다.
90년대는 이른바 놀이문화가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전환하는 시기. 이 시기를 대표하는 대명사는 단연 ‘서태지’다.
92년 파격적인 음악과 댄스, 패션과 메시지 등은 기성세대와 획일적인 대중문화에 일침을 가하며 젊은층을 사로잡았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92년 3월에 발표한 1집 <난 알아요>는 당시 전문 평론가들의 혹평을 뒤로 한 채 단박에 150만장이 팔렸다.
상표를 떼지 않는 패션과 흐느적거리는 힙합 음악에 국악을 접목시킨 2집 <하여가>는 180만장, 통일문제와 획일적 교육에 대한 비판 메시지를 담은 3집 <발해를 꿈꾸며>는 100만장이 나갔으며, 4집 <컴백홈>은 120여만장의 판매를 기록했다.
서태지의 성공은 이후 엔터테인먼트산업에 스타 시스템을 정착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노래방·PC방 등장으로 새로운 전기 서태지 음악의 열풍과 함께 이들 음악을 빠르게 확산시킨 하드웨어가 바로 ‘노래방’이다.
노래방은 히트곡을 빠르게 유통시켰으며, 개개인의 끼와 개성을 맘껏 발산시켰다.
노래방의 대중적인 확산으로 노래방 기기를 생산하는 업체들이 유례없는 호황을 맞았다.
대표적인 업체가 아싸, 태진미디어, 금영 등이다.
아싸는 한때 노래방 기기로 연간 2천억원대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2000년대에 PC방이 등장하면서 엔터테인먼트산업은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초고속통신망이 연결되고 컴퓨터의 사양이 고급화되면서 인터넷은 무한한 세계를 보여 줬다.
PC방은 기존의 오프라인 놀이 문화와 형태를 빠르게 흡수했다.
70∼80년대 보드게임이나 전자오락, 노래방 등은 인터넷의 한 구석에서 재현되고 있다.
2000년대 젊은이들의 엔터테인먼트 코드는 시공간을 초월한 ‘커뮤니티’다.
인터넷에 만들어진 수백만개의 동호회와 아이러브스쿨의 폭발적인 성장 등은 커뮤니티의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최근에는 인터넷 공간에 나만의 방을 꾸며 스스로 콘텐츠를 만들어 나가는 이른바 온라인 1인 미디어 ‘블로그’가 각광을 받고 있다.
앞으로 이 커뮤니티는 어떻게 변화할까. 인터넷의 무한한 가능성을 예측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70년대…로보트태권브이, 딱지, 뱀주사위놀이 딱지, 구슬, 팽이 등 동네 놀이문화가 주류였지만, 76년에는 어린이를 위한 극장용 애니메이션 로보트태권브이가 혜성처럼 떠올라 어린이들의 심장을 뒤흔들었다.
80년대…갤러그, 부루마블, 스카이콩콩 ‘뿅뿅’이라 불렀던 갤러그를 필두로 전자오락 시대가 열렸다.
최근까지 인기를 끌면서 스테디셀러가 되고 있는 부루마블도 최대의 히트작. 90년대…서태지, 아싸노래방, 슬램덩크 90년대는 놀이에서 엔터테인먼트로 변화하는 시기. 최대의 히트상품이었던 서태지는 또 다른 히트상품이었던 노래방에서 가장 인기있었던 소프트웨어였으며, 랩과 힙합 등 문화적인 코드를 발전시켰다.
2000년대…PC방, 인라인스케이트 초고속통신망 보급으로 최대의 상품이 되었던 PC방. 게임, 커뮤니티, 채팅을 통해 시공간을 초월해 교류하는 네트워크 엔터테인먼트로 발전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