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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동북아시아 에너지전쟁, 해법을 찾자
[진단] 동북아시아 에너지전쟁, 해법을 찾자
  • 장승규 기자
  • 승인 2004.04.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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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석유, 가스 놓고 각축…전문가들, “경쟁에서 협력관계로”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에너지 공급원으로 등장한 ‘자원대국’ 러시아가 최근 심상치 않은 행보를 보이고 있어 한국, 중국, 일본 등 관련국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 1월30일 동시베리아 이르쿠츠크의 코빅스탄 가스전을 개발, 가스관을 중국과 한국으로 연결하기로 한 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충격적인 발표를 내놓았다.
한국과 중국, 러시아 3개 나라는 이미 코빅스탄-다칭-선양-다롄을 거쳐 해저로 평택까지 연결하는 노선에 대해 타당성 검토를 마친 상태였다.
더구나 한국은 이 노선을 통해 2008년부터 국내 수요의 25%에 해당한 연간 700만톤의 천연가스를 들여온다는 장기수급계획까지 세워두고 있는 상태였다.
러시아는 중국 동북지역의 가스 수요가 기대에 못미칠 것이란 이유를 들고 나왔다.
러시아는 대신 코빅스탄의 천연가스를 유럽 지역에 우선 공급하고 여력이 있으면, 2012년경에나 중국-한국 라인을 건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동남아시아나 오스트레일리아 대신 러시아로부터 가스관을 통해 좀 더 값싸고 안정적으로 천연가스를 공급받게 될 것으로 기대하던 한국과 중국에겐 곤혹스런 상황이다.
‘러시아의 에너지 전략 2020’이 몰고 온 파장 이뿐만이 아니다.
러시아는 동시베리아 앙가르스크 유전의 송유관 건설에서도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모호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앙가르스크-다칭-다롄 노선이 거의 확정적인 분위기였다.
산유국이면서도 빠른 경제성장으로 인해 석유난을 겪고 있는 중국이 오랫동안 공을 들여온 결과였다.
그러나 갑자기 일본이 끼어들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앙가르스크에서 출발, 하바로프스크를 거쳐 일본과 가까운 러시아 극동지역 나호트카까지 연결하는 노선이 급부상한 것이다.
일본이 50억달러의 송유관 건설비용과 20억달러의 탐사, 시추비용을 대겠다고 제안한 게 결정적이었다.
러시아는 아직까지도 다칭 노선, 나호트가 노선, 나호트카 노선을 간선으로 하고 다칭 노선을 지선으로 삼는 것 등 3가지 안을 왔다갔다 하면서 최종 결정을 미루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최근 변화를 러시아의 새로운 자원전략이 가시화된 결과로 분석한다.
러시아는 지난해 ‘러시아의 에너지 전략 2020’이라는 주목할 만한 공식문서를 발간했다.
이 문서는 에너지 자원이 러시아의 대외정책 수행의 중요한 ‘도구’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강봉구 한양대 아태지역연구센터 교수는 “러시아가 에너지 개발과 협력이 경제적 관점으로만 접근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란 걸 인식하기 시작했다”며 “향후 자원 개발이나 파이프라인 노선 결정은 경제적 효율성 극대화와 러시아의 총체적 국가안보라는 2가지 기준에 의해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이는 동북아시아의 에너지 전쟁이 앞으로 좀 더 복잡한 형태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다.
동북아시아는 에너지 다소비 국가들이 밀집해 있는 대표적인 지역으로 꼽힌다.
에너지 사용량으로 따지면 중국이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일본이 4위, 한국이 10위다.
석유로 범위를 좁히면 동북아시아 3국의 비중은 이보다 훨씬 커진다.
중국이 세계에서 두 번째, 일본이 세 번째, 한국이 여섯 번째로 많은 양의 석유를 매년 쓰고 있다.
반면 이 지역에 묻혀 있는 석유는 전체 매장량의 4%가 채 되지 못한다.
천연가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중국 경제의 급부상으로 지역 내 에너지 수급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
동북아시아의 에너지 전쟁은 바로 이런 제약 조건들 속에서 출발한다.
동북아시아 에너지 협력체 필요 동북아시아 나라들이 풀어야 할 과제는 과도한 중동석유 의존도 탈피와 에너지원 다변화로 요약할 수 있다.
그동안 한국과 중국, 일본은 중동의 가장 큰 돈줄 역할을 해왔다.
중동 산유국들은 전체 원유 수출량의 64.1%를 이들 세 나라에 팔아치웠다.
문제는 원거리 해상운송이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위험요인이 많고, 비용부담도 만만치 않다는 데 있다.
또한 중동석유 의존도가 워낙 높아 ‘동아시아 프리미엄’을 추가 부담하고, 가격급등에도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석유 중심의 에너지 소비구조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지난 3월16일 에너지경제연구원과 국제에너지기구(IEA)의 공동 주최로 열린 ‘동북아시아의 지속가능한 에너지 미래: 에너지 안보와 지역협력’ 국제회의에 참석한 캔트 칼더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교수는 “동북아시아는 천연가스를 충분히 사용하지 않는 유일한 지역”이라며 “세계 천연가스 매장량의 30%를 보유하고 있는 러시아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많은 에너지 전문가들은 ‘동북아시아 에너지 협력체’의 결성을 제안하고 있다.
현재의 상호 경쟁관계를 협력관계로 만들자는 것이다.
여기에는 국가 단위의 국소적인 해결책에만 의존해서는 에너지 위기를 효과적으로 극복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러시아도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황무지나 다름없는 극동, 시베리아 지역의 개발이 필수적이다.
지난 3월16일 열린 국제회의에서 IEA의 윌리암 람세이는 “동북아시아는 그동안 적극적인 투자와 인프라 부족으로 세계 시장에서 소외돼 왔다”며 “역내 에너지 교역을 통해 관련국들이 모두 많은 이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앞으로 2030년까지 4조3천억달러의 에너지 투자가 동북아시아 지역에 필요하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문제는 누가 어디서 막대한 투자 제원을 조달하느냐에 있다.
정부 차원의 협력이 절실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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