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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판 GIC’? IMF의 악몽이여!
1. ‘한국판 GIC’? IMF의 악몽이여!
  • 이경숙 기자
  • 승인 2004.07.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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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C 설립 둘러싸고 지배구조·투명성 논란…국제시장 경쟁력 확보도 문제 첫 번째 벽은 안에 있다.
재정경제부가 한국투자공사(KIC) 입법예고안을 발표한 닷새 뒤인 6월23일, 한국은행 노조는 강경한 어조의 성명을 발표했다.
제목은 “재경부는 외환보유액 강탈을 중지하라!” 한은 노조가 지적한 KIC 법안의 문제점은 크게 5가지. ‘KIC 위탁자산의 운용방식을 제한하지 않으면 외환위기 발생시 위탁외환의 회수가 어렵다.
재경부가 한은 등 해당 기관에 대해 자산 예탁 요청권을 가지면 KIC 운용자산 규모를 재경부 맘대로 조정할 수 있게 된다.
자산위탁과 운용의 투명성이 부족하다.
임원 임면이 재경부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
KIC의 핵심인 운영위원회 구성에 있어 정부 영향력이 너무 크다.
’ 한은 노조의 주장 뒤엔 IMF 외환위기 때 바닥을 드러냈던 외환보유고의 악몽이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이에 앞서 6월18일, 참여연대는 김우찬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의 칼럼을 e메일 회원들에게 배포했다.
김 교수는 이 칼럼에서 주로 KIC 지배구조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KIC가 정부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무리한 국내 주식시장 부양 등 다른 정책 목표 달성에 이용될 수 있으며 정치권으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극단적인 경우 대북 외화 지원, 정치자금 확보 수단으로 이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준법 감시가 부실할 경우 내부 직원 비리가 발생할 수 있겠는데 KIC가 주로 자산을 해외 자본시장에서 운용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제적 망신거리가 될 것이다.
” 그 우려의 목소리를 배경으로 공사 등 정부자산을 제 맘대로 좌지우지했던 과거 정치권, 행정부의 배임 행위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1992년부터 정책보좌관으로 지내온 한 17대 국회의원 보좌관은 의심쩍은 눈초리로 말한다.
“공기업 민영화 뒤 정부가 시장을 움직여 재정정책을 쓸 만한 여유자산이 없어졌어요. 예금보험공사채권, 자산관리공사채권을 쓰고 나니까 다음엔 국민연금도 움직이고 싶고, 외환도 움직이고 싶지 않겠어요? 이건 본능적인 움직임입니다.
” 그는 종금사 위기, 대우채와 카드채 위기 때 시장의 룰까지 어겨가며 기관 투자가들을 움직여 사태 수습에 나섰던 정부와 금융당국의 모습을 회상한다.
정부, “KIC 독립성 충분히 확보” 정부는 이건 모두 ‘의심’일 뿐이라고 항변한다.
내용은 대충 이러하다.
‘위탁외환의 운용과 회수? 이건 KIC 투자정책을 정하는 운영위원회에 한국은행 총재가 참여해 직접 방침을 정하면 해결된다.
KIC 지배구조? 독립성을 확보해 민간회사처럼 운영되지 않으면 KIC가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할 게 뻔한데 정부가 정책 실패를 야기하겠는가. 재정 확보 욕심? 최근 보유외환이 급증한 다른 아시아 나라들도 외화 자산의 위험관리 차원에서 미국채 이외 자산의 운용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터에 무슨 소리!’ 정부의 논리 역시 크게 이치를 벗어나지 않는다.
“우리(재정경제부)는 괴물 집단이 아니에요.” 최중경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은 말한다.
“우리도 같은 선생한테 배우고 같은 밥 먹고 같은 텔레비전을 보는 한국 사람입니다.
같은 공동체예요. 우리는 새 시대의 성장동력을 금융산업에서 발견했습니다.
KIC는 정부의 동북아 금융허브 추진전략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것입니다.
” 대통령 자문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 한 관계자는 “대통령의 의지가 강하다, KIC 추진에 대해선 노무현 대통령에게 직접 물으라”고 강조한다.
재경부가 자신의 세를 확대하려고 KIC를 만들려 한다는 세간의 의혹이 근거 없음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도 KIC 성공의 관건이 독립성 보장이라는 것은 인식하고 있습니다.
KIC 투자에 관한 주요사항은 정관에서 정하고 정관은 운영위원회에서 만듭니다.
운영위원회는 민간위원이 다수를 차지합니다.
일단 공사법으로 독립적 위원회가 출범한 뒤엔 정부가 개입할 여지가 없습니다.
” KIC 지배구조에 우려를 제기한 김우찬 KDI 교수도 KIC 역할의 효용성에 대해선 이견을 나타내지 않는다.
KIC가 제대로 굴러가기만 한다면 외환보유액의 수익률 제고, 역내 자산운용산업의 발전 등 의도했던 바 긍정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좋은 지배구조의 강화는 그 전제조건이다.
사실 공공기금, 특히 경상수지 흑자와 함께 빠른 속도로 쌓이고 있는 외환은 한국 정부에 골칫거리다.
한국뿐 아니라 대만, 중국, 일본 등 아시아 각국의 외환보유 규모가 커지면서 아시아 중앙은행들이 안전자산으로 선호하는 미국 국채가 아시아 각국에 대량으로 쌓이게 된 것이다.
계란은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 것이 투자의 기본 원칙. 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아시아 중앙은행들이 한 종류의 자산을 너무 많이 보유하고 있다”며 “아시아 각국이 경제위기 등 돌발상황에 동시 대응하면 손실이 커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 정책의도의 신뢰성을 둘러싼 이러저러한 의심을 헤치고 나오면 또 다른 벽이 앞을 가로막는다.
국제 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 문제 말이다.
높은 국내 금리·인재 확보 등 첩첩산중 사실 싱가포르 GIC와 한국 KIC는 출발선부터 다르다.
81년 GIC 출범 당시 싱가포르는 이미 아시아 달러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었다.
싱가포르 정부가 비거주 외국인 예금자들이 얻는 이자 수입에 대해 세금 원천징수를 폐지하면서 국제 금융기관들은 속속 싱가포르에 진출했다.
84년 문을 연 싱가포르 국제금융거래소(SIMEX)는 유로달러 금리 선물과 유로엔을 거래하면서 시카고상품거래소(CME)를 쫓아 성장하고 있었다.
스위스 취리히에서 아침을 연 국제금융시장은 프랑크푸르트와 런던, 뉴욕을 거쳐 싱가포르에서 저녁을 맞이했다.
그렇다면 한국은? 그 모든 조건을 만들고자 막 첫걸음을 뗐다.
KIC가 국제시장에서 다른 선수들과 맞붙을 때 불리한 조건은 또 하나 있다.
조달금리다.
10년짜리 싱가포르 국채의 금리는 3% 후반. 3년 만기 한국 국고채 금리는 4% 후반에 머물러 있다.
GIC는 기대수익률을 최하 3%로 잡고 장기 투자에 나설 수 있지만, KIC는 기대수익률 하한선을 4%대 이하로 낮출 수 없다.
김주연 부동산투자자문사 BHP코리아 부장은 “싱가포르 투자자들의 경우 한국에선 8%대, 국가 리스크가 좀 더 낮은 일본에선 6%대 목표수익률만 나와도 자산을 인수한다”며 “다른 해외 투자자가 투자결정을 할 수 있는 상황에서 KIC는 결정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국내 금리 4%, 국내 부동산 자산 수익률이 8% 상황에선 KIC가 해외에 나간다 해도 GIC 등 다른 투자자와 겨뤄 국내에서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그러나 투자사업에서 가장 큰 관건은 뭐니 뭐니 해도 고급 인력 확보다.
16여년간 미국에서 헤지펀드를 운용한 경력이 있는 엄태종 삼성투신운용 글로벌사업본부장은 “투자의 3P(People, Process, Performance) 중 첫 P는 사람”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외화자산을 운용한다는 특성상 GIC 외국 인력의 절반이 외국인”이라며 “공사 조직인 KIC가 100만, 200만달러의 연봉을 허용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투자 전문성을 침해하지 않도록 감사원 감사 항목과 기준을 KIC 출범 전에 미리 정하자고 그는 제안한다.
입법예고 중인 KIC법안은 국무회의를 거쳐 7월 중 국회에 상정될 예정이다.
더 현명하게 법안을 다듬을 시간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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