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이 윤택해지면 신체의 심혈관계 질환이 늘어나듯, 경제도 고도화될수록 경제의 혈관에 해당하는 금융시스템 패닉 발생 확률은 올라간다.
실제로 일본과 북유럽 등 80년대 이후 세계 각지에서 발생한 금융위기는 개별 금융기관의 부실화보다는 자산가격의 거품붕괴·과잉투자 등 금융시스템 전체에 미치는 공통충격에 의해 주로 발생했다.
최근에는 IT 발달 및 금융자유화·글로벌화의 진전으로 금융기법이 고도화되고 금융시장간·국가간 연계성이 높아지면서 새로운 위험요인이 나타날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
때문에 금융시스템 전체와 실물경제를 동시에 보는 관점에서 적절한 대책을 수립·시행하는 금융안정 기능의 중요성이 부각되어 중앙은행이 이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다.
우리는 2003년 ‘카드대란’을 통해 금융안정 기능 부재의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당시에도 문제의 발단은 당장 돈이 되면 앞뒤 안 가리고 뛰어드는 금융기관의 ‘떼거리 경영’을 제어할 책임 있는 기관이 존재하지 않았던 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올해 우리 사회를 가장 뜨겁게 달군 부동산 문제에 있어서도 카드 사태와 유사한 일이 반복되는데도 다시 정책을 실기한 것은 금융안정 기능이 아직도 사각지대에 있기 때문이다.
개별 금융기관 입장에서 부동산 대출은 현재로서는 안전한 수익원이다 하지만 ‘떼거리 경영’에서 비롯된 부동산 대출 ‘쏠림 현상’은 부동산 시장이 하락 반전할 경우 금융기관들이 앞다투어 부동산 관련 대출을 회수해 부동산 시장의 과도한 침체를 초래하여 부실률 상승과 담보 부족을 야기, 금융시장의 패닉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따라서 정부나 중앙은행이 나서서 이러한 위험성이 내재되어 있는 부동산 관련 대출 시장을 제어하고 금융시스템의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 우리나라에는 이 기능이 담당할 국가기관이 없이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관련기관의 설립 근거법을 보면 한국은행의 설립 목적은 ‘효율적인 통화신용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통하여 물가안정을 도모’하는 것이고 금융감독원은 ‘건전한 신용질서와 공정한 금융거래관행을 확립하고 예금자 및 투자자등 금융수요자를 보호’하는 것이 설립 목적이다.
또 재정경제부는 ‘금융정책 및 제도에 관한 정책의 수립’ 사무를 관장한다.
따라서 한은이 물가가 안정된 상태에서 부동산 대출 억제를 위해 지준율이나 금리를 올리는 것은 그 설립 목적에 비추어볼 때 논란의 소지가 있다.
또 부동산 대출이 부실화되지 않은 현 상태에서 개별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감독하는 금감원이 ‘정상적으로’ 부동산 대출을 규제할 근거는 없다.
재경부가 직접 개입할 여지는 더욱 없다.
이처럼 거시적인 금융시스템 안정 기능이 특정기관에 명확히 부여되지 않고 사각지대에 놓여 그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1월 필자는 ‘물가안정’으로 국한되어 있는 한은의 설립 목적에 금융안정 기능 수행을 추가하는 개정 법안을 제출했다.
밥그릇 싸움하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개정안이 조속히 통과되어 금융안정 기능을 강화하여 ‘카드대란’ 이나 ‘부동산 대란’과 같은 시스템 패닉을 미연에 방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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