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5-03-12 15:37 (수)
[이슈]‘개인연금보험 5분의 1토막’ 진실
[이슈]‘개인연금보험 5분의 1토막’ 진실
  • 이경숙 기자
  • 승인 2005.01.17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올해 1월부터 개인연금에 월 20만원씩 내고 있는데요, 해약해야 할까요?”
“지금 32살인데 26살부터 꾸준히 개인연금에 넣어왔는데, 뉴스를 보니 5분의 1 금액만 받았다지요. 어찌할까요?”

개인연금 가입자들은 헷갈린다.
1월6일 KBS 2TV 뉴스타임 보도에선 분명 “계약 당시에 노후에 받을 수 있다고 제시한 개인연금 금액이 대부분 5분의 1토막이 나서 쥐꼬리 연금이 될 처지”라고 했다.
“가입설계서에는 60살이 되면 1년에 1646만원을 받을 수 있게 되어 있지만 실제로 받을 수 있는 돈은 330만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보험설계사들은 “고금리 시절에 확정금리로 든 개인연금저축은 유지하는 게 더 유리하다”고 말한다.


민간단체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보험소비자연맹 www.kicf.or은 “도덕적으로는 비난할 수 있지만 법적으로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예정이율이 7.5%인 상품은 지금 금리상황에서 가입할 수 없으므로 절대 해약하지 말라”는 내용의 글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그러나 보험소비자협회 cafe.daum.net/bosohub는 “사기 계약은 원천 무효”라며 개인연금보험 피해자 모임을 결성하자고 나섰다.


암호 같은 가입설명서로 소비자 눈 가려

논란이 된 상품은 주로 시중금리가 6~10%에 달할 때 보험사에서 판매한 ‘확정이율형’ 연금보험들이다.
확정이율형 상품은 지금 같은 저금리 구조에서는 만들기 어렵다.
저금리를 확정이율로 제시하는 것은 매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 상품이 문제가 되는 건 상품구조가 아니다.
문제는 마케팅방식에 있었다.
이 상품의 설계서는 미래에 받을 수 있는 연금합계 '예상금'은 부풀려 명시하고 그것이 바뀔 수 있다는 설명은 거의 알아보기 어렵게 적어놔 소비자들을 헷갈리게 했다.


이차배당률, 사차배당률이란 말을 들어봤는가? 박아무개(당시 23살)씨가 1995년 4월에 가입한 삼성생명 그린장수축하연금보험은 설명서에 월 13만1400원씩 10년을 부으면 55살에 ‘기본연금’ 450만원과 ‘증액연금’ 1042만원 등 ‘합계액’ 1492만원을 받을 수 있다고 쓰여 있다.
70살부터는 장수축하금 1899만원도 나온단다.


그러나 뒷면의 설명을 자세히 읽어보면 이 돈은 적용 배당률은 1년 만기 정기예금+0.5%가 예정이율보다 높을 때 나오는 금리차보장이율과 0.5%의 이차배당률, 6년 이상 가입을 유지하면 나오는 장기유지특별배당률과 25%의 사차배당률을 받아야 지급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차배당이란 보험사가 자산을 운영한 결과 생긴 실제 이율이 예정이율보다 높았을 때 생긴 이익을 나눠주는 것이다.
사차배당이란 실제 가입자 사망률이 보험료 산출에 적용된 사망률보다 낮을 때 생기는 이익을 나눠주는 것을 뜻한다.


한마디로, 보험사가 제시한 가산, 증액부분은 시중 수익률과 보험사 수익률이 예정이율보다 높아지고, 해당 보험사 가입자가 예상보다 덜 죽고, 가입자가 오래 보험을 유지해야 받을 수 있다.


현재 33살인 박씨가 2027년 55살이 되었을 때 1492만원을 받을 수 있을까? 시중 수익률이 지금처럼 낮은 상황이 지속되면 이차배당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평균 수명이 지금처럼 길어지면 사차배당을 받을 가능성은 높아질 것이다.
정확한 결과는 22년 뒤에나 알 수 있다.
하지만 당시 박씨는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내용은 어지간한 보험설계사들도 이해하기 쉽지 않다.


교보생명, 대한생명 등 다른 회사 상품의 설명서도 이해하기에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강아무개(당시 27살)씨가 2000년 6월에 가입한 교보생명 21세기 슈퍼골드의 설계서를 보면 월 7만원씩 20년을 불입하면 60살(2035년)에 ‘기본연금’ 300만원과 ‘배당예상액’ 728만원 등 1023만원을 ‘연금 합계’로 받게 된다고 적혀 있다.
그 아래에는 ‘배당예상액(증액·가산연금)은 99사업연도 배당기준에 의해 산출·적립된 금액으로 향후 배당기준 변경시 연금지급액이 변동될 수 있습니다’라고 쓰여 있으나, 이 설명은 배당예상액을 명시한 글자의 반만 한 크기에 불과하다.


이 문제를 처음 제기한 보험소비자협회의 김미숙 회장은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것인데, 당시 보험설계사들은 전년도 배당지침으로 계산한 증액, 가산연금부분을 마치 확정된 숫자인 양 설계서에 명시해 가입자들을 현혹했다”고 말한다.
조연행 보험소비자연맹 사무국장은 “일반인은 배당률이 수익률에서 예정이율을 빼고 결정된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며 “당시 팔렸던 개인연금보험에서 연금 지급이 시작되면 상당한 사회 문제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만약 투신사나 은행이 펀드 상품을 팔면서 확정되지 않은 이익에 ‘배당예상금’이라는 이름을 붙여 숫자까지 명시했다면 바로 제재를 받았을 것이다.
왜 금융감독원은 이런 얄미운 상술을 제재하지 않은 걸까?

보험업법 95조3항에는 “보험안내자료에는 보험회사의 장래 이익의 배당 또는 잉여금의 분배에 대한 예상에 관한 사항을 기재하지 못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 조항은 1980년부터 2년 동안 판매됐던 ‘백수보험’이 ‘확정배당금’을 주겠다며 가입자를 끌어들인 뒤 지급하지 않아 사회 문제가 되면서 도입됐다.


그런데 앞 문장의 힘을 바로 뒤에 있는 문장이 곧바로 무장해제시켜 버린다.
“다만, 보험 계약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금융감독위원회가 필요하다고 정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않다.
” 이 문장은 88년 보험업법 개정 때 삽입됐다.
이후 판매된 보험의 설명서에선 다시 장래 이익 배당금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보험업법 단서조항이 ‘얌체 상술’ 묵인

문제가 된 연금 상품들의 가입설계서에도 어디에, 어떤 크기로 붙었든 “배당지침 변경시 연금지급액이 바뀔 수 있다”고 쓰여 있다.
‘백수보험’ 피해자들이 법정 싸움에서 90% 가까이 패소했던 원인도 여기에 있었다.
조연행 국장은 “백수보험을 판매할 때 보험사들이 ‘확정배당금’이라는 말까지 쓰면서 가입자를 현혹했는데도 법정 소송에선 대부분 개인 가입자가 졌다”며 “가입설명서에 배당지침에 대한 설명이 들어 있으면 보험사와 설계사가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고 해도 일단 법정 싸움에선 불리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금융감독원 역시 “법원이 어떻게 판단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견해를 밝힌다.
정영석 금융감독원 조직영업감독팀장은 “설명서에 가입자에게 혼란을 초래할 만한 표현이 있었는가에 대해 법원이 어떻게 판단하는가가 중요하므로 일단 최종 계약 때 받은 설명서를 잘 보관하고 당시 해당 보험을 판매한 설계사의 증언을 잘 확보해 둘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개인가입자별 대응 방침으로 유용한 조언이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우리는 문제의 핵심을 잊어선 안 된다.
이런 문제를 초래한 근원은 ‘금융감독위가 필요하다고 정하는 경우’라는 단서 조항이다.
지금은 저금리 상황이라 보험사들이 배당예상금이나 가산, 증액 연금을 강조하는 마케팅을 펼치지 않는다고 하나, 금리상황이 돌변하면 언제든 이런 문제는 재발할 수 있다.
금융소비자들의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
홧김에 보험 해지는 금물!
상품 가입 과정에서 ‘사기’를 당했다고 해도 홧김에 보험을 해약하지는 말라고 전문가들은 충고한다.
조연행 국장은 “당시 문제가 되었던 개인연금보험도 기본연금 부분만 보면 메리트가 높은 상품이 많으므로 해약 전에 반드시 득실을 분석해 보라”고 조언한다.
1995~2000년대 상품의 예정이율은 6~8%인 반면 요즘 판매되는 연금저축의 공시이율은 4.2% 안팎이다.
현재 판매되는 상품보다 유리한 조건이라면 굳이 해약할 필요는 없다.
더구나 개인연금보험 등 연금상품을 해약할 땐 그동안 받았던 소득공제 등 세금 혜택 부분을 도로 내놔야 한다(아래 표 참조). 그러므로 가입자는 자신이 가입한 연금보험의 설명서를 잘 분석해 보고 그래도 판단하기 어려울 땐 보험소비자단체의 조언을 얻어 해약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좋다.
법적 대응 여부 역시 소비자단체와 공동 대응하는 편이 유리하다.
종전 개인연금저축과 현행 연금저축 비교(자료: 금융감독원, 국세청) 소득공제 범위와 한도/연간 불입금액의 40%, 72만원 한도/연간 불입금액의 100% 240만원 한도 소득세/비과세/연금소득세 5% 원천징수 중도해지 또는 일시금 수령시/이자소득세 부과/기타소득세 원천징수 5년 이내 중도 해지시/납입금액의 4% 소득공제 추징(연간 7만2천원 한도)/납입금액(연간 240만원 한도)의 2% 해지가산세 부과 적립기간/10년 이상 만 55살 이후까지/좌동 연금 지급기간/만 55살 이후 5년 이상/좌동 적용기준/2000년12월 말까지 가입분/2001년1월1일 이후 가입분 **이자소득세는 2004년 12월31일까지 15%, 2005년 1월1일 이후 14% 적용.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