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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여행 중앙아프리카, 르완다
낯선 여행 중앙아프리카, 르완다
  • 이병효 <오늘의 코멘터리> 발행인
  • 승인 2019.06.03 14: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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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 나이로비에서 우간다 엔테베 공항으로 가는 길에 르완다 키갈리 공항에서 3시간쯤 들렀다 가기로 했다. 애초 그럴 작정으로 르완다에어를 선택한 참이다. 시간이 넉넉하면 르완다를 며칠 동안 머물고 싶었다. 하지만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방문을 처음인지라 한꺼번에 너무 여러 나라를 가는 것은 아무래도 부담스러웠다.

더욱이 르완다는 1994년 50만 명 이상이 종족분쟁 끝에 죽음을 당한 대학살(genocide)로 악명이 높을 뿐 나로선 특별히 가볼 만한 곳은 없는 나라인 것 같았다. 르완다는 우간다와 더불어 마운틴고릴라가 유명하긴 하지만 서식지까지 들어가는 비용이 워낙 비싸서 언감생심인데다 내가 각별한 동물애호가인 것도 아니어서 크게 끌리지도 않았다. 더군다나 이 나라는 도착비자 제도가 없어서 비자를 사전 신청해야 하는 것이 번거롭기도 했다.

하지만 르완다라는 나라에 대한 호기심은 있었다. 소수 종족인 투치가 다수 종족 후투를 지배하고 있는 이유와 비결이 무엇일까 궁금했다. 또 자빠진 김에 쉬어간다고 우간다를 가기로 한 길에 르완다를 덤으로 들르고 싶었다. 두 나라는 중앙아프리카에 위치해 있어서 사하라 이남에서 관광객이 자주 다니는 동아프리카나 남아프리카의 여행 축선에서 약간 벗어나 있다. 때문에 특별한 일이 있거나 크게 마음먹지 않으면 일생에 한번 찾아가기도 어려운 나라들이다. 키갈리를 거쳐 가는 항공편을 택한 것은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르완다 공항에라도 잠깐 들러서 그냥 그곳 분위기라도 힐끗 엿보자는 심산이었다.

서울에서 대한항공 케냐 직항편을 타고 13시간 비행 끝에 9월12일 새벽 5시20분 나이로비에 내렸는데 현지 지상 근무하는 대한항공 직원이 잘 도와줘서 입국절차를 거치지 않고 배낭을 찾아 르완다에어에 옮겨 실었다. 비행기 탈 때 맡긴 짐은 보통 최종 목적지까지 자동 연결되는데 르완다에어는 마이너 항공사라서 대한항공과 업무협약을 맺지 않았다는 것이 인천공항에서 들은 설명이다.

나이로비 공항은 지난달 큰 불이 나서 기능이 일부 마비됐다고 들었는데 실제 와보니 큰 문제는 없는 것 같았다. 다만 라운지가 문을 닫아서 6시간 남짓 보세구역에서 기다려야 했다. 이쪽 건물의 건너편에 그을린 자국이 거무죽죽 남아있는 쌍둥이 동생 건물이 바라다 보인다. 구조적인 피해는 없는 것으로 보였다.

르완다에어의 비행기는 캐나다산 봄바디어 CRJ900 79석짜리 쌍발 제트기였다. 전에 미국에서 소도시 연결편(feeder)으로 타본 적이 있는데 이것은 신기종에다 새 비행기라서 그런지 아주 좋았다. 특히 좌석은 보잉이나 에어버스보다 나은 것 같았다. 한 달 전에 뉴욕에서 서울로 오면서 초대형 에어버스 380을 타봤는데 좌석만큼은 봄바디어가 얄팍하면서고 더 편안했고 특히 선반 고리처럼 사소한 부분까지 세밀하게 신경을 써서 만든 것이 돋보였다. 우리나라도 앞으로 항공기 제조산업 발전을 위해 단거리를 운행하는 90인승 안팎 중형 여객기를 개발해야 하는데 봄바디어를 시장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한 순간 부질없는 걱정이 들었다.

스튜어디스가 두 명인데 한 사람은 전형적인 투치 미인으로 키가 크고 날씬한 몸매, 양악수술을 한 것처럼 하관이 쪽 빠진 갸름한 얼굴에 이목구비가 또렷했다. 다른 한 사람은 후투 미인으로 아프리카 서쪽의 반투어족 계열의 얼굴을 갖고 있었다. 키가 투치 미인보다 약간 작고 몸매도 조금 더 통통하고 튼실한 편이었다. 투치 미인이 각이 살아있다고 하면 후투 미인은 모든 것이 동글동글하다고 해야 할까. 전연 생소한 사람에게도 이처럼 차이가 뚜렷하게 보이니 그 나라 사람들은 얼마나 확실하게 알아 볼 것인가. “우리나라에서는 말씨를 듣기 전에는 어느 지역 출신인지 알기가 거의 불가능한데…” 하는 생각이 불현 듯 스쳤다.

나이로비를 떠난 비행기는 한동안 케냐와 탄자니아의 사바나 위를 날았다. 창가에 앉았지만 기내식을 먹느라 잠깐 한 눈 팔았더니 언제부터선가 빅토리아 호수 위를 지나고 있었다. “명불허전이라더니 호수가 과연 대단하군” 하고 생각하는 즈음 다시 땅이 보였다. 이제는 르완다경내에 들어왔다. 그리고 지도를 보면 키갈리는 호숫가에서 멀지 않다. 이윽고 저 아래 집들이 조그맣게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저건 뭐지?” 지붕들이 반짝거리는 것이 아닌가.

자세히 보니 모든 집 지붕이 다 빛나는 것은 아니었다. 아마 전체의 3분의 1, 아니면 절반 가까운 지붕들이 거울처럼 햇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어떤 동네는 줄을 맞춰 나란히 지은 한 구역 전체가 반짝거렸다. 지붕에 거울을 달았을 리는 없고… 혹시 양철 지붕은 아닐까 하는 추측이 들었다. 그런데 요새도 양철 지붕이 있나? 함석 지붕은 들어봤는데… 양철은 철판에 주석을 입힌 것이란 것은 ‘Tin Roof’란 영어에서 유추할 수 있는데, 함석은 철판에 뭘 입혔는지 잘 기억이 안 났다. 나중에 찾아보니 강판에 아연을 도금한 것이었다. 그런데 함석 지붕도 양철처럼 반짝거리나? 잘 모르겠다.

어쨌든 저렇게 많은 지붕들이 반짝거리는 풍경은 인상적이었다. 어느 잡지에선가 미국 주택의 지붕을 모두 하얀 색으로 바꾸면 엄청난 양의 냉방용 전기를 절약할 수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하지만 지붕 재료를 저렇게 택한 것은 경제적 이유 외에도 자재 공급의 편의 등 현실적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늘에서 굽어 볼 때 보기 좋다는 것은 아마 고려사항이 아니었을 것 같다. 지난 7월 샌프란시스코공항에서 아시아나기가 사고를 냈을 때 조종사 말이 착륙 직전 지상으로부터 강한 빛이 반사돼서 순간적으로 시각을 잃었다고 했다는데 “혹시 그런 일은 없겠지…” 실없이 엉뚱한 생각마저 해본다.

르완다 키갈리 공항은 규모가 작은 편이고 아담했다. 키갈리에 취항하는 항공편이 많을 리가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환승통로를 따라 출국장으로 들어가는데 몸수색이 여간 엄중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80개국 이상을 다녀봤는데 신발을 벗게 하고 허리띠를 풀게 하는 나라는 더러 있었다. 그러나 몸수색을 하면서 사타구니 가까이에 손을 대면서 샅샅이 훑는 것은 처음 당해 보았다. 그럼에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던 이유는 몸수색이 상당히 프로페셔널하게 행해졌기 때문이었다.

키갈리시내에 들어가 보지 못해서 지붕들이 과연 양철인지 함석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 이튿날 우간다의 버스에서 승객 가운데 목사라는 사람에게 그런 지붕에 대해 아느냐고 물었더니 ‘아이온 시트(Iron Sheet)’라는 대답이었다. “철판을 그냥 쓰면 금방 녹이 슬어서 곤란한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양철이나 함석도 모두 철판에 주석이나 아연을 도금을 한 것이니까” 하고 들어 넘겼다. 또 키갈리 시내가 공항에서 살짝 느낀 만큼 질서정연하고 가지런한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항상 다음 기회가 있는 거니까” 하고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르완다에 다시 올 일은 아마 없으리라는 것을 잘 알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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